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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Jan 14. 2024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 나는 누구인가?(1)

           “도대체 나는 누구야? 아 그건 정말 수수께끼야.“ (엘리스)



   1862년 7월 4일 나른한 오후. 루이스 캐롤(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돋슨)과 엘리스 세 자매(로리나 엘리스, 에디스)는 함께 강가로 소풍을 갑니다. 당시 루이스 캐롤은 옥스퍼드대학교 수학 교수로 같은 대학교 학장을 아버지로 둔 다섯 살 짜리 꼬맹이 소녀 엘리스의 수학 튜터였습니다. 작가, 사진작가, 논리학자, 수학자인 캐롤은 수학을 매개로 옆집에 사는 앨리스 리델과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호기심 많은 엘리스는 옆 집 아저씨만 보면 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애원하고 협박(?)했다 합니다. 강가로 보트 피크닉을 간 그날도 엘리스는 캐롤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고 캐롤은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 즉석 스토리는 3년이 지난 1865년 삽화와 함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란 제목으로 탄생합니다. 그 후 캐롤의 책은 전 세계 어린이들의 최애 환타지 소설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합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 한번 쯤 책이나 영화, 혹은 에니메이션으로 만난 경험이 있는『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오랜 세월의 힘을 견디고 살아남은 모든 고전이 그렇듯 이 환타지로 포장된 이상한 나라 안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사회와 우리 모습에 관한 진실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오늘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아래에 숨어 있는 인간의 모습—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크게 4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엘리스는 1) 강둑에서 언니와 함께 소풍을 즐기던 중 2) 사람 같은 토끼를 보고 쫓아가다 토끼 굴에 빠져 떨어져 3)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 온갖 이상한 경험을 하고 4) 갑자기 잠에서 깨어 자신이 꿈 속에서 겪었던 모험을 언니에게 이야기하며 끝납니다. 이 과정은 우리 모두가 겪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의 성장 프로세스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성장과정 그 첫 번째 단계입니다. 이야기의 시작부분을 읽어봅니다.            



     언니와 함께 강둑에 앉아 있는 엘리스는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할 일도 없고 해서 언니가 읽고 있는 책을 힐끔 힐끔 쳐다보았습니다.

     근데 무슨 책에 그림도 없고 대화도 없어? 엘리스는 생각합니다. 그림도 없고

     대화도 없는 책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서 그녀는 (따뜻한 날씨가 그녀를

     졸리고 멍청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데이지 꽃을 따서 데이지 체인을 만들어

     볼까 생각하던 바로 그때 핑크색 눈을 가진 하얀 토끼가 그녀 옆을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1)



누가 보아도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순간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안정되고 편안한 시기. 우리 인생에 이러한 시기는 단 한 번뿐입니다. 바로 우리가 태어나 가족의 울타리 아래서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살 때입니다. 한마디로 에덴동산 같은 시절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아플세라 다칠세라 오로지 사랑만 받는 아주 행복한 시기입니다. 행복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게 유일한 불행입니다. 에덴동산 밖의 삶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 평화로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그건 마치 신 구약 합해서 총 66권으로 구성된 성경에서 에덴동산 이야기가 차지한 부분만큼이나 짧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오히려 지루한 우리 어린 시절은 루이스 캐롤이 쓴 문장의 숫자처럼 짧고 빨리 지나 갑니다.

  

 


   그러다 성장하여 가는 곳. 바로 학교이며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준비 기간(통로) 같은 역할입니다. 이 스토리에서 엘리스가 굴에 빠지는 계기나 굴 안에 일어나는 일들은 엘리스가 (교육을 받으며) 다음 단계로 진행을 위한 준비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먼저 엘리스가 통로에 빠지는 계기를 살펴봅니다. 심심해하던 엘리스는 “늦었다고” 말하면서 뛰어가는 토끼를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말하는 토끼는) 별로 특이한 것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지. . . .  

     그러나 토끼가 양복 조끼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보며 서둘러 뛰어가자

     엘리스는 깜짝 놀랍니다. 양복을 입은 토끼도 못 보았고  양복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는 토끼도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호기심에 불탄 엘리스는 토끼를

     쫓아가기 시작합니다. (1)        



늦었다고 말하는 토끼를 보고도 별반 반응이 없던 엘리스가 조끼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보는 토끼를 보자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무작정 토끼를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이야기로 안내하는 키 역할을 하는 장면입니다. 늦지 않기 위해 뛰어가는 토끼의 모습은 시간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메타포입니다. 양복을 입은 토끼는 성인으로서 시간의 중요성(너무 중요해서 시간에 강박관념까지 생길 정도로)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사회인의 기본 중의 기본이 바로 시간약속을 지키는 일입니다. 또한 성인과 어린이의 결정적인 차이 중의 하나는 바로 시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있느냐 없느냐 일 것입니다.  우리의 성장과정을 보면 어느 순간 우리 머릿속에 시간의 중요성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시간은 돈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와 같은 격언들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는 순간이 옵니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바로 그 시기입니다. 시계를 보는 토끼를 따라가는 엘리스의 모습은 그녀도 시간의 개념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는 그녀가 이제 책에서 그림만 찾는 어린이에서 벗어나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머릿속에 시간의 의식이 들어온 순간 엘리스는 토끼 굴에 빠집니다. 인생의 두 번째 단계(학교생활)입니다. 인생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는 시기로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기간(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처음엔 토끼굴인 줄 알았는데 우물 같기도 하고 또 다른 곳으로 연결하는 “통로” 같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물이 아주 깊거나 아니면 그녀가 아주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강하면서 그녀는 주변을 둘러 볼  그 다음은 무엇이 일어날까를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 . .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이 하강은

     끝이 있는 걸까? (2)



이 통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연상시킵니다. 그녀는 떨어지면서 주변에서 찬장, 책꽂이, 벽에 걸려있는 지도들과 그림들을 보게 됩니다. 빅토리아 시대 학교 교실의 모습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멈출 줄 모르고 끝없이 내려가면서 (학생처럼) 공부도 합니다. 지구 중심까지의 거리계산(산수)도 해보고 정확한 뜻을 모르지만 어디서 들어 보았던 위도와 경도(과학)이야기도 하고, 나라 이름(지리)-호주인지 뉴질랜드인지-도 물어볼까합니다. 그리고 라임(국어)--Do bats eat cats?--도 만듭니다. 마치 엘리스의 학교생활을 슬로우 비디오로 재생하는 듯 이 통로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릅니다. 빠르게 지나 가는 분침 옆의 시침같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던 우리 학창시절 시간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길고 긴 터널(제 경우는 무려 19년)을 마침내 빠져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닥에 떨어진 엘리스. 늘 낯익은 곳(가족과 학교)에서만 지내던 엘리스가 처음으로 가게 된 낯선 곳입니다. 3 단계(사회생활) 진입 바로 직전입니다. 이 낯선 곳에 떨어지자마자 신체적인 변화부터 생깁니다.  병에 든 음료수를 마시고 몸이 25센티로 작아졌다 다시 케이크를 먹고 몸이 3 미터짜리 거인으로 변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이런, 오늘 모든 게 이상하네. 어제는 모든 게 평소대로 지나갔는데.

     밤사이에 내가 변했나?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난 변함없었나? 내가 약간

     달라진 것 같기는 한데. 근데 내가 달라졌다면 다음 질문은  “도대체 나는

     누구야? 아 그건 정말 수수께끼야.“ (9)



엘리스는 자신이 혹시 자신과 같은 또래의 다른 아이로 바뀌었나 의심합니다. 난 “아다”는 아니고 그렇다고 “메이블”도 아닌데.  ... 내가 “메이블”로 변했나? 내가 빠졌던 굴 위에서 고개를 들이밀고 “오 애야 이리로 올라오렴.” 이렇게 말해도 소용없어요. 그럼 난 올려다보고 이렇게 말할 거야. “그럼 난 누구예요?” 그걸 먼저 말해주세요. 혼란에 빠진 그녀는 통로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엘리스는 스스로 다 큰 애가 울다니 하며 그치려 하지만 폭포처럼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엘리스는 앞서서 뛰어가던 토끼가 떨어뜨린 부채를 주워 부치기 시작합니다. 통로 안이 너무 더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더니 몸이 다시 작아집니다. 몸이 줄어들자 자신이 흘린 눈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눈물에 휩쓸려 갇혀있던 통로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태어나 시간의 개념을 인식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할 무렵이면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난 누구인가?”입니다. 나의 정체 (아다인지 메이블인지) 나의 크기(25센티인지 3미터인지) 모두 자신의 정체성 혼란을 상징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사회로 나가기 전 스스로 정립해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극도로 작아진 몸으로 강물같은 눈물에 휩쓸려 이상한 나라로 나가게 되는 엘리스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정체성 혼란의 순간은 성경말씀대로 평생 배로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죽을 때까지 먼지를 먹고 살아야 하는 에덴동산 밖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며 자신이 흘리는 눈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순간입니다. 사회생활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극소소를 제외하곤) 누구나 “을”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몸을 낮추고 겸손해야 (즉 엘리스처럼 작아져야) 입장이 허용되며 또 환영받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이후에도 계속 됩니다. 실로 “이상한 나라”인 사회에서는 어디를 가던 “넌 누구냐?”를 끊임없이 물어보기 때문입니다. 이 "이상한 나라"에 서 벌어지는 일에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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