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 May 27. 2024

훌륭한 글이 좋은 제목을 만든다

온라인 글쓰기(2)

한강 여의도 지구, 오전 6시 30분

  전문적으로 제목을 만드는 신문사의 편집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절대 과장하지 말라’였다. 사실 자신의 상품을 좀 더 그럴듯하게 보이고, 더 설득력 있게 보이려는 욕구는 당연하다. 자신의 글을 좀 더 사람들이 많이 읽도록 만들고픈 글쓴이의 욕구도 매한가지다. 많이 읽혀야 돈이 된다. 클릭이 곧 현금인 온라인 글의 경우, 이른바 독자를 낚는 제목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경향은 기성 신문사들도 마찬가지다.

  ‘30대 여의사 충격’이라는 제목을 보고 클릭했는데, 내용은 ‘충격적으로 수술을 잘 하는 여의사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반전을 안겨주는 글도 많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지만 독자는 이런 식의 과장에 계속 속지 않는다. 선정적인 제목이 많은 언론사 사이트의 경우 방문객은 많아도 그들이 사이트에 머무르는 시간은 적다는 게 통설이다. 좋은 제목은 뭘까. 실례를 들어보자.

  2008년 3월, 영화 ‘동거, 동락’이 여러 매체에 소개된 적이 있다. 한 매체는 ‘세상에! 엄마가 내 남친이랑?’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다른 신문은 ‘엄마가 내 남친과…중년의 도발’이라고 했다. 영화에는 엄마가 딸의 남자와 잠자리를 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는지 선정적인 제목 일색이었다. 하지만 유심히 기사를 읽어보면 선정성 보다는 새로운 유형의 가족을 담은 영화였다. 당시 내가 가장 좋은 제목으로 뽑은 건 ‘25살 여감독, 가족의 금기를 깨다’였다. 겨우 25살의 여성 감독이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뜻으로, 감독의 재기발랄함을 제목으로 표현하면서도,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담아냈다. 이런 제목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글의 컨셉트가 달랐기 때문이다. 단지 영화를 봤거나 보도자료로 글을 쓴 경우는 가장 선정적인 부분을 과대 포장한 제목이 많았지만, 이 기자는 젊은 감독을 인터뷰했다. 아마도 그는 선정적인 제목과 영화의 본질이 달랐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인터뷰를 결심했을테다. 

  독자가 제목에 끌려 내 글을 클릭하고는 바로 스캔 후 창을 닫는 게 아니라 정독하도록 유도하려면 선정성보다는 '나만의 컨셉트'로 쓴 글과 그 차별점을 잘 드러내는 제목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제목은 글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상품의 얼굴인 광고와도 일맥상통한다. 글의 내용에 충실한 제목을 달아야 한다고 말했듯, 광고도 상품의 본질에 다가설수록 매력적이지만 형식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증언광고가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 증언광고의 표본을 고르자면 미국에서 2012년에 페브리즈가 소비자 실험을 통해 보여준 광고를 꼽겠다. 올림픽 레슬링 팀이 밀폐된 공간에서 격렬하게 운동을 하는 옆에 페브리즈를 뿌린다. 안대로 눈을 가린 소비자들을 들여보내고, 그들에게 자신이 앉아 있는 장소를 상상하게 한다. 소비자들은 페브리즈의 향기에 그 곳을 꽃밭이나 숲속으로 생각한다. 음식 쓰레기를 가져다 놓은 차 안이나, 더러운 세탁실에 눈을 가린 소비자들을 데려간다. 역시 페브리즈를 뿌리고 어디인지 물어본다. 소비자들은 나중에 안대를 벗고 'Oh my god(이럴수가)', 'I cannot believe(믿을 수 없어요)' 등의 감탄사를 연발한다. 상품의 특성 그대로를 보여준 수작이다.

  우리나라의 증언광고는 이런 형식을 차용했지만 실제를 그대로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명 스타가 직접 살고 있다는 아파트를 홍보하고, 유명 과학자가 표백제의 표백력을 소개했다. 하지만 이런 유명인들은 실제 그 아파트에 사는지도 알수 없고 그 표백제를 쓰는 지도 불확실했다. 이에 비판이 커지자 한 건설업체는 유명인들에게 72시간을 직접 자신들이 지은 아파트에 살아보도록 했다. 하지만 이 광고 속에서 모델들은 상위 1%나 즐길 스위트룸에 있었다. 마루 위에 욕조가 있고, 거실엔 스파가 자리하고, 밤이 되면 천정에 별이 보이고, 집주인의 맘을 읽었는지 에너지가 효율적으로 조정된다. 진심을 강조한 광고 같았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졌다. 통상 광고의 한 줄 카피는 가장 효율적인 글의 제목이 된다.

  또 제목은 쉬워야 한다. 언론사들은 기자에게 통상 중학교 2학년이 읽을 수 있는 기사와 그 정도 수준의 제목을 권장한다. 사회 통념상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선 안 되고, 미적인 관점이나 재미있는 제목을 추구하다가 꼭 전달해야 하는 글 속의 정보를 누락시키는 것도 경계하도록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제목을 다는 연습을 해보자. 이 그림은 뭘 뜻할까. ‘WWF’(세계자연기금)이라는 환경단체를 모른다면 이 지면 광고의 의미를 알기는 쉽지 않다. 기후변화를 경계하는 단체임을 알았으니 '기후변화 대응에 늦는다면 해수면 상승으로 세계 지도에서 육지가 사라질 것'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직접적인 제목은 '기후변화 대응에 늦으면 우리는 바다 속에서 살게 된다' 정도이겠다. 하지만 글을 생략하고 이미지만으로 기후변화를 경고한 것이 이 지면 광고의 핵심 아이디어 중 하나일테니 조금은 돌려서 달아도 좋겠다. ‘The next is sea world?'나 '우리 아이가 살 곳은 어디일까요' 정도면 어떨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