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웃기는 코미디도 두 번 세 번 보면 지겹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무려 2 천 4 백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한결같은 사랑을 받으며 우리를 즐겁게 해준 희극이 있습니다. 희극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입니다. 비극이 대세였던 기원전 5세기에 유일한 코미디 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희극은 총 13 편입니다. 비극은 귀족, 영웅, 신들이 등장하여 신과 인간의 관계, 운명, 정의, 복수 같은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며 폭력이 난무하며 결국 비참한 최후로 결론을 맺는 특징이 있습니다. 희극은 보통사람들이 출연하여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권력자들이나 지체 높은 사람들의 허영심, 멍청함을 조롱하기도 하고 국가의 정책이나 인습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제우스같은 신조차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었죠. 그러나 결론은 항상 해피엔딩입니다. 우리가 가끔 접하는 재치 넘치는 풍자극, 야하고 외설스러운 연극, 우스꽝스러운 소극 등 모든 코믹한 연극의 원조 작가가 바로 아리스토파네스입니다. 오늘은 그가 남긴 희극 중에서 가장 코믹하고 탄탄한 구성 가운데 심각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작품을 만나 볼까 합니다. 기원전 411 년에 거행된 디오니소스 연극제에서 선보인 『리시스트라테』입니다. 이 희극은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들이 남편들을 상대로 벌이는 “섹스 파업”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뉴스에 나오곤 하는 아내들의 잠자리 거부 운동의 효시인 셈입니다. 이 극에서 여성들은 도대체 왜 잠자리 거부운동을 벌였을까요? 수위가 19 금과 소프트 포르노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도이니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극이 발표되기 2 년 전인 기원전 413년. 시실리에서 아테네의 함대가 적군에게 궤멸 되었다는 소식이 아테네에 전해졌습니다. 아테네인들은 전쟁을 계속하려는 영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이길 거라는 자신감은 서서히 사라져 가던 시기였습니다. 기원전 431년에 시작된 펠로폰네소스 전쟁 즉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 벌써 18 년차에 접어들은 시점이었습니다. 아테네의 모든 지식인들과 시민들은 이제 전쟁에 지칠대로 지쳤고 게다가 전세도 불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아리스토파네스가 전쟁을 멈추기 위한 다소 엉뚱한 그러나 기발한 제안을 합니다. 여자들로 하여금 전쟁을 수행하는 남자를 상대로 섹스파업을 벌려 전쟁을 끝내자는 겁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벌이는 일종의 반전 캠페인이자 여론전인 셈입니다. 이 잠자리 거부운동의 주도자가 바로『리시스트라테』의 여주인공 리시스트라테로 그녀의 이름은 “군대를 해산하는 이” 라는 뜻입니다. 그녀는 아테네 남자만을 대상으로 파업을 해서는 성공을 못하니 전쟁에 참가한 그리스 전체의 남자를 상대로 섹스파업을 벌이기로 계획합니다.
극의 배경은 그리스하면 생각나는 유명한 아크로폴리스입니다.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의 종교와 민주주의의 상징이지만 이 연극에서는 아테네 정부기관으로 군비를 담당하는 재무부입니다. 리시스트라테는 아크로폴리스 입구에서 그리스를 대표하는 나라의 여성들을 모두 불러 모읍니다. 그리스 전역에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어떻게 연락을 했는지 또 그들이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 지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아무튼 여성들이 속속 모여듭니다. 그들은 이 모임의 목적을 모르는 채 이곳에 불려왔습니다. 궁금해 하는 여자들을 향해 리시스트라테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엽니다.
그리스 전체의 안위가 우리 여자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 . . 우리는 여기에서
스파르타, 보오티아 그리고 아테네의 여성들을 만날 거예요.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그리스를 구할 것입니다. (775)
모인 여자들은 전부 황당해 합니다. 그들은 할 줄 아는 거라곤 우아하게 실크의상이나 이브닝 가운입고 저녁 슬리퍼 신고 이쁘게 보이는 게 전부인데 어떻게 나라를 구하느냐고 의아해 합니다. 그러나 리시스트라테는 바로 그 실크, 향수, 이브닝 슬리퍼, 입술연지, 그리고 속이 다 비치는 쉬폰 브라우스가 그리스를 구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그 와중에 다른 그리스 국가 여성들도 속속 도착합니다. 그녀는 모여든 여성들에게 연설을 합니다. 전쟁에 나간 남편들을 집에 오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우리의 동맹이었던 밀레토스인들이 우리를 배반한 이후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제 귀신조차 없어요.
미망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8 인치짜리
괜찮은 딜도조차 본적이 없어요.
전쟁을 끝낼 방법을 찾으면 여러분이 동참할건가요? (777)
우리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유일한 방법은 섹스 없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남자의 거시기를 포기하자는 거죠.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섹스 없이 살 수 없다는 거죠. 서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스파르타 대표가 혼자 자는 건 힘들고 잔인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평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리시스트라테의 의견에 동조를 하고 나섭니다. 한 여자가 그렇다고 평화가 오는 가라고 반문하자 스파르타 여성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메네레우스가 헬렌의 벗은 가슴을 보자마자 칼을 떨어뜨렸다고 하잖아. (778)
그럼 남자들이 우리를 침실로 강제로 끌고 가면 어떻게 하나?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리시스트라테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그럼 문고리를 잡고 버텨야지. 그래도 안 되면 마지못해 해줘야지.
그렇지만 절대로 협조해주어서는 안 돼. 그들도 강제로 하면 재미를 못 느끼거든.
다른 방법도 있어. 어떻게든 남자들을 고문해야 해. 아내와 잘 지내지 못하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는 게 남자야. (778)
마침내 여자들은 의견의 일치를 봅니다. 그리곤 다음과 같이 맹세를 합니다. 리시스트라테가 선창하면 나머지 여성들이 따라하는 식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난 남편과 섹스를 하지 않겟노니
속이 다 보이는 가운을 입고 정성스럽게 치장을 하고
나의 남편의 욕정에 불을 지핀다.
그가 내 의사에 반하여 나를 강제로 침대로 끌고 가려한다면
나는 저항하며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두 발을 천장을 향해 뻗지 않을 것이다.
칼이 들어와도 암사자의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맹세를 지킨다면 이 컵에서 포도주를 마시게 허락하소서
만일 이 맹세를 깬다면 이 컵을 물로 가득차게 하소서 (779)
리시스트라테가 여러분 모두 이렇게 맹세 하나요? 라고 묻자 모두 “예, 그러니 도와주소서” (I do, so help me!) 라고 답합니다. 그들은 모두 맹세의 잔에 담긴 포도주를 마십니다. 마침 그때 아크로폴리스에서 여성들의 함성이 들려옵니다. 남성에게 성적으로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나이든 여성들이 아테네의 전쟁 군비를 담당하는 아크로폴리스를 점거한 겁니다. 리시스트라테는 광장입구에 모인 여성들을 이끌고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 건물 입구를 봉쇄합니다. 이 모든 게 다 우리 여주인공의 주도면밀한 계획이었습니다.
남자 코러스들이 장작과 불을 들고 아크로폴리스 문 앞으로 모여듭니다. 전쟁을 멈출 수 없는 아테네의 남성들을 대표합니다. 그들은 불을 지펴 연기로 아크로폴리스를 점거하고 있는 여성들을 건물 밖으로 몰아낼 계획입니다. 건물 안에서 농성 중인 나이든 여자 코러스들은 남자들의 화염공격에 대비하여 양동이에 물을 준비한 상태입니다. 이제 여성과 남성들의 우스꽝스러운 전투가 벌어집니다. 전세는 고지에서 남성들의 머리위에 물을 퍼붓는 여성 편에 유리하게 진행됩니다. 전쟁 재무담당 최고 책임자니 커미셔너가 군비문제 때문에 아크로폴리스에 왔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곤 아연 실색하여 합니다. 그는 곧 지역 경찰관들을 불러 데모의 주도자인 리시스트라테를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여자들의 거센 저항에 경찰관들도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철수합니다.
곧이어 커미셔너와 리시스트라테를 포함한 여성들과의 언어 배틀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관한 논쟁이죠. 커미셔너는 그동안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너무 관대 했고 자유스럽게 내버려 두었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위하여 목걸이도 수리해주고 구두끈도 새것으로 교체해주었는데 그 보답이 겨우 이거냐고 핏대를 세웁니다. 군함을 저을 노를 더 구입해야 하는데 당신들이 금고를 점령하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느냐고 따집니다. 리시스트라테는 전쟁으로 여자들의 근심이 하늘을 찌른다고 대꾸합니다. 전쟁 때문에 남자들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다른 여성들이 호응을 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 여성들이 나서서 그리스를 구하기로 결심 했다고 외칩니다. 이때 우리의 여주인공이 커미셔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남성들은 도시를 운영할 때 여성들이 울을 작업하듯이 운영해야
합니다. 울 세탁시 울에 붙은 불순물을 뽑아내듯이 먼저 도시의 악당들을
제거해야죠. 한자리 차지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머리를 굴리는 종자들
말이예요. 그리고 잘 정화된 울을 선의의 바스켓 하나에 담고 아테네에
합법적으로 살고 있는 외지인들, 충성스러운 외국인들 그리고 우리도시에
빚을 진 사람이면 누구나 다 섞는 겁니다. 우리의 식민지가 사방에 있잖아요.
울을 모두 모아 여기에서 하나로 만드는 거예요. 그런 다음 질 좋은
튼튼한 민주주의를 짜는 거예요. (788)
울은 아테네를 상징합니다. 울 한 올 한 올은 아테네의 구성원이죠. 울로 옷을 짤 때
먼저 더러운 울을 제거하거나 세탁하듯이 범법자나 부패자를 없애야 한다는 거죠. 여기에서 부패자란 아테네의 지배계급으로 선출되기 위해 선거 부정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녀가 말하는 울은 아테네 시민뿐만 아니라 아테네에 살고 있는 모든 합법적인 이민자들을 포함한 개념으로 작가의 글로벌 마인드를 반영합니다. 기원전 2300년에 선거 부정을 뿌리 뽑고 다문화를 수용하여 건강한 민주주의를 건설하자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식민지라는 말만 빼면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 적용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주장입니다.
섹스파업이 얼마나 오랫동안 진행되었는지는 언급이 없으나 이 파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리시스트라테는 같이 파업에 참가한 한 여성의 남편이 접근해오는 걸 봅니다. 그는 완전히 발기 된 상태로 등장하며 아내를 간절히 원하는 상태입니다. (유튜브에서 Lysistrata를 치시면 이 장면을 감상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농성중인 아내를 찾아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느냐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전쟁이 완전히 멈추기전까지는 절대로 당신과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없다고 말하며 남편의 호소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남편은 아이가 울면서 엄마를 찾는다고 모정을 자극하는 수법을 쓰기도 하고 또 당신을 사랑한다고 애걸복걸도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애가 타는 남편의 희망을 고문하다 아크로폴리스로 다시 들어갑니다. 이제 그리스의 다른 국가 남자들도 다급해 진건 마찬가지입니다. 스파르타 대표도 발기된 상태로 아크로폴리스로 찾아옵니다. 스파르타의 모든 남자들이 지금 너무 급한 상황이라고 말하며 평화협상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아테네 대표도 급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돌출된 물건들이 빨리 안정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양쪽은 이제 평화를 논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바로 이때 리시스트라테가 젊은 하녀를 데리고 양 대표단의 평화회담 장소로 등장합니다. 그 여성의 이름은 평화이며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체입니다. 이를 본 평화 교섭대표들은 더욱 힘들어 합니다. 리시스트라테는 그리스의 모든 도시국가들이 서로 화해할 것을 역설합니다. 그리스는 같은 뿌리와 전통을 공유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서로 도왔기 때문에 서로 빚을 지고 있다는 논리로 서로 싸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여주인공은 하녀의 나체를 그리스의 지도로 활용하며 전쟁의 원인 땅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스파르타 대표와 아테네의 대표는 여성의 인체로 된 그리스 지도를 보고 어디를 양보하고 어디를 받을지를 의논합니다. 스파르타는 둔부를 아테네는 다리를 선택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 합니다. 양측의 동의가 끝난 후 리시스트라테는 여자들을 남자들에게 돌려줍니다. 연극은 남자들과 여자들의 코러스가 같이 합창을 하는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는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남성주도 사회에 반기를 든 리시스트라테는 서구 문학역사에서 메데이아를 잇는 또 한 명의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녀가 극중에서 말했듯이 그녀가 주도한 섹스파업에 동참한 모든 여성들은 그리스에 평화를 이룩한 사람들로 기억될 것입니다. 『리시스트라테』는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연극 상연 후 7 년을 더 끌어 기원전 404 년 아테네의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전쟁을 멈추는 데는 실패했지만 학자들은 이 극 이후 아테네의 과두정치체제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그 공의 일부를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에 돌리고 있으니 이 코미디가 아테네의 민주주의 발전에 보탬이 된 셈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리시스트라테의 지혜가 다시 한 번 필요한 순간입니다. 우크라이나 여성들과 러시아 여성들이 힘을 합치는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전쟁만 멈출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