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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y 23. 2022

『아에네이드』: 펜과 정치

 영어에 스핀 닥터(spin doctor)라는 속어가 있습니다. 스핀은 원래는 스포츠 용어이죠. 공에 스핀을 넣으면 공이 스핀 양에 따라 직구, 커브, 슬라이더 등 다양한 각도로 휘게 됩니다. 이 스핀은 해석을 할 때도 쓰입니다. 주어진 팩트에 넣는 스핀 양에 따라 해석이 약간씩 달라집니다. 이 경우 스핀은 특정한 시각을 가진 견해나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의견이란 뜻이 됩니다. 이 일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정당 대변인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스핀 닥터라고 합니다. 어떤 사건이던 팩트와 스핀을 교묘히 섞어 자신이 속한 정당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이 스핀닥터 역을 하는 언론사 기자들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정부요직에 발탁되는 기자들로 실로 탁월한 스핀 컨트롤 능력의 소유자들입니다. 인류최초의 스핀닥터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뱀이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지혜와 영생을 얻는 열매로 해석하여 아담과 이브에게 팔아먹었으니 말입니다. 과거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권력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핀닥터는 작가들입니다. 필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가 왕을 칭송하고 그의 업적을 노래하기 위해 쓴 글보다 더 좋은 선전 도구는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은 로마시대 최고의 시인인 버질이 남긴 로마의 건국신화를 다룬 에픽 『아에네이드』를 살펴봅니다. 세계 최고의 서사시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작품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문학과 정치적 선전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버질이 로마가 낳은 국민 시인임과 동시에 최고의 스핀 닥터라는 말입니다.     

   

 버질의 생애(기원전 70-19)는 로마의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와 중복됩니다. 그가 21 세때 로마는 카이사르 내전(기원전 49–45)을 겪습니다. 이 전쟁에서 카이사르는 로마의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로마 유일한 권력자가 되지만 일 년 만에 정적에 의해 암살을 당합니다. 로마는 또 다시 내분상태에 빠집니다. 이후 카이사르의 조카인 옥타비아누스가 기원전 31 년 로마의 지배권을 놓고 마크 엔토니와 클레오파트라가 이끄는 연합 함대와 일전을 벌입니다. 여기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자신의 리 브랜딩 작업에 돌입합니다. 로마 초대 황제가 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문화 공정입니다. 먼저 이름을 옥타비아누스에서 “위대한” “엄청난”이란 뜻을 가진 아우구스투스로 바꿉니다. 자신은 아폴로의 아들이라고 천명합니다. 즉 자신의 권력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며 결국 로마제국의 건국도 신의 의지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반영한 에픽이 쓰여지기를 원했습니다. 로마판 용비어천가입니다. 이 일에 낙점을 받은 이가 바로 버질입니다. 기원전 30 년  버질은 로마의 서사시『아에네이드』 집필을 시작합니다. 집필 11년 째 되던 기원전 19년 버질은 자신의 서사시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고를 불태우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그가 작품을 마무리 못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시가 정치선전 도구로 읽혀질까 두려워해서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이렇게 명령합니다. 중복된 부분만 손을 보고 내용은 절대로 고치지 말라.  이렇게 다시 작업을 거친 후 마침내 로마의 서사시『아에네이드』가 탄생합니다. 오늘은 정치적 선전의 목적을 갖고 탄생했지만 결국 예술로 승화된 『아에네이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에네이드』는 작품의 주인공인 아니아스의 이야기란 뜻입니다. 호머의 『일리아드』에서도 잠간 언급이 된바 있는 아니아스는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와 인간인 인카이서스 사이에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트로이 피리엄 왕의 조카입니다. 따라서 아니아스는 신과 왕족의 혈통을 물려받은 트로이의 왕자입니다. 버질은 이 트로이 왕자를 로마 건국을 이끈 영웅으로 재탄생시킵니다. 그는 트로이가 아케아 군에게 멸망을 당할 때 부모와 자식을 이끌고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이태리로 건너와 건국한 나라가 나중에 로마제국이 되었다는 겁니다. 고구려가 망한 후 대조영이 고구려의 유민을 규합하여 발해를 건국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로마의 조상이 트로이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란 이야기인데 학자들은 이렇게 만든 이유를 로마제국의 정치적, 신화적, 종교적인 의도와 연결시킵니다. 트로이가 고대 그리스와 적대관계였지만 그들이 숭배하는 신은 적대국과 같은 올림푸스 12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로마는 고대 그리스와 원수지간이니 올림푸스 신이 필요했던 로마의 입장에서는 과거에 사라진 트로이가 안성맞춤이었을 겁니다. 로마는 고대 그리스를 멸망시킨 후 올림포스 12 신을 계승하여 자신들의 신으로 만듭니다. 신의 이름도 로마인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바꿉니다. 예를 들면 제우스는 쥬피터로 아프로디테는 비너스로 부르는 식입니다.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초대 황제가 될 아우구스투스를 신의 아들로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버질은 그리스 신의 족보를 뒤지다가 비너스의 아들인 트로이의 왕자 아니아스를 찾아내고 그의 혈통을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 레무스 쌍둥이 형제 그리고 아우구스투스로 이어지게 설계를 합니다. 결국은 로마의 초대 황제는 신의 피를 이어받았고 따라서 로마제국의 탄생은 결국 신의 계획이었고 의지였다는 암시를 주기 위함 이였지요.

  

 『아에네이드』는 호메로스가 쓴 『오딧세이』와『일리아드』의 콤보입니다. 이야기의 전반부 (1 권부터 6 권) 는 『오딧세이』가 연상됩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겪는 모험과 방황을 겪듯이 아니아스도 트로이 전쟁에서 패하고 난민을 이끌고 정착할 땅을 찾는 과정에서 역시 여러 가지 역경을 경험합니다. 오디세우스가 바다위에서 파도에 떠밀려 파이아키아인들의 나라에 와서 노시카 공주를 만나고 그녀의 아버지 알시누스 왕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과정이 아니아스에게 이름과 장소만 바뀐 후 그대로 재현 됩니다. 아니아스 일행은 정착할 곳을 찾아 바다 위를 여기저기 떠돌다가 태풍에 의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로 오게 되고 여기에서 여왕 다이도(Dido)를 만납니다. 아니아스는 여왕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방랑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트로이가 아케아 연합군과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멸망했는지를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다이도와 아니아스의 사랑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이야기의 후반부(7 권부터 12 권)는 『일리아드』가 그 모델입니다. 즉 전쟁이야기란 말입니다. 아니아스가 카르타고를 떠나 이태리에 정착한 후 그곳에 살고 있었던 세력 중 터너스와 전쟁에서 이긴 후 로마를 세우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듯 버질의 로마 건국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탄생되었지만 두 시인의 에픽은 한 가지 주목할 만한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이야기입니다. 전쟁과 방황이라는 주제를 다룬 호메로스의 에픽은 사랑이야기가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주인공들이 기혼자이기 때문입니다. 『일리아드』는 총각과 바람이 나서 남편을 버리고 도망간 아내를 찾아오는 과정이고  『오딧세이』는 기혼자 상태인 주인공이 여성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기다리는 아내에게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아에네이드』는 트로이의 왕자 아니아스를 총각으로 설정했습니다.  카르타고의 여왕 다이도는 과부입니다. 그녀는 원래 타이레 왕국(지금의 레바논)의 여왕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왕위를 노린 자신의 오빠에게 살해를 당하자 북아프리카(지금의 리비아)로 도망쳐서 카르타고 왕국을 세웁니다. 다이도를 과부로 만들어 놓고 총각인 아니아스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 겁니다. 총각 아니아스와 과부 다이도의 열정적인 사랑이야기는 『아에네이드』의 핵심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의 사랑이야기 어떻게 전개 되었고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 그리고 이 사랑이야기가 왜 중요한 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먼저 다이도가 아니아스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입니다. 아니아스는 다이도에게 트로이 멸망 과정과 그 이후 자신의 방랑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 과정에서 카르타고의 여왕은 트로이 총각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녀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얼마나 왕자다우신가, 얼마나 용감하시고 군인다우신가.

       그는 신의 후손이 틀림없어

       확실해  

       공포는 비천한자들의 전유물이지

       아 그는 운명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얼마나 비참한 전쟁을 경험했나

       나의 첫사랑이 죽은 후 재혼을 안 하리라 결심만 안했다면   

       이번만큼은 흔들리는 나의 마음에 굴복을 할 수 있을텐데  

       나의 불쌍한 전 남편이 죽은 이후 . . .

       처음으로 나의 마음을 뒤흔들며  

       나를 깨우는 유일한 남자를 만났으니  

       그 옛날 타올랐던 불꽃과 욕망이 다시 살아나는 구나  

       순결한 삶이여 내가 너의 법을 깨기 전에

       땅이여 입을 벌려 나를 삼키소서. . . ( 4 권, 14-32)




죽은 남편에 대한 정조를 지키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사랑을 만난 다이도. 아니아스에 대한 카르타고 여왕의 사랑은 큐피드의 화살을 가슴에 맞은 후 더욱  깊어집니다.  다이도는 그녀의 시스터인 애나에게 의무와 사랑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의 고민을 토로합니다. 애나는 다이도에게 사랑을 택하도록 부추깁니다. 이에 자신을 얻은 다이도는 아니아스에게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엿봅니다. 여왕이 사랑에 빠지자 카르타고 왕국의 신도시 개발계획도 지지부진해 집니다. 그러나 이제 여왕에게는 나라보다 사랑이 전부입니다. 그때 마침 기회가 옵니다. 둘은 사냥을 같이 나가고 들판에서 폭우를 만납니다. 두 남녀는 비를 피해 동굴로 들어가게 되고. . . 어디서 많이 본 시나리오 같습니다. 이곳에서 다이도는 아니아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둘의 사랑은 불타오릅니다. 이후 여왕은 공개적으로 아니아스를 남편처럼 대합니다.



    쥬피터(제우스)는 아니아스가 다이도와 사랑에 빠진 걸 알게 됩니다. 아니아스는 다이도를 도와 그녀의 왕국을 건설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었죠. 쥬피터는 머큐리를 통해 아니아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지금 니가 한가하게 카르타고의 높은 담장을 위해 돌을 쌓고 있을 때 인가?

       길들여진 남편이구만.  그들의 도시를 건설한다고?

       네 재산을 잃어버리고 네 왕국은 잃어버리고.


       뭔 생각이야? 무슨 희망으로 리비아에서 너의 시간을 낭비하는가?

       미래 역사의 영광이 너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너의 명예를 위하여 노력을 하지 않을 거니?

       너의 아들을 생각해라

       너의 후계자의 유산을 생각해라


       떠나도록 배를 준비해라  (4 권, 334-358)



이에 아니아스는 밤에 즉각적으로 카르타고를 떠날 준비를 합니다. 다음 날이 밝자 여왕은  눈치를 챕니다. 그 누가 사랑하는 여자를 속일 수가 있을 까요? 그녀는 아니아스를 설득하려 애쓰다가 안 되니까 이젠 호소와 협박으로 님의 마음을 돌리려고 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눈물을 보이며 간청합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겠다고요?

       눈물로 호소합니다. 이 오른손으로

       이 쇠락해가는 가문을 동정하시고


       당신 때문에 리비아의 왕들이 나를 미워하고

       나의 백성조차도 나를 싫어하고

       당신 때문에 나는 전 남편에 대한 정조를 버리고  

       하늘에 별처럼 반짝거릴 내 명성도 포기 했는데


       누구의 손에 죽어가는 나를 맡기려하나요?   

       이제는 남편이 아니라 손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내가 왜 살아야 하나요? (4 권 408-424)



그대가 가면 난 자살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니아스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나는 나의 트로이와 트로이가 나에게 물려준 유산을 돌보아야 합니다.

       프라이엄의 위대한 궁전이 다시 건설 될 수 있도록

       무너진  트로이의 탑을 재건했어야 했어요.

       지금 아폴로가 이야기해준 비옥한 이태리 땅으로 가야해요

       이태리란 이름은 아폴로의 신탁으로 지어진겁니다.

       거기에 내 사랑이 있고 그 곳이 내 나라입니다.  

       . . .


       그리고 지금 내가 맹세하건데 쥬피터가 보내신 신의 사자가

       바람을 타고 내려왔어요.  신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서이죠.  

       대낮에 그가 궁정으로 들어오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요.

       내 두 귀로 그의 메시지를 접수 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둘을 모두 망하게 하는 호소를 멈추어 주세요

       내가 이태리로 향하는 건 내 자유의지가 아닙니다. (4 권 457-475)




아니아스는 고통 속에 있는 그녀의 슬픔을 위로하려 노력했습니다. 본인도 사랑하는 그녀를 떠난다는 사실이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그는 다이도를 사랑하지만 하늘이 그에게 내려준 임무가 우선입니다. 꽃보다 나라와 민족입니다. 그는 준비된 배를 타고 트로이 유민들과 함께 카르타고를 떠납니다. 이를 알아차린 다이도는 너무나 화가 나서 해군력을 동원하여 아니아스의 배를 공격하도록 명합니다. 아니아스의 배신이 훗날 카르타고와 로마를 적대국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이죠. 두 나라간 실제로 세 차례에 걸쳐 치룬 전쟁에 대한 배경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신화와 팩트를 연결시킨 겁니다. 다이도는 상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 합니다. 그리곤 화장을 위한 단을 높이 쌓도록 명령을 하곤 그 위에 몸을 눕힌 후 아니아스로부터 선물받은 칼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거둡니다. 그녀의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하늘로 치 솟습니다.      

  

    이태리에 도착한 후 아니아스는 지옥인 하데스를 방문하고자 합니다. 아버지의 혼령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디세우스도 지옥을 방문했었는데 모든 에픽의 필수 코스 중 하나입니다. 아니아스는 부친의 혼령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다이도를 만나게 됩니다. 아니아스는 다이도의 혼령을 만나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살을 하다니 나로 인해 그랬나요?

       하늘의 별을 두고 저 높이 하늘에 계신 신을 두고 아니면

       이 지하 깊숙이 존재하는 어떤 진실이든지 손을 얹고 맹세하오     

       내가 당신 땅을 떠난 건 내 의지가 아니었소

       신이 내게 명령을 내린거요. 신의 의지를 실현하라고

       지금은 신들이 나를 이 지옥으로 보냈소   

       이 황량한 땅 그리고 칠흙같이 어두운 밤

       내가 당신을 떠난 게 그렇게 상처를 주었는지 몰랐소.  

       (6 권, 242-250)



 그러나 다이도는 자신을 찾아와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 아니아스를 피해 말도 없이 냉정하게 돌아섭니다. 아니아스는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후반부는 아이아스가 이태리에 도착한 후 이곳의 토착 세력인 터너스와 전쟁에서 승리하는 전쟁 스토리로 여기에서는 생략할까 합니다.      

  

    이처럼 『아에네이드』는 호메로스의 두 에픽을 반반 섞어 만들었지만 그 주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엉망이 된 기존질서를 회복하고 잃었던 왕위를 되찾아 왕국을 유지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싸운 겁니다. 그러나 아니아스는 좀 더 숭고한 목표가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은 물론 트로이 후손의 미래와 영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싸운다는 점입니다. 무질서였던 트로이를 떠나 새로운 땅에 가서 질서를 창조하고 로마의 민족적, 정치적, 종교적 연속성을 위한 토대를 만드는 일을 했다는 점입니다.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스의 관심사는 상당히 개인적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전사의 명예도 또한 그를 삼켜버린 분노도 결국 그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이요 성격입니다. 그러나 아니아스는 이상적인 로마 지배자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리더는 사사로운 일을 희생하고 초월해야 합니다. 그에게는 지배자의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새로 만든 나라의 질서를 수호하고 영원한 번영의 초석을 놓을 수가 있습니다. 아니아스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에게 아우구스투스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아니아스가 트로이와 이태리를 기반으로 새로운 국가를 세웠듯이 아우구스투스도 로마의 옛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로마를 건설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아스가 강력한 무적의 리더로 묘사된다는 이야기는 결국 아우구스투스 또한 위대한 리더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아에네이드』는 막 닿을 올린 로마 제국의 정치적 프로퍼갠더 같습니다. 버질은 스핀닥터 답게 호메로스의 두 에픽을 섞고 스핀을 넣어 초대 황제에 입맛에 맞는 시를 쓴 겁니다.       

  

    그러나 버질의 시를 선전이 아닌 예술 쪽으로 기울게 만든 에피소드 중의 하나가 바로 그가 창조해낸 카르타고의 여왕 다이도와 트로이의 왕자 아니아스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아니아스는 건국이라는 공적인 목표를 위해 개인의 사랑을 희생했습니다. 그 결과는 주인공의 후회와 불행입니다. 그는 지옥에서 만난 다이도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합니다. “나의 여왕이여,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당신을 떠났어요.” 보다 숭고한 목표를 위해 개인의 행복을 희생한 남자의 약점과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어쩌면 이 영웅의 후회가 그의 업적을 더욱 더 빛나게 하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늘 공적인 영역과 개인적인 영역의 충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요즘말로 워라밸의 문제입니다. 일과 사랑(가정)의 조화가 바람직하다는 건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둘의 조화를 이루며 성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니아스는 일을 택하고 성공했지만 사랑을 잃어 후회하는 케이스이죠. 공과 사의 하모니는 우리의 영원한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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