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리 반 학생인 민호는 엔젤만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얼굴이 하얗게 해맑고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민호는 마치 이름 그대로 ‘엔젤’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천사 같은 존재다. 하루하루 밝은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하는 그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도 큰 선물이었고, 아이가 가진 따뜻한 감정의 결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민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처음 들어가면 발을 떼지 못하고 긴장하거나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매년 3월, 학년이 바뀌고 교실을 새롭게 옮기는 시기가 되면 민호를 위한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새로운 교실로 처음 발걸음을 옮길 때는 반드시 전년도 담임교사가 함께 가서 교실을 하나하나 소개해 주어야 한다. 책상은 어디에 있고, 교실 문은 어떻게 여닫는지, 창가에는 어떤 물건이 놓여 있는지 등 평범한 설명조차 민호에게는 안정감을 주는 매우 중요한 절차다. 설명 하나하나에 담긴 익숙한 목소리와 표정은 새로운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고, 그 순간 민호는 조금씩 마음의 벽을 허물어 간다.
새로운 교사를 처음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생소한 얼굴을 혼자 마주하게 하면 불안해하거나 위축되기 쉽기 때문에, 익숙한 교사가 손을 잡고 함께 가서 인사를 시켜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 민호는 낯선 사람을 새로운 관계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되고, 관계 형성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진다. 짧은 인사지만, 그 속에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서적 연결이 존재하고, 그 연결은 곧 민호의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 준다. 우리 반이 되던 2024년의 3월 4일도 그랬다. 전년도 담임 선생님이 함께 오셔서 민호를 안아 주고 달래고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조금씩 나에게 적응했었다
민호가 가진 정서적 깊이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진하다. 말로 자신의 감정을 세세하게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마음이 전해지는 아이다. 한 번은 민호를 돌보아주던 실무사 선생님이 갑작스러운 병가로 며칠 학교에 나오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 며칠이 민호에게는 얼마나 길고도 허전했을까. 오랜만에 복귀한 실무사 선생님을 본 순간, 민호는 그 품에 와락 안겨서 눈물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 우는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다. 품에 안겨서 울다가도 얼굴을 한 번 올려 실무사 선생님을 바라보고, 그 얼굴을 확인한 후 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얼굴을 한 번 보고 울고, 또 보고 울고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그것은 단순한 반가움이 아니라 그동안 참아 왔던 감정의 응축, 기다림과 그리움,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모두가 코끝이 찡해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올해 3월, 내가 그 아이의 담임을 마치고 새로운 담임교사에게 인계를 하게 되었다. 변화는 항상 민호에게 커다란 도전이지만, 예상보다 잘 적응하는 모습에 안도했다.
그런데 하루는 복도를 지나가다가 민호와 마주쳤는데, 나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와 꼭 껴안고는 한참을 놓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학교 안에서 내 모습이 보이기만 하면, 민호는 어디에 있든 달려와서 나를 따라다녔다. 수업 중이든, 쉬는 시간이든 상관없이 나를 보면 그저 기쁜 마음에 따라다니려 했고, 마치 “선생님, 저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큰 감동이었고, 아이가 주는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죽했으면 민호 어머니께서 "우리 민호는 선생님의 그림자만 봐도 따라다니네요." 하실 정도였다. 특수학교에서 이렇게나 옛날 선생님을 기억하여 반가움을 표현하는 학생을 만나기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아마도 나는 전생에 나라를 세 번은 구했나보다.
민호가 나에게만 특별한 정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항상 옛날의 인연을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성향을 가진 아이라서 그런 것 같다. 아마 민호는 내년 3월이 되면 지금 담임 선생님의 그림자만 봐도 따라다닐 것이다.
특수교사로서 아이들과의 하루하루는 늘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힘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감동의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특히 민호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아이다. 나 역시 이 아이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관계의 본질, 진심의 전달, 그리고 따뜻한 교감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민호는 단지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아니라, ‘특별한 사랑을 줄 줄 아는 아이’다. 민호가 내게 건넨 웃음, 눈물, 포옹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그 기억은 앞으로도 내가 아이들과 마주할 때마다 마음의 중심이 되어줄 것이다. 민호는 나에게 교사로서의 사명감을 넘어 인간적인 따뜻함과 진심을 되새기게 해준 선물 같은 존재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를 통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