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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Jan 18. 2024

"이상한 나라"에서 정체성 찾기(2)

"난 나에게 맞는 사이즈로 다시 자라야해" (엘리스)  



   몸이 생쥐처럼 작아져 이상한 나라로 온 엘리스. 그녀는 낯선 환경에서 갖가지 이상한 일들을 경험합니다. 3 장 (원형 달리기와 긴 이야기)에서 생긴 일부터 알아봅니다.  

   

   엘리스는 자기가 흘린 눈물에 빠져 헤엄을 치고 있던 중 같은 물 웅덩이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쥐도 만나고 곧이어 이상한 모습의 동물들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모두 물에서 나와 강둑위로 올라갔습니다. 진흙 투성이 깃털을 가진 새들, 털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동물들 모두 물에 젖어 물방울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심기가 불편해보였습니다. 이들은 모여서  어떻게 몸을 말려야 하는 지를 놓고 회의를 시작합니다. 이 문제를 놓고 엘리스는 로리란 이름의 새와 논쟁을 벌이던 중 로리는 기분이 상했는지 “난 너보다 나이가 많아 그래서 더 잘 알아.” 라고만 반복 합니다. 엘리스는 나이를 “알아야 인정을 해주지” 라고 말하지만 로리는 나이를 밝히기를 거부합니다. 이제 생쥐가 나섭니다. 그는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치지만 엉뚱하게도 정복자 윌리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회의는 이상한 곳으로 빠져 주제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로 갑론을박합니다. 이때 도도(날지 못해 멸종된 새)가 나서 원형 달리기를 제안합니다. 뛰어서 몸을 말리자는 발상입니다.  삼십분 동안 열심히 뛰니 몸이 마르기 시작하고 도도는 “레이스 끝”이라고 외칩니다. 누군가 “누가 이겼나?” 라고 외치자 도도는 “우리 모두 다 승자지.” 라고 대답합니다. 엘리스는 이 모든 게 아주 웃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심각해 보였고 그녀는 감히 웃을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엘리스가 처음 겪는 일들은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시작하는 사회생활을 연상시킵니다. 소수의 지적 혹은 사회적 금수저를 제외하곤 모두가 눈물로 시작하는 사회생활. (97년에 귀국하여 학교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고생한 저 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의 초년생들이 시작단계에서 겪었던 아픔을 나타냅니다)  루이스 캐롤은 이야기 전개상 (눈)물에 빠진 동물들이 몸을 어떻게 말릴 것인가에 대한 회의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이를 이용해 비효율적인 회의를 풍자합니다. 회의를 하면 꼭 상대의 의견을 (로리처럼) 나이로 누르려는 사람들도 있고 (생쥐처럼)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만 직장상사라 지적도 못하고) 회의는 “원형 달리기”처럼 빙빙 돌다가 “누가 이겼고” “상은 무엇이고” “상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하면서 점점 엉뚱한 방향을 향해 흘러갑니다. 우리 모두 사회생활하며 이런 경험 한 두 번 쯤 해보았으리라 생각됩니다. 회의가 캣 휠 돌 듯 끝도 없이 빙빙 돌고 돌아 결국 끝났지만 무슨 회의를 한 거지? 하는 경험 말입니다.  속으로 “이거 아주 웃기네” 라는 생각이 들지만 감히 웃을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승자야”하는 도도의 말은 사실 “우리 모두 패자야”와 같은 말입니다.    

   


   그 후 엘리스는 다시 양복 입은 토끼를 만나게(챕터 4: 도마뱀을 부른 토끼)됩니다. 토끼는 엘리스를 보자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 지릅니다. 



     “아니 메리 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집에 냉큼 뛰어가서 내 장갑과 부채를 

     가져와.“ 그녀는 깜짝 놀라 토끼가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을 겨를도 없이 토끼가 

     가르킨 방향으로 뛰어 갔습니다. “나를 자기의 하녀로 착각하다니. . . . 내가 

     누구인줄 알면 그는 얼마나 놀랄까?“ (42)



토끼의 심부름 명령을 받은 엘리스는 집에 들어가게 되는데 작았던 몸이 이상하게 다시 몸이 커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엘리스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훨씬 좋았지. . . . 몸이 커지거나 작아질 필요도 없었고 그리고 

     생쥐와 토끼한테 명령을 받을 일도 없었고. 토끼굴에 빠지는 게 아니었는데  

     그렇지만 이쪽 생활도 너무 궁금하잖아. 다음엔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동화책을 

     읽을 때 이런 일들은 안 생긴다고 생각했었지 근데 지금 내가 그 일들의 한가운데 

     있네. 나에 관해 책이 쓰여져야해. 반드시. 내가 자라면 쓸 거야. 근데 나는 지금 

     다 자라 어른이 되지 않았나?  슬픈 톤으로 덧붙입니다. 최소한도 여기에서는 

     더 자랄 여지가 없어. (46) 



   엘리스가 이상한 나라인 사회에서 두 번째로 경험하는 일은 정체성 혼란입니다. 그 시작은 토끼의 심부름 명령입니다. 대부분의 (을의 입장인) 사회 초년생들은 가끔 상사의 엉뚱한 지시를 받곤 합니다. 물론 요즈음은 제가 처음 직장 생활하던 80년 대 초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합니다. 일요일 쉬는데 상사가 운전을 부탁하기도 하고 강아지를 봐달라는 지시도 합니다. 엘리스의 “내가 누구인줄 알면 얼마나 놀랄까?”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난 교사이지 교장선생님 커피 타주는 급사가 아닙니다.”입니다. 때로 내가 아닌 나를 강요하는 사회.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적응하려면 나를 버려야 하고 (엘리스처럼) 무한히 작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몸으로 생활하다가도 집에 들어오면 (엘리스처럼) 몸이 커집니다. 집에서는 내가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에 있을 때가 훨씬 좋았지”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다 자라 어른이 된 엘리스의 슬픈 숙명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 즉 매일매일 일어나는 신체의 크기의 변화는 모든 사회 초년생이 겪어야 할 숙명입니다. 

 

  

 엘리스는 숲을 걸어가다 버섯위에서 물 담배를 피우는 애벌레(챕터 5: 애벌레의 충고)를 만나 다음과 같이 대화를 나눕니다.    

     

     

     “넌 누구냐?” 애벌레가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이순간은 잘 모르겠는데요, 선생님.” 적어도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내가 누군지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 후로 전 몇 번이나 변한 게 틀림없어요.“ 

     “뭔 말이야?” “설명해보셔.” 

      “죄송하지만 설명할 수 없어요.” . . . 왜냐하면 전 제가 아닙니다.  

      “이해 할 수 없는데.” 애벌레는 말했습니다. 

      “그 이상 분명하게 말할 수 없어요. 먼저 제 스스로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하루에도 이렇게 수 없이 다른 사이즈로 변하니 너무 헷갈려서요." (60)

     


몇 분간의 침묵이 흐른 후 애벌레가 무슨 사이즈를 원하는데?라고 물어봅니다. 그러자 엘리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이즈에 집착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너무 자주 변하는 게 싫을 뿐입니다.  . . . 조금 더 컸으면 해요. 3인치는 정말 끔찍한 크기입니다.” 애벌레는 엘리스에게 몸이 커지고 작아 질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이 앉아있는 버섯을 먹으면 된다고 가르쳐줍니다. 버섯의 한쪽은 몸이 커지고 다른 쪽은 작아진다고 말하지만 어느 쪽이 커지고 작아지는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버섯을 이 쪽 저쪽 다 떼어 내어 순서 없이 막 먹는데 목 뱀처럼 길어집니다. 그때 지나가던 비둘기가 소리칩니다.            

     

     “뱀이다.” “난 뱀이 아니야.” 엘리스가 화를 내며 응답했습니다. 비둘기가 반복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넌 뱀이야.” 그러나 보다 작은 흐느끼는 소리로 말했               습니다.   . . . “그러나 난 뱀이 아니야. 난 난” . . . “그럼, 넌 도대체 누구야?” 

     비둘기가 물어봅니다. “난, 난 작은 소녀예요.” 그러나 혼란스런 엘리스는 이마저         도  확신  할 수 없었습니다. (71)    

     

     

비둘기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엘리스는 긴 목과 알을 먹는 뱀의 특징을 가졌으니 뱀이 틀림 없다는 생각입니다. 비둘기는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엘리스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나의 정체성은 고정된 게 아니었나?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나와 을로 살아가는 과정은 만만치 않습니다. 작은 사이즈를 강요받기도하고 또 알아서 작아지기도 합니다. 은행 창구 여직원에게 점심시간에 밥을 짖고 설거지를 강요하고 교사에게 (원격)수업시간에 맞추어 자신의 아이에게 “모닝콜”을 요구하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우리사회는 (빅토리아 사회처럼) 우리로 하여금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이즈와 모습을 갖고 살아가기를 강요합니다. 그래서 피곤해진 엘리스. 결국 그녀는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난 아주 작은 존재로 지내는 게 너무 피곤해요.” . . . 첫 번째로 할 일은 

     나한 테 맞는 사이즈로 다시 자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사랑스러운 

     정원으로 가는 길을 찾는 일이야. 그게 최선의 계획이야. (54)




인간 사회에서 살기위해서는 먼저 나한테 맞는 최선의 사이즈와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스러운 정원" 즉 유토피아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장소라는 유토피아의 의미처럼 내 사이즈에 딱 맞는 그래서 커지거나 작아질 필요가 없는 그 사랑스러운 정원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상한 나라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은 이후에 엘리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다음에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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