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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소현 May 28. 2024

코끼리랑 살기

 어려서부터 생각이 많아 고민도 많았던 나는 이 생각들이 불필요하게 느껴지며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 생각들을 소중한 내 일상에 필요한 체력과 에너지를 갉아먹는 뱀파이어 쯤으로 여긴 듯하다. 이 이상한 뱀파이어는 때때로 내 머릿속의 선량한 새싹들을 죽이고 커다란 코끼리들을 만들어냈다. 자고나면 어제의 코끼리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코끼리들이 생겨났다. 문제는 이 코끼리들이 부피만 큰 것이 아니라 속이 텅 비어 있어 휩쓸리다보면 공허해진다는 것이다. 고민해봐야 결론도 없고 속만 답답한 걱정거리들은 코끼리의 먹이가 되어 하나둘씩 코끼리 수를 늘려만 갔다.


 대체 왜 나는 머릿속에 이 코끼리들을 안고 살아 남들보다 배터리가 일찍 닳는 걸까? 이 코끼리들을 어떻게 잡아야 머릿속 생태계가 깨끗해질까? 남들은 잠깐 하다 멈출 줄 아는 생각들을 왜 나는 이렇게 자주 해야 할까? 코끼리들에 잠식당한 하루를 보낸 날이면 잠들기 전 설명할 수 없는 자책감이 들었다. 하루를 버린 느낌, 성의껏 살아내지 못한 기분이었다. 운동을 열심히 다녔던 시기에는 머릿속이 맑아지곤 했는데 또 잠시였다. 운동하느라 몸의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는 시간, 그리고 운동 이후의 낯선 근육통이 생기는 며칠이 지나면 다시 코끼리들은 나타났다.


 이번에는 하루 중 일정 시간을 정해 이 코끼리들을 자유롭게 뛰어다니게 하며 코끼리의 생김새를 밖으로 묘사해볼까 싶다. 예를 들면 1번 코끼리는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을까 싶은 오래된 불안, 내 가족과 나의 건강 걱정, 2번 코끼리는 업무와 진로에 대한 고민, 3번 코끼리는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고민 4번 코끼리는..뭐 아무거나 등등이다. 이 시간에 내 손가락이 노트북 일기장을 열어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동안 머리속 코끼리들은 마음껏 뛰어다니며 온갖 풀을 뜯어먹어도 된다. 키보드 입력이 끝나면 그날의 코끼리들은 집안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 깜깜한 집 안에서 잠들어 있다가 내일 그 시간이 되면 다시 풀을 뜯어먹으러 나올 수 있다. 눈을 딱 감고 ‘코끼리들아 사라져라 얍!’ 하면 예쁘게 사라질 놈들이 아니기 때문에 나름의 협상을 했다. 


이번에는 코끼리와 내가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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