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꼭또 Apr 23. 2022

1.『오이디푸스 대왕 』: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Know thyself). 아폴로 신전 입구에 새겨져 있는 격언입니다. 신전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아폴로 신에게 뭘 물어보기 전에 먼저 자신에 대해 탐구해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알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정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좁은 의미로 "여기는 신전이고 너는 인간이니 겸손하라"는 뜻으로 해석 할 수도 있고 좀 더 큰 의미로 "세계의 이해에 대한 첫 걸음이 바로 자신에 대한 이해"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이 주제에 대해 다룬 작가는 아이스킬로스입니다. 그는 자신의 비극 『쇠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Bound)에서 “너 자신을 알라”를 그리스 신화의 맥락에서 탐구합니다. 신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카프카스산위의 쇠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자신에게 내려진 운명의 부당함에 대해 호소하자 신은 그에게 “니 운명을 결정한 사람을 불평하기에 앞서서 자신을 먼저 알았어야지” 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질서는 최상위의  신부터 시작하여 그 아래에  반신, 인간, 그리고 동물의 위치로 정해져있는데 반신에 해당하는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감히 신의 영역을 침범한 댓가라는 말입니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대왕』을 통해 29년 선배이자 라이벌 작가인 아이스킬로스의 해석에 도전장을 내밀며 “너 자신을 알라”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는 기원전 429년 아테네에서 해마다 열리는 디오니소스 연극제에 이 비극을 출품하여 2 등 상을 수상했습니다. 참고로 아이스킬로스의『오레스테이아』는 458년에 열린 디오니소스 연극제에서 일등을 차지했다고 합니다.『오이디푸스 대왕』도『쇠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의 경우처럼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친숙한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이디푸스 신화입니다. 이 신화는 조금씩 다른 여러 버전으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그 중  한 버전의 핵심 줄거리가  호메로스의 『오딧세이』11 권, 『일리아드』23 권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지옥을 방문했을 때 오이디푸스의 엄마인 이오카스타를 만납니다. 그녀는 오디세우스에게 자신은 아버지를 살해한 오이디푸스가 아들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했으며 그 사실을 알고 난후 수치심에 자살을 하여 지하세계로 왔다는 말을 전합니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아가멤논가의 신화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의 최애 스토리중의 하나였습니다.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내용자체가 극적인 포탠셜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하고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포클레스도 어렸을 때부터 이 오이디푸스 신화를 읽으며 성장했고 그는 나중에 이 신화를 토대로『오이디푸스 대왕』을 집필합니다. 여러 버전의 오이디푸스의 신화가 소포클레스의 손을 거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스토리로 자리를 잡게 된 순간입니다.  

   

   『오이디푸스 대왕』은 『오레스테이아 』처럼 삼부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보통 테베 3 부작 (The Theban Trilogy)으로 불리웁니다. 오이디푸스가 테베의 왕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3 부작은 스토리의 흐름상으로 볼 때 1 부가 『오이디푸스 대왕』(BC 429), 2 부가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BC 406), 그리고 3 부가『안티고네 』(BC 441)입니다. 그러나 쓰인 연대에서 알 수 있듯이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 』를 제일 먼저 집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1 부와 3 부를 중심으로 살펴 볼 예정입니다.  소포클레스는 그 당시 누구나 다 아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어떤 드라마로 재탄생시켰기에 디오니소스 연극제에서 은상을 수상하고 그 이후 수천 년간 우리의 사랑을 받아온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제목으로 쓰인 오이디푸스란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이 이름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은 (오이디) 발 (푸스)이란 뜻입니다. 오이디푸스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아기가 커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받자 아기의 두 발을 꽁꽁 묵은 후 양치기에게 산에 내다 버리라고 명령을 합니다. 아기의 두 발은 이때 받은 상처로 발이 부어올랐고 그의 양부모는 아기의 특이한 발 모양을 보고 그를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러나 오이디(oedi)가 동사로 쓰일 때에는 나는 본다, 안다 (I see, I know)의 뜻도 있습니다. 극에서 본다와 안다는 깨달음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오이디가 가진 두가지 뜻을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는 부은 발과 깨달음의 스토리가 되는 셈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에 의해  부은 발을 갖게 된 셈이고 이는 그의 행동이 제한되고 통제됨을 의미합니다.  이로 인해 그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신에 대해 크게 깨닫게 됩니다. 무엇을 깨달았다는 걸까요? 소포클레스가 신화를 드라마로 만들면서 관객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오이디푸스 대왕』의 막이 오르자마자 우리는 왕이 다스리는 테베가 심각한 재앙으로 고통 받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농작물이 말라죽고 가축은 병들어 가고 여자들은 산고를 겪다 죽어가는 등 나라 전체가 핏빛으로 물든 죽음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습니다. 테베의 사제가 오이디푸스대왕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을 합니다. 나라가 도탄에 빠졌으니 왕께서 구해 주십사 청원을 올립니다. 늘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모든 작품의 시작, 첫 대사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시작부분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특정단어가 나옵니다. 이 특정 단어들은 작가가 이 드라마를 통해 하고 싶은 말과 갚은 연관이 있습니다. 먼저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오이디푸스: 내가 여기에 있소. 당신은 나를 잘 알고 (know) 있잖소. 세상도

        나의 명성을 잘 알고 (know) 있소. 나는 오이디푸스요. 나는 도울 준비가 되어

        있소. 나는 내 앞에 무릎을 꿇은 내 국민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나는 여러분

        들의 고난에 장님(blind)이 아니겠소?   

     사제: 오!  오이디푸스. 나라의 왕이시며 우리의 위대한 권력자이여! 당신은 지금

        당신 앞에 있는 백성들, 모든 연령대의 시민들을 보고 계십니다 (see)      . . . . .          

        우리의 도시는 ... 한 번 보세요 (look). 당신의 눈으로 보세요 (see with your            

          own eyes) . .  테베는 죽어가고 있어요. . . . 오이디푸스. 무엇을 알고 (see) 계시나요?

        경험자이시여. 당신은 매일 보십니다. (see) . . .  

        우리를 다스려주세요. 당신은 힘이 있음을 아시잖아요! (know)    

        그러나 죽은 자의 땅이 아닌, 산자의 땅을 지배하소서.

      오이디푸스: 불쌍한 나의 아이들. 압니다 (see) 내가 어떻게 못 볼 수 가 있나요( fail to see)

         원하는 게 뭔가요? 죽을 정도로 아프다는 건 압니다 (know)  (7-72)



반복되는 말이 제목(oedi)하고 연계된 눈과 인지에 관계된 단어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기생충』에서 계단의 이미지가 영화 전체에서 반복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영화는 이 계단으로 사회의 빈부격차의 문제점을 표현합니다. 오이디푸스의“보다”와 “안다”는 무엇을 표현하는 걸까요?    

   

    오이디푸스는 이 재앙을 끝낼 유일한 방법은 그가 왕이 되기 전에 이 나라를 다스렸던 라이오스 왕을 죽인 자를 찾아내 처단하는 길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태양의 신 아폴로가 왕의 처남인 크레온을 통해 전해준 메시지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탓으로 나라를 구하는 길은 정의 실현뿐이라는 겁니다.  아폴로는 오레스테스에게도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를 처단해야 한다고 했었지요.  오이디푸스는 그 범인을  잡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이디푸스: 내가 모든 것을 밝히겠습니다. 아폴로도 옳고

        당신도 옳아요, 크레온.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역량을 이 살인자를

        잡는데 쏟아 부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싸울 겁니다.

        보게 될 거예요. (you will see)  나는 이 나라를 괴롭히는 자들을

        응징할겁니다.   . . .

        왕을 죽인자라면 나도 죽이려들지 몰라요. 폭력에 길들여진 손으로

        말입니다. 레어스 왕을 죽인 자를 처단해서 나를 방어할겁니다.

         (150-158)   



오이디푸스가 누구입니까? 사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지혜 하나로 테베의 왕이 되지 않았나요? 그가 왕이 되기 전 테베인들은 스핑크스가 퍼뜨린 전염병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있었죠. 그 괴물은  테베인들에게  “아침에는 다리가 네 개,  점심때는 다리가 두 개, 저녁때는 다리가 세  개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를 내고 이를 푸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사람을 죽이겠노라고 했었죠.  이 수수께끼를 못 풀자 테베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그래서 테베인들은 그 수수께끼의 답을 맞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왕으로 모시고 또 전왕 라이오스의 부인인 이오카스테 왕비와의 결혼까지 약속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등장한 오이디푸스. 그는 간단하게 그 문제의 답(사람)을 맞추고 테베를 재앙으로부터 구한 후 왕비의 새 남편이 되어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었죠. 그는 두 번째 재앙의 근원인 그 살인자를 잡을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자신의 지혜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은 이렇게 공표합니다.



     누구든지 살인자를 아는 사람은

     다른 나라에 사는 이방인이라도 내게 와서 고하라

     그에게 포상을 해주고 가슴 깊이 감사를 표하리니       

     . . .

     살인자에게 저주를 퍼부으리니

     만일 살인자가 우리 집하고 가까운 사람이거든

     내가 내린 저주가 나를 치기를 (280-288)  



이미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이 신화는 그리스 관객들에게는 익숙한 스토리입니다. 그러나 관객은 이 장면에서 드라마틱한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극으로 빠져 듭니다. 왜냐하면 관객은 오이디푸스가 왕을 죽인 범인임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왕은 나라 최고의 맹인 예언자인 테이레시어스를 부릅니다. 누가 범인인지 알려달라는 거죠. 그러나 예언자는 범인을 알지만 알려줄 수 없다며 대답을 거부합니다. 왕은 이에 빡칩니다. 범인을 아는데 알려줄 수가 없다? 왕하고 장난하고 있냐는 거죠. 왕은 예언자를 다그치다가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합니다. 상대방의 신체적 결함까지 들먹이며 예언자를 조롱합니다.



    오이디푸스: 당신은 이제 힘을 잃었군.  완벽하게 장님인데다

       완벽하게 감각이 마비되었으니. . . . 당신이 한 게 뭐가 있소?       

       스핑크스가 나라를 공포에 몰아넣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소?

       내가 그 괴물을 막았소 내 지혜로. 그런 나를 능멸하고 이젠

       내 자리까지 넘보다니! ( 423- 454)  


 

이 말을 들은 테이레시어스는 기가 막힐 뿐입니다. 그는 이렇게 응수 합니다.    



     테이레시어스: 당신이 내가 앞을 못 보는 상태인 걸 조롱해요?

        이것만 말해주지요. 당신은 그 귀중한 두 눈으로      

        부패한 당신 삶을 못보고 있어요

        당신의 집안에 대해서 당신과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요? 누가 당신의 부모입니까? 아세요?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괴롭히는 채찍입니다.

        무덤에 있는 죽은 자, 자상에 있는 산자        

        어머니와 아버지 저주의 이중 채찍이 당신을 이 땅에서

        후려쳐 몰아낼 거에요. 그들의 발이 당신을 무섭게 짓밟을

        거예요. 지금 빛을 보고 있는 당신의 눈을 어둠으로 감싸게

        만들 거예요. (469-478)   



왕은 테이레시어스가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 다고 생각하고 그를 데려가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예언자는 나가면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합니다.



     테이레시어스: 난 결코 당신의 눈에 가득 차 있는 분노로부터 움츠려 들지

        않을 거요. 당신은 나를 파괴시킬 수 없어요. 내 말을 잘 들어봐요.

        당신이 찾고 있는 그 사람, 레이어스 왕의 살해범은   

        바로 여기에 있소. 당신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지금 여기 당신과 함께 살고 있소.

        그는 테베 사람으로 밝혀질 것이고

        그렇다고 그 사실이 드러나는 걸 결코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요.    

        그는 눈을 가졌지만 장님이 되어, 부자이지만 거지가 되어  

        지팡이로 한 걸음 한 걸음 더듬거리며 나라 밖으로 나가게 될 거요.

        (509-518)   



예언자는 왕에게 당신은 당신의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다고 덧붙입니다. 왕은 이 말에 분노가 치밀지만 동시에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럼 누가 내 부모냐고 물어보지만 예언자는 “레어스 왕의 살인자는 아버지의 자식이자 형제이고 어머니의 아들이자 남편이다”라는 알쏭 달쏭한 말만 합니다. 왕은 자신의 처남이 테이레시어스와 함께 비밀리 반란을 계획하고 있다고 오해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테이레시어스를 소개한 이가 바로 자신의 처남 크레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오이디푸스의 아내인 이오카스타가 등장합니다. 그리곤 크레온을 옹호하며 모든 예언자의 말이 다 맞는 건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그 예로 자신의 전 남편인 레어스 왕의 아들에 의해 죽을 거라고 예언을 했는데 아들은 어렸을 때 테베에서 쫓겨났고 그를 죽인사람들은 도둑떼라는 거였죠. 이 말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이 사건이 어딘지 모르게 자신도 아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는 레어스가 살해된 곳이 세 갈래 길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몹시 당혹해 합니다. 혹시 범인이 자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코린트의 왕자였던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거라는 델피의 신탁을 듣자마자 코린트에서 도망쳐   나와 테베로 가던 중 세 갈래 길에서 여행객들을 만났고 시비가 붙어 방어 차원에서 그들을 죽였는데 바로 그 도로가 레어스 왕이 살해된 길임을 이제 알게 된 겁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에게는 아직도 한 가지 희망이 남아있습니다. 자신이 레어스 왕을 죽인 건 확실하지만 자신의 아버지는 코린트의 왕인 폴리버스라고 믿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곧 폴리버스가 자연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소식에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타는 얼싸 안고 좋아 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이렇게 좋아하는 건 정말 코믹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최소한도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일 거라는 계시는 틀렸다는 거죠. 그래도 오이디푸스는 찜찜합니다. 아버지를 죽인다는 예언은 틀렸지만 어머니와 결혼할거라는 예언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한 메신저가 나타납니다. 그리곤 폴리버스의 아내인 머로프가 오이디푸스의 엄마가 아님을 증언합니다. 그는 한때 양치기였고 테베 근처의 산에서 발이 핀으로 고정된 아기를 발견한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아기를 레어스 왕의 양치기로부터 받았다고 말하자 이오카스타는 얼굴이 잿빛으로 변합니다. 오이디푸스는 결국 레어스 왕의 양치기를 소환하여 진실을 말하기를 꺼리는 그를 다그칩니다. 그는 마침내 실토를 합니다. 이오카스타 여왕으로부터 이 아이는 커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아이이니 발을 묶어 산에서 죽도록 내버려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모든 것이 예언대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 이오카스타는 절망하여 자신의 방에 들어가서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합니다. 자신의 엄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타의 시신을 부여안고 울부짖던 오이디푸스는 여왕의 옷에 꽂혀있는 골드 핀으로 자신의 두 눈을 찌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오이디푸스: 나의 고통 나의 아픔 더 이상 못 보게 할 거야          

        결코 보지 말았어야 할 것들을 너무 오래 보아왔어  

        오랫동안 알고자, 보고자 했던 사실에 눈을 감았었지  

        이 시간부터 장님이 되는 거야! 어둠속의 장님.

        장님이 되는 거야.  (1405- 1409)   



두 눈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절규합니다. 자신의 운명은 아폴로신이 결정했노라고 선언하며 자신을 테베에서 추방 시켜줄 것을 요청합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를 괴롭힌 이 괴질이 결국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죄악에 대한  형벌임을 깨달은 겁니다. 그리곤 그는 장님이 되어 죽을 때까지 세상을 떠돌아다녔습니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제목이 암시하듯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부은 발이 상징하는 운명이고 또 하나는 보는 행동과 관계된 깨달음입니다. 먼저 오이디푸스가 탄생 시 갖게 된 부어오른 발은 행동의 한계를 나타내며 운명을 상징합니다. 운명은 신에 의해 정해진 길이며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비극적인 운명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는 테베를 괴롭히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단번에 맞추어 테베를 재앙으로부터 구한 능력자 아니었나요? 그러나 그의 자신감은 오만(hubris)에 불과 했습니다. 오만은 신에 대한 도전이며 그 결과는 가혹할 뿐입니다. 오이디푸스의 부어오른 발과 연결된 시야는 테베왕의 인식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야는 부은 발만큼이나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정작 봐야 할 것은 못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테이레시어스가 던진 자신에 관한 수수께끼는 풀지 못했습니다. 그가 찾는 범인의 실체가 자신인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상당히 가까운데 있는데 그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작품 내내 눈을 뜨고 있었지만 정작에 자신은 자신에 대해서는 소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그는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스스로 장님이 됩니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자신의 아내로 만들어 버린 패륜적인 행동에 대한 죄책감으로 세상을 바라볼 면목이 없어 저지른 행동으로 이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스스로 장님이 되는 행동은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늘 먼저 밖으로 향하는 우리의 시선을 물리적으로 차단시켜 내부로 향하게 만든 겁니다. 즉 자신을 먼저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강조하는 거죠. “너 자신을 알라.”  소포클레스보다 26년 뒤에 태어난 소크라테스도 강조한 말입니다. 그리스 철학자는 진정한 지혜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를 분명하게 깨닫고 스스로 지혜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라는 겁니다. 자신의 지혜에 대한 과신은 화를 부르며 비극을 초래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지혜의 말씀이 그렇듯이 말은 쉽지만 실천은 쉽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3. 『오레스테이아 』: 복수와 정의 실현의 딜레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