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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Dec 15. 2023

『위대한 유산』: 야수와 신사 (4)

“겉모습에 현혹되지 마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부에 있으니.” (『미녀와 야수』)       


   핍은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어린아이였습니다. 추운겨울 하룻밤을 묵어가게 해달라는 추한 노파의 요청을 거절한 왕자와 달리 핍은 쫓기는 탈옥수 매그위치(magwitch)를 도와줍니다. 매그위치는 이름(magician plus witch)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추한 노파로 변장한 아름다운 마녀”와 우리나라『흥부와 놀부』에 나오는 “다리 부러진 제비”가 적절하게 섞인 캐릭터입니다. 그는 제비가 자신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해준 흥부를 생각하듯 자신을 도와준 어린 핍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잡힌 후 호주로 영구 추방되고 유형지에서 고생 끝에 엄청난 돈을 법니다. 그는 자신이 번 돈으로 핍을 신사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가 핍에게 주고자하는 유산은 제비가 흥부에게 물어다 준 박씨인 셈입니다. 그는 “핍에게 이름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다소 특이한 조건을 겁니다. 매그위치에게 핍이란 이름은 어려움에 처한 자신을 도와준 그 순수한 마음을 상징하며 그 순수성을 끝까지 지키라는 당부였습니다.

   

  

   그러나 핍은 그 순수성을 서서히 잃어버립니다. 그는 성장하면서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왕자를 닮아갑니다. 그는 미스 해비샴 집에 초대 받아 에스테라를 만난 후 새로운 세상-사치스럽고 화려한 그러나 실상은 겉만 번지르르한 상류사회-에 현혹됩니다. 핍은 영국의 상류사회로의 입성을 꿈꾸고 있던 차에 위대한 유산을 받게 됩니다. 핍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후원자를 미스 해비샴으로 생각합니다. 핍은 부엌과 식탁이 함께 있는 하층민의 삶과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자 매형인 그러나 무식하고 거친 조로부터 벗어날 기회가 생긴 겁니다. 런던에 도착한 핍은 익명의 후원자가 고용한 변호사인 재거스의 주선으로 매튜 포켓의 집에서 젠틀맨 수업을 받습니다. 그리고 매튜의 아들 허버트 포켓과 만나는데 그는 핍의 젠틀맨 교육을 위한 조교이자 베프(best friend)가 됩니다. 그는 핍에게 아버지의 말임을 인용 진정한 젠틀맨은 겉이 아닌 마음에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 마음속으로 젠틀맨이 아닌 남자는 아무리 훌륭한 매너를

     갖춘 젠틀맨이라 해도 진짜 젠틀맨이 아니다. 그는 니스 칠을 해도 나무의 결을

     감출 순 없다고 하며 오히려 니스를 바르면 바를수록 나무 결은 더 잘 드러나는

     법이라고 말했다. (120)


여기에서 니스 칠은 겉만 번지르르한 신사모, 정장, 구두 그리고 (영혼없는) 말솜씨와 매너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원래 매튜 포켓이 자신의 사촌인 재벌 딸 미스 해비샴에게 접근하는 (온몸에 니스를 바른 듯)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 젠틀맨 컴페이슨을 조심하라는 취지로 한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핍을 겨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핍은 런던에서 젠틀맨 수업을 받는 답시고 하는 일이라곤 비싼 옷을 입고 비싼 가구를 들여놓고 파티를 즐기며 흥청망청 돈을 쓰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핍은 조가 런던에 온다는 연락을 받자 매형의 방문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이렇게 토로합니다.  



     비록 그와 나는 여러 면으로 엮여있었지만 그의 방문이 반갑지 않았다. 전혀.

     마음은 심란해졌고 굴욕감도 느꼈으며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했다.

     돈을 주어서 그를 못 오게 할 수 있다면 난 돈을 지불했을 것이다.  (240)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하층민 언어를 쓰며, 교육도 못 받은 조와 잠시라도 함께 있는 모습을 아는 사람에게 들킬까봐 맘이 조마조마해진 핍은 이제 더 이상 매그위치를 구해줄 때의 순수한 마음의 꼬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추운 겨울 도움을 요청하는 추한 노파를 내칠 때의 바로 그 왕자로 변해있었습니다. 이런 핍의 마음을 눈치 챈 조는 핍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핍, 내 오래된 친구여 인생은 많은 조각이 서로 합쳐진 결과물이야. 말하자면

     누구는 블랙 스미스(대장장이)  누구는 화이트 스미스(철 세공가) 골드 스미스

     (금 세공가) 누구는 구리 스미스 (구리세공가) 들이지. 사회는 필연적으로

     나누어지게 되어 있고 그들이 서로 부닥치게 되어 있어. (246)



사회는 필연적으로 여러 계층으로 나뉘어지게 되어 있으며 이 계층의 차이를 인정하고 또 서로 존중해 주자고 말합니다. 즉 금을 세공한다고 높은 사람이 아니며 대장간에서 철을 두드린다고 낮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어갑니다.     



     나는 지금 엉뚱한 옷을 입고 있어. 내가 대장간이나 부엌 혹은 쇠철망에서

     벗어난다면 난 물을 떠난 물고기나 다름없지. 내가 대장장이 옷을 입고 있고

     내 손에 망치를 혹은 파이프를 들고 있다고 네가 상상한다면 나에 대한 문제점을

     반도 못 찾을꺼야. 대장장이인 내가 낡은 모루에서 불에 그을린 앞치마를 하고

     하던 일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혹시 네가 와서 대장간 창문을 통해 본다면

     아마 내가 그렇게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 못할 거야. 나는 끔찍하게 무딘 사람이야.

     그러나 이걸 두드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물건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지. (246)      



한마디로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번지르르한 니스 칠로 사람의 본질을 감출 수는 없으며 자신은 대장장이로서 족하고 행복하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신사 놀이하면서 어느새 속물로 변해버린 핍을 향한 간접적인 비판입니다. 그는 단순하고 무식하고 헤라크래스 같은 힘을 소유한 거칠기 그지없는 인물이지만 정직하며 겸손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야수가 미녀의 사랑을 얻고 왕자로 복귀하듯이 핍도 그가 경멸했던 매그위치와 조의 변함없는 사랑을 통해 잃었던 순수함을 되찾게 됩니다. 핍은 시간이 지나면서 매그위치와 조의 내면의 가치를 깨닫고 속물같이 행동한 자신을 반성하고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먼저 후원자 매그위치가 핍 앞에 나타납니다. 그는 그 옛날 자신을 도와주었던 순수한 마음의 핍을 죽기 전 한번 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유형지 호주에서 다시 체포될 경우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런던 행을 택합니다. 핍은 매그위치를 만나자 혼란에 빠집니다. 자신의 후원자가 미스 해비샴이 아니라 생각만 해도 혐오스럽고 끔찍한 범죄자 매그위치라니. 그는 핍처럼 고아로 태어나 사회의 냉대 속에 먹고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범죄자가 된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비록 겉모습은 세파에 찌들어 혐오스럽기 그지없지만 마음은 착한 사람입니다. 신사를 숭배하는 영국, 신사만이 사람대접을 받는 영국 사회에서 자신은 하층민으로 온갖 불이익을 받으며 개돼지처럼 살았지만 자신에게 따뜻한 마음씨를 보여준 핍은 신사가 되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기를 바랐던 겁니다. 그는 핍을 자신의 양아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매그위치는 결국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 받습니다. 핍은 이런 매그위치에게 감동을 받고 그를 다시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핍은 감옥에서 병이 걸려 죽어가는 매그위치를 끝까지 지켜주며 그를 자신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핍의 그레이트 익스펙테이션스(신사가 되고자 하는 위대한 기대와 그 꿈을 실현 시켜줄 엄청난 유산)는 모두 태양 앞의 안개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자신의 돈의 출처를 안 핍에게 신사가 되는 꿈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늘 핍을 냉대했던 에스텔라도 이미 귀족이라고 온갖 거만을 다 떠는 드러멀과 결혼을 했습니다. (사랑 없이 한 모든 결혼생활의 끝이 그렇듯 둘의 결혼 역시 파탄으로 치닫고 남편은 말에 치여 객사합니다.) 이후 핍은 시름시름 앓게 됩니다. 핍의 아픔은 그의 정신적인 재탄생을 위한 과정입니다. 병이 든 핍의 곁에는 그가 멀리하려 했던 조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핍은 조에게 못 되게 행동한 자신을 반성하며 이렇게 속삭입니다.     



     “오 신이시여 그를 축복하소서 이 젠틀 크리스천 맨을 축복하소서!” (472)



핍은 자신이 혐오했던 조에게서 마침내 진정한 젠틀맨을 발견합니다.  “난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 하며 집에서 도망쳤지만 결국 커서 엄마 아빠의 한결같은 사랑을 깨닫고 후회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19세기는 프랑스혁명으로 신분제도가 와해되고 산업혁명으로 산업구조가 농업에서 상공업으로 재편되는 새 시대였습니다. 영국은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젠틀맨 상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찰스 디킨스는 젠틀맨의 가치는 젠틀(피, 매너, 패션, 명품)에 있지 않고 맨(내면, 인간다움)에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위대한 젠틀맨은 끝까지 신의를 지키며 거짓말을 싫어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사랑하며 묵묵히 수행하며 사는 조 같은 인물입니다. 사람을 신분, 재산 혹은 직업이 아닌 오직 내면의 가치로 판단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은 찰스디킨스가 우리에게 남겨준 “위대한 유산”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21세기 니스 칠에 해당하는) 성형, 가짜 학위, 명품 백, 롯데 시그니엘, 럭셔리 스포츠카에 혹하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망각하기도 쉬운 유산”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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