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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r 30. 2022

1.  『오레스테이아 』 : 복수와 정의 실현의 딜레마

제 1 부 : 「아가멤논」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는 진실이다. (아이스킬로스)  



   요즘 우리나라 언론 미디어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특히 선거 때 더 자주 보이곤 하는데 바로 정치보복입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회자되기 시작된 정치보복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의 세 정부를 거치며 이제 우리나라 정치에  하나의 패턴으로 자리 잡은 느낌입니다. 막 임기를 끝내는 대통령을 향해선 이제 검찰의 칼날이 최고 지도자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뉘앙스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정치계에 불행한 정치보복의 사이클이 형성된 듯싶습니다. 같은 판결을 놓고 선거의 승자는 법과 원칙에 따른 정의 실현이라고 하지만 패자측에서는 정치보복이라고 맞섭니다. 또한 승자 편 언론 미디어와 패자 편이 서로가 옳다는 증거를 대고 또 논리도 개발하여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입니다. 이들이 벌이는 전쟁에서 첫 번째 희생자는 아이스킬로스 말대로 진실입니다. 진실은 언제나 권력자 가진자 승리자의 입맛에 따라 왜곡될 가능성이 높고 우리는 그 진실의 실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옳은지의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정치보복을 바라보는 심경은 편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당한 입장 에서 아픈 만큼 되돌려주고 싶은 이 보복은 고대 언어로 표현하면 바로 복수입니다. 정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복수의 사이클.  끝없이 이어지는 복수는 과연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한 걸까요?               

  

    아이스킬로스가 기원전 458년에 발표한 그리스의 비극『오레스테이아』가 던진 질문 입니다. 제 1 부「아가멤논」, 2 부「제주를 바치는 사람들」, 3 부「유메니데스」이렇게 3 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연극은 아가멤논가의 3 대에 걸친 비극을 추적하며 복수를 통한 정의의 실현이라는 고대 사회 사법시스템에 대한 물음표를 던집니다. 이 아가멤논 이야기 안에는 왕권을 놓고 벌이는 형제간의 권력투쟁, 형수와 시동생간의 불륜, 사촌형수와 조카의 불륜,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 부부간, 삼촌과 조카간, 엄마와 아들간에 벌어지는 살인 사건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엽기적이고 괴기한 사건들이 얽히고 설 켜져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 스토리에 이성계 집안 내의 근친상간이라는 가상의 포르노를 적당히 섞으면 나오는 그림입니다. 이 이야기는 호메로스의『오딧세이』에서 다루어진 이후 4 백 5 십년이 지난 시점에 연극으로 다시 부활되었고 당시 최고의 극작가들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 인들을 사로잡은 최애 스토리라는 말입니다. 호메로스가 아가멤논과 크라이템네스트라의  불륜에 의한 살인에 초점을 맞추고 비교적 간단하게 전달했다면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는 특히 가족 간에 벌어지는 복수의 사이클과 정의의 문제점에 무게를 두고 보다 심도있고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오레스테이아』의 제 1 부 「아가멤논」은 불륜관계의 클라이템네스트라(아가멤논의 아내)와 아이기스토스(아가멤논의 사촌)가 힘을 합해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가멤논을 살해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이유를 압니다. 아버지가 전쟁을 위해 딸을 희생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이기스토스도 아버지의 형인 아가멤논을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를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비극은 아가멤논의 아버지 세대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아이기스토스의 아버지는 티에스테스이며 아가멤논의 아버지는 아트레우스 입니다. 둘은 쌍둥이 형제지간으로 아고스 (미케네라고도 불림)의 왕권을 놓고 서로 싸움을 벌이다 원수가 됩니다.  쌍둥이 형제는 왕권 다툼 전부터 지저분하게 얽혀있었는데 바로 동생인 티에스테스가 형인 아트레우스의 아내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겁니다. 왕이 된 아트레우스는 티에스테스가 자기 처와의 불륜 관계를 알고 격분하여 동생의 아들들을 모두 죽입니다. 아트레우스는 죽이는 걸로 성이 안 풀렸는지 조카들의 시체로 음식을 만들어 아버지인 티에스테스에게 줍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동생은 형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이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 신탁을 받으러 갑니다. 이 자리에서 티에스테스는 자신의 딸과 관계하면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가 성장하여 복수를 해 줄 거라는 신탁을 받습니다. 이렇게 생긴 아들이 바로 아이기스토스입니다. 그를 낳은 엄마는 아버지와의 관계로 얻은 아들임을 수치스러워 해서 아이기스토스를 낳자마자 집에서 내 쫓습니다. 그러나 아이기스토스는 성장하여 집으로 돌아오고 결국은 자기의 이복형제들을 죽인 아트레우스에 대한 복수로 그의 아들인 아가멤논의 살해에 가담하게 되는 겁니다. 


아가멤논의 마스크 


클라이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힙을 합쳐 아가멤논과 그가 전쟁 포로로 데려온 카산드라를 함께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둘을 맞이합니다. 아내는 전쟁에서 개선한 남편을 위해 값비싼 퍼플빛 천을 깔아놓고 반갑게 맞이합니다. 남편은 이렇게 고급 진 천을 밟고 성으로 걸어 들어가는 행동은 신의 노여움을 살까 두렵다고 거절을 하지만 아내는 기어이 남편을 설득해 신발에 먼지하나 묻히지 않고 성안으로 들어오게 만듭니다. 머뭇거리는 카산드라도 들어오게 만들지요. 아내는 오랜 전쟁에서 돌아온 남편을 위해 따뜻한 목욕물을 준비한 상태. 남편이 아무 의심 없이 목욕을 시작하려는 순간 그의 몸은 아내와 그녀의 공범이 준비해둔 그물 같은 덫에 걸리고 맙니다.  개선장군은 이제 독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에 걸린 한마리의 파리 신세가 된 겁니다. 성에 들어오는 순간 이미 자신과 아가멤논의 죽음을 예견한 왕의 전쟁포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인간의 삶이여! 가장 행복한 남자도 

     벽 위의 그림자에 불과 하구나.   

     고난으로 짧은 생을 채운 여자여,

     젖은 스폰지 하나로 그녀의 삶이 지워지는구나  (1326-29)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무 비싸 신만이 쓸 수 있다는 퍼플 천 위를 걸었던 아가멤논은   

이제 덫에 걸린 채 시궁창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습니다.  그는 목욕통 안에 꼼짝없이 갇혀서 아내가 휘두른 도끼에 피를 토하면서 죽음을 맞습니다. 그가 노예로 데려온 피리엄 왕의 딸도 그의 곁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를 목격한 코러스는 남편을 죽인 클라이템네스트라를 비난합니다. (코러스는 그리스 연극의 필수 요소로 십여명의 배우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인공의 행동을 설명하고 코멘트할 뿐만 아니라 주인공과 관객에게 말도 겁니다. 이 극에서는 아고스 민중의 의견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도대체 어떤 마약을 먹었길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남편을 그렇게 도끼로 쳐서 죽일 수 있느냐는 거죠. 그러면서 너는 이 아고스에서 쫓겨날 것이고 너의 배반은 반드시 정의의 심판을 받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에 아내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조롱조로 응답합니다.  



     참 현명한 심판이군! 이 남자가 내 딸을 죽일 때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나? 

     이 자가 날씨 때문에 자신이 낳은 딸을 무리 속의 한 마리 양처럼 희생시킬 때 말이야 

    이 자에게 우리 딸은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지

    가장 소중한, 오랜 산통을 겪으며 낳은 딸인데   

    목격자랍시고 그렇게 성급하게 심판을 내리다니.    

    나는 그로 하여금 내 딸이 흘린 피의 대가를 치루 게 했을 뿐이야   

     왜 그를 이 나라에서 진작에 추방하지 않았나? (1416-20)



그리곤 계속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면 의로운 나의 맹세를 들어 봐 

     나의 아이를 위한 정의는 완성 되었어. 

     파멸과 분노가 아이의 살인자야.  

     이 왕궁 안에 공포의 그림자는 더 이상 없어.   

     아이기스토스가 나의 난로에 불을 지피는 한 

     이후 아이기스토스가 나에게 충성을 바치는 한 

     아이기스토스는 나의 방패요 나의 보호자야. 

     여기에 자신의 아내를 파괴한 자가 누워있잖아. (1430-41) 



크라이템네스트라는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고 

심지어는 남편의 살해는 자신이 한 행동이 아니라는 말까지 합니다. 



     당신은 이게 내가 한 행동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지,  난 아가멤논의 아내가 아니야. 

     난 이 죽은 자의 무늬만 아내였지. 

     오래전 아트레우스의 엽기적인 어린아이 인육 파티가 만든  

     복수의 원혼이 이 남자에게 대가를 치루도록 한 거야.  

     어린아이들을 희생시킨 결과란 말이야. (1497-1504)



그녀는 한 세대전 티에스테스에 의해 아감메논가에 내려진 저주의 원혼이 자신으로 하여금 아가멤논을 죽이게 만들었다는 거죠. 자신의 몸은 도구였을 뿐이라는 논리까지 동원하여  남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무척이나 애를 씁니다.          

    

     클라이템네스트라가 남편을 살해하도록 옆에서 도와준 아이기스토스도 살인자와 똑 같은 항변을 합니다. 자신의 살해동기를 밝히면서 결국은 정의를 위해 죽였다는 겁니다. 



     내가 죽인거야  

     아버지 팔에 안겨있던 무기력한 아이는 이 집에서 쫓겨났지  

     그러나 나는 성장했고 정의가 나를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했지.  

     나는 멀리서 이자의 죽음에 간여했지  

     살해를 위한 모든 계획을 세웠지  

     정의의 형벌을 받아 쓰러진 이자를 보고 있나니 

     나는 내가 죽어야 한다면 이제 다시 영광스럽게 죽을 수 있어 (1604-11)



클라이템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을 각각 딸과 형제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한 후 정의의 이름을 들먹입니다. 자신들의 복수행위는 정의 실현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겁니다. 이들의 말은 아가멤논이 과거에 저지른 죄에 대한 정의를 외치고 있지만 아가멤논을 살해한 현실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들의 복수와 정의 실현을 연결시키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도덕적인 문제와 아가멤논 사후 생기는 혜택 때문입니다.     

 

   먼저 이들은 불륜관계입니다. 남편 부재 시 클라이템네스트라의 외로움을 달래준 아이기스토스. 여자가 다른 남자를 받아들인 이유가 너무 외로웠던 탓인지 아니면 딸을 죽인 남편에 대한 복수 감정 탓인지 모호합니다. 어째든 둘의 불륜 관계는 남편이 전쟁터로 떠나자 시작되었고 또 남편의 귀환 시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왕비로서 돌아온 왕을 죽이면  자신의 불륜은 영원히 감추어지고 왕국도 차지하게 되고 또한 딸에 대한 복수도 하게 되는  그야말로 일석 삼조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오직 복수를 통한 정의실현이란 점만 부각 시킵니다. 이를 다른 각도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여자로서 아가멤논을 혼자 처리하기 버거워 강한 힘을 가진 남자의 힘이 필요해서 아이기스토스를 유혹했는지도 모릅니다. 클라이템네스트라는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주역 중의 한 명인 헬렌의 이복 자매로 그녀의 미모 또한 헬렌 못지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기스토스 역시 싫지 않은 유혹이었죠. 자신의 성적인 욕구도 해결하고 복수의 대상도 같으니 꿩 먹고 알 먹는 격 아닙니까? 어쨌든 둘이 짝짜꿍이 되어 왕을 죽였고 애초 계획에는 없었던 왕국은 보너스 격이지요.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이스킬로스는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는 진실이라고 했으니까요.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입니다. 

   

   이제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이 아고스의 왕 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왕에 반기를 드는 자들은 가차없이 처단할 것을 천명합니다.  


     나는 이제 왕이다. 나를 거역하는 자는

     무거운 굴레를 목에 차고 썩어갈 것이다. 

     어둠속에서 배를 곯아보면 정신을 차릴 터. 

     반대하는 자들을 위한 음식은 없다. (1639-42) 



그러나 코러스는 새로운 왕과 왕비를 아고스의 적으로 생각합니다. 새 왕의 반란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당신은 전리품을 챙겼네. 싸움 한 번 안하고.        

    뻔뻔한 겁쟁이. 여자를 이용해서 말이야. 

    신에 의해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이 여자가 나라를 어슬렁거리는 꼴을 참아야 하네.   

    그래서 우리는 오레스테스가 아직도 살아있기를 바래야해.  

    행복하게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그가 죽여야 할 두 년 놈이 있으니 말이야.  (1642-8)



코러스는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할 인물로 아들 오레스테스를 지목합니다. 그는  아가멤논과 클라이템네스트라의 유일한 아들로 아버지가 살해당할 때 밖에 성 밖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복수를 결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살인자이긴 하지만  그 살인자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할아버지 때에 생긴 형제간 복수가 이제 손자에게까지 내려온 겁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위해 어머니를 죽이면 정의가 실현되는 걸까요? 끝없이 이어지는 이 복수의 사이클은 과연 어떻게 끝을 맺을까요? 『오레스테이아』2 부「제주를 바치는 사람들」과  3 부「유메니데스」의 내용이며 이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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