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유럽의 경제와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중산층의 등장입니다. 과거 유럽사회에는 두 개의 계급 즉 귀족(왕족, 귀족, 기사나 성직자들)과 하층민들 (농노, 노동자, 하인, 군인들)만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14세기 무렵에 상류층과 하층민사이에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중세시대 중산층이 생기기 시작한 주요 이유는 흑사병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감소와 교역의 발달입니다. 1346년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1666년에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주기적으로 발생하여 수많은 유럽인들을 희생시켰으며 이로 인해 대략 5 천만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갑자기 줄어들자 노동력문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임금이 상승하게 된 겁니다. 고임금 구조의 인력시장이 이들이 중산층으로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또한 11 세기에 들어서 유럽에 새로운 해상 무역 루트가 개척되는 계기로 유럽의 무역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도 동서양의 교역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참전 기사들이 귀국시 아랍에서 오일, 향신료, 그리고 각종 과일들을 가져왔는데 이 물건들이 유럽의 각국에서 인기를 끌자 유럽은 동방의 나라들과도 직접교역에 나섭니다. 무역과 장사를 통해 돈을 번 부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들도 중산층을 형성하게 됩니다. 돈과 여유가 많은 계층이 생겨났고 이들의 지루함을 달랠 새로운 문학장르가 등장합니다. 바로 로망스입니다.
로망스는 로마어 즉 라틴어나 이태리어로 쓰인 작품을 말하며 내용은 주로 기사의 모험이나 사랑이야기입니다. 서사적 영웅의 시대가 완전히 간 것은 아니지만 안전과 풍요의 시기에 국가나 나라의 생존을 위해 괴물이나 이슬람과 싸우는 베오울프나 롤랑 같은 에픽 히로들의 이야기로 인기를 끌기는 어렵습니다. 과거 관중들이 주로 괴수와 싸우거나 전쟁 무용담 같은 거친 남성적인 스토리를 좋아했다면 새 시대의 독자들은 좀 더 나이스하고 환타스틱하고 에로틱한 이야기를 선호합니다. 로망스의 주인공은 도전을 즐기며 모험에 적극적이지만 설상 실패한다 해도 큰 부담은 없습니다. 에픽 영웅들처럼 나라의 생존이나 민족의 미래가 걸린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싸움이 아니고 주인공의 지극히 개인적인 도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로망스 문학의 최고봉 『가윈 경과 초록기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신원미상의 작가에 의해 14 세기 말에 쓰여진 이 기사 로망스는 용맹하고 영웅적인 기질의 소유자인 기사 가윈이 마법과 현실이 교묘히 교차되는 세계로 떠나는 모험에 아름다운 유부녀의 유혹이 가미된 이야기입니다. 이 로망스는 환타지, 액션 어드벤쳐, 러브 스토리로 포장되어 있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기사 가윈을 통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 회개, 그리고 거듭남이라는 기독교의 본질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수도 없이 반복해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시험(test)입니다. 시험에 관한 대표적인 성경 귀절을 두 개만 읽어 보겠습니다.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예레미아 17:10)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 고린도 전서 3 : 13 )
시험을 거친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혈기왕성한 남자나 여자가 무인도에서 혼자 생활을 하는 상태에서 자신은 순결의 의무를 지켰노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유혹받는 상태에서 순결을 지켜야 인증을 받습니다. 스트레스 받는 상태에서 화를 참는 사람이 진짜 좋은 상사이고 어려운 상태에 있을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란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막상 이런 시험에 들 때 통과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가윈 경과 초록기사』는 바로 이러한 시험받는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새해를 맞은 아서왕의 궁전인 카멜롯(Camelot)에서 시작됩니다. 왕과 그의 충성스러운 기사들과 귀족 부인들이 모여 선물을 서로 교환하며 새해 축제 분위기를 맘껏 즐기고 있었죠. 이때 갑자기 한 괴물이 이들 앞에 나타납니다. 어머어마한 몸집을 한 그는 얼굴, 피부, 수염, 머리털, 그리고 입고 있던 갑옷 심지어는 그가 타고 들어온 말조차도 초록빛입니다. 이 초록기사는 아서왕과 그의 원탁의 기사들에게 인사를 하곤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하오.
당신의 성과 기사들도 최고 중의
최고이며 게다가 말 타고 갑옷으로
무장한 채 싸우는 가장 강하고 용맹한
전사들이라고 알려졌소. 기사도 정신
또한 투철하다는 소문에 이끌려
이리로 왔소. (259-263)
이 말의 의미는 너희들이 그렇게 잘났다고 소문이 났는데 과연 그 소문이 맞는지 시험을 해보자는 겁니다. 그리곤 그는 크리스마스 내기를 청합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내보이며 이 도끼로 머리 자르기 게임을 하자고 제안 합니다. 즉 오늘 이 자리에서 그대들 중 아무나 나와서 이 도끼로 나의 머리를 자르고 일 년 후 같은 날 먼 나라에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와 자신의 머리를 내가 같은 도끼로 내려칠 수 있도록 내어달라는 것입니다. 남을 죽일 수 있는 담대함과 또 자신도 죽음을 불사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받아들이기 힘든 실로 무시무시한 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모두들 주저하고 있는데 아서왕의 조카이며 원탁의 기사 중 가장 어리고 전투경험도 없는 가윈이 나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여기 기사님 중 가장 약골이죠.
게다가 가장 멍청하죠.
그러니 솔직히 말해 내가 죽는다고
해도 별 일 아닙니다.
내가 칭찬 받는 건 단지 삼촌이
아서왕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건 덕이 아니라 피
뿐입니다. (354 - 357)
가장 어리고 자칭 가장 나약한 그러나 말하는 싸가지로 보아 인성은 괜찮아 보이는 가윈이 초록기사의 도전을 수락합니다. 자신의 용맹성을 시험해 보겠다는 거죠. 이에 초록기사는 자신의 머리를 내어주고 가윈은 그 머리를 초록기사가 준 도끼로 한 번에 잘라버립니다. 초록기사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머리를 손에 들고 말에 올라탑니다. 피범벅이 된 초록기사 머리의 입술에서 정확히 일년 후에 내가 살고 있는 초록성당에서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그는 홀연히 사라집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가을이 찾아왔고 가윈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위험을 극복하며 초록기사가 사는 곳을 찾아 북쪽으로 떠납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던 날 한 멋진 성에 도착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성주인 버틸렉과 그의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한 노파를 만나게 됩니다. 성주는 명망 높은 기사인 가윈을 만나 영광이라고 하며 그가 찾는 초록 성당이 이곳에서 가까이 있으므로 새해가 될 때 까지 여기에서 푹 쉬다 가라고 권유를 합니다. 그리곤 그는 가윈에게 크리스마스의 관습인 선물교환을 제안 하죠.
제안을 하나 하겠소.
숲속에서 내가 무엇을 얻던 그건
당신에게 주고.
대신당신이 성안에서 얻는건 내게 주시요.
이 거래로 누가 더 행운을 얻을지그건
운에 맡깁시다.
정의로운 기사 양반, 이 제안에 동의 해주시오.
성주님. 그런 주고받기라면 대 환영입니다. (1105-10)
다음날 아침 버틸렉은 사슴 사냥을 나가고 가윈의 침실에 성주의 부인이 들어옵니다. 아름다운 미모의 부인은 젊은 가윈에게 달콤한 사랑의 말을 속삭입니다. 아서왕의 기사는 여자의 유혹을 물리쳤지만 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그녀로부터 가벼운 키스만을 허락했습니다. 그날 저녁 버틸렉은 자신이 사냥한 사슴을 가윈에게 주었고 가윈은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버틸렉에게 가벼운 키스를 해 주었습니다. 숲속에서는 성주가 사슴을 사냥하고 있지만 침실에서는 성주 부인이 젊은 기사를 헌팅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날 부인은 또 다시 가윈의 침실로 찾아와 우아하게 들이 댔지만 가윈의 매너있는 거부로 두 번의 키스에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날 저녁은 버틸렉이 사냥한 멧돼지와 가윈이 받은 키스의 교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세 번째 되는 날 부인은 다시 찾아 왔습니다. 이번에는 키스대신 금반지를 주려했습니다. 기념품으로 생각하고 받으라고 했지만 가윈은 이마저도 거부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초록빛과 금색실크로 만든 자신의 거들(벨트)만이라도 간직하라고 호소를 했습니다. 이 실크 거들에는 마법의 힘이 있어서 이를 지니는 사람은 어떤 육체적인 상처도 입지 않는다는 말을 덧 붙였습니다. 이 말에 가윈은 혹 했습니다. 이 거들이 자신을 초록기사의 도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죠. 가윈은 그 거들을 받곤 세 번의 키스를 허락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가윈은 버틸렉과 그가 잡은 여우와 세 번의 키스를 교환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윈은 그 거들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윈이 게임의 규칙을 위반한 거죠.
드디어 약속한 새해가 밝았고 가윈은 부인에게 받은 거들을 자신의 허리에 동여매곤 초록색 성당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는 초록기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일 년전 약속한대로 가윈은 자신의 머리를 초록기사의 도끼에 맡겼습니다. 초록기사가 도끼로 그의 머리를 내려치려는 순간 그는 몸을 움츠립니다. 초록기사는 이를 나무라곤 다시 내려치려 하는데 이번에도 도끼를 내려치는 흉내만 내곤 멈춘다. 이에 가윈은 화를 내며 빨리 내려치라고 재촉하는데 세 번째 비로소 도끼로 그의 목을 향해 힘껏 내리쳤는데... 그는 가윈의 목 근처를 내리쳐 목에는 아주 경미한 상처만을 입힙니다. 게임은 끝났습니다. 초록기사는 웃으며 그는 사실 자신이 가윈이 머물렀던 성의 주인인 버틸렉임을 밝히며 자신은 마법의 힘으로 초록기사로 변한 것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이 머리 자르기 게임과 가윈을 유혹 하도록 계획을 세운 이는 성에 같이 있었던 노파였습니다. 그녀는 아서왕의 배다른 누나이자 가윈의 숙모이기도 한 모건 르 페이입니다. 버틸렉은 가윈이 이 게임을 통해 가장 용감한 기사이며 또한 아름다운 유부녀의 유혹을 물리친 도덕적인 기사임을 입증했노라고 칭찬했지만 가윈은 너무 부끄러울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받은 거들에 대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음으로써 버틸렉을 속이고 또한 거들이 자신을 보호해 줄 거라고 믿은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가윈은 케멜롯 성으로 돌아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고백했고 원탁의 기사들은 가윈을 나무라는 대신 언제나 정직하자는 결심의 상징으로 모두 거들을 허리에 차고 다닐 것을 결의했습니다.
이 로망스는 시험받는 인간의 덕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인간의 덕은 어떤 형태이든 시험을 받고 그 시험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덕이며 이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시종일관 시험받은 믿음(tested faith)에 대해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보내신 것도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이시고, 또한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간 지내시면서 악마의 시험을 받도록 하신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시험을 기쁘게 받아 드릴 것을 권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서 1: 2-3)
그러나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인 아담, 삼손, 다윗, 그리고 솔로몬의 생에서 보듯이 그들은 한결같이 한 시험만 통과하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바로 여성의 유혹이죠.
가윈은 가장 가장 어렵다는 여성 유혹 코스는 통과했지만 결국 자신을 속이고 믿음보다 거들 즉 눈에 보이는 부적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의 목에 난 상처는 그의 약한 신념에 대한 경고장입니다. 이제 카멜롯에 돌아와 왕과 다른 기사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신념에 대한 회개의 고백으로 부끄러움과 패배의 상징이었던 거들은 이제 다시 영광과 승리의 상징으로 거듭납니다. 왜냐하면 그 거들은 이제 그들의 수치와 패배를 일깨워주어 같은 죄를 반복하지 못하게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거들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나게 합니다. 로마시대 때 처형 도구인 십자가는 그 당시에는 수치와 굴욕, 패배와 공포의 상징이었지만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의 길을 택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 승천 하신 예수님의 기적 이후 그 의미는 주님의 영광, 승리, 그리고 사랑의 의미로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누가 시험을 통과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라고. 그리고 그 누군가가 시험에 실패했다고 비난하지 맙시다. 결국 나 자신을 욕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