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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Sep 22. 2022

『신곡』 : 단테와 함께 떠나는    지옥 여행 1

지옥 오리엔테이션

   14 세기 초인 1301 년. 시인이자 정치가인 단테의 고향 피렌체로 갑니다. 서기 1096 년부터 시작된 십자군 전쟁 중 8 차 전쟁이 끝난 지 10 년이 지난 때입니다. 당시 이태리는 베네치아, 피사, 피렌체 등 여러 도시 공화국 체제이지만 동시에 바티간의 교황령으로 통치를 받는 시대였습니다. 여덟 차례에 걸친 전쟁을 거치면서 유럽 내 교황의 영향력은 강화되었고 또한 독일에 위치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권력도 막강해졌습니다. 종교와 정치는 다른 분야이지만 교황이 세상일에 간섭하는 범위를 넓히면서 사사건건 교황과 황제가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교황 봉신국들처럼 피렌체도 황제파와 교황파로 분열되었으며 단테 역시 이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피렌체에서는 단테가 지지하는 교황파가 승리를 하지만 이후 교황파도 둘로 갈라지게 됩니다. 교황 지지파와 교황으로부터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세력 간의 새로운 전선이 형성된 겁니다. 단테는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파를 지지했고 처음에는 이기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보니페이스 8 세 교황은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돕기 위해 피렌체에 군대파견을 계획합니다. 이때 단테는 교황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바티칸으로 떠납니다. 단테가 피렌체를 비운 사이 교황파가 정권을 잡아 그에게 부패와 반역죄를 뒤집어씌웁니다. 이제 고향에 가면 화형에 의한 사형을 받게 될 딱한 처지에 놓인 단테. 이후 20년 간 그는 죽을 때까지 그는 아레조, 볼로냐, 베로나, 파리 등을 전전하면서 고단한 떠돌이 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그 당시 단테가 겪은 쓰라린 경험은 중세시대의 최고 에픽이며  인류 출현 이래 유럽 전체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위대한 문학작품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됩니다. 르네상스시대의 위대한 천재의 억울한 아픔과 고통이 인류에게 영혼의 안식과 기쁨을 주는 불멸의 예술로 승화된 겁니다. (단테가 원래 사용한 제목은 코메디. 중세시대 코메디는 웃긴다는 말이 아니고 행복한 결말을 의미하는 이야기입니다. 코메디로 출간 되었지만 1555년에 신을 의미하는 디바인이 추가되어 디바인 코메디(신곡)가 된 겁니다)


   

  



 망명생활중인 1308 년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그가 죽기 직전인 1320 년에 완성한 신곡의 시작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네 인생 반 쯤 지났을까 나는 곧게 뻗은 도로에서

벗어나 길을 잃고 말았어. 그리고 깨보니  

어두운 숲속이었고 나는 혼자였어.


어떤 숲인지 알 수 없었어. 난 여태까지  

그렇게 야만적이고 가혹한 야생의 자연 본적이 없었어. (생각만 해도 그때의 공포가 엄습하지)


죽는다 해도 그보다 비통하지 않겠어.

그곳에서 좋게 끝났으니 신의 은총으로 찾은

모든 것을 상세히 이야기해보겠어.


몰라 내가 어떻게 그 숲에 가게 됐는지   

진실의 길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시작한 방황  

그 순간 난 비몽사몽 잠에 취해있었지


그러나 무시무시한 악의 골짜기 맨 끝에   

미로처럼 생긴 길이 얼마나 무섭던지

작은 언덕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지 내 앞에


눈을 들어 보니 언덕은 반짝이고 있었어

태양에서 보낸 아침 햇살로. 모든 길 위의

사람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빛이었어.  (Canto I, 1-18)




시의 시작은 신곡의 주제를 암시합니다. 그 주제는 어둠과 빛으로 상징됩니다. 단테가 헤매고 있는 어둠은 현재 그가 처한 비참하고 억울한 처지입니다. 시의 첫줄에 언급한 곧게 뻗은 도로처럼 그는 한때 잘나가던 피렌체의 시인이며 정치가였습니다. 허나 이제 그 도로를 이탈하여 컴컴하고 생전 처음 본 낯선 숲에 홀로 버려졌습니다. 며칠전만해도 피렌체를 주무르는 정치 위원회의 일원으로 자신의 정적들을 가차없이 제거했던 그가 이제는 자신의 정적들에 의해 부패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화형에 의한 사형 선고를 받은 겁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나라를 비롯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모택동은 정치는 총 칼 없이 싸우는 전쟁, 전쟁은 총칼로 싸우는 정치라고 했습니다. 정치는 전쟁과 같아서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갖습니다. 패배하면 하루아침에 파렴치범, 부패사범, 혹은 적폐청산 대상자가 됩니다. 누가 옳은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진실은 항상 승리자의 편입니다. 그러나 단테는 그 어둠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때 그에게 모든 이를 위한 빛이 비추어집니다. 이제 그는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어둠은 자신의 처지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를, 빛은 희망이자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신곡은 어둠에서 빛으로 즉 죄를 지은 인간이 회개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여정을 다룬 본격적인 크리스천 서사시입니다. 시의 8 번째 행에 “좋게 끝났다”는 표현은 이 시는 천국에 갔다 온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란 암시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는 단테는 도중에 만난 성난 표범, 사자, 그리고 늑대에게 쫓겨 어두운 숲속계곡으로 되돌아옵니다. 여기서 단테는 희미한 인간의 형태를 가진 영을 만나게 되는데 이 그림자가 바로 로마의 위대한 시인인 버질입니다. 버질은 단테에게 안내자가 되어 주겠노라고 하곤 언덕을 올라가기에 앞서서 먼저 지옥에 내려가서 연옥을 거쳐 그 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알려주었죠.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 에베소서 4:10)


예수님처럼 먼저 내려가서 낮아져야 올라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어려움을 알아야 기쁨을 알고 부족함을 먼저 깨달아야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리더가 되려는 분들은 새겨들어야 할 지혜입니다.  따라서 단테의  빛을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은 저 아래 지옥에서 시작됩니다. 단테는 버질의 안내를 따라 지옥의 투어를 시작합니다. 자신의 안내자로  버질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버질은『아네이드』에서 주인공 아니아스가 사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즉 단테는 버질이 이미 사후 세계를 잘 알고 있다는 믿음으로 상징적인 죽음 이후 영적인 재탄생을 갈망하는 자신의 가이드로 적합하다고 본 거죠. 단테가 지옥여행을 통해 원하는 크리스천의 거듭남은 시인 개인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닙니다. 단테를 따라 같이 여행을 하게 되는 모든 독자들 즉 인류의 거듭남을 희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순례자 단테와 함께 본격적으로 지옥을 여행하기 전 단테가 만든 지옥에 대한 사전 오리엔테이션을 잠시 진행할까 합니다. 단테는 그 당시 지리학적으로 밝혀진 사실들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지하세계, 여기에다 로마 가톨릭에 기반을 둔 그의 신학적 지식을 혼합하여 지옥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만든 지옥은  지구 표면부터 시작하여 지구의 중심으로 내려가는 원통형 모양의 깔때기처럼 생겼으며 표면에 위치한 지옥이 1 층 즉 변옥에 해당하는 지옥이며 내려갈수록 등급이 낮아져 최저등급인 9 층 지옥이 지구 중심에 위치합니다. 이 지옥의 9 개 층 배정 방식은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내신 등급 제도와 비슷합니다. 내신은 고등학교 3 년 간의 성적을 1 등급부터 9 등급까지 매겨 이 등급에 따라 대학의 선택 자료로 쓰죠. 시인 단테가 만든 9 개의 지옥은 인생 성적을 기준으로 결정 됩니다. 단테가 중요시하는 과목은 국영수가 아니라 중세의 로마 가톨릭 신앙에서 제시하는 도덕, 윤리 (1.이교도 2. 색욕 3. 폭식 4. 탐욕 5. 분노 6. 이단과 폭력 7. 사기 8. 거짓 9. 반역)를 지켰는지를 따져서 1 등급부터 9 등급까지의 대상자를 정합니다. 살아생전에 다른 과목은 다 통과 했는데 색욕 시험에 떨어지면 2 등급 지옥으로 배정받고 나라를 팔아먹거나 두 동강 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 최악의 지옥인 9 등급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이 판단은 진정한 지옥인 2 등급 지옥 앞에 있는 미노스라는 이름의 거대한 괴물 몫입니다. 미노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원래 크레타 섬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법전을 만든 업적을 인정받아 죽어서 지하세계의 심판자 역할을 하게 된 겁니다. 지옥으로 끌려온 죄인은 미노스에게 생전에 저지른 죄를 말하면 그는 엄청나게 커다란 꼬리를 돌려 죄인이 가야할 지옥의 층수를 가르켜 줍니다. 꼬리를 2 번 휘두르면 지옥 2 층 3 번 휘두르면 지옥 3 층으로 떨어지는 식입니다. 그러나 실제 지옥 배정은 작가인 단테의 판단에 따른 거죠. 인류의 탄생 이래 자신이 살던 시기까지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평가를 했습니다. 이들 중 인류사에 한 획을 긋는 악행을 남긴 사람이라면 역사적 신화적 인물이건 자신과 동시대의 인물이건 모조리 포함 시켰습니다. 실로 엄청난 수의 악인 열전입니다. 시인의 판단이 그가 살던 시대와 인물에 대한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인 평론이자 비판인 이유입니다.      

   

   단테가 만든 지옥의 특징을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프리미엄급인 1 층 지옥입니다. 이곳은 어느 정도 자유도 주어지고 운동 산책 그리고 텔레비전 시청도 가능한 미니멈 시큐리티 급 교도소에 견줄 만합니다. 반대로 최저 등급 즉 9 등급을 받은 자들은 지옥 중에서도 가장 하단에 위치한 9 층 지옥으로 보내지는데 개인의 자유가 철저히 통제되고 시간표 짜 놓고 중노동과 고문을 반복하는 북한의 맥시멈 시큐리티 급 교도소 같은 곳입니다. 이 9 가지 지옥의 특징은 수형자 죄 중심의 맞춤형 지옥으로 각 지옥에 머무는 죄인들의 죄에 완벽하게 상응하는 벌을 받는 곳입니다. 즉 간통을 저지른 자들은 폭풍에 휩쓸리는 형벌을 받는데 폭풍이 이성에 눈을 감은 그들의 색정을 나타낸다는 발상입니다.  또한 살아생전에 남에게 폭력을 휘둘러 살상을 저지른 자들은 부글부글 끓는 핏물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도록 되어 있는데 고통을 못 참아 빠져나오려고 하면 감시자가 활을 쏘아 다시 빠뜨립니다. 자신이 저지른 피의 대가를 그대로 받는다는 개념이죠. 분열을 일으킨 자는 자신의 사지가 찢어지는 형벌을 받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지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애커론(Acheron) 강을 건너야 하는데 캐론(Charon)이라는 이름의 뱃사공이 움직이는 작은 배를 이용해야만 건너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단테와 버질은 바로 이 지옥의 입구에 와 있으며 이 지옥의 문 위에는 아래와 같은 무시무시한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는 길

    나는 영원한 슬픔으로 향하는 길

    나는 버림받은 영혼으로 안내하는 길


    . . .

    여기에 들어가는 이여 모든 희망을 포기하길. (Canto III, 1-9)



지옥을 도시라고 표현한 점이 눈에 띕니다. 단테의 지옥은  그가 살았던 중세도시 피렌체의 구조를 닮아 지옥 전체를 둘러싼 담과 입구가 있습니다. 시인은 지옥을 구상하면서 헬 피렌체를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2010년대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헬조선의 진정한 원조입니다. 지옥의 문 입구에 들어선 단테는 사람들의 고통의 신음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들은 생전에 기회주의자들로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선과 악 중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기회를 엿보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지내왔던 자들입니다. 천사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조차도 양쪽의 눈치만 살핀 인간 말종들입니다. 시인 단테는 이들을 지옥의 입구에 배치 시켰는데 그들은 지옥이나 천국 어느 곳에도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거죠. 이들은 이 지옥의 입구에서 미세먼지 반 오염물질 반인 공기를 마시며 말벌과 호박벌 떼의 공격을 피해 도망다니고 있습니다. 벌들에게 쏘인 그들의 몸에서는 피와 썩은 물질이 줄줄 흘러나오고 그 상처 속과 주변에는 벌레와 구더기들이 잔뜩 꼬여있습니다.

    


    이들을 뒤로 하고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이 바로 변옥(Limbo)이라고 불리우는 일등급 지옥입니다. 지옥이긴 하지만 지옥에 포함되지 않은 곳이죠. 여기의 거주자들은 선한 이단자들로 호머, 호레이스, 오비드, 버질, 루칸 소크라테스, 플라톤, 세네카 등의 그리스 로마 시인, 철학자 수학자 등입니다. 그들이 살았을 당시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이였죠. 따라서 주님의 영광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안 믿었다고 벌을 줄 수는 없다는 거죠. 이 지옥의 특징은 거주자는 어떤 고통도 없다는 점입니다. 유일한 고통은 희망이 없다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상태에서의 최고의 경지이지만 신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합니다.   

  

    그 다음 여행 코스는 2 등급 지옥부터 9 등급 지옥까지 인데 이곳이 사실 진정한 지옥입니다. 본격적인 지옥여행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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