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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현 May 28. 2024

초심에 대하여

 기분 좋은 금요일이다. 정시퇴근을 하고 시장에 들러 김밥을 몇 줄 산 뒤에 한 어묵집을 들렀다. 생선살 함유량이 높아 맛도 있고 영양도 좋아 한 4~5년 전부터 한 번씩 들르던 집이다. 가면 도미어묵 큰 토막 하나를 사거나  핫바 여러 개를 사곤 했다. 그 기억에 오늘도 어묵집에 들러 작은 도미어묵 하나를 골라잡았다. 한데 튀긴 후 실온에 오래 보관이 되어 그런지 겉껍질이 질기고 조금 퍽퍽한 것이었다. 그런 적이 없었는데, 변한 맛에 실망감을 애써 감추고 가게를 나오며 초심을 생각해 본다.


 초심은 처음에 먹은 마음이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세운 목표나 마음가짐,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것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 가게가 유명해지면서 초심을 잃었을까?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왜 그 어묵가게에 실망감이 들었을까? 단지 오늘 먹은 도미어묵값 2,500원이 아까워서만은 아니다. 어떤 맛을 찾아 특정한 가게를 찾는 손님은 언제나 반가움과 기대감을 가지고 온다. 오랜만에 옛 지인을 만나는 듯한 반가움, 맛이 변하지 않았을 거라는 기대감이다. 하나 뭔가 중요한 것이 변했다면 더 이상 반가움도, 기대감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옛 지인 한 명을 과거로 보내듯 아끼던 맛집 하나를 과거로 보내게 된다.


 초심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학생이 초심을 지키면 목표한 성적을 이루고, 직장인이 초심을 지키면 업무력으로 그것을 증명한다. 연인이 초심을 지키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음식점이 초심을 지키면 이미 확보한 단골을 뺏기지 않는다. 모두 알고 있지만 실천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초심을 지키는 사람, 가게가 그 희소성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보통 우리가 초심을 가질 때면 낯선 대상이 존재하고 그에 대한 설렘, 약간의 걱정 등이 동반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설렘과 걱정은 변한다. 편안함과 익숙함, 노하우 등이 조화롭게 섞인 이상적인 상태가 될 수도 있지만 일순간 경계를 늦추면 지루함과 권태감이라는 악수를 피하기 어렵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편안함 위에 지루함, 권태감, 게으름 등의 악수를 희석하지 않은 사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또 그러한 가게가 오랜 단골을 지킨다.


 때로 늦은 나이에 공부나 시험에 도전해서 일정 성과를 이룬 어르신들을 볼 때 대중이 놀라는 것은 단지 그의 개인적 성취, 그 결과물 때문만은 아니다. 어르신들이 그만큼 살아오시면서 삶에 책임질 거리는 얼마나 많을 것이며, 뇌의 기억작용에는 얼마나 어려움이 있겠는가. 그 모든 변수들을 누르고 공부에 대한 초심을 끝내 놓지 않아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의 인내심과 성실성을 입증한다. 이에 사람들은 감탄한다.

 나는 얼마나 초심을 갖고 사는 아내, 직장인, 딸, 며느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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