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와 악어는 모성애가 강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림책 <파랑 오리>는 엄마 잃은 아기 악어의 엄마가 된 파랑 오리와 병든 엄마를 돌보는 악어의 이야기이다.
아기 악어는 태어나자마자 혼자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가을날 파란 연못에서 파랑 오리는 아기 우는 소리를 듣고 헤엄쳐 가서 아기 악어를 만나게 된다. 엄마를 잃고 졸졸 따라다니며 엄마라고 부르는 아기 악어를 파랑 오리는 뿌리치지 않고 지켜주었다. 따뜻하게 안아서 재워주고, 위험에서 구해주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깨끗하게 씻겨주고, 물을 무서워하는 아기 악어에게 생존을 위한 수영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엄마! 내가 물 위에 떴어요!"
물장구를 치며 물 위에 떠서 즐거워하는 아기 악어의 모습과 한쪽 날개로 턱을 괴고 흐뭇하게 미소 짓는 파랑 오리의 모습은 다정한 엄마와 아이의 모습 그대로이다.
몸이 작은 파랑 오리는 엄청난 몸집으로 성장해가는 악어를 바라보며 무척 든든하게 느낀다. 마치 장성한 아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어머니처럼.
그런 파랑 오리에게 치매 증상이 나타난다. 기억을 조금씩 잃기 시작하다가 자신이 키운 악어를 보고 놀라 저리 가라고 소리치기도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된다.
그때부터 악어는 씻는 것을 잊어버린 파랑 오리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기도 한다. 파랑 오리가 이유도 모르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다가 결국 걷지도 못하게 되었을 때, 악어는 파랑 오리를 안고 파랑 오리가 좋아했던 숲을 찾아간다. 기억을 잃었어도 파랑 오리는 숲의 향기에 엷게 미소 짓는다.
파랑 오리의 미소를 보면서 뇌의 기억은 사라져도 몸이 기억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고 많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아기였지만, 이제는 엄마가 나의 아기예요. 내가 지켜 줄게요"
<파랑 오리> 작가 릴리아는 악어와 오리로 형상화한 부모와 자식의 모습이 억지스러워 보이지 않도록 단순한 선과 색으로만 표현했다. 간결하고 담담하여 넉넉한 여백에도 허전하지 않고 오히려 담백해서 인물들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어 감동하게 만들었다.
<파랑 오리>를 읽고 그림을 감상하면서 치매가 진행되는 과정이나 특징을 알 수 있었는데 파랑 오리의 모습에서 시어머니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웃음도 많고 흥도 많아서 이웃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말 수가 줄어들고 표정이 굳어져 갔다. 그래도 이웃이 있는 곳을 좋아해서 하루 종일 그곳 골목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들어와서도 수시로 창가에 서서 골목을 내려다 보고는 한다. 그런데 씻는 것을 싫어하게 되면서 이웃들이 시어머니를 불편하게 여기고 멀리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그림책 마지막 장면은 파란 연못을 등지고 앉은 악어가 무릎에 앉은 파랑 오리를 안고 있는데
"밥 줘"
"배고프단 말이야"
파랑 오리가 지그시 눈을 감은채 말하고 악어는 당황한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다.
치매환자들 중에 밥 먹은 것을 까먹고 시도 때도 없이 밥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
하필이면 왜 배고프다고 호소하는 걸까?
생리적으로 느끼는 배고픔의 원인에는 음식물에 대한 굶주림만은 아니라고 한다. 영혼의 목마름이나 외로움이 '배고픈 현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치매 환자가 시도 때도 없이 배 고프다고 하는 행동은 초조와 불안이 허기진 것으로 나타나는 터치 헝거(touch hunger)일 수 있다. 손을 잡아주거나 가볍게 안아주는 스킨십이 불안과 초조를 진정시키는 위로와 약이 될 수 있다.
머리 감는 것을 싫어하게 된 시어머니가 머리를 감지 않겠다고 화를 내서 곤란했던 때가 있었다. 4시간 운전해서 어머니에게 가서 챙겨놓고 와야 할 일 중에 머리를 감겨드리는 일이 하나 더 늘어났었는데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려서 난감했었다. 머리에서 냄새가 나는데도 매일 머리를 감는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완강하게 거부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간을 보내서 그랬는지 어머니의 병을 받아들여서 그랬는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어머니가 밉지 않았다. 화를 내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가볍게 안아주고 웃으면서 말을 건네었더니 성가시게 한다는 한마디를 하고는 화장실을 향해 앞서 걸어 나갔다. 순한 양처럼 세면대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어머니 머리를 감기면서 작고 단단한 머리가 손끝에 느껴졌던 따뜻한 감촉을 잊을 수가 없다. 터치 헝거의 결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살펴보라고 파랑 오리와 악어가 내게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