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0 년에 발간된 단테의『신곡』은 현대문학의 효시입니다.『신곡』에는 이전 문학과 다른 세 가지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 번째가 언어입니다. 단테 이전 유럽 문학의 언어는 그리스어 혹은 라틴어였습니다. 로마가 유럽을 제패한 이후에는 그리스어는 점차 그 힘을 잃었고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가 대세를 차지했습니다. 라틴어는 이제 모든 학자, 성직자, 시인들의 공식 언어가 되었습니다. 중세 시대의 상류층들은 평민들이 사용하는 말은 천박하고 품격이 떨어져서 고귀한 생각을 담기에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라틴어가 귀족, 권력자, 혹은 성직자들의 언어인 점을 감안하면 문학은 소수 가진 자들의 전유물입니다. 그러나 단테는 이 전통을 과감하게 깨고 문학사상 처음으로 보통사람들의 언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이태리 말도 라틴어처럼 고급진 언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일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문학은 이제 더 이상 가진 자들의 소유가 아님을 만천하에 알린 겁니다. 그의 선택은 그 당시 라틴어를 쓰며 잘난체하는 피렌체 기득권자들에 대한 시인의 비판이요 공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단테에게는 일반 사람들에게 죄의 본질을 인식시키고 회개시켜 천국으로 인도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의 언어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지옥을 여행하는 단테와 버질
두 번째는 단테가『신곡』에서 처음 사용한 문학기법 중의 하나인 관점(point of view)입니다. 단테 이전의 작품 속에는 하나의 무대만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신곡』에는 두 개의 무대가 존재합니다. 한 방송사의『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두 개의 무대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직접 관광을 하는 외국인 출연자들이 만드는 무대(영상)이고 또 하나는 스튜디오에 앉아서 이 영상을 보고 코멘트하는 무대(영상)입니다. 이처럼 두 개의 무대를 만든 포맷은 시청자로 하여금 한국을 두 가지 관점 즉 여행자의 관점과 패널의 관점에서 보게 만듭니다. 이런 방송형식의 원조가 바로 단테의『신곡』입니다. 단테 이전의 문학은 하나의 무대만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단테는 일 차 무대(지옥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시하고 이를 패널이 보면서 말하는 2 차 무대(단테가 죄인들을 보고 반응하는 모습)를 추가했습니다. 극 속의 극을 만든 거죠. 대상을 한 가지 관점으로 보는 접근은 2D 에니메이션처럼 단순하여 한 면만 제시 됩니다. 그러나 두 가지 관점으로 보는 접근은 3D 만화영화처럼 대상이 좀 더 깊이 있게 다양한 각도로 표현 됩니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추가될수록 더 재미있고 더 유익한건 너무나 자명합니다.
세 번째는 캐릭터입니다. 단테 이전 문학의 캐릭터는 작가가 프로그램한대로 움직이는 인물들입니다. 오디세우스, 기사 롤랑, 베오울프 전부 선을 상징하는 인물들입니다. 물론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지만 기본적으로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악을 대표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바로 오디세우스 아내의 구혼자들, 가늘롱, 그렌달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악의 전사로 그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다 선의 칼에 응징을 당하는 역할입니다. 이처럼 선과 악을 대표하는 인물은 사람 같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인조인간이나 로봇에 더 가깝습니다. 선과 악의 대결은 항상 선의 승리로 결말을 맺습니다. 그러나 단테의 캐릭터들은 조금 다릅니다. 순례자로 지옥을 여행하는 단테나 지옥에 갇혀있는 죄인들은 선과 악을 대표해 서로 싸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죄인들은 저지른 죄에 대해 자신들의 시각에서 토로하는 역할입니다. 캐릭터 단테는 죄인들의 죄와 그들이 받는 벌을 통해 죄의 본질과 속성을 깨달아 가는 역입니다.
『신곡』은 단테 프로덕션의 중세판 “어서와 지옥은 처음이지”입니다. 다만 체험 대상이 한국이 아니고 지옥일 뿐입니다. 이 지옥 여행의 목적은 죄의 본질의 이해와 회개입니다. 이 여행의 참가자는 버질과 단테 그리고 독자들입니다. 여기에서 기억해야할 점은 여행자 단테와 작가 단테를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순례자 단테는 작가의 자서적인 요소가 포함되기는 했지만 그는 작가 단테가 만든 『신곡』의 캐릭터입니다. 캐릭터 단테는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보통사람이며 그의 위기는 직장, 아내, 혹은 아이들 문제가 아니고 죄와 구원의 문제입니다. 작가 단테를 중세의 마인드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순례자 단테는 어리숙하고 순진하고 동정심 많은 인물로 가만 나두면 엉뚱한 데로 가서 실수를 저지를 그런 타입으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작가 단테는 이 순례자 단테에게 가이드 겸 스승의 역할로 버질을 붙여준 겁니다. 독자들은 고통스러운 벌을 받는 죄인에 대한 캐릭터 단테의 반응을 보게 됩니다. 이는 작가 단테의 반응이 아니란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독자들은 바로 이 순례자 단테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옥을 둘러보며 단테의 반응을 통해 죄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자 이제는 지옥에 들어가 그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우리의 조상들을 만나볼 때입니다. 그러나 이번 패키지로는 9 층의 모든 지옥을 다 방문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이번에는 진정한 지옥의 시작인 2 등급 지옥인 색욕지옥만 잠간 들렀다 가려합니다.
지옥의 심판자 미노스
색욕지옥에 들어온 단테. 사방에서 영혼들이 서럽게 우는 울음소리가 그의 고막을 찢습니다. 버질과 함께 소리 나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단테의 눈에 들어온 지옥의 모습입니다.
내가 온 곳은 전혀 빛 없이 어둠만이 가득하네
폭풍으로 휘몰아치는 밤바다처럼 으르렁 거리고
바람이 양쪽에서 정신없이 세차게 몰아치네
지옥의 폭풍이 분노하여
영혼들을 강풍으로 쓸어버리고 날려버리네
벌로 그들을 소용돌이치게 만들고 채찍질하네
그들이 심판의 장소로 낙엽처럼 날려 떨어지면서
비명소리와 한탄소리 그리고 고뇌에 찬 비명을 지르니
그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원망하네 그곳에서
난 알게 되었어 이 형벌의 장소가
색욕의 죄를 저지른 죄인들에게 배정된 곳이란 걸
바로 이성을 욕정의 노예로 만든 자들이지 (V, 28-39)
색욕지옥에 갇힌 자 들에게 내리는 형벌은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일등급 태풍입니다. 이 폭풍은 이성을 잃은 자의 열정을 상징합니다. 생전에 열정의 바람에 몸을 던진 자들은 이렇게 죽어서 태풍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임자 있는 남녀를 넘보는 바람둥이들에게 보내는 단테의 경고입니다.
이 색욕지옥에 갇힌 사람들은 아씨리아의 여왕 세미라미스, 클레오파트라, 디도, 헬렌, 파리스, 아킬레우스, 트리스탄 등이며 이들은 모두 생전에 간통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사람들입니다. 그 중 몇 명의 이력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헬렌입니다. 그녀는 스파르타의 왕인 남편 메네레우스를 버리고 트로이에서 온 파리스 왕자와 눈이 맞아 트로이로 도망갔습니다. 한 순간의 욕정은 트로이 전쟁을 발발 시켰고 이로 인해 수많은 아케아 군과 트로이군이 전장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죠.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남편이 된 남동생 과 함께 이집트를공동으로 통치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로마의 실권자 쥴리어스 시저를 유혹하여 그의 아이를 갖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클레오파트라는 그 댓가로 시저에게 자신의 남동생의 목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동생을 제거하고 이집트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한 크레오파트라. 시저가 암살당하자 클레오파트라는 시저의 충성스러운 친구 마크 앤토니와 친해지기로 맘을 먹습니다. 이제 그녀의 새 침대친구는 마크 앤토니입니다. 마크 앤토니가 죽자 그녀는 곧장 새로운 남자에게 추파를 던집니다. 바로 로마가 임명한 이집트의 총독 옥타비아누스입니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가 거절하자 그녀는 자살합니다. 그때가 그녀의 나이 39세였습니다. 트리스탄은 콘월 왕인 마크의 조카로 왕을 수호하는 기사의 일원입니다. 그는 어느날 왕의 신부감으로 정해진 아일랜드 공주 출신의 이졸데를 콘월까지 에스코트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임무를 수행 중 그만 이졸데와 사랑에 빠져 둘은 내연의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색욕지옥에 떨어지는 자격요건의 키워드 바로 불륜입니다.
프란체스카와 파울로
그러나 이 색욕지욕에는 이러한 신화적 역사적 인물 뿐만 아니라 단테가 살아있을 때 이태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불륜사건의 주인공들인 프란체스카와 파울로도 있습니다. 프란세스카는 정략결혼의 희생자로 원치 않는 남자에게 시집을 간 케이스입니다. 결혼을 해보니 남편은 용감한 전사이지만 뒤틀린 체형의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실망한 프란체스카에게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파울로입니다. 둘은 금방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프란체스카와 파울로는 형수와 시동생 사이입니다. 더구나 파울로도 기혼자이며 애도 둘이나 있었죠. 둘은 남편이 없을 때마다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몇 년간 내연관계를 즐기던 어느날 둘이 침대위에서 이층집을 짓고 있을 때 그만 남편에게 발각 되고 맙니다. 격분한 남편은 침대를 두 사람의 피로 적셔버립니다. 그렇게 둘은 생명을 잃고 지옥으로 오게 된 거죠. 죽어서도 파울로는 프란체스카의 손을 꼭 잡고 있습니다. 단테는 소문으로만 듣던 불륜 사건의 주인공을 뜻하지 않게 지옥에서 만나게 된 겁니다. 단테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이 둘을 보고 자신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는 프란체스카에게 물어봅니다. 그 당시 사랑이 당신에게 어떤 장난을 쳤기에 그 위태로운 욕망 속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물어봅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까요
이렇게 아픈데 지난날 행복을 상기하려니
당신 스승님도 잘 아실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게 됐는지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말해드릴게요
허나 눈물없이 말하긴 힘들거예요.
어느날 우리는 데이트를 했어요
랜슬롯의 사랑 이야기를 같이 읽었죠.
우리 둘 뿐이었고 순수한 마음 이였어요.
이야기를 읽던 중 몇 번 눈이 마주쳤어요.
우리는 서로 얼굴이 빨게 졌고 창백해졌어요.
그러나 한 문장에서 우린 무너졌어요.
키스를 갈망하는 입술에 유명한 연인이
막 입을 맞추는 장면을 읽는 순간
죽으나 사나 내 곁을 지키고 있던 그 사람이
가볍게 떨면서 내 입술을 훔쳤어요.
그 책이 그 책을 쓴 저자가 그렇게 만든거죠
그날 우린 더 이상 책은 읽지 않았어요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곁에 있던 영이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난 감각이 다 마비
된 채 지옥 바닥에 시체처럼
쓰러졌어요. 기절한거죠. (V, 118-140)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를 듣고 쓰러진 단테
프란체스카는 시동생과 처음으로 선을 넘게 되는 그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둘은 방안에서 당시 유럽 최고의 히트작 랜슬롯과 기네비어 여왕의 스토리를 읽고 있었습니다. 기네비어 여왕은 영국아서왕의 부인이고 랜슬롯은 아서왕의 친구요 충성스러운 기사였습니다. 그러니 이 사랑이야기도 불륜스토리입니다. 상간과 불륜의 문제는 욕하면서 혹하는 인류 최대의 아이러니이며 풀 수 없는 난제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독서. 그러나 이 영국판 불륜 스토리는 두 사람을 조금씩 위험한 파라다이스로 인도합니다. 이야기를 읽는 중 두 남녀의 눈이 몇 번 마주칩니다. 얼굴은 화끈 거리고 심장은 뛰고 숨조차 가누기 힘든 그때 이야기 속의 랜슬롯이 기네비어 여왕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 장면이 전개됩니다. 그 순간 형수와 시동생의 두 입술도 포개집니다. 둘은 그날 그렇게 선을 넘고 맙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단테는 지옥의 바닥에 시체처럼 고꾸라지고 맙니다.
작가 단테는 프란체스카의 죄에 대한 두개의 관점을 제시합니다. 먼저 프란체스카의 관점입니다. 그녀는 그날 순수함을 지키려했다는 겁니다. 그런 자신에 대해 조금도 의심을 한 적이 없죠. 그러나 그 책으로 인해 달라진 겁니다. 자신이 시동생과의 사랑에 빠진 원인 제공자는 바로 랜슬롯과 기네비어 여왕의 사랑이야기를 쓴 작가라고 항변합니다. 그 이야기로 인해 그만 키스를 하게 되었고 그 키스로 둘이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논리입니다. 시동생과의 사랑은 결코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프란체스카는 죄를 지은 후 끝까지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입니다. 두 번째 관점은 프란체스카 항변에 대한 순례자 단테의 반응입니다. 이 단테는 프란체스카의 이야기에 홀딱 빠져 둘의 처지를 백퍼 공감합니다. 프란체스카의 이야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는 그만 기절을 하고 맙니다. 단테의 머리 속에는 불륜이라는 죄의 본질은 망각한 채 로맨틱하게 포장된 달콤한 장면만 남습니다. 죄는 이렇게 그럴듯한 아름다운 겉모습으로 사람을 현혹시킵니다.
단테의 지옥에 있는 거의 모든 죄인들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그 어떤 죄인도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용기가 없으며 대부분 자신의 죄를 미화하거나 아니면 환경이나 남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고백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아니 잘못을 저지르고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안하지 않나요? 잘 못한 걸 잘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프란체스카가 책 탓을 하는 거나 밖에서 잘 못 하고 들어와서 언론 탓하는 거나 문제의 본질은 같습니다. 단테는 바로 이점을 이야기 합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저지른 죄에 대한 고백을 해야만 합니다. 실수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첫 걸음. 바로 죄의 고백입니다. 이는『신곡』의 기본 주제 중의 하나이지만 사실 성경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