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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현 Jun 06. 2024

이별의 유예

영화 원더랜드 리뷰 1

(원더랜드 줄거리 일부 포함)

「가까운 누군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처음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그의 죽음으로 남겨진 가족을 챙겨야 하므로.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지독히 그립고, 외롭고, 슬프다.

누군가 찾아와 그의 생전 모습을 완벽한 3D AI로 복원한 후 언제든 그와 영상통화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수화기 너머의 그는 저 먼 곳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내가 원할 때까지 건강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 그것을 원한다면 지금 원더랜드를 시작하라」     




 젊은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나는 아무런 감정적, 현실적 준비를 하지 못했다. 젊은 딸은 6살 손녀 지아를 남겼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 원더랜드 신청을 간곡히 바랐다. 나는 마지못해 승낙했고 아주 오랜만에 건강한 딸의 모습을 수화기 너머로 만났다.


 AI는 딸아이의 단순 복제품 그 이상이었다. 사막의 고고학자로 살고 있는 그녀는 그곳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있었고 엄마인 나와 자신의 6살 딸 지아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일이 너무 바빠 자주 연락하지 못했던 현생에서와 달리 지금의 딸은 틈틈이 전화를 자주 걸어왔고 나와 지아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해주었다. 자기 전 지아에게 책을 3권씩 읽어주기도 했다.    

  

 정말로 딸은 수화기 너머에서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원더랜드를 이용하면 내가 딸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이별을 유예할 수 있다. 특히 6살 지아는 조금 더 클 때까지 엄마가 다른 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엄마의 죽음을 내가 원하는 만큼 늦게 알릴 수 있다. 하지만 이별의 유예기간을 거치면 이별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어느 날 딸이 수화기 너머로 ‘엄마 이 스카프 예쁘지요. 다음에 엄마에게 하나 선물할게요.’하며 발랄한 웃음을 지어보였을 때 나는 ‘넌 여기 올 수 없잖아!’하며 화를 냈다. 딸의 AI와 통화하며 처음에는 ‘이건 현실이 아냐, 가상이야. 단지 지금 너무 슬프고 외로우니까 잠시만 딸의 모습을 보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완벽하고 다정한 AI의 모습에 점점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어렵게 되었고 더 이상 AI를 보며 위로를 얻을 수 없었다. 나는 원더랜드 서비스를 종료했다.     


 집안의 딸의 물품들을 모두 정리해서 버리고 나는 지아를 데리고 다른 도시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헌데 잠시 길을 묻는 사이 손녀 지아가 사라졌고 패닉이 온 나는 마지막으로 딸의 AI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딸 지아를 찾아주었다. 그 날 딸의 AI는 처음으로 자신의 딸 지아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딸의 AI와 나는 그날 다시 한 번 이별을 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내 딸과도 진짜 이별을 했다.     


 지금은 딸의 이별을 한번은 받아들일 시기가 왔기에 그녀를 잊고 살아볼 것이다. 하지만 지아가 제 엄마를 닮아가며 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딸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이다. 아마도 그런 순간이 숱하게 많을 것이다. 한번씩은 다시 원더랜드를 통해 딸의 AI를 만나고 싶다. 하지만 그 때는 한번의 이별 경험이 있어 지금만큼 아프지 않고 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괴롭다면 원더랜드를 통해 잠시 이별의 유예를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어느 순간에는 결정해야 한다. 언제 진짜 이별을 할 것인지를.     


 바이리는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다. 나와 지아에게 조금 긴 인사를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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