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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Apr 09. 2022

3. 『오레스테이아 』: 복수와 정의 실현의 딜레마  

제 3 부: 유메니데스

『오레스테이아 』의 3부「유메니데스」는 델피에 있는 아폴로의 신전에서 막을 엽니다. 델피의 신탁이 신전 여사제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곳이죠. 막이 열리면 여사제는 막 출근을 해서 신전으로 불리는 사무실로 들어갑니다. 그녀는 들어가자마자 비명을 지릅니다.

피묻은  손으로 칼을 쥐고 있는 한 남자가 자고 있었고 그의 주위에는 역겹게 생긴 괴물같은 생명체가 같이 자고 있었던 겁니다. 이들의 머리위에는 징그러운 뱀들이 우굴거리고 쇠끼리 긁히는 소리 같은 숨소리를 내며 눈에서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는 고름같은  물질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전편 마지막 장면에서 오레스테스를 쫓아다니며 고통을 준 퓨어리스(세 명으로 구성된 분노의 여신들이며 제목 유메니데스는 이들을 일컫는 완곡한 표현이다)들입니다. 이들은 극에서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끔찍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실제는 아들에게 죽은 엄마의 원혼이 불러낸 복수의 정령들로 실체가 없는 일종의 귀신들입니다.          

   여사제가 비명을 지르며 신전 밖으로 뛰어나가자 오레스테스가 깨어나고 그에게 엄마를 죽이라는 신탁을 내렸던 아폴로가 등장합니다. 아폴로는 오레스테스 편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내 말 대로 해. 우선 아테네로 가서 아테네 여신에서 도움을 청하라고. 거기서 재판을 받아. 내가 변론을 해 줄게. 걱정 말라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힘을 얻은 오레스테스는 아테네로 향합니다. 이어 아폴로도 신전을 빠져나가자 클라이템네스트라의 귀신이 신전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곤 복수의 여신들을 깨웁니다.  “야 일어나 이것들아! 니들이 지금 한가하게 잠자고 있을 때야? 한심한 것 들 같으니.  빨리 오레스테스를 쫓아가라고. 뭘 그렇게 꾸물거리나?”  복수의 정령들을 깨운 후 엄마 귀신은 사라집니다. 잠에서 깨어난 퓨어리스들은 춤을 추며 분노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어              

     끝없는 고통, 그 고통을 그냥 견뎌야 한다니

     모든 고통, 더 많은 고통, 아 고뇌여, 견디기 힘든      슬픔이여

     독 안에 든 쥐새끼가 빠져나갔네. 우리 쥐새끼가 사라졌네.

     잠 때문에 망했다. 다 잡은 쥐새끼를 놓치다니

     야! 너. 제우스의 망나니. 이 도둑아!

     부모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놈을 도와주다니.  

     엄마 살해자를 도망가게 도와줘? 그리고도 네가 신이야?

     너도 그도 죄지은 건 마찬가지야.  그걸 정의라고 말할 수 있나?  (144-155)



이때 다시 등장하는 아폴로.  활과 화살로 무장까지 했습니다. 신은 활을 겨누며 복수의 여신들에게 꺼지라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악에 바친 퓨어리스들도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논쟁을 벌입니다. 핏대 오른 정령들은 네가 오레스테스를 꼬드겨  엄마를 살해하도록 했으니 너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아폴로는 살인에 간여한 자신의 역할을 인정을 하지만 자신의 결정은 옳았다고 항변합니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투다가 복수의 여신들은 나가버립니다. 오레스테스를 쫓아 아테네로 가기로 한 겁니다. 그들은 오레스테스를 끝까지 추적하여 정의를 실현하려 합니다. 그들의 정의란 바로 엄마를 죽인 아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거죠.       


    이제 헉헉거리며 아테네에 도착한 오레스테스. 그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에게 재판을 부탁합니다. 그때 막 퓨어리스들도 아테네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귀신들이라 눈 깜빡하면   원하는 장소로 갑니다. 그들은 오레스테스에게 저주의 노래를 불러줍니다.



      신이나 게스트, 혹은 사랑하는 부모를 분노케 하는

      모든  인간은 그가 준 고통과 똑 같은 고통을 받으리니


      위대한 신 하데스께서는 지하에서 최후 계산을 하신다.

      그 분은 다 알고 계시지 모든 사람의 공과를 다 따지셔서          

      그 분의 마음의 판에 다 새겨 두신다. (268-273)



이 노래가 지닌 마법의 힘으로  꼼짝 못하게 된 오레스테스.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으로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는 잠이 들어 내 손에서 사라졌어요.

     엄마의 살해로 생긴 피 얼룩이 깨끗해졌어요.

     신전에는 생생하게 남아 있었지만

     아폴로가 돼지를 죽여

     그 피를 씻어냈어요.

     시간이 지나면 모든 건 정화되잖아요.   

     그리고 그 깨끗해진 입으로 이 땅의 여왕을 부릅니다.    

     아테네 여신이시여! 도와주소서. ( 275-287)



기도를 들은 아테네가 등장합니다. 사태를 파악한 지혜의 여신은 오레스테스 케이스를 재판에 부치자고 제안하니 오레스테스와 퓨어리스 양쪽 다 동의를 합니다. 여신 혼자 처리하기에 버거운 사건이라 아테네 시민들을 불러 배심원을 세웁니다. 그녀는 진행만 맡기로 합니다. 지금 서양의 사법제도의 근간이 고대그리스에서 비롯된 겁니다.   그러나 복수의 여신들은 이 재판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법정에서 말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보다 행동으로 단죄하는 걸 선호합니다.   

   이제 재판이 시작됩니다. 오늘날 서구권 영화에서 흔히 보는 법정드라마의 원조이죠.  폴로가 등장하여 피고인 오레스테스의 변론을 맡겠다고 선언합니다. 검사 역인  퓨어리스들은 피고를 심문합니다. 오레스테스는 자신이 엄마를 죽였다고 인정하지만 그건 엄마가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복수를 했으며 이를 부추긴 이로 아폴로를 지적합니다. 빛의 신은 저에게 이 명령을 어길 경우 더 큰 고통이 따를 거라고  했다는 거죠. 게다가 자신은 엄마의 아들이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까지 합니다. 이제 복수의 여신들이 오레스테스를 심문합니다.  아폴로는 피고의 증언이 한 치도  틀림이 없음을 선언합니다. 게다가 죽은 여왕은 피고의 엄마가 아니라는 말에 대한 부연설명까지 합니다. 엄마는 단순히 아버지의 씨를 품고 있는 인큐베이터에 불과하니 진짜 부모는 아버지라는 논리를 폅니다. 여자는 단순히 생명의 씨에 젖을 주는 역할이고 남자가 진정한 생명의 근원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상한 논리입니다. 태양의 신 아폴로는 가부장 사회 남성의 목소리를 대변 합니다.

   모든 심문절차가 끝나고 실시한 배심원들이 표결의 결과가 전달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유죄와 무죄가 정확하게 반으로 갈렸습니다. 이제 최종 결정은 주 재판관인 지혜의 여신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녀는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언합니다. 아테네는 여신이지만 여자에게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판결에 퓨어리스들은 이렇게 절규합니다.



     우리가 이 수치를 견뎌야 하다니, 과거의 자랑스러운 심장이 오물처럼

     저주받아 지하로 쫓기다니.  우리의 분노가 증오를 내뿜고

     오 선한 대지여. 이 상실감을 어쩌란 말이냐?

     우리의 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이 고난을!  밤이여 밤의 어머니여

     모든 것을 상실 했도다  우리가 과거부터 지녀온 힘이 그들의 교활하고

     무자비한 손에 의해 박탈당하는구나.  신들이 우리의 존재를 지우려고   

     안달이 났구나. (879-888)



아테네는 복수의 여신들이 이 판결을 받아드리도록 그들을 설득합니다. 지혜의 여신들은 어리스들에게 아테네에 남아 선한 이들을 돕고 악한 이들을 벌주라고 (과거에는 악한 자들을 단죄하는 일만 담당) 권고합니다. 아테네의 권고를 마침내 받아드린 퓨어리스들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무자비하게 피를 부르는 투쟁, 인간을 잡아먹는 내란, 기도하오니     

     동족상잔의 비극은 결코 우리 도시에 없을 것이요.

     선한 그리스의 땅은 결코 그리스인의 피를 마시지 않을 것이요.

     생명을 생명으로 보복하는 미친 짓을 안 할 것이요.

     복수의 여신이 야수처럼 이 땅에 어슬렁거리지 않을 것이요.   

     기쁨은 기쁨으로 갚고 사랑을 위해 하나로 뭉치고      

     강한 심장으로 미워하겠소

     그렇게 뭉치면 많은 이들의 아픔을 치료하게 될 거요.  (988-998)



과거 복수 전문이었던 퓨어리스들은 이제 친절한 사람들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복수의 여신이란 뜻의 유메니데스에 친절한 이들이라는 뜻이 추가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오레스테이아 』를  이보다  약 5 세기 전에 나온 호메로스의  두편의 에픽과  비교해보면  두가지 주목할만한 변화가 보입니다. 첫째,  호메로스가  다룬  동태복수법에 대한 아이스킬로스의 생각입니다.  그에게 수세기 동안  당연시 여겨졌던 복수를 통한 정의 구현 제도는 청동기 시대와 부족사회의 산물일 뿐 입니다. 『오레스테이아 』는 아가멤논가에서 벌어진 삼대에 걸친 비극을 통해 정의란 이름으로 행해진 복수의 사이클이 오히려 사회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추적합니다. 사회의 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동태 복수법은 결과적으로  구성원을 몰살시키는 제도임을 보여줍니다.  그는 대신 검사(복수의 여신들), 변호사(아폴로), 배심원(아테네 시민들) 그리고 판사(아테네)가 참여하는 재판제도를 새로운 정의 시스템으로 제안합니다. 처음에는 반발하던 퓨어리스들도 재판관인 지혜의 여신 아테네의 새로운 정의 시스템에 대한 논리를 받아드린 후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기뻐하라,

     운명적으로 누리게 될 풍요를 기뻐하라       

     제우스의 옆에 자리한  

     아테네의 시민들이여

     사랑스러운 처녀에게 사랑을 받는

     아테네 시민들이여

     지혜의 여신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며   

     인성을 성취했도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축복을 받았도다 (1007-1014)



복수의 여신들은  흘린 피를 피로서 해결하는 게 아니고 이성과 논리로 해결하자는 새로운 사법 시스템을 받아드리며 이로 인해  마침내 인성(humanity)을 회복했다고 노래합니다.    우리가 뉴스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서구의 사법시스템은 기원전 450년 고대 그리스의 유산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이 겪는 고통(suffering)의 의미입니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는 기본적으로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리아드』는 인간끼리 싸우며 또 『오딧세이』는 자연과 싸우며 고통받는 인간 모습의 기록입니다. 제우스조차 인간의 고통을 목격하고 안쓰러워합니다.   



     지상에서 숨 쉬고 기어 다니는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보다 더 고통 받는 생명체는 없도다.   



호메로스에게 인간의 고통은 그냥 고통일 뿐입니다. 그는 이에 대한 설명을 거부합니다. 인간의 고통을 아무 해석 없이 담담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나 아이스킬로스에게 고통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씁니다.   


     우리는 고통으로 진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we must suffer, suffer into truth.)



제우스는 고통을 통해 현명해지도록 인간을 가이드 한다는 겁니다. 지혜는 고통을 통해서 온다는 거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고통으로 더 현명해 진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말은 고통을 지혜로 승화 시키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통은 진주를 만들기도 하니까요.

  아이스킬로스 사후 다시 4 백 5 십 년이 지났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늘 강조하셨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피를 피로 갚는 복수 행위는 여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2 천년이 흘렀습니다. 복수를 통한 정의 실현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존재하지만 그래도 현실보다는 영화에서 더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도 심심치 않게 목격됩니다. 물론 복수대신 순화된 보복이란 단어를 쓰긴 하지만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수사의 칼은 항상 선거에 진 편에게 향합니다.  당하는 측은 벌써  5 년 후를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5 년 마다 반복되는 보복의 사이클이 과연 우리사회에 정의를 가져올까요? 아니면 증오만 더 부추길까요?  아이스킬로스는  2500 년전에  복수는 버려야할 과거의 유산이라고 말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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