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만 합니다. 어려워도 끝까지 읽어야만 합니다. 밤새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만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정신의 힘을 최대한 사용해야만 합니다. 작자의 의도된 의미가 파악이 안 되는 길로 들어가셨나요. 그럼 다른 길을 택해보세요. 장애물이 있나요. 그럼 또 다른 길로 가세요. 체력만 견뎌준다면 처음에 어두워보였던 의미가 분명해질 때까지 가야만 합니다.
(지오바니 보카치오)
보카치오는 그의『이방인 신의 계보』에서 시도 철학 같아서 그 의미를 금방 깨닫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의미가 명료해질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싸우라고 주문합니다. 수수께끼 같은 시의 의미는 바다 속 진주 조개입니다. 물 속에서 조개를 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잠수를 반복하듯이 시의 한 구절을 놓고 수도 없이 문장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의미를 캐내기 위한 자신과의 투쟁입니다. 『오디퍼스 왕』에서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습니다. 이는 수수께끼에 무릎을 꿇는 정신적 죽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문장의 의미를 놓고 포기하지 않고 싸우다 갑자기 한줄기 빛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 빛은 정신적 진주조개입니다. 그 진주를 많이 캘수록 우리의 영혼은 더욱 반짝거리며 마음은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자세이고 우리 삶을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1400년대에 출간된 초서의 캐터베리 이야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우선 『캔터베리 이야기』의 첫 번째 이야기 「기사의 이야기」 시작 부분 중 두 연을 번역해 보았습니다. 잘 읽어보시면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이상한 부분을 찾아내는 우리의 목표입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옛이야기들 중에서
티시스라는 이름의 공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테네의 지배자이자 왕이요 사령관입니다.
그 시절 태양 아래 그보다 더 강력한
정복자는 없었습니다.
그는 부유한 나라들을 차지했으며
그의 지혜와 기마병으로
아마존 여전사들을 힘으로 굴복시켰으며
그리고 한때 스키티아라고 알려졌던 그들의 모든 영역을
그러나 그땐 페메니라고 불렀지요. 그들의 여왕인 히포리테를
아내로 맞이했다고 이야기는 전하죠
그는 여왕을 엄숙하고 화려한 예를 갖추어 아테네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여왕의 일행 중에는 그의 여동생 에밀리도 같이 있었습니다.
티시스의 행렬이 아테네로 향하던 도중 검은 옷을 입고 울고 있는 테베스의 여인들을 만납니다. 이들은 귀족의 부인들로 남편들은 모두 전쟁 중 사망을 했습니다. 이 여인들은 티시스에게 잔인한 독재자 크레온이 이들의 장례를 금하며 시신들을 훼손 한다며 이에 대한 해결을 간청했습니다. 화가 난 티시스는 군대를 돌려 테베스로 쳐들어가 크레온을 척살하고 검은 상복의 여인들에게 죽은 남편의 시신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계속됩니다.
그들은 시체 더미에서 피범벅이 된 채 땅바닥에
튀어나와 있는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나란히 누워있는 창백한 얼굴의 젊은 두 명의 기사였습니다.
귀족의 문장이 찍힌 똑같은 무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의 이름은 아시타
또 다른 기사는 팔라몬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죽지 않았고
머리에 쓰고 있던 투구의 장식을 보니
비록 오물과 진흙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그들은 황족의 피가 흐르는 왕자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테베스의 두 명문가의 자매에게서 출생한 사촌들 이었습니다.
병사들은 그들을 시체 더미에서 빼내
조심스럽게 티시스의 텐트로 데려갔고
왕은 이들을 에테네로 압송하고
영원히 감옥에 가두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상기한 두 연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나요? 발견을 못하셨다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셔야 합니다. 발견할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이상한 점 발견하신 분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상한 점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자신의 뇌 근육을 강화시키는 훈련 과정이며 적극적인 독서의 출발점입니다.
이상한 점은 이야기의 배경과 등장인물들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의 시대 배경은 그리스. 그러나 아시타와 팔라몬은 중세시대의 기사입니다. 이러한 시대착오적 상황을 초서의 실수로 보기도 하지만 저는 초서의 계획된 의도라고 보고 싶습니다. 두 시대를 혼재 시킨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14세기 이태리로 가야 합니다. 바로 초서가 1387년 5 월 28일 방문했던 곳이며 115일간의 이태리 여행은 그의 인생을 바꾼 여행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문학적 스승인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의 나라를 경험한 후 그는 그 당시 막 시작된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분위기를 감지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영국으로 귀국 후 같은 해인 1387년부터 집필을 시작한『캔터베리 이야기』가 르네상스의 영향을 안 받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입니다.
르네상스는 단테 편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중세시대에 되살아난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의미합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된 이후 중세시대까지 세상의 중심은 하나님 이였습니다. 그러나 1300 년대부터 그리스 로마시대의 문화가 다시 재탄생하고 더불어 인본주의인 휴머니즘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소가 있습니다. 단테와 보카치오의 고향 피렌체로 도시 전체가 르네상스 교육 박물관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윗상(1504).
바치오 반디넬 리가 조각한 헤라클레스와 카쿠스(1534)상.
시뇨리아 광장에 피렌체 공화국의 중앙청사로 사용되던 베키오 궁정이 있습니다. 이 건물 앞에 가면 엄청난 크기의 두 개의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한쪽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윗상(1504)입니다.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로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한 구약 성경 속 영웅입니다. 바로 옆에는 바치오 반디넬 리가 조각한 헤라클레스와 카쿠스(1534)상입니다. 헤라클래스가 자신의 소를 훔친 카쿠스를 때려잡는 모습입니다. 이 두 조각상은 그 당시 피렌체 공화국이 다른 이태리 도시국가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자신들은 다윗의 지혜와 헤라클래스의 힘이 있다는 의미이며 우리를 넘보는 놈들은 골리앗이나 카쿠스같은 신세가 될 거라는 거죠. 두 아름다운 조각상을 통해 즐거움과 공포를 동시에 선사하는 예술적이며 정치적인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이 두 조각상은 그 시대의 모순도 보여줍니다. 바로 다윗으로 상징되는 크리스천의 하나님과 헤라클래스로 상징되는 이교도의 신이 나란히 공존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그리스 문화와 히브리 문화의 공존은 피렌체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한편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의 잘린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상(1554)이 있고 또 한편에는 성경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참수하는 유디트의 조각상(1464)이 있습니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인 넵튠의 분수가 있고 분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하나님께 미사를 드리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존재합니다. 피렌체에 있는 미술관의 그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주를 이루지만 사이사이 그리스 로마의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들도 적지 않습니다. 나 이외의 신을 용납하지 않는 크리스천의 하나님과 이교도들이 섬기던 올림포스 신들이 나란히 공존하는 모습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모순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모순이 최초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바로 단테의『신곡』(1320) 과 보카치오의『데카메론』(1353)입니다. 초서의 「기사이야기」도 그리스 시대와 중세시대가 혼재해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착오적인 모순점을 염두에 두고「기사의 이야기」를 읽어보겠습니다.
감옥에서 에밀리를 보고 사랑에 빠진 아시타와 팔라몬
사촌지간이며 서로 평생의 우정을 약속한 아시타와 팔라몬은 아테네의 왕 티시스의 명령대로 정원이 보이는 높은 탑에 갇히게 됩니다. 언제 풀려날지 모르는 채 감옥에 갇혀 신세 한탄을 하고 있던 두 기사. 5 월 어느날 팔라몬이 감옥의 창문을 통해 정원에 산책을 나온 히포리테 여왕의 여동생 에밀리를 보게 됩니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릅니다. 이 소리를 듣고 아시타도 창문으로 달려갑니다. 그도 에밀리를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해버립니다. 한 여자를 놓고 우정을 맹세한 친구가 싸우는 중세판 “잘못된 만남”의 시작입니다. 둘은 에밀리를 놓고 곧장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팔라몬은 자기가 먼저 보았으니 에밀리는 자기 차지라고 말하지만 아시타는 보기는 니가 먼저 보았으나 정작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은 나이니 에밀리를 자기 여자라고 주장합니다. 둘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투다가 그 싸움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달았습니다. 둘은 영원히 감옥에 갇혀있을 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운명의 여신”의 장난이며 농업의 신인 “새턴”의 농간이라고 푸념합니다. 몸은 기사지만 의식은 그리스 시대를 반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아시타가 절대로 아테네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먼저 감옥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시타는 감옥의 창문을 통해 에밀리를 매일 볼 수 있는 팔라몬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팔라몬은 아시타를 부러워 합니다. 그는 자유를 얻었고 이제 부하들을 동원해서 에밀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항상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입니다. 아시타는 에밀리가 있는 아테네로 돌아 갈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낙망하지만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하인으로 신분을 감추고 궁정으로 들어가 에밀리의 남자 하인으로 취직을 하는 데 성공을 합니다. 에밀리를 곁에서 보기 위함 입니다. 한편 팔라몬은 야밤을 틈타 감옥을 탈출하기로 맘을 먹습니다. 탈출에 성공한 그는 숲에서 “운명의 여신”의 주선으로 아시타를 만나게 되고 둘은 또 에밀리를 놓고 싸우다가 아시타는 팔라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명예로운 기사
누가 옳은지 싸워서 결정하자
내일 내 이름의 명예를 걸고
너를 만나겠다. 그리고 이 일은 비밀로 할께.
넌 내가 기사임을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 둘이 쓸
무기와 마구를 준비해오겠다고 약속하마.
전투 장비는 네가 먼저 선택해라
좋은 놈을 먼저 택하고 나쁜 걸 남겨도 좋다
고기와 술도 충분히 갖고 오겠다.
그리고 옷도 넉넉히 갖고 올꺼야 남아서 니 침대로 쓸 정도로 말이지.
네가 이기면 나를 죽이고 내 시신을 이 숲속에 버려라
그럼 에밀리는 네 여자야.
이에 팔라몬은 동의한다고 대답합니다.
감옥을 탈출후 숲에서 만난 아시타와 팔라몬
에밀리 입장에서는 한 번도 본적 없는 남자들이 자신을 차지하겠다고 결투를 벌이기로 한 거죠. 싸우면서도 서로의 명예를 존중하고 규칙을 정하며 공정을 기하려는 이 장면은 아시타와 팔라몬이 그리스 시대의 전사가 아닌 중세시대의 기사임을 보여줍니다.
다음날 둘이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을 왕이 지나가다 목격을 하고 싸움을 중지 시킵니다. 왕은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 둘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일 년 후 각각 100명의 기사를 데리고 와서 에밀리를 놓고 관중 앞에서 싸우라고 명령합니다. 일년이 지나 결투가 열리는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시타는 전쟁의 신 마스에게 승리를 달라고 기도하고 팔라몬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에게 에밀리를 달라고 기도를 하고 에밀리는 순결의 여신 다이아나에게 자신의 순결을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에밀리는 둘 다 꼴 보기 싫은가 봅니다. 기사가 그리스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장면인데 신부님이 절에서 목탁 두드리는 격입니다. 이어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팔라몬을 큰 부상을 입어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갑니다. 아시타가 승리한 겁니다. 왕은 아시타의 승리를 선언하고 그가 에밀리를 차지할거라고 말합니다. 아시타는 의기양양하게 승리의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데 땅이 흔들리는 지진이 일어납니다. 에밀리가 “운명의 여신”의 선택을 말없이 받아 드리려는 바로 그 순간 그는 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습니다. 플루토가 새턴의 청에 따라 땅을 흔들어 버린 겁니다. 아시타는 곧 회복될 거로 믿었지만 그는 숨을 끝내 거두고 맙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 에밀리에게 팔라몬이 좋은 남자라고 말합니다. 팔라몬은 고향인 테베스로 돌아갑니다. 그 후 왕의 책사가 아테네와 테베의 연합을 위해 에밀리와 팔라몬의 결혼을 주선합니다.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말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넓고 넓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팔라몬과 에밀리에게 사랑을 허락하셨으니 그 사랑은 값 비싼 사랑
팔라몬은 주체 못하는 행복과 부의
기쁨 속에 있고.
그는 진정으로 에밀리를 사랑하니
그녀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섬기네.
그 둘은 어떤 시기의 말도 주고받지 않으며
어떤 슬픔에 처해도 둘의 사랑은 굳건하네.
그렇게 팔라몬과 에밀리의 사랑이야기는 끝이 났으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행복한 커플을 보호해주셨나니. 아멘
「기사의 이야기」는 르네상스의 모순을 반영합니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과 기사도 정신에 투철한 기사가 혼재합니다. 이야기의 기본 소재는 중세시대에 유행했던 궁정 사랑입니다. 멀리서 여성을 사랑하며 그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기사로서의 명예를 걸고 규칙을 준수하며 공정한 과정과 일련의 의식을 거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 기사는 전형적인 중세의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전사로 어떤 결과든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장면입니다. 우리는 못 먹는 감은 찔러서 남도 못 먹게 만드는 민족 아닙니까? 기사도 정신의 세 가지 덕목이 하나님의 수호, 왕의 군사로서의 의무, 그리고 사랑입니다. 중세의 기사도 정신은 기독교의 산물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두 기사는 몸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섬기는 기사 신분이지만 정신은 그리스 신에게 지배당하는 이교도입니다. 그들 일의 진행자는 운명의 여신이며 일의 결정권자는 다이아나, 새턴, 마스, 비너스, 플루토, 쥬피터 등 그리스 로마의 신들입니다. 기사의 말과 행동 속에 두 시대가 혼재하며 서로 충돌합니다. 바로 피렌체에서 본 르네상스 시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처음과 중간이 어찌되었던 결론에 무게가 실리는 법입니다. 초서는 이야기 마지막에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다라고 선언합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초서가 두 시대를 왔다 갔다 하는 르네상스 시대에 보내는 종교적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