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반

다시 보니 반가운 얼굴이 너무 많은 영화

왔어요, <뺑반>이 왔어요, <뺑반>이… 꼭 이 문장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이 영화는 나를 즐겁게 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이 영화를 보니 그 무언가 이 외에도 여러 배우들이 나를 즐겁게 했다. <뺑반>은 뺑소니 전담반의 줄임말이다.

첫 장면에서 경찰청장으로 나오시는 분 얼굴을 보며 저 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딱히 기억이 안 난다. 유연수 배우님 뒤져 보았더니 한다하는 영화에 다 나오셨다는 걸 보고는 “진짜?”하며 입을 벌리게 된다. <해피 엔드>, <여고괴담>, <괴물>,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태백산맥>, <세 친구>. 감독들의 면면을 봐도 정지우 감독, 봉준호 감독, 이창동 감독, 임순례 감독까지 대단하신 감독분들이랑 작업한 것만 봐도 보통 배우는 아니리라 짐작이 간다. 내공이 느껴지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뒤에 약간 흐릿하게 보이는 배우가 이학주. <통:메모리즈>를 본 사람은 알 거다. 이 배우가 멋들어지는 배우라는 걸. 그런데 여기서 결정타는 조정석이다. 누가 봐도 불량 악당이다. 조정석의 악역은 처음 봐서 낯설긴 했지만 보면 볼수록 찰떡이라는 생각이 드니 불만은 없다.

도입부만 봐도 돈 거래가 있고 권력자들이 나오고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이 된다. 그런데 장면이 바뀌어 취조실에 경찰이 <모범택시>에서 깜찍 발랄한한 역할로 눈에 익은 배유람 배우다. 그런데 마주 앉아 있는 용의자가 또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판변으로 나온 박형수 배우다. 그런데 인트로 끝나고 손석구가 침대위에 누워 있다.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에는 <D.P.>도 <나의 해방일지>도 나오기 전이니까 그 때의 손석구는 지금의 손석구가 아니니까 다시 보니 ‘어머나’ 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게 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마더>에 이어 다시 봤을 때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손석구 일어나자 그 뒤에 나체로 등 돌리고 누워 있는 이가 공효진이다.

공효진을 처음 만난 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다. 김태용 민규동 감독에다 개인적으로 이영진 배우를 발견하게 되어 너무 가슴 두근 거렸던 기억이 있다. 어떤 다른 공포 영화 보다도 학교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공포스러운 느낌을 너무 잘 살려주었기에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중 하나이다. 실제로 김태용 감독을 만났을 때 그가 주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저런 서늘한 영화가 나왔을까가 잘 이해가 되지 않다가 <가족의 탄생>, <만추>를 보면서 사실 그는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계획적인 사람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본다. 조금 지나다 보면 공효진에게 컴퓨터를 가져가야 한다고 나오는 임수사관님은 <김과장>에서 이과장님으로 나온 분인데 이름을 알 수가 없다. 이 분도 여기 저기서 자주 뵙는 분인데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 온다.

거기다 염정아다. 목표를 향해서 앞으로 돌진하는 머리 좋은 특수본 수장인 윤지현 역. 염정아는 화려하게 이쁜 얼굴이 아니지만 풍기는 여러 이미지가 그녀의 경력을 다양하게 만든다. 푼수같은 아줌마, 냉정한 카리스마, 비밀스러운 여인, 아주 못된, 또는 절절한 사연의 그런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이리 휠 수도 있고 저리 휠 수도 있는 그녀의 성격에 빚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작품은 <장화, 홍련>과 <오래된 정원>이다. 나는 아무래도 그녀의 서늘함이 좋은 것 같다. 위 두 작품 특히나 후자는 그녀의 서늘함이 처절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희한하게 서늘함이 차가움으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염정아한테 무자비하게 서류철 내려치는 사람은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 담임 선생님 역할로 나온 그 배우분이다. 언뜻 손 날리는 전문역이신가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공효진이 뺑반에 도착하니 전혜진이 나온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보고 난 뒤 이 영화를 봐서 반가운 마음이 지나가면 뺑반 에이스 류준열이 나온다. 류준열 하면 나에겐 <뺑반>과 <독전>이다. 물론 처음 본 <택시 운전사>나 <침묵>에서도 봤지만 나를 반하게 한 건 위 두 영화이다. 뺑반의 똘끼 충만한 그와 <독전>의 서늘하면서 독기 넘치는 모습에 훅 반했다가 전설적인 <응답하라 1988> 오디션 짤을 보고 더 훅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뺑소니 현장에 도착하니 또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다. 박예영 배우. 얼마 전 본 <갯마을 차차차>에서 이상이 상대역으로 나와서 아주 인상 깊었었는데 내가 뺑반에서 먼저 만났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직까지 이 두 작품에서 밖에 못 만났으니 좀 더 두고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휘익 그냥 지나간 두 배우가 더 있다. 보험사 직원으로 나온 이성욱 배우와 렉카 운전 기사 김기범, 아니 샤이니 멤버 키라고 하면 더 잘 알 것이다. 이성욱 배우는 여우각시별에서 ‘좋다’했던 보안팀 팀장 역할을 맡았던 배우다. 키는 너무 의외라서 처음엔 못 알아보고 영화 끝나고 다시 찾아 보고 무릎을 쳤다.

이성민 배우는 말 할 것도 없이 다들 알 것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 자는 연기가 압권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쩜 그렇게 능청스럽게 술에 만취한 연기 그래서 골아 떨어진 연기가 가능한지 미스테리다. 실제로 이성민씨는 술을 못 마신다고 해서 더 놀랐다. 미생에서도 그렇고 진짜 술 취한 사람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과 말이 나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 외에도 <모범형사>에서 형사 역으로 나오는 차래형 배우나 경찰 중 한 명으로 나오는 류경수 배우 -<이태원 클라쓰>에서 건달에서 요리사로 전격 변화한 그 분- 도 있다.

너무 아는 얼굴이 많아 얘기하다 보니 정작 영화 이야기는 못했네. 악당 정재철(조정석)의 악행들을 파헤치려고 서부서 뺑반과 정채(이성민) 아저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얽혀든다. 그리고 의리와 배신, 슬픈 서사에 액션도 있고, 로맨스 빼고 다 있는 영화이다. 가장 흥미로운 역은 역시 류준열이 맡은 서민재일 것이다. 폭주 뛰던 범죄자가 멋진 아빠 정채에게 입양되고 개과천선한 케이스도 흥미로운데 뺑소니 현장에서 ‘능숙’하게 범인을 밝혀내고 멋진 ‘도끼질’로 범인을 잡는 그는 확실히 통쾌함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손석구가 맡은 검사 기태호가 진짜 재미있었다. 약간은 느슨한 듯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그는 은시연(공효진) 경위를 좋아해서 여기 저기 ‘끌려’ 다니는데 그게 너무 귀엽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영화도 드라마도 보고 또 보고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어눌한 듯 날카로운 듯 서민재가 취조중에 “지금까지 잘못 한 거 있으면 적어볼까요?” 하는 장면이나 손가락 뼈를 꺽어서 수갑에서 빠져나오는 장면들, 이학주 배우와 한바탕 벌이는 액션신 같은 것들이 나를 다시 이 영화로 되돌려 놓는 것 같다. 글을쓰다 보니 다시 보고 싶어진다. 이 영화가 지겨워지면 류승완 감독의 영화들로 다시 옮겨 가야지. 그의 영화들에서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과연 우연일까?

추천 드라마 : <통:메모리즈>, <나의 해방일지>, <마더>, <김과장>, <더 글로리>,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모범 택시>, <슬기로운 의사생활>, <갯마을 차차차>, <모범형사>, <이태원 클라쓰>

추천 영화 : <해피 엔드>, <괴물>, <초록 물고기>, <박하사탕>, <세친구>,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가족의 탄생>, <만추(2010)>, <장화, 홍련>, <오래된 정원>, <독전>, <택시 운전사>, <침묵>

추신1. : 영화가 끝나고 쿠키에 깜짝 선물이 있다. 2편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이긴 한데 실제로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할 일.

추신2 : 여전히 저작권이 염려되어 이번엔 그냥 내가 찍은 풍경 사진으로 대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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