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BC 441)는 오이디푸스 대왕의 비극을 다룬 테베 3 부작 (The Theban Trilogy)의 3 부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말해 주듯이 이 마지막 드라마는 안티고네라는 이름의 여 주인공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안티고네란 이름은 안티와 고네의 합성어이며 안티(Anti)는 “반대하다,” “거스르다”는 뜻이고 고네(gone)는 “가다”(go)의 과거 분사형입니다. 따라서 그 뜻은 “다른 사람과 반대로 간 사람” 또는 “거슬러간 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 여성은 당시 고대 그리스 사회의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아니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획기적인 인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예스”라고 말할 때 홀로 “노”라고 말하는 용기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 상대가 테베의 왕일 지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거침없이 개진하며 신념대로 행동합니다. 결국 왕명에 항의한 대가로 내려진 극형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지금부터 2500년 전. 페미니즘이란 용어도 젠더 갈등이란 개념도 없었던 시대. 여신조차 차별받는 철저한 가부장제도의 사회. 남성의 우위와 지배가 당연시 되던 고대그리스에서 남성에 맞서 싸우는 새로운 타입의 여성이 등장한 겁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세계최초의 페미니스트로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의무는 국가를 지배하는 남자의 명령을 따르는 게 아니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들은 지배자를 통해서가 아니고 개인의 믿음을 통해 의사를 전달한다는 믿음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비록 안티고네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운 것은 아니지만 남성 중심사회에서 그녀의 신념과 그에 따른 행동은 그녀를 프로토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안티고네는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입니다. 아버지 오이디푸스와 어머니 이오카스타의 막내딸로 태어납니다. 손 위로 오빠 둘이 있었고 언니인 이스메네가 있습니다. 안티고네의 나이는 13 세에서 15 세 정도이며 언니는 두세 살 더 많은 거로 추산 됩니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였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집안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어머니는 자살을 하였고 아버지는 두 눈을 찔러 스스로 장님이 되었죠. 그 후 아버지는 왕위를 포기하고 처남인 크레온에게 자신을 테베에서 추방시켜달라고 요청합니다. 안티고네는 장님이 된 아버지를 돌보며 정처 없이 떠도는 노숙자의 삶을 삽니다. 막내 딸은 고대 그리스 판 효녀 심청입니다. 그렇게 지내다 아버지는 클로노스에서 객사를 하고 맙니다. 오빠 둘은 거지가 된 아버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죠. 딸만 가진 분들에게 위안이 되는 대목입니다. 오빠 둘은 아버지가 포기한 왕위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겁니다. 둘은 테베를 돌아가면서 통치를 하자는 합의를 하지만 이 약속은 곧 깨지고 형과 아우는 왕위를 놓고 치열하게 싸움을 벌입니다. 결국 형인 에테오클래스가 승기를 잡고 동생인 폴리네이케스를 추방시킵니다. 그러나 동생은 아고스에서 지원군을 모아 형을 재차 공격합니다. 다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결국 형과 동생은 서로 싸우다 서로의 칼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오빠 둘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티고네는 서둘러 테베로 돌아옵니다. 오빠의 장례를 위함입니다.
이제 테베의 지배자는 오이디푸스의 처남이자 안티고네의 삼촌인 크레온입니다. 어쩌다 왕이 된 크레온은 내란을 수습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려합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테베의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공표합니다.
크레온: 누구든지 친구를 국가보다 중하게 여긴다면 그는 무사하지 못 할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 전지전능한 제우스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국가가 안전하게 항해 할 때만 우리는 우정을 쌓을 수 있다. 피보다 더 진한 우정말이다.
그것이 나의 기준이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위대해진다.
오이디푸스 두 아들에 대한 나의 의지를 공표하겠다.
테베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에테오클래스는
영웅의 격식에 맞게 장례를 치루고
. . .
그러나 그의 동생 폴리네이케스는
욕망에 눈이 멀어 망명지에서 돌아와
나라를 절단내고 친척들의 피를 마셨으니
. . .
그의 매장을 금하고 애도도 허용되지 않으며
그의 시체는 독수리가 파먹거나 개가 갈기갈기 찢도록 내버려두라
그 처참함을 모든 시민이 구경할 수 있도록 하라. (203-231)
국가의 혼란을 수습하고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반역자를 묻지 않겠다는 크레온의 조치는
충분히 납득할만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안티고네 입장에서는 큰 오빠는 영웅이고 작은 오빠는 반역자이기 전에 똑 같이 그녀의 가족입니다. 따라서 에테오클래스의 시신이 묻힌 것처럼 폴리네이케스의 시신도 매장을 해 주려 합니다. 그녀는 다른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시신이 묻히지 못하면 죽은 자의 영혼이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신을 땅위에 방치하는 행동은 하늘이나 땅 아래 있는 신 모두에게 불경한 죄를 저지르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신념대로 매장을 금하는 왕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빠를 묻어주려 합니다. 언니인 이스메네는 이런 동생을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든 동생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며 다음과 같이 설득합니다.
이스메네: 자 세상에 홀로 남겨진 우리 둘을 보라고
우리가 어떻게 죽을 지를 생각해봐. 더 끔찍한 건
우리가 법을 어기고 공포된 왕명의 힘을 뒤집는 거야
우리는 현명해져야만 해. 우리는 여자란 점을 기억해야해
우리는 남자와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야. 게다가
우리는 더 강한 자에게 지배를 받는 하층민이야.
그래서 복종해야해. 사태가 더 악화될 수도 있어. (70-77)
그렇게 말하니 죽은 동생에게 미안했는지 이렇게 덧붙입니다.
죽은 동생에게 용서를 구해야지
나는 강요를 받은 거야. 선택권이 없잖아. 난 권력을 가진 사람을
따라야해. 왜 극단적인 일을 하려고 하는 거야?
미친 짓이야 미친 짓! (78-81)
왕명에 순응하자고 말하는 언니. 더욱이 자신들은 남자들 세상에서 홀로 남겨진 여자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단호합니다. 오빠를 묻어주어야 한다는 거죠. 처음에는 같이 하자고 요구하다 언니가 망설이자 그럼 혼자라도 하겠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안티고네: 내가 그를 묻어 줄 거야
묻다가 내가 죽더라도. 그럼 죽는 게 영광이지.
이 범죄는 신성한 거야!
내가 사랑하고 사랑을 받은 이와 같이 누울 거야
나는 살아있는 자를 기쁘게 하기 보다 죽은 자를 더 오래 기쁘게 할 거야.
죽은 자와는 영원히 같이 누워있을 테니까.
언니는 맘대로 해. 신이 준수하는 법을 무시하라고
곧 안티고네가 오빠의 시신을 묻어주었다는 보고가 왕에게 전달됩니다. 왕은 기가 막혀합니다. 더욱이 왕명을 어긴 자는 15세 남짓 한 여자아이입니다. 왕은 도저히 믿기지 않아 사실을 그 보고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안티고네를 소환합니다. 왕은 매장을 금한다는 왕명을 알고도 했는지를 알고 싶었던 겁니다. 이에 안티고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안티고네: 물론 내가 어겼습니다. 그건 제우스가 공표한 법이 아니예요.
전혀 아니지요. 신이 함께 하시는 어떤 정의도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그런 법을 정하지 않았어요. 인간에 불과한 당신의 칙령도 그런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신을 무시하거나 예로부터 내려오는 위대한 전통을
경시할 수 있는 그런 힘 말입니다. 그 전통은 살아 있어요. 오늘 내일 만이
아니고 영원히 살아 있어요. 태초부터 누가 처음 빛을 보았는지 모르잖아요.
이 법은 난 결코 어기지 않을 겁니다. 남자의 상처받은 자존심 따위는 두렵지
않아요. 신의 벌을 달갑게 받을 거예요. 나는 죽을게 확실해요. 항상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 모를 수가 있나요? 당신의 사형선고가 내 귀에서 울리지 않았어도 알고
있었는데요. 내가 일찍 죽게 된다 해도 그건 나에게 이득입니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살아 있는 내가 죽음을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그래서 당신이 내려준 이 운명을 맞이하는 건 제게 고통이 아니랍니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의 아들을 묻지 않고 썩게 내버려두는 건 고통입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지금 행동이 바보 같다고 생각되시면 그냥 이렇게 말하죠. 나는
바보에 의해 바보 같은 범죄를 지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498-525)
이에 왕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진정시키며 이렇게 말합니다.
크레온: 이 여자아이는 오만하기 짝이 없구만.
우리가 공표한 칙령을 무시하다니
한 번 오만 하면 두 번 오만 해지기는 어렵지 않지.
오만에서 영광을 찾으니, 자신의 행동으로
우리를 대놓고 비웃고 조롱하겠지.
나는 남자가 아니냐. 적어도 지금은. 지금 그 여자아이가 남자야
그녀가 승리하고 무사하다면 말이야. (536-542)
승리자는 항상 남자여야 한다는 왕의 의식은 그 당시 철저했던 남성중심 문화의 산물입니다. 크레온은 왕명을 어긴 대가로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게 해주겠노라고 공언합니다. 왕은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에 언니도 간여했을 거라고 의심을 하며 언니인 이스메네도 부릅니다. 처음에 왕명을 따라야 한다고 동생을 설득했던 이스메네는 놀랍게도 동생 편을 듭니다. 자기도 공범이며 동생과 같이 처벌을 받겠노라고 말합니다. 동생이 죽는데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겠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왕의 입장에서는 언니와 동생은 두 명의 미친년에 불과 합니다.
이때 크레온의 아들이 해먼이 등장합니다. 알고 보니 그는 안티고네의 약혼자입니다. 해먼은 아버지에게 화를 거두고 미래의 며느리를 용서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크레온에게 안티고네는 별 볼일 없는 범법자이며 집안에 재앙을 불러올 여자일 뿐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임무보다 왕의 임무를 먼저 생각해야 하며 더욱이 여자가 설치게 내버려두어서는 곤란 하다는 신념도 확고합니다.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크레온: 무정부 상태.
세상에서 이보다 더 큰 범죄가 있으면 내게 보여줘.
그녀는 도시들을 파괴하고 집을 산산조각 내고 있어
강력한 병사들을 멍청이 집단으로 만들고
그러나 끝까지 버티는 자들이 대부분
삼아 남는다면 그건 훈련 덕이지. 그러므로
우리는 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호해야해
결코 여자들이 우리를 이기도록 해서는 안돼
지더라도, 만일 지게 된다면
남자의 손에 져야 해,
남자는 결코 여자보다 더 열등하다고 평가받아서는 안 돼
결코. (752-761)
왕에게 이 싸움은 이제 여자와 남자의 대결입니다. 그는 결코 여자에게 지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는 요즘 용어로 섹시스트(성 차별주의자)입니다.
이제 장님 예언가인 테이레시어스도 클레온에게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허락하고 안티고네를 용서해주라는 고언을 합니다. 이제 그만 화를 풀라는 거죠. 그러지 않을 경우 신을 분노하게 만들고 아들마저 잃게 될 거라고 예언을 하죠. 아들을 잃게 될 거라는 말에 크레온은 맘이 흔들립니다. 이때 테베의 원로가 등장하여 테이레시어스의 충고를 따르라고 다시 한 번 왕을 설득합니다. 크레온은 마침내 안티고네를 용서하기로 맘을 먹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안티고네는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을 했고 이 소식에 절망한 해먼도 아버지 얼굴에 침을 뱉은 후 자신의 칼로 자살을 합니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왕의 처이자 해먼의 엄마인 유리다이스도 목숨을 끊습니다. 클레온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울부짖는 가운데 코러스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코러스: 여태껏 우리가 누린 것 중 최고의 기쁨은 단연코 지혜야.
신에 대한 존경은 무조건 지켜져야지
오만한 자의 위대한 말은 운명의 강타에 의해 벌을 받았으니
그 타격은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었도다. (1467-1470)
『안티고네』의 중심에 서로 타협을 거부하는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합니다. 한편은 가족, 전통, 그리고 신에 대한 가치입니다. 안티고네는 가족의 수호자입니다. 오빠 둘이 영웅이고 반역자이기 전에 똑 같은 가족이며 또한 죽은 자로서 모두 똑같이 대접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견지합니다. 그녀는 가족이 죽으면 전통에 따라 매장을 해주어야 하며 이는 신에 대한 공경이요 예의라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안티고네에게 이 가치는 최고의 도덕이요 선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 가치는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점을 천명합니다. 또 한편은 크레온이 신봉하는 국가의 가치입니다. 왕은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이 가치가 유지 될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에게 내전을 막 끝낸 어수선한 상태에서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울 의무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왕에게 신은 국가를 보호해 줄때만 필요합니다. 국가 최우선 사고방식입니다. 가족에 대한 신념과 국가가 내세운 가치 간의 충돌은 안티고네와 왕의 성별과 나이를 감안해보면 또 다른 대립구도를 형성합니다. 즉 남녀간의 충돌이고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입니다. 크레온으로 하여금 더욱이 물러설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 셈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어떤 여자도 자신을 지배할 수 없다(no woman is going to lord it over me. 594)는 신념을 가진 전형적인 가부장시대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극의 후반부 크레온은 왕과 남자의 자존심을 굽히고 예언자의 충고를 따르기로 맘을 먹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와 왕 간의 싸움의 패배자로 크레온을 지목합니다. 테베왕은 가족보다 국가의 가치를 우선했지만 그 결과 잃은 건 자신의 가족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코러스가 이야기하는 지혜의 핵심은 신에 대한 존경입니다. 크레온의 비극은 오이디푸스의 비극과 궤를 같이 합니다. 신에 대항하고 신의 가치를 부정하다 벌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 보다 신이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