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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y 04. 2022

『메데이아』: 세계최초의 페미니스트 스토리

   에우리피데스가 기원전 431년에 발표한『메데이아』(Medea)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여성 메데이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그녀의 출연은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일입니다. 우선 메데이아는 흑해 연안의 콜키스 즉 지금의 조지아 남부 지역에서 이주해온 이방인 여성입니다. 주로 왕이나 귀족 출신의 남성들이 주인공을 맡으며 모든 것을 남성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에 익숙했던 그리스인들에게 야만인이자 여성인 메데이아가 극의 주연으로 등장한 겁니다. 게다가 극중 그녀의 행동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그리스 왕과 그의 딸을 살해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두 아들마저 저 세상으로 보내버리니 말입니다. 이러한 메데이아의 끔찍한 행동에 관객들은 무척이나 심기가 불편했을 겁니다. 그러나 막이 내리면 관객들은 메디아를 욕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녀 역시 희생자였으니까요. 그렇다면 메데이아는 어떻게 자신의 고국을 떠나 그리스까지 와서 이런 일을 벌인 걸까요?  이제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그리스 남성에게 반해버린 메데이아  

  

   메데이아는 이아손과 황금양털 신화에 나오는 여성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트로이 전쟁 이야기 다음으로 좋아한다는 이 그리스 신화는 삼촌인 펠리아스와 조카 이아손 간의 왕위 쟁탈전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삼촌은 이아손에게 돌아갈 왕위를 빼앗고는 조카에게 콜키스에 가서 황금양털을 갖고 오면 왕위를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이에 이아손은 정예 대원들을 이끌고 이역만리 먼나라 콜키스로 향합니다. 그러나 이 신화는 요즈음 사연사롱, 사랑과 전쟁,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에 흔히 나오는 스토리나 별 반 다르지 않습니다. 남녀의 사랑, 남자의 배반, 여자의 복수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으니까요. 이 신화의 남자 주인공 이아손은 20 살의 젊고 용감하고 잘 생긴 청년이죠. 황금양털을 찾아오는 일은 박사학위 취득, 고시 합격 혹은 어려운 계약을 따내는 일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 문제는 이 임무를 완수해야 할 장소가 물설고 낯설고 말도 안 통하는 중동 가까운 지역이라는 점입니다. 이때 이아손을 위한 특급 도우미가 등장하는데 바로 메데이아입니다. 그녀는 한 눈에 이아손에게 반해 이국에서 온 청년에게 자신의 미래를 걸기로 결심합니다. 황금양피를 찾도록 도와줄테니 대신 나와 결혼하자는 조건을 겁니다. 그녀는 『오딧세이』에 등장했던 마녀 키르케의 조카로 고모언니 못지않게 각종 주술과 마법에 능합니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콜키스 왕입니다. 그녀의 힘과 능력이 필요했던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조건을 수락합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정보와 도움으로 황금양털을 손에 쥐고 메데이아와 함께 그리스로 귀국합니다. 이 와중에 그녀는 아버지를 배반하고 자신의 오빠마저 죽이게 됩니다.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이아손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여성입니다.      

 

           헌신한 남편에게 버림받은 메데이아


  이아손은 갖은 고생 다하며 힘들게 황금양털를 구해 펠리아스에게 갖고 지만 왕은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에 메데이아는 빡칩니다. 감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맘을 아프게 해? 그녀는 마법으로 펠리아스를 속여 그를 솥에 들어가 죽게 만듭니다. 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이 분노합니다. 더구나 왕을 죽인 여자가 타지에서 온 이방인입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메데이아와 이아손은 아이들을 데리고 이웃나라인 코린트로 피신합니다. 이아손은 망명지에서 코린트 왕 크레온의 배려로 정착하여 메데이아와 함께 아들 둘을 낳고 편히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아손은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왕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코린트 왕은 이아손이 맘에 들어 자신의 딸인 공주 글라우케와 결혼시키려 합니다. 이아손은 코린트 왕의 제안을 받아드립니다. 결국 왕이 되려 그 난리를 부린 건데 이제 왕이 될 기회가 왔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죠. 자신을 도울 때 이뻐 보였던 아내는 이제 보기도 싫어졌습니다. 게다가 아내는 사람을 너무 쉽게 죽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사람을 죽일 땐 아내가 그렇게 사랑스럽더니 아내의 도움이 필요 없어진 지금의 아내는 괴물일 뿐입니다. 그렇게 메데이아는 남편에게 버림을 받습니다. 이아손은 이미 글라우케 공주와 결혼 약속을 했고 메데이아는 가족을 버리고 오로지 남편하나 믿고 정착한 낯선 나라에서 이제 외톨이가 될 상태에 처했습니다.『메데이아』의 막이 오르기 전 메데이아가 처한 상황입니다.   

   

        사면초가의 메데이아  


 『메데이아』는 메데이아 자녀를 돌보는 유모의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그녀는 황금양털 사건이 없었더라면 자신의 여주인이 이아손을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의 여주인인 메디아가 남편에게 버림을 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하며 그녀의 앞날을 걱정합니다. 유모는 퇴장하고 슬픔 속의 메데이아가 등장하여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메데이아: 살아있는 그리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우리 여자들이 가장 불행해요   

       먼저 많은 돈을 들여 남편을 얻지만

       남자들은 그저 우리 육체의 주인일 뿐입니다.   

       홀로 사는 건 더한 악으로 여겨지는 세상 아닌가요?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좋은 남편을 만날 수 있느냐의 여부이죠.

       나쁜 남편을 만난 여자에게는 쉬운 탈출구란 없으니까요.        

       여자는 자신의 결혼에 노라고 말할 수 없지요.     

       시집온 여자는 시댁의 새로운 관습과 규칙에 놓이게 되죠.

       여자는 가정에서 뭘 모르는지에 관해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같은 침대를 쓸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말입니다.   

       그게 잘 되어서 아내와 남편이 잘 살며 폭력없이 결혼의 굴레를 견딘다면   

       그런 결혼 생활은 남의 부러움을 삽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들은 차라리 죽는 게 낳아요.  

       그러나 남자들은 아내가 지루해지면   

       집 밖으로 나가서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친구를 만나기도하고 또래의 파트너를 찾기도 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홀로 남편만 바라보도록 강요를 당합니다.

       남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전쟁에서 싸울 때

       여자들은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도 안 돼는 소리입니다. 난 한 번 임신하느니 차라리

       세 번 전쟁터에 나가겠어요.         

        . . . . .


       대개 여자들은 겁이 많고 방어능력도 부족하고 차가운 칼만 보아도 몸을 떱니다.

       그러나 여자가 사랑에 배반당하면 그녀는 피만 생각합니다.  

       (228-264)


극이 나온 지 2천 4 백년이 지났지만 여성이 사는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네요. 메데이아의 마지막 두 마디 대사는 여주인공의 생각이 서서히 복수 쪽으로 움직임을 시사합니다.  

  

  이때 이아손의 장인이 될 코린트의 왕인 크레온이 메데이아를 찾아옵니다. 그리곤 그녀를 코린트에서 추방하겠노라고 선언합니다. 왕은 영리하고 주술의 힘도 갖고 있는 메데이아가 두렵습니다. 그녀를 코린트에 살게 하면 자신의 딸에게 해코지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사면초가의 입장입니다. 친정아버지를 배반하고 자신의 오빠마저 죽인 터라 고향으론 갈 수 없었고 이방인으로서 마땅히 갈 곳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코린트 왕에게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어디로 갈지 아이들을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였습니다. 이에 크레온는 맘이 약해져 그녀의 청을 수락합니다. 사실 메데이아는 남편에 대한 자신의 복수를 계획할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리고 복수 후에 갈 곳도 정해야 합니다.

   

 곤경에 처한 메데이아. 허나 남편 이아손은 냉정합니다. 그저 아내가 조용히 사라져 주기만 바라는ㄷ 심정이겠지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아손: 네 고집을 내가 어디 한두 번 겪어 봤나?

       그놈의 고집불통 이제 아주 지긋지긋 해

       왕에게 고분고분하면 쫓겨나는 신세는 면하지.

       . . .


       내가 형편없는 놈이라고 말하고 다녀도 되지만

       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건 좀 그렇잖아  

       왕이 당신에게 추방 명령을 내린 건 그래도 당신에겐 행운이야        

       난 왕의 분노를 달래려고 애 썼어

       그리고 네가 여기에 남아 있길 원했었지

       그러나 너는 어리석게 왕을 험담하니 이렇게 내 쫓기지.   

       . . .


       그럼에도 난 당신을 위해 돈을 줄 거요

       그래야 추방되어서도 애들이 무일푼으로  

       굶지는 않을 거 아니요?

       추방되면 고생이 많을꺼요.

       날 미워해도 난 당신을 나쁘게 생각 안 해요.

       (440-453)


이런 남편의 태도에 메데이아는 기가 막힐 뿐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비겁한 겁쟁이라고 부릅니다. 죽을 뻔한 당신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주고 또 황금양털도 얻게 해주고 당신을 배신한 펠리아스 왕도 없애주고 ... 이 모든 일을 오로지 당신을 위해 했는데 나를 버리고 젊은 여자 침대로 가겠다니. 당신은 모든 병중에서 가장 더러운 병에 걸린 인간이요. 바로 파렴치 병에 걸렸노라고 맹공을 퍼 붓습니다. 그러나 이아손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합니다.



     이아손 : 나를 구해주었다고 말하는데

        당신이 나에게 준 거보다 내거 당신에게 준 게 더 많음을 난 증명할 수 있소

        내가 야만인들 사이에 살던 당신을

        그리스에서 살게 해주었고 우리의 관습을 배우게 해주었소.

        무력대신 법으로 사는 법 말이예요.  

        저 멀리 땅 끝에 살고 있다면 당신에 대해 누가 알겠소?


자신이 생각해도 빈약한 반론같이 느꼈는지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분명히 알아둬요. 난 여자 때문에 왕족과 결혼한 게 아니란 말이예요

       전에도 말했듯이 당신을 보호하기 위함이요. 앞으로 아이가 생기면  

       지금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왕의 피를 가진 형제가 생기는 셈이 아니요?   

       우리에게는 확실한 방패막이가 될 거요. (581-585)



그리곤 결정적인 한마디를 더합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의 선택이었소.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지 말아요” (593). 내가 새 장가 가는 건 너와 아들을 위함이고 네가 나한테 온건 따지고 보면 네가 좋아서 한 일 아니냐는 겁니다. 기가 막힌 자기 합리화이며 구차한 변명입니다. 메데이아는 이렇게 응수합니다. 결혼의 신성한 약속을 어긴 건 당신이니 넌 할 말이 없다고 반격합니다.  약속을 먼저 어긴 남자는 어떠한 논리로 자신을 방어해도 여자의 공격을 막기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인지 도와주겠으니 거절하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메디아는 단호합니다. 나쁜 남자의 도움은 안 받겠다는 겁니다. 당신 “후회할 결혼”을 하게 될 거라고 말하며 그와의 대화를 끝냅니다. 아내는 이미 마음속으로 복수를 결심한 겁니다.

  

   남편에게 복수를 계획하는 메데이아   


메데이아는 아테네의 왕이자 자신의 옛 친구인 아이게우스를 만나 도움을 요청합니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아이게우스의 맘을 움직여 아이를 갖게 해줄터이니 피난처를 제공해달라는 거래를 제안합니다. 마녀인 메데이아에게 그런 정도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아테네왕은 이 제안을 받아드리며 그럼 우리 집에 와서 안전하게 있다가 다른 곳으로 탈출을 하라고 권유합니다. 일단 갈 곳이 마련된 메데이아는 남편에 대한 본격적인 복수를 계획합니다. 복수를 위해선 아이를 이아손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통해 신부에게 결혼식 드레스와 머리에 쓸 금관을 만들어 보낼 계획을 세웁니다. 아이를 이용해야 의심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옷과 금관은 죽음의 덫입니다. 일단 착용하면 살은 타들어가고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후 메데이아는 아이를 죽일 생각마저 합니다. 평생 적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사느니 차라리 내손에 죽는 게 낳지 않겠느냐는 엄마의 생각입니다. 이 계획을 들은 코러스들도 엄마를 동정하지만 아이의 살인만은 안 된다며 메데이아를 말려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엄마는 아이들 생각에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을 억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마음을 다 잡으며 이런 말을 합니다.



     메데이아: 아무도 나를 약한 여자, 집안에만 머무르는 연약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할 거야.   

       오히려 그 반대로 나의 적을 아프게 하고 친구를 돕는  

       강한 여자로 기억되게 할 거야

       그런 사람의 삶이 가장 기억에 남으니까 말이야. (791-794)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찾아가 남편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곤 아이를 맡아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메데이아가 간절하게 요청하자 이아손은 맘을 열고 아내가 마침내 이성적으로 돌아왔다며 칭찬까지 합니다. 메데이아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거죠. 아내는 당신의 새 신부에게 옷과 금관을 선물하겠다고 제안합니다. 이아손은 왕실에 옷이 없는 줄 아냐고 핀잔을 주며 거절을 합니다. 하지만 메데이아는 자신이 만든 옷과 금관은 세상에 둘도 없는 최고의 명품으로 당신의 결혼식을 빛내고 신부를 기쁘게 할 멋진 선물임을 강조하여 남편의 오케이를 받아냅니다. 메데이아가 만드는 드레스와 금관은 요즈음 배우자 살해 시 종종 등장하는 니코틴이나 복어알, 농약의 문학적 표현일 뿐입니다.

  

      메데이아의 분노와 복수  

  

  이제 모든 건 메데이아의 계획대로 진행 됩니다. 그러나 자꾸만 아이가 맘에 걸립니다. 아이를 안아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또 아이 피부는 너무 부드럽고 아이들이 숨 쉴 때마다 입에서 향기가 퍼집니다.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슬픔에 압도당합니다. 어느 엄마가 아이들을 쉽게 죽이겠습니까? 그러나 메데이아는 다시 맘을 굳게 먹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메데이아: 나는 내가 의도한 악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그러나 악을 행한 후의 어떠한 생각이 밀려와도

       지금 나의 분노보다 더 강하지는 않을 터이다.

       분노는 인간에게 가장 큰 악을 선사하노니. (1052-3)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 했는데. 모든 행실의 근본은 참는 것이 으뜸이라고 공자님도 말씀하셨는데. 그러나 메데이아는 그녀를 말리려는 코러스의 어떠한 충고도 듣지 않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메신저를 통해 신부는 드레스를 입은 후 몸에 불이 붙어 타죽고 신부의 아버지도 딸을 구하려다 같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습니다. 이제 그녀에게는 아이들을 죽이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야 남편의 고통을 극대화 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역시 그 일은 쉽지 않습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아이도 엄마의 손에 저 세상으로 가고 맙니다. 남편을 고통 속에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이아손은 모든 걸 잃었습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에게 이렇게 말하며 절규합니다.


    이아손 : 오 아이들아. 사악한 여자를 엄마로 두다니.   

     메데이아: 그들이 죽은 건 아빠에게 옮긴 병 때문이예요.

     이아손 : 그러나 그들을 내가 죽인 건 아니잖아  

     메데이아 : 당신이 신성한 결혼의 서약을 깨고 처녀와 결혼하려는 그 뻔뻔함이 죽인           거예요.

     이아손 : 그렇다고 아이들을 죽이다니

     메데이아 : 여자에게 사랑이 작은 아픔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아이들 시신만이라도 남기고 가라는 남편을 비웃으며 메데이아는 아이들의 시신을  태양신인 할아버지가 보내준 마차에 태우고 하늘로 날아가며 남편 이아손에 대한 예언을 합니다. 남은 인생을 슬픔 속에서 살다가 황금양털 찾으러 갈 때 탔던 배의 목재에 머리를 부딪쳐 비명횡사할 거라고 말합니다. 극의 마지막에 코러스가 등장하여 신의 의지는 인간의 판단 범위를 넘어선다는 노래로 극을 마무리를 짓습니다.        

   

      세가지 세계 최초의 타이틀   

  

   이 희곡은 다른 고대 그리스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여러 면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품입니다. 먼저 우리가 여태껏 보아왔던 작품들은 인간의 운명은 이미 신에 의해 결정되고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운명의 틀을 한 치도 벗어나오지 못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메데이아』는 다릅니다. 메데이아는 자신이 좋아서 이아손을 택했으며 자신의 의지에 의하여 가족을 배반하고 남동생을 죽이면서까지 이아손을 도와줍니다. 이아손에 대한 사랑 헌신 모두 스스로 결정한 행동입니다. 또한 남편에게 배반을 당하고 코린트에서 추방당할 위기까지 처하자 역시 스스로 복수를 결심합니다. 여주인공은 과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복수만이 최선의 옵션임을 확신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짜놓은 치밀한 복수계획을 실행에 옮기죠. 처음부터 끝까지 신의 개입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비극으로 끝나는 여주인공 운명의 설계자는 신이 아닌 메데이아 자신입니다.

  

   두 번째로 이 희곡은  문학사상 세계최초의 페미니스트 작품입니다. 사실 메데이아를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몰아가는 상황은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남녀가 사랑하고 남자가 배반하고 여자가 복수하는 패턴의 스토리는 여자가 취하는 복수의 레파토리만 다를 뿐 우리가 가끔 뉴스에서 접하고  또 영화나 드라마(『하우스 오브 구찌』,『청춘의 덫』)로 보아온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메데이아의 폭력이 이 뉴스나 드라마의 폭력과 다른 점은 여주인공이 보여주는 폭력이 가부장적사회로부터 받는 억압에 항거하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해자는 그 당시 법적으로 세컨드 클래스 시민인 여성인데다가 중동지역에서 온 이민자입니다. “여자가 살아있는 생명체 중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말하는 메데이아의 말은 그 당시 여자들이 받은 부당한 대우를 대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메데이아의 폭력은 그 당시 사회에서 차별받고 핍박받는 또한 가정에서 남편들에게 버림받는 여성 이민자들의 설움에 대한 복수이기도 합니다. 이아손과 황금양털 신화에서 사랑에 배신당해 아이를 죽인 엄마였던 메데이아를 에우리피데스가『메데이아』를 통해 역사상 가장 강력한 페미니즘의 투사로 재탄생시킨 겁니다. 약한 자가 아닌 오로지 강한 여성만이 기억에 오래 남을 거라는 메데이아의 말처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메데이아』(Medea)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여성의 분노를 다룬 작품입니다.『일리아드』는 남성의 분노를 노래했죠. 우리는 힘과 혈기 그리고 자존심 강한 아킬레스의 분노가 뿜어내는 독기가 적이 아닌 우군을 쓰러뜨리고 결국 자신도 희생시키는 과정을 목격했습니다. 그의 분노의 이면에는 상처받은 남자의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남자의 전부가 자존심이라면 여자의 전부는 사랑입니다.



    여자에게 사랑이 그렇게 작은 아픔이라고 생각하나요?

    ( Is love so small a pain do you think for a woman? )



메데이아의 이 한마디는 여자의 본질을 보여 줍니다. 메데이아의 일생은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다 바쳤고 그 사랑을 잃자 모든 걸 다 포기하는 과정입니다. 남성의 분노처럼 여성의 분노도 독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몰살시킵니다. 이처럼 분노는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악의 근본입니다. 보통 고대그리스 통념상 친족살인 같은 가장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신들이 나서서 인간의 죄를 단죄합니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두 가족의 대를 끊어 놓고도 태양의 신인 할아버지 곁으로 갔습니다. 코러스는 왜 신이 이렇게 결정을 했는지 알 길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아손이 당한 비극보다 메데이아의 분노를 더 동정하는 작가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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