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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Apr 02. 2022

2.『오레스테이아 』: 복수와 정의 실현의 딜레마

제 2 부 :「제주를 바치는 사람들」

『오레스테이아 』2 부는「제주를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제주(libation)는 조상의 무덤에 바치는 (혹은 붓는) 신주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는 소주를 생각하면 되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조상의 묘에 술을 부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제목인 제주를 바치는 사람들은 1 부에서 살해당한 아가멤논의 아들인 오레스테스와 딸 엘렉트라입니다. 아가멤논이 죽은 지  7 년 정도가 흐른 뒤 여행자의 복장을 한 오레스테스는 그의 친구 필라데스와 함께 아버지의 무덤을 찾습니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했을 때 13 살의 어린아이였고 작은 누나 엘레트라의 조언에 따라 아고스를 떠나 포키스의 스트로피오스 왕에게로 보내집니다.  아가멤논의 유일한 아들로 왕위 계승 일순위였지만 동시에 왕위를 노리는 어머니의 내연남의 제거대상 넘버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망명지인 포키스에서 그의 아들인 필라데스와 함께 자라나면서 굳건한 우정을 맺게 됩니다.   


   아고스에 돌아온 오레스테스. 이제 그는 20 살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한 움큼 머리카락을 잘라 테베강에 던집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이가 어른이 되면 무사히 성장하는데 도움을 준 강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머리를 잘라 강에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 움큼의 머리카락을 잘라 아버지의 무덤에 바칩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지키지 못한 죄송함을 표현하며 복수를 다짐합니다.



     신이시여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허락하소서  

     당신 힘껏 내 곁에서 싸워주소서  (21-2)    



그는 망명생활 중 아버지의 비보를 접했고 자신의 거주지 근처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 가서 아버지의 복수에 대한 신탁을 듣고 조국 아고스를 다시 찾아온 겁니다. 그의 귀에는  아폴로의 신탁이 아직도 귓가에 울립니다.    



     아폴로는 결코 나를 배반하지 않을 거야. 그의 엄청난 힘,  그의 신탁은

     내게 이 위험을 감당하라고 명령을 했었지. 아버지의 살인자들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나의 따뜻한 가슴에 고난의 찬 서리가 내리 칠거라는 그 음성이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해. 그들은 아들로서의 내 권리를 박탈했어. 아폴로는 말했어.         

     황소를 도륙하듯이 그들을 절단 내라고. 그렇지 않으면 그 빚을 평생 짊어지라고           

     했어. 평생 슬퍼하며 살란 말이지 (272-281)

     


   오레스테스는 아폴로의 신탁으로 자신감을 얻어 아고스로 돌아왔고 오자마자 맨 먼저

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뜻 밖에 자신의 작은 누이인 일렉트라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도 아버지의 묘소에 온 겁니다.  작은 누이는 몇 명의 다른 노예 여인들과 함께 왔습니다. 바로 전날 클라이넴스트라가 악몽을 꾸었는데 해몽가는 그 꿈이 죽은 아가멤논의 원혼이 보낸 거라고 했던 거죠. 지하에서 자신을 살해한 아내와 사촌을 저주하고 있는 그를 조금이라도 달래주기 위해 여왕은 딸을 노예들과 함께 아가멤논의 무덤으로 제주를 바치도록 보낸 겁니다. 그러나 노예들도 압니다. 어떤 가문이라도 일단 한 번 피를 흘리면 결코 그 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오레스테스는 멀리서 작은 누이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합니다. 오레스테스입장에서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같이 사는 작은 누이가 적인지 아군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무덤에 제주를 바치는 일렉트라에게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녀는 처음에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복수를 바라는 코러스의 도움으로 힘을 얻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떻게 신에게 복수를 요청하며

     양심의 가책에서 해방될 수 있나요?   

      . . .


     원수들이 아버지가 힘들게 일구신 과실을 따먹는 동안.  

     전 노예가 되었어요. 오레스테스는 집에서 쫓겨났고요.

     아버지시여, 행복하게 꼬인 운명으로 오레스테스를 집으로

     불러주세요. 제 말을 들어주세요. 저를 엄마보다 더 자신감

     넘치게 만들어 주세요. 이 손을 더 순수하게 만들어 주세요.


     이것이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의 적들에게는       

     복수자들을 일으켜 밖으로 나오게 해주세요.  

     살인자들을 살해하게 해주세요. 정의로!  

     선의의 기도에 그들을 향한 저주를 섞습니다. (140-151)  



살인자가 엄마란 사실은 일렉트라 역시 딜레마에 빠지게 만듭니다. 복수를 하면 아버지의 원혼은 달래줄수 있지만 자신은 엄마를 죽인 양심가책으로 평생 후회하며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녀는 복수를 원하는 코러스와 함께하기로 맘을 먹습니다. 작은 누이의 기도를 들은 오레스테스는 일렉트라도 자신과 같은 마음임을 확인합니다. 둘은 곧 재회를 하고 누이는 동생에게 어머니에 대한 경멸을 이야기하며 오직 너만이 무너진 집안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둘의 결정에 코러스는 기뻐합니다. 코러스는 아고스 시민의 민의를 대표하며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우는 미얀마 국민인 셈입니다. 코러스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정의의 바퀴는 굴러간다.

     말은 말로,  저주는 저주로 그 생명을 이어가지.  

     정의는 천둥처럼 울리고.      

     보복은 배가 고프지.

     피의 타격은 타격으로 갚아야 해.  

     행동한자는 고통을 받아야 하는 법. (315-320)



코러스의 리더는 자신이 들은 여왕이 꾼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오레스테스에게 해줍니다. 여왕은 꿈에 뱀을 낳아 간난 아이처럼 강보로 쌓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뱀에게 젖을 물렸는데 그만 뱀이 젖꼭지를 물어버린 거죠. 그녀의 젖가슴은 피와 젖이 범벅이 되었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었습니다. 여왕은 그 꿈을 보낸 이를 달래려고 노예들을 시켜 제주를 보낸 거라는 거죠.  


   오레스테스는 이 꿈에서 자신의 거사가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사인을 봅니다. 자신이 바로 그 뱀이며 그녀가 이런 끔직한 꿈을 꾼 것은 여왕이 비명 속에 죽게 될 거라는 신호를 받은 거라고 말입니다. 그는 이제 엄마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작은 누이를 먼저 성으로 보내고 자기는 친구와 함께 여행객으로 위장하여 성으로 들어가서 아이기스토스를 먼저 처치하고 다음에 엄마를 살해하려고 맘 먹습니다. 여왕은 20 살의 청년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알아보지 못 하고 여행객으로 맞이합니다. 7년간 타지살이 덕에 바뀐 그의 말투도 어머니를 속이는데 한 몫을 했습니다. 그는 아이기스토스를 먼저 살해합니다.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엄마를 죽이는 일만 남았습니다. 엄마의 목에 칼을 들이댄 아들. 그러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엄마를 죽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는 친구인 필라데스에게 엄마를 죽이기가 두렵다고 말합니다. 친구는 아폴로의 명령과 복수를 위한 맹세를 기억하라고 하면서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집니다. 신을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이에 오레스테스는 마음을 굳힙니다. 엄마는 더욱 필사적으로 아들의 맘을 돌려놓으려 하며 이렇게 간청합니다.      



클라이템네스트라 : 난 네게 생명을 주었다. 너와 함께 늙어가고 싶구나      

오레스테스:  뭐라고요? 아버지를 죽이고 나와 살겠다고요?

클: 애야, 그건 운명이 한 짓이야,    

오: 이번도 마찬가지예요. 운명이 당신에게 죽음을 주는 겁니다.

클: 넌 엄마의 저주가 무섭지도 않니?

오: 엄마는 저를 내치고 제게 평생 고통의 삶을 주었어요.

클: 너를 내치지 않았단다. 동료의 집에 보낸거야.

오: 저를 수치스럽게 만드셨어요. 자유인인 저를 팔아 넘기셨죠.

클: 그래? 그럼 내가 얼마를 받았단 말이니?

오: 공개하기도 부끄럽네요.

클: 네 아버지도 잘못이 많단다.

오: 아버지를 심판하지 마세요. 엄마가 집에 있는 동안 아버지는 고통을 받으셨어요.

클: 아들아, 남자와 떨어져 있으면 여자도 힘들어진단다.  

오: 남자는 여자를 집에서 안전하게 살게 하기 위해 노예처럼 일해요.

클: 네 눈에 살인자가 보이는구나. 엄마의 살인자.

오: 당신이 살인자예요. 내가 아니라. 당신은 스스로 죽게 될 거예요.      

클: 조심해라. 엄마의 저주가 사냥개처럼 너를 추적할거야.

오: 내가 실패하면 아버지의 저주는 어떻게 피하나요? (895-913)



이 대화는 오레스테스가 처한 딜레마를 잘 보여 줍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엄마를 죽이면 부친의 원혼을 풀어주지만 반대로 엄마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복수를 통한  정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의 사이클이 계속되는 형국입니다.        

  

    결국 오레스테스는 일을 마무리 짓습니다. 코러스는 여왕의 죽음을 보고 마침내 정의가 찾아왔다고 노래합니다. 그들은 두 마리 뱀의 머리를 모두 잘라 아고스를 해방시킨 오레스테스를 칭송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정의를 실현했노라고 애써 자위를 하지만 어머니를 죽인 죄책감에 괴로워합니다. 이제 그는 수십 마리의 꿈틀거리는 뱀을 머리에 지닌 무시무시한 여인들에게 쫓기는 꿈을 꿈니다. 그들의 눈에는 증오의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습니다. 오레스테스에게 이들은 엄마의 원한을 품은 수십 마리의 사냥개나 다름없습니다.  코러스는 볼 수 없어도 아들의 눈에는 분명히 보이는 존재들입니다.  고대부터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복수법이 오히려 사회의 근간인 한 가족을 모두 죽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복수의 주자는 이제 정의를 실현한 대가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 폭력이 대물림 대는 복수의 사이클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요? 삼부작 『오레스테이아 』의 마지막 이야기인「유메니데스」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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