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같은 인생

by 워니

벚꽃이 피면 온 세상이 환해져서 그런지 다시 멋지게 살고 싶어지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고 싶어지는 에너지와 흥이 살아난다.

해마다 경상도에 벚꽃이 만개하는 사월 첫째 주를 전후해 삼 남매는 친가에 모여 벚꽃놀이를 간다. 언제부터인지 다른 가족들은 다 떼놓고 부모님과 삼 남매만의 특별한 만남을 만들어 왔다.

친정집이 있는 작은 도시에는 오래된 벚꽃 길이 있다. 학창 시절 등하교 길에 걷던 벚나무 가로수는 나처럼 어렸었는데 이젠 고목이 되어 제법 유명한 봄나들이 길이 되어 있었다.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 밤늦은 시간까지 부모님과 함께 꽃 터널을 걸으면 어린 날의 추억들이 되살아나서 곁에 와있고 꽃이 환하게 밝힌 밤하늘과 어우러진 작은 도시의 야경은 형용할 수 없는 기쁨으로 달뜨게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벚꽃 만남이 마지막이었던 그 해에는 마음이 무척 무거운 일이 있었다. 엄마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실수를 하는 일이 잦았다.

식사하는 모습이 무척 낯설고 위태로워 보였는데 젓가락질이 서툴러진 것인지 식탐이 생긴 것인지 반찬을 옷에 잔뜩 묻혀가면서 식사를 하거나 바로 앞에 놓인 물컵을 보지 못했는지 손으로 컵을 툭 밀어 넘어뜨려 물이 쏟아지는 일이 연거푸 일어났다.

아버지는 엄마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화를 내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

벚꽃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 차를 타고 갈 때였다. 엄마 옆에 앉게 된 나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기 봐라 저, 달 떴다. 내일이 보름이나? 내일 비 온다 카더라 여기 공기 참 좋데이. 저 집은 문을 벌써 닫았네. 저 집 장사 참 잘 된다. 너 저 집 가봤나? 아.. 너 저 집 잘 모르제. 저 집에 너 친구 있었다 아이가. 너 말고 숙이 친구가? "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엄마는 끊임없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했고 눈을 맞장구를 쳐주거나 대꾸를 하지 않으면 화를 냈다. 20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머리가 멍해지면서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 달았다.

"엄마 힘들지 않아? 쉬지도 않고 계속 이야기를 하시네."

"저 봐라 벚꽃이 조래 이쁜데 얼마나 좋나?"

"듣고 있는 나도 머리가 아픈데, 엄마 계속 말하면 힘들어, 좀 쉬었다 이야기해요."

소용이 없었다. 엄마의 이야기는 이상한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요즘 마음에 콕 와서 박힌 노래가 하나 있다고 들어보라고 했다. 평소에 엄마가 노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이상했다. 분위기가 좋아서 아이처럼 노래를 하고 싶어졌나 보다 생각했다.


너도 한번 나도 한번

누구나 한 번 왔다가는 인생

바람 같은 시간이야

멈추지 않는 세월

하루하루 소중하지

미련이야 많겠지만 후회도 많겠지만

어차피 한 번 왔다가는 길

붙잡을 수 없다면

소풍 가듯 소풍 가듯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야지


처음 들어본 노래였는데 엄마는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가사를 제법 알고 계셨고 가느다랗고 고운 음색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노래를 끝까지 부르더니 노래처럼 소풍 가듯 웃으면서 살다가고 싶다고 했다.

봄소풍을 다녀오고 얼마 후 엄마는 치매 진단을 받았고 비교적 초기에 치료를 시작해서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치매는 완치가 가능한 병이 아니다. 기어이 병이 기억을 점령해버리는 날이 오고야 만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봄 밤,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잠 못 이루게 하는 벚꽃은 겨우 일주일 만개하고 꽃 잎을 흩날리면서 봄눈처럼 사라진다. 일장춘몽이 인생이다.

언젠가 떠나야 하는 인생이라고, 시간은 바람같이 지나간다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라고, 엄마는 그날 사라져 가는 기억을 잡아두고 소풍 같은 인생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건 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