"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하더라."
친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너무 부아가 치밀어도 할 말을 잃고 한숨을 크게 내뱉게 된다.
"아들이 코로나에 걸려서 보름이나 시설에 격리되가지구 있다가 몸이 더 안 좋아져서 병원까지 실려 갔다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니?"
동글동글한 목소리를 가진 순하기만 한 친구는 쉴 새 없이 화를 쏟아냈다.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어 마음 졸이고 애태우던 친구에게 시아버지의 말 한마디는 불에 기름을 붓듯 화를 타오르게 했다. 착한 친구는 시아버지한테 대거리하지 못하고 전화통에다 대신했다.
아흔여섯 나이를 내세워 어른 행세하기 좋아하는 친구 시아버지의 너무나 이기적인 행태를 가끔 전화를 통해 듣고 있노라면 머리가 어지럽고 화가 나서 몸이 더워진다.
친구의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친구의 시누이들 의견을 따라 요양원으로 보냈던 시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온 것은 순전히 친구가 한 일이었다. 외며느리를 아끼고 사랑했던 심성 고왔던 시어머니에게 다하지 못했던 효도를 시아버지 모시는 일로 갚고 싶었던 친구의 선택은 고된 일을 불러온 것이다.
"서른다섯 된 여자가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산다면 어떻겠니?"
불난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친구에게 나는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때때로 시어머니의 모습이 받아들이기 어려워 나도 불이 나려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통화를 끝내고도 나의 생뚱맞은 질문을 곱씹으며 생각해보았다. 오래도록 품고 살아온 질문인지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요즘 들어 더 자주 시어머니를 생각해 보게 된다.
30년 전 내가 결혼을 결정했을 때 직장 상사가 걱정하면서 건네던 말이 불현듯 한 번씩 떠오르고는 했었다.
"홀시어머니 모셔야 할 텐데 그거 굉장히 힘들어요.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막연히 염려했던 일은 27년 동안은 일어나지 않았고 크게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시어머니는 화통한 여장부였다. 힘든 살림에 자식 넷을 혼자 키워냈고 시댁의 대문은 늘 열려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언제나 가족을 잘 이끌었던 어머니는 그때그때 자식들에게 큰 목소리로 일을 결정해주었고 우리는 순종하면서 따르는 것이 전부였다.
5년 전부터 어머니는 여러 가지 병치레를 하면서 괴로워했고 짜증 내는 일이 반복되었다. 병원 입원과 퇴원하는 일이 잦았지만 몸이 회복되면 다시 혼자 지내던 집으로 내려가 동네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면서 생활했다.
힘든 일은 슬며시 찾아왔다. 어머니가 술을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더니 실수하는 일이 잦아졌고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면 다른 건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렸고 급기야 넘어져서 다치는 일까지 일어났다.
팔다리를 다치고 이가 부러져 있는 시어머니를 찾아가면 언제나처럼 시어머니는 큰 소리로 자식들을 호령했고 자식들은 쩔쩔매면서 따르는 것에만 익숙해서 문제가 심각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술 먹으면서 뭔 잘못을 했다냐?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탱께 암말도 말어"
아무 말도 못 했다. 어머니의 카리스마에 눌려 아무도 어머니보다 더 큰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알코올에 의존하는 일이 깊어졌다.
알코올 중독은 불치병에 가깝다. 어머니가 폐쇄병동에 입원하고 나서야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알코올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올무가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불치에 가까운 청상의 외로움은 알코올로 견뎌왔지만 몸이 망가지는 것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알코올 중독 치료는 여러 번 재발되는 고비를 넘기면서 3년이 지나서야 알코올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어머니가 가진 강한 의지와 여장부의 기세는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는 과정은 맏며느리인 나에게 인내를 강요했고 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려를 요구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거칠어지고 사막처럼 생명력을 잃어 원인 모를 고통이 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효도라는 덕목을 장남과 맏며느리에게 유독 강요하는 무거운 사회의 공기에 나도 자유롭지 못했다. 아흔여섯에도 철들지 못한 것 같은 시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밀어내지 못하는 착한 친구가 자식의 도리에 갇혀있는 것처럼 나 또한 서른다섯 살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외롭게 살아낸 시어머니가 애처로워서 보호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 결심은 자그마한 일에도 마음에 성난 날이 서고 온몸을 얽어맨 밧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다.
아이의 양육을 두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노인이 되어가는 부모를 돌보는 일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공감하기 어렵지만 많은 사람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