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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Apr 13. 2024

미국의 연예 문화

실비아 플라스의「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

오 결코 마음을 전부 주지 마라

왜냐하면 여성들은, 부드러운 입술로 말할지라도,   

그들의 진심은 사랑의 게임이니     

사랑으로 눈멀고 귀 멀고 말문마저 막힌다면

그 누가 사랑의 게임을 잘할 수 있으랴?

이 시를 쓴 자 비싼 대가를 치르고 깨달으니

그는 마음을 전부 주고도 사랑을 잃었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우리 딸이 결혼한 지 만 일 년 되었습니다.  제가 미국 유학시절 외동으로 태어난 우리 아이는 초중고 및 대학교를 한국에서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소재 주립 대학교에서 4년을 더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디자인 회사에 취직하여 근무를 하다 지금의 미국인 남편을 만나 작년 3월 31일 달라스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딸의 결혼 케이스를 통해 제가 간접적으로 경험한 미국의 데이팅 및 결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관련 시를 읽어 볼까 합니다. 먼저 청춘 남녀 교제문화부터 시작합니다.         

   

   결혼적령기를 넘은 나이에 그것도 저 멀리 미국에서 혼자 살고 있는 딸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늘 딸이 걱정되었고 좋은 남자 만나 빨리 결혼했으면 하는 맘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딸과 화상통화만 하면 남자를 만나라고 성화를 부렸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제 처의 조카가 카페에서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카페에 가서 좀 앉아 있으라고 다그쳤고 제 동료 교수 딸이 미국 한인교회에서 한국 청년을 만나 결혼했다는 소리를 듣고 신앙심 일도 없는 아이에게 한인 교회를 나가라고 닦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시작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 소식만으로도 그렇게 흥분되고 기쁠 수가 없었지만  데이트 상대가 미국아이라는 소리를 듣고 한편 걱정도 많았습니다. 미국남자는커녕 한국 남자도 제대로 사귀어 본 적도 없었던 아이였는데 과연 잘 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전력을 알 수 없는 상대와의 시합을 위해 막 경기장에 들어가는 자식을 보는 아빠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딸의 첫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딸로부터  남자가  첫 데이트부터 키스를 원해서 당황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방면 통계를 보니  미국 조사 대상자의 67% (한국은 30%)가 괜찮다고 응답한 것으로 보아 첫 데이트 키스에 미국인들이 한국인보다는 보다 개방적인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인데 말입니다.  첫 번째 상대는 결실을 이루지 못했고 두 번째 파트너를 거쳐  세 번째 남자와의 만남에서 마침내 뭔가 이루어질 것 같은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텍사스 반도체 회사에 근무하며 컴퓨터 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던 3년 연하의 미국 청년이었습니다.  

     

   우리 딸은  데이팅 앱을 통해 교제 파트너를 만난 케이스입니다. 말하자면 온라인 매칭 서비스입니다. 1995 년에 처음 생긴 온라인 중매업은 201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최근 통계를 보면 미국인 응답자의 45%가 온라인 데이팅 앱을 통해 짝을 찾으며 미국 결혼 커플의 네 쌍 중 한 쌍은 데이팅 앱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니 이젠 만남주선 사이트는 이젠 쇼핑을 원하면 찾게 되는 쿠팡이나 지 마켓 같은 온라인 쇼핑 몰처럼 일반화가 된 것 같습니다. 온라인 매칭 서비스 이용자 중 결혼 파트너를 찾기를 원하는 응답자가 44%이지만 가벼운 만남이나 (40%) 그중에서도 섹스를 즐기기 위한 만남 (24%)을 원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고 합니다. 결혼 39년 차의 해지는 세대(sunset generation)인 저의 입장에서는 데이팅 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안을 줄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해서 지켜보며 잘되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난 파트너와 교제를 할 때 (제 딸을 통해 배운) 두 가지 미국식 룰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3 개월 법칙(The three-month rule)입니다. 3개월은 탐색전 기간이며  첫 만남 이후 90 일 내로 좀 더 진지한 만남으로 발전시킬지를 서로 의논해서 정하라는 룰입니다.  DTR (Define the relationship) 단계이며 서로 만나는 목적을 명확히 정의하는데 3 개월이면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바라보는 곳이 다르다면 이런 만남은 빨리 정리하는 것이 서로에게 바람직합니다. 두 번째는 (공식적) 관계정립을 나타내는 언어적 신호입니다. 보통 3개월 이전에 남자가 시리어스 한 만남을 원하면 꽃다발을 준비하고 “내 여자 친구가 돼줄래?” (Would you be my girl friend?)라고 말한다 합니다. 이때 “예스”라고 대답하면 그때부터 동거 혹은 결혼을 생각하는 공식적인 관계가 시작되는 겁니다. 딸아이가 데이팅 앱을 통해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니 데이팅 앱은 만남을 주선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 결국 중요한 건 이용하는 당사자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만나는 방법과 장소(온라인, 소개팅, 클럽, 학교, 열차  등)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만난 사람이 자기에게 맞는 사람인지를 골라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며 이는 전적으로 나한테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철없는 사람은 철없는 파트너를 만나고 현명한 사람은 현명한 파트너를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저평가된 가치주 혹은 미래의 성장 잠재력이 큰 주식을 고르는 능력은 결국 본인의 안목이며 본인의 실력입니다. 자신의 외모에 대한 투자보다 내적 발전을 위한 투자가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니체는 결혼에 대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결혼하기 전 당신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라. 즉 나는 이 여자와 늙어서도 여전히 대화를 잘 나눌 수 있을까?” 결혼 39년 차의 경험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부부간에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며 살 수 있다는 점은 축복이며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 아이는 다행히 자신이 원하는 남자의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대화가 통하고 같은 취미를 즐길 수 있는 남자를 원했고 그런 남자를 만났다고 확신한 후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남자 또한 그런 여자를 만났다고 확신했겠죠.  둘이 나름대로 결혼에 대한 철학이 확고했다는 말입니다. 그 후 우리 딸은 미국에서는 다 그렇게 한다고 하면서 남자 친구와 곧장 동거에 들어갔습니다. (78%의 미국 청년들은 결혼여부에 상관없이 같이 사는 동거에 긍정적이라고 하네요.) 우리 부부는 우려를 표명하며 반대와 항의도 했지만 바다 건너에 있는 딸에게 쌀 눈만큼의 영향도 끼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딸은 모든 건 다 자신이 알아서 하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어찌 걱정이 안 되겠습니까?  


   동거 후 결혼이 목표인데 동거가 깨지면? 이건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로 이민 간  느낌이었습니다. 어쨌든 동거는 시작이 되었고.  우선 우리 딸은 남자가 세 사는 집에서 임시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때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시기였고 우리나라 부동산이 급등했듯이 미국도 부동산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오를 때였습니다. 매일 집값이 오르니 불안했는지  우리 딸은 둘이 그동안 번돈과 은행에서 대출받아 달라스 근처에서 집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집보다 프러포즈를 받는 게 더 중요한데. 그렇게 세를 살다 새로 집을 사서 이사도 가는 걸 보니 이제 결혼하려나 보다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프러포즈 소식은 없었고 연예 동거 합해  4 년 차에 접어들자 (우리 아이는 33세가 되었고) 우리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화상통화로 딸과 대화하면 “프러포즈를 받았냐”가 주 관심사였습니다. 딸아이는  (반지 사이즈를 물어보았으니까) 할 거는 같은데 언제 할지는 알 수 없다는 대답만 계속되었습니다. 답답했지만 기다리는 거 이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프러포즈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미국 시인인 실비아 플러스의 「미친 여자의 사랑 노래」(”Mad girl’s love song “)(1953)을 읽으며 마무리를 지을까 합니다.        

실비아 플러스 (1932-1963)

  

 

눈을 감으니 온 세상이 갑자기 사라지고

눈을 뜨니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네

(나는 내 머릿속에 당신을 만들었나 봐요)       


별들이 푸른 옷 붉은 옷을 차려입고 월츠를 추네

그러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어둠이 갑자기 덮치네.

눈을 감으니 세상이 사라지네      


당신이 나를 현혹시켜 침대로 이끄는 꿈을 꾸었어요

그리고 감상적인 노래를 불러주었고 제게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지요  

나는 내 머릿속에 당신을 만들었나 봐요       


신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지옥불이 꺼져 갑니다.

천사들과 악마의 부하들이 퇴장합니다.

눈을 감으니 세상이 사라지네요.     


난 당신이 말한 대로 돌아오리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난 늙어버렸고 당신의 이름도 잊어버렸죠  

 ( 나는 내 머릿속에 당신을 만들었나 봐요 )     


난 당신 대신 천둥새를 사랑했어야만 했죠

그럼 최소한도 봄이 오면 다시 천둥소리를 내며 돌아올 테니까요   

눈을 감으니 모든 게 사라져요

( 나는 내 머릿속에 당신을 만들었나 봐요 )          



사랑을 잃은 여자(실비아 플라스)의 노래입니다. 그녀는 한 남자를 몹시 사랑했습니다. 그 남자는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났지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남자를 기다리다 지친 여자는 남자의 이름도 잊어버린 채 늙어 버렸고 이젠 정신 상태도 불안정해졌습니다. 그녀의 정신 상태는 양극단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눈 감으면 모든 것이 갑자기 사라지는 죽음의 세계와 눈을 뜨면 다시 나타나는 삶의 세계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푸른 별 붉은 별들이 월츠를 추는 황홀경에 취했다가 곧 반짝이는 별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어둠 속에 빠집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천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옥도 아닌 제 3 지대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정신적으로 헤매는 이유는 사실 돌아오지 않는 남자 때문이 아닙니다. 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반복되는 후렴--“나는 내 머릿속에 당신을 만들었나 봐요”--에서 알 수 있듯이 실비아가 사랑한 남자는 떠나버린 남자가 아니라 자신의 상상력으로 만든 허상의 남자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창조한 허구의 남자를 부여잡고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차라리 천둥 새를 사랑했더라면 하고 후회합니다. 그러나 천둥 새를 사랑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둥새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입니다. 현실세계에서는 봄이 되어도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새입니다.  실비아는 스스로 만든  상상의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실비아 플라스와 테드 휴즈


   실비아 플라스는 23세의 나이에 미국 스미스 대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로 유학을 갔습니다.「미친 여자의 사랑노래」를 발표하고 3년 후의 일입니다. 그녀는 1956년 2월 한 학생 파티에 참석했는데 거기에서 멋진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훗날 영국의 가장 명예로운 시인이며 죽을 때까지 정부에서 연금이 나오는 계관시인 (poet-laureate)의 타이틀을 얻은 25세의 테드 휴즈입니다. 둘은 서로 첫눈에 반해 급속도로 사랑에 빠졌고 만난 지 4 개월 만에 결혼합니다.  부부가 된 둘은 아이 둘을 낳고 살다가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어느 날 테드 휴즈가 집을 나갑니다. 남자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긴 겁니다. 일 년 후 실비아 플라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보통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은 결혼실패의 원인으로 남자의 외도를 지적하는 경우가 지배적이지만 저는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테드 휴즈를 만나기 3년 전에  발표한 「미친 여자의 사랑노래」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결혼 전 이미 정신병력이 있었던 실비아가 사랑한 남자는 테드 휴즈가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머릿속에 만든 허구의 남자였지도 모릅니다. 현실과 이상을 혼동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다.


   만난 지 4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한 실비아 플라스. 이미 시작부터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 주고도 사랑에 실패한 예이츠처럼 사랑으로 “눈멀고 귀 멀고 말문마저 막힌” 상태에서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마음이 아니라 데이터로 하는 게임입니다. 상대에 대한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자신에 대한 데이터가 더 중요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손자병법의 명언은 사랑의 전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데이터 상 맞지 않는 상대와 싸우면 필패입니다. 우리는 사랑(결혼)에 실패하면 파트너를 탓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상대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전에 자신부터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나에게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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