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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Sep 10. 2022

『롤랑의 노래』 : 십자군 전쟁 시대의 크리스천 영웅


   이제 우리는 8, 9세기 유럽으로 갑니다. 대부분 유럽의 국가들이 로마 가톨릭을 국교로 받아 드렸고 정치와 기독교가 서로 상부상조하는 형태의 봉건제도는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은 때입니다. 이 시기 나라를 위협하는 적은 신화 속에 나오는 괴물이나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악마가 아닙니다. 이제 코에서 불을 뿜는 용이나 그렌달 어미처럼 물에서 사는 요정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이제 왕국의 안녕을 위협하는 적은 거인 같은 괴수가 아니라 이민족들이고 이교도들입니다.  이들과 맞서 싸우려면 나라에 필요한 용사들은 베오울프가 아니라 잘 훈련된 기마 병사들입니다. 이제 전투는 왕과 용의 일대일 대결이 아닌 적군과 아군이 넓은 들판에서 맞붙어 싸우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투구와 갑옷으로 보호하고 말을 타고 무기로 긴 칼과 창을 사용하며 적진으로 돌진하는 전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중세시대의 기사들입니다. 서기 700년 경 스페인을 쳐들어간 프랑스의 샤를마뉴 대제 때 생기기 시작한 이 기사들은 왕과 지역의 영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조직이 됩니다. 왕은 자신이 거느린 최고의 기사들에게 땅을 하사하고 대신 기사들은 유사시 왕이 부르면 언제든 응해야 합니다.

  

  기사를 이야기 하는데 기사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사도는 일종의 비공식적인 기사의 행동코드를 말하며 그 핵심에 기독교의 사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첫째 의무는 교회 가르침을 따르며 교회를 수호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교도들과의  전쟁에 주저함이 없어야 하며 그들에게는 절대로 자비를 베풀면 안 됩니다.  또한 기사들은  나라를 사랑하고 왕에게 충성을 바쳐야 하고 왕의 신하로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사들은 평상시 약자를 보호해야 하고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야하며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상 질서를 흔드는 악과 부정의에 맞서 싸워햐 합니다. 기사란 뜻의 단어인 나이트(knight)는 하인(servant)을 의미합니다. 기사들은 칼로 하나님과 왕과 약자를 섬기는 하인이란 말입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한 직업군인인 셈입니다.  

  

  중세시대에 가톨릭으로 무장된 서유럽국가들을 위협하는 새로운 종교세력이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무슬림의 등장입니다. 서기 613 년 예언자 마호메트에 의해 시작된 이슬람 종교는 그의 사후 이슬람 교단으로 확립되고 발전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교단의 지도자인 칼리프들이 그 세력을 전 유럽으로 확장하여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북부, 서부에서는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을 정복을 하고 732년에는 프랑스까지 침략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건설된 나라가 사라센 제국입니다. 이후 유럽은 이 두 종교 세력의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랐고 이는 결국 크리스천과 회교도의 전면전으로 치닫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서기 1096년  로마 가톨릭의 교황인 어반 2 세 (Pope Urban II) 가 비잔틴 황제의 요청을 받아드려 무슬림의 지배하에 있던 성스러운 땅 즉 예루살렘을 구하고자 서유럽의 국가들에게 호소를 하여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데 이른바 제 일차 십자군 전쟁입니다.  

  

프랑스 왕에게 명검 듀란델을 하사 받는 롤랑


 이러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등장한 서사시가 바로 『롤랑의 노래』입니다. 이 이야기는 서기 778년 프랑스의 샤를마뉴 대제가 북부 스페인 원정에서 대승을 거두고 귀로 중 피레네 산중에서 바스크족(族)의 습격으로 후군이 전멸한 바 있는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군과 바스크 족과의 전투는 종교와는 무관한 전쟁이었고 별 볼일 없는 작은 전투에 불과했지만 작가는 이를 크리스천과 무슬림과의 종교 전쟁으로 새롭게 각색하였습니다. 그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8세기에서 9세기 사이로 추정되며 그 후 약 삼백년간 사람들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다가 누군가에 의해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서기 1140-1170 년 사이에 필사본으로 제작이 됩니다. 이런 텍스트의 역사를 감안해보면 이 프랑스의 서사시도 어디까지 역사이고 전설이고 신화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롤랑의 노래』에 드러난 작가의 의도만은 분명합니다. 8-9 세기 유럽에까지 세력을 뻗치기 시작한 무슬림에 대한 크리스천의 승리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주적은 상상 속의 괴물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체가 있는 사라센인 즉 회교도들입니다. 크리스천 병사들의 의무는 이교도인 무슬림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키거나 아니면 지옥으로 보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승리의 영광을 바치기 위하여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고 내부적 결속을 확립해야 합니다. 왕을 중심으로 왕을 섬기는 영주와 기사들이 똘똘 뭉쳐 싸울 수 있는 일사 분란한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롤랑의 노래』의 중심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이야기는 샤를마뉴 대제가 7년간의 전쟁 끝에 무슬림인 사라센 지배의 스페인 상당부분을 정복하고 마지막으로 사라고사만을  남긴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이 도시는 무슬림 왕인 마실라가 언제 있을지 모를 프랑스의 공격에 결사항전의 자세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위기에 처한 마실라 왕이 거짓으로 화평을 제안 하였고 오랜 전쟁으로 지친 샤늘마뉴 대제는 이를 받아드리기로 결정합니다. 프랑스 왕은 자신의 조카인 롤랑의 추천을 받아 롤랑의 양아버지인 가늘롱을 적진으로 보내 협상을 짓게 합니다. 그러나 가늘롱은 이 계획을 자신을 사라센인에 의해 죽게 만들려는 롤랑의 계략으로 생각하곤 자신의 양아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사라센 편에 서게 된 가늘롱은 왕인 샤를마뉴에게 가짜 평화 협상 소식을 전합니다. 이에 샤를마뉴 대제는 후방 방어를 롤랑에 맡기고 군대를 철수시킵니다. 이 만 명에 달하는 롤랑의 후위부대가 수적 열세라는 것을 알게 된 사라센 군이 공격을 감행합니다. 모든 게 가늘롱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제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롤랑. 그러나 그에게는 뿔나팔 올리판트가 있습니다. 그 나팔을 불면 왕이 거느리고 있는 주력부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왕의 본진은 롤랑의 후방부대와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롤랑은 뿔나팔을 불 생각이 없습니다. 그는 왕을 섬기는 기사로서 제일 의무는 도움 요청이 아닌 적과의 전투입니다. 왕을 위해서는 잘 싸우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왕을 위해 더 많은 고통을 감수할수록 더 훌륭한 기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뿔나팔을 불어 왕의 도움을 요청하라는 절친이자 전우인 올리비에의 요청에 롤랑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왕을 위해 이 자리를 지켜야만해.

       우리의 주군을 위해 고통을 견뎌야 하지.

       엄청난 열기와 냉기도 감수해야 해.   

       우리의 피부와 머리털이 모두 타서

       라지더라도 말이야. (79.1009-12)


롤랑의 노래에 나오는 8 단계의 이야기를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  






그러나 올리비에는 공격해오는 10 만에 달하는 사라센 군사의 수를 보고 압도당하고 맙니다.  나팔만 불면 가까이 있는 왕의 도움을 받아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데. 그는 두 번째 롤랑에게 요청합니다. “제발 나팔을 불라고. 나팔을.” 그러나 롤랑은 요지부동입니다. 롤랑은 왕의 도움 없이 싸우기를 결심합니다. 기사로서의 자신의 명성 때문입니다. 그는 후세에 자신이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싸웠노라는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훗날 자신의 싸움을 조롱하는 노래가 만들어진다면 롤랑에게 그건 치욕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죠.  그의 수치는 곧 가문의 수치요 나라의 수치입니다. 그는 올리비에의 간청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의 친척들이 나로 인해 욕을 먹는다면

       하나님도 싫어하실 거야

       그러면 프랑스도 수치스러울 것이고

       (84.1062-64)



게다가 이교도 따위 때문에 이 나팔을 분다는 건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는 이교도들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결국 크리스천이 승리를 할 거라고 확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올리비에는 난감하기만 합니다. 이건 명예의 문제가 아니고 전술의 문제이고 생과사의 문제이며 전쟁의 승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나팔만 불면 우리는 살고 전투도 이기는데. 한 번 더 건절하게 요청을 합니다. “아 제발 좀. 불라고. 제발” 그러나 롤랑은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그는 롤랑의 고집으로 모든 군사가 위험에 빠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베프이지만 후방부대의 사령관인 롤랑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올리비에는 사령관의 판단을 믿지 않지만 그는 자신의 의심을 접고 롤랑을 따르기로 합니다.      


    롤랑은 용감하게 싸우지만 마침내 역부족임을 깨닫게 되었고 이제 나팔을 불어야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의 왕의 군대가 아직 가까이 있으니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올리비에는 롤랑의 결정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 요청은 기사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거절하더니

       왕이 왔다면 우리는 이겼을 거요  

       당신이 우리를 이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소.

       세상에는 현명한 용기가 있고

       무모한 용기가 있소  

       신중한 행동 보다 가치 있는 건 없소.

       당신의 지나친 자신감은

      우리 프랑스 군을 전멸켰소.

       우리는 다시 왕을 섬기지 못할 거요

       당신이 내 말에 눈곱만큼이라도 주의를   

        기울였다면 우리의 왕이 왔을 것이고

       우리는 전투에서 이겼을 거요

       마시레 왕은 포로가 되었거나 죽었을 것이고  

       롤랑, 당신의 용기는 우리에겐 저주요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주군을 위해

       싸울 수 없소  

       세상 끝날 때까지 다시없을 우리의 왕

       당신은 여기에서 죽을 것이고 프랑스는

       패배로 수치를 겪을 거요.  

       우리의 우정은 여기서 끝이요.

       (131. 1723-35)



올리비에는 친구 롤랑의 무대뽀식 똥고집을 원망하며 이미 나팔을 불기에는 너무 늦었노라며 분노를 표출 합니다. 이때 대주교는 둘의 싸움을 중재하며 그래도 나팔을 울리는 게 낫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죽더라도 왕께서 우리의 복수도  또 장례도 해주시지 않겠느냐는 거죠. 결국 롤랑은 자기 주위에 약 60 명가량 만이 남았을 때야 비로소 뿔피리를 불어 구원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죠. 자신의 절친이자 전우인 올리비에도 대주교도 전사합니다. 이제 자신도 곧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더라도 프랑스가 롤랑은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했으며 그리고 눈을 감기 전 자신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했음을 기억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확실해진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롤랑은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올립니다.  



       주님, 제 잘못을 인정합니다. 진리의 샘이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사자의 굴에서

       다니엘을 지키신 하나님,  

       제가 태어난 그 때부터 지금 제 인생이

      끝나는 이 순간까지

      제가 저지른 죄를 용서 하소서

     (176, 2383-88)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 그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 합니다. 뿔피리 소리를 들은 샤를마뉴 대제가 군대를 돌려 싸움터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모두가 전멸한 뒤였습니다. 이교도들은 왕의 군대가 오자 혼비백산 전부 도망을 치지만 왕은 이들을 에브로 강까지 추적하여 전부 몰살시킵니다.  

   

   왕은 롤랑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올려 그의 죽음을 애도한 후 롤랑을 죽게 만들도록 계략을 꾸민 가늘롱을 반역죄로 재판에 회부합니다. 가늘롱은 자신의 행동은 자신을 해하려는 롤랑에 대한 복수이지 반역은 아니라고 항변을 합니다. 재판부의 일원인 티에리는 가늘롱은 황제를 위해 싸우는 롤랑에게 복수를 했으므로 결국 황제에 대한 배신이며 이는 곧 프랑스에 대한 반역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가늘롱의 친구인 피나벨은 이 주장을 반박하며 티에리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둘이 싸워 진실을 가리자는 겁니다. 중세시대 진실을 결정하는 방법으로 승리자가 곧 진실입니다. 멧 데이몬이 나오는 중세시대를 다룬 영화『최후의 결투』에도 나오는 장면이죠. 가늘롱 친구인 피나벨은 마동석 같은 근육질의 전사이고 티에리는 갸날픈 몸매의 남작입니다. 피나벨은 이겨서 친구를 구해주고자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하늘이 그 둘의 싸움에 간섭을 하고 결국 훨씬 약한 티에리가 승리를 합니다. 이렇게 가늘롱이 반역자임이 밝혀지고 그는 처단 되며 서사시는 막을 내립니다.   

   

크리스천 기사의 이미지

  『롤랑의 노래』의 작가는 롤랑을 통해 크리스천 영웅상을 제시합니다. 크리스천 영웅은  롤랑처럼 하나님의 대리인인 왕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전쟁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감한 전사이고, 국가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해야 합니다.  또 롤랑같이 오만의 죄를 범하지만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크리스천 신앙인의 모습도 지녀야 합니다. 롤랑은 위험에 빠졌을 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오만함의 죄를 범하고 맙니다.  오만함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하나님이 오만함을 싫어하시는 이유는 인간이 그 오만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롤랑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저지르는데 문제는 이를 고백하고 회개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느냐 하는 점이며 이 용기를 지닌 자만이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나는 겁니다. 작가는 롤랑을 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봉건제도의 기사도 정신의 화신이며 또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곁으로 간 그리스천의 영웅으로 추앙합니다. 배신자 가늘롱의 계략에 빠져 크리스천의 패배로 시작했던 사라센 제국과의 전쟁은 결국 롤랑의 정신을 이어받은 크리스천 프랑스군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이후 실제 십자군의 진군소리를 들으면서 구전으로 돌아다니던 롤랑의 노래가 필사본으로 옮겨졌을 거로 추정이 됩니다. 노래를 글로 옮기는 사람의 염원 또한 하나님 전사의 승리이겠죠. 승리를 위해선 롤랑 같은 기독교적 영웅이 많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려 깊지 못하고 무모하지만 용감하며 신앙적 열정을 소유하여 자신이 섬기는 왕과 하나님을 위해선 목숨도 초개 같이 버리는 크리스천 영웅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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