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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Sep 07. 2022

『베오울프』: 중세시대의 성경적 영웅을 그린 서사시

   서기 5 세기. 영원할 것 같았던 로마제국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건국 초기부터 거의 400 여년에 걸쳐 끊임없이 독일계 민족들의 크고 작은 공격을 받아 왔던 로마 제국. 초기에는 승승장구했던 로마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패배하는 빈도수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외부적으로 공격을 받고 여러 가지 내부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로마제국은 서기 286 년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뉘게 됩니다. 독일계 민족들의 공격은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했고 서로마는 지배하던 브리타니아 섬(영국)에서 서기 409년 철수를 결정 합니다. 로마 본토까지 쳐들어온 독일계 민족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 년 후인 서기 410년  로마가 함락되고 그후 60여년을 버티다 결국 서기 476년 서로마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 후 하나의 거대한 제국이었던 유럽은 여러 개의 왕국으로 분할되기 시작합니다. 중세 시대의 시작입니다.

  

  새 시대를 맞이한 유럽. 통치시스템부터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정치와 교회의 연합이요 결탁입니다. 중세 시대의 통치체제인 봉건제도는 로마시대의 교회의 조직을 닮았습니다. 교회를 보면 중앙인 로마에 교황이 있고 각 지역에는 교황이 임명한 대주교, 수도원장, 신부 등이 관리합니다. 관할지역의 자치권이 인정되지만 중앙의 교황 지시는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봉건제도도 왕국의 수도에 왕이 있고 각 지역에 왕이 임명한 혹은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영주들이 있습니다. 지방의 영주들은 왕으로부터 지방의 통치권을 인정받는 대신 왕국이 위험에 처할 때 기사를 비롯한 군대를 지원합니다. 로마가 막 무너지고 새로운 왕국들이 생겨날 때 왕이 있는 중앙정부는 침략자들을 홀로 방어하기엔 힘이 부족한 시기에 교회조직을 벤치마킹한 생긴 지배체제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새로운 통치체제하에서 지배계급들은 기독교의 사상을 통치 이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임명하시므로 왕의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온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듯이 왕을 따르라는 겁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서로마가 멸망할 때 즈음인 서기 400 년에서 500 년 사이에 이미 무주공산이 된 영국으로 덴마크, 네덜란드, 북부 독일 둥지에서 살고 있던 앵글로 색슨족이 영국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략 이 즈음에 『베오울프』가 탄생합니다. (저자 미상의 이 서사시는 구전에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훗날 누군가에 의해 8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필사본으로 제작 됩니다. 제목도 없던 상태라 서사시의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베오울프』라고 명명합니다.) 『베오울프』는 영국 문학이지만 그 배경은 영국이 아니라 데인 (덴마크)과 기트국 (스웨덴)입니다. 영국의 앵글로 색슨족이 덴마크, 네델란드, 북부 독일 둥지에서 영국으로 이주해오기전 그들 조상 베오울프의 영웅적인 행동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국에 막 정착한 앵글로 색슨족이 처음 접한 베오울프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의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스 혹은 천둥의 신 토르같은 전통적인 영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새 시대의 새 영웅입니다. 그는 나를 위해 싸우는 영웅이 아니고 이웃 나라를 위해 싸우는 크리스천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그렌달과 싸우는 베오울프

 

   서사시는 데인(덴마크)이라는 나라에 괴물이 출현하여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괴물의 이름은 그렌달. 작품에 묘사된 그렌달 또한 전통적인 괴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유형입니다.  베어울프 작가는 그렌달을 창조주께서 저주하시고 추방시킨 가인 족의 후손이라고 강조를 합니다. 문학사상 처음으로 고대의 신화적 색채와 성경적 유전자가 합쳐진 일종의 하이브리드 괴물이 출현한 겁니다.



       그는 한동안 황량한 습지에서    

       추방당한 괴물들과 함께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창조주께서 저주하시고

       내치신 가인의 후예들이죠. (105-7)



그렌달은 괴기한 모습에 무지막지한 힘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가인의 후손답게 시기하고 질투하는 괴물입니다. 그가 시기하는 대상은 서로 어울리며 즐겁게 노는 인간들이며 자신의 질투를 잠재우는 유일한 길은 이들을 죽이는 일 뿐입니다. 나를 왕따 시키고 지들끼리 히히덕 거리다니.... 그는 식식거리며 인간들을 살해하려 집을 나섭니다.    



       그래서 저녁이 되자 그랜달은 왕국

       으로  출발합니다. 그들이 술을 마시고

       논 후에 어떤 꼴로 있는지 보고자

       함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데인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실컷 먹고 잠자느라  

       고통과 인간의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죠.



       갑자기 신의 저주를 받은 괴물이

       난장판을 만듭니다.

       탐욕스러우며 끔직한 모습의 그는

       30명을 움켜쥔 뒤

       궁전에서 그의 소굴로 달려갑니다.  

       공격으로 상기되고 불타오르는 감정으로

       난도질을 한 시체를 갖고

       어쩡쩡한 걸음으로 되돌아 옵니다.



       하룻 밤 뒤 무자비한 그렌달은

       다시 공격하여 더 많은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천성이 사악한 그에게는 후회란

       없습니다. (115-127)



그렌달은 이러한 살인을 장장 12년 동안이나 저지릅니다. 그렌달의 이러한 행동을 보면 그는 현대범죄에서 말하는 연쇄 살인마의 프로파일에 더 가깝습니다.  연쇄살인범 연구가들이 말하는 연쇄살인마들은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엄마에 의해 양육, 2. 남과 어울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왕따의 경험 3. 반사회적 성향의 정신병자로 성장 4. 공감능력이 전혀 없으며 잔인하며 자신의 범죄행위에 후회가 없음.  먼저 그렌달도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에 의해 양육됩니다. 그의 아버지가  데인국의 왕인 호소가에 의해 살해 된 탓입니다. 두 번째, 저주 받은 가인의 후예답게 어둠 속에서 혼자 지내며 서로 어울리며 즐겁게 노는 사람들을 시기하며 부러워하며 질투합니다. 반사회적 성향이란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살해 시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을 못하며 또한 자신의 행위에 전혀 후회를 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괴물이 순수하게 힘에만 의존하는 잔인한 동물같은 존재였다면 이제 세상은 범죄자 같은 어두운 내면의 세계를 가진 새로운 종류 즉 인간을 닮은 괴물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렌달은 데인국의 왕을 건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왕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오울프 시인은 왕의 자리와 그 권력은 하나님으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합니다. 왕국의 통치에 왕과 하나님이 연대하는 시대가 시작된 거죠. 황제가 곧 신인 로마시대 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개념입니다. 그렌달의 무차별적 살육은 계속되는데 데인국에서는 이 악마를 처치할 용사는 없고 급기야 왕과 그의 무사들은 그들의 왕궁을 떠나기로 결심을 합니다. 국가적 재난이 시작된 겁니다. 이에 베오울프 작가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데인국의 백성들에게 안타까움을 표시합니다.



       선과 악의 전지전능하신 심판자

       하늘의 왕이시며 세계 최고의 왕이신

       우리의 주님을 그들은 알지 못하니

       고통의 시기에 도움을 청하지 않고

       영혼을 불길로 던지는 자는 저주를 받고

       죽음 후에 주님께 다가가 아버지 품에 안겨

       사랑을 찾는 자는 축복을 받으리니.  (180-8)



이 소식을 들은 이웃나라 기트국(스웨덴)의 왕자 베어울프가 어려움에 처한 데인국을 돕기 위해 먼 길을 나섭니다. 이 역시 새로운 유형의 영웅입니다. 그 당시 세상은 자기나라가 처한 위험에 맞서 싸우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영웅의 모습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오울프는 나나 우리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위험에 처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겁니다. 이제 세상은 그리스 로마나 북유럽의 신화의 영웅들처럼 힘과 용기를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성경적 가르침을 실천하는 새로운 영웅을 보게 됩니다. 시인은 바로 이런 모습의 베오울프를 통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기트국의 왕자는 14 명의 가장 용맹한 전사를 뽑아 배를 타고 위험한 바닷길을 건너옵니다. 베오울프가 그렌달을 제거하려 멀리서 배를 타고 왔다는 소식을 접한 데인국의 왕의 반응 역시 크리스천답습니다.  


     

       자 성스러운 하나님 아버지께서께서

       은총의 표식으로 그를 서쪽 데인국으로

       인도 하셨도다 . 우리를 그란델로부터   

        보호하시도록 (380-382)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젊은 베어울프가 그의 힘과 용기를 천하에 자랑하고 싶어 함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직은 옛 영웅의 코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즉 제어되지 않은 모습의 전사인 셈입니다. 힘과 용기는 차고도 넘치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덜 다듬어진 젊은 베어울프와 그렌달과의 한판 승부가 벌어집니다. 그렌달의 악은 그 어떤 전사의 칼날도 무디게 만드는 힘이 있어 그의 몸에 작은 상처하나 내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기트국 왕자의 힘과 용기 앞에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베어울프와의 싸움에서 양손이 떨어져나가고,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후 피를 흘리면서 자신의 은신처로 도망을 가지만 결국 그곳에서 최후를 맞게 됩니다.

   

7세기 앵글로 색슨 족의 무덤에서 출토된 칼 자루  

 

   그렌달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는 기쁨으로 환호하고 왕은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베오울프를 데인국으로 보내신 이도 하나님이요, 그렌달을 물리치는 기적을 연출하신이도 하나님이시요, 그리고 결국 베어울프의 영광도 사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크리스천다운 반응입니다. 왕은 베오울프에게 그의 공적을 치하하면서 선물을 줍니다. 금으로 된 배너와 헬멧, 갑옷, 값비싼 칼에다 말도 여덟필을 하사합니다. 게다가 베오울프를 가슴으로 낳은 자신의 아들임을 온 왕국에 천명합니다. 봉건 제도의 핵심으로 이른바 선물정치입니다. 왕이 신하의 용기와 충성에 대해 내리는 물질적인 보답은 체제를 유지하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베어울프는 승리를 쟁취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은연중에 오만함을 드러냅니다. 이 작품에서 왕을 통해서 나타나는 크리스천의 가치와 베어울프를 통해서 나타나는 과거 영웅의 코드가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거죠. 그러나 왕은 조금씩 베어울프에게 기독교의 가르침을 전해 줍니다. 겸손이 빠진 오만함은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올 것이며 부는 하나님의 은혜로 생긴 것이니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베어울프가 성경적인 가치를 깨달으며 조금씩 진정한 크리스천의 용사로 변모하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렌달이 죽은 후 이제 그의 어미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자에게 복수를 하고자 결심을 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고대 정의 시스템에 따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어미 역시 베오울프의 상대가 되지를 못했습니다. 어미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베어울프는  그가 이제 완전히 새 시대의 새로운 영웅으로 거듭났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단칼에 죽었을 거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보호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며  자신의 승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여깁니다. 그렌달을 자신의 힘으로 물리쳤노라고 자랑하던 철없는 용사에서 이제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도구인 크리스천의 용사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지상의 왕권, 인간의 지혜, 그리고 인간이 가진 모든 보물들 이 전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이제 진정으로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이후 데인국의 왕으로부터 많은 보물을 선물로 받고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기트국의 왕으로 등극합니다.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치명상을 입은 베오울프

 

 이제 세월이 흘러 베오울프가 늙습니다. 바로 이때 그의 나라는 드래곤의 습격을 받습니다. 이제 늙고 힘이 없어진 베오울프.  그가 젊고 힘이 넘쳤을 때는 늘 건장한 용사들이 그를 따랐지만 이제 그를 따르는 용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힘 없는 왕 옆에서 싸우다 다치면 자기만 손해 아닙니까? 게다가 싸우다 왕이 죽어버리면 그를 따르던 전사들은 누가 알아 줍니까? 공적을 치하하고 그에 걸 맞는 하사품을 줄 왕이 죽어버렸는데 말입니다. 비정해 보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누가 힘이 있고 없는지를 귀신같이 알고 처신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서사시는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나아갑니다. 베오울프의 옆에는 단 한 명의 용사만이 왕과 끝까지 싸우고자 합니다. 그의 부하 위그라프입니다. 베오울프는 위그라프의 도움을 받아 혼신의 힘을 다해 드래곤을 물리치지만 그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그만 전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바칩니다. 진정한 크리스천 영웅의 모습입니다.   


     

       내 앞의 보물들을 내가 죽기 전

       나의 민족에게 남겨줄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영원하신 모든 이의 주님

       영광의 주님께 감사를 바칩니다.           

       (2785-2798)         

  



위그라프는 왕을 버리고 도망친 기트국의 용사들을 심하게 꾸짖습니다. 이제 왕은 죽었고 겁쟁이들만 남은 기트국의 운명도 불안합니다. 주변은 호시탐탐 기트국을 넘보는 세력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왕의 죽음은 기트국의 불안한 미래를 암시하는 메타포입니다.  베오울프의 장례식이 엄수되며 서사시는 막을 내립니다.   

   

   베오울프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의 영웅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해 싸우며 나의 영광보다는 왕을 수호하고 백성의 안녕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그리고 싸워서 쟁취한 전리품은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줍니다. 이 승리는 내가 강해서 내가 잘나서 이긴 승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이긴 승리입니다. 기나긴 세월을 유럽에서 방랑하다가 이제 막 영국에 정착하여 통치체제를 정비하기 시작한 앵글로 색슨족이 원하는 인물상이요 영웅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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