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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r 24. 2024

예이츠의 사랑, 그 마지막 이야기

    1908년.  예이츠는 3년 전 이혼한 모드 곤을 파리에서 만나 하룻밤 정사를 나눕니다. 18 년 간 쫓아다녔던 첫사랑의 여인과 처음이자 마지막 성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 육체적인 관계는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모드는 바로 다음날 예이츠에게 자신의 육체에 대한 갈망을 극복하기를 기도하며 과거처럼 영적인 결혼상태로 지냈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1908 년 7월 26일 자 예이츠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드 곤은 육체보다 정신적 관계가 더 이로우며 “육체적인 교류는 정신적 교감에 비교하면 창백한 그림자 불과하다”라고 씁니다. 영적인 교류로 만족하자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훗날 같은 경험에 대해 예이츠는 이런 말을 남깁니다.      


 “육체적 관계의 비극은 영혼은 영원한 처녀라는 점이다.”   

     (The tragedy of sexual intercourse is the perpetual virginity of the soul)           


모드 곤은 예이츠와 영적인 친구로만 지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있는데 반해 예이츠는 영혼의 교류가 없는 육체적 관계의 “비극”을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영혼 없는 육체적 성경험은 나중에 이런 시가 됩니다.             


우리의 두 사람이 혈기 왕성한 시절 서로 뜻이 맞아    

하나의 공으로 아니면  

플라톤의 우화를 바꿔 말하면  

하나의 계란껍데기 속 흰자와 노른자로 합쳐진 듯했다 (「학교 어린이들 사이에서」)


   it seemed that our two natures blent

Into a sphere from youthful sympathy,

Or else, to alter Plato’s parable,

Into the yolk and white of the one shell. (“Among School Children”)           



달걀 속의 흰자와 노른자는 예이츠와 모드 곤의 성관계를 나타내는 메타포입니다. 둘은 달걀 껍데기 속(이불 속?)에서 하나가 되긴 했지만 이 이미지는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합일의 상태는 아닙니다.  노른자는 노른자대로 흰자는 흰자대로 각기 자신의 형태를 유지하며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원하는 것은 흰자와 노른자를 완전히 섞은 말하자면 스크램블드 (scrambled) 형태의 사랑입니다.  시인에게 모드 곤의 육체만 취하는 건 비극입니다. 자신의 영혼은 여전히 처녀로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시적 대변인 제인을 통해 이렇게 토로합니다.                


사랑은 육체와 영혼을

다 취하지 않는다면     

만족할 수 없는

전부야

제인은 그렇게 말했지 ( 「최후 심판일의 미친 제인」)       


Love is all

Unsatisfied

That cannot take the whole

Body and soul’:

And that is what Jane said. (“Crazy Jane On The Day Of Judgment”)          


예이츠에게 사랑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그가 모드 곤의 전부 즉 그녀의 육체와 영혼을 모두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혼뿐입니다.

 

예이츠의 초상화 (존 어거스터스 작)

   1916년. 1908년 이후 8년 간 영적인 부부의 상태로 지내온 모드 곤과 예이츠. 이제 51세가 된 예이츠에게 마지막 기회가 옵니다. 1916년 4월 부활절 주간에 더블린에서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국을 세우기 위한 아일랜드 공화파 세력 주도의 무장 반란 (The Easter Rising)이 일어납니다. 더블린 시에서 일주일간 지속된 이 부활절 봉기는 아일랜드와 영국 모두 합쳐 삼천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후 영국군에 의해 진압됩니다.  반란 주모자 16명이 체포되고  이들은 한 달 후 군사재판을 받고 모두 사형에 처해집니다. 이 주모자 명단에 모드곤의 남편이었던 존 맥브라이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맥브라이드의 죽음은 예이츠에게 다시 한번 청혼하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51세의 시인은 모드 곤에게 결혼해서 아일랜드의 문예 부흥을 위해 서로 손잡고 일하자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변함없는 “노”였습니다. 그 후 예이츠는 (모드 곤의 허락을 득한 후) 당시 자신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던 모드 곤의 딸인 21세의 이졸데 곤에게 청혼을 하지만 역시 거절을 당합니다. 그다음 해 52세의 예이츠는 25세의 조지 하이드 리와 결혼을 하여 27 년 간 계속된 사랑의 방랑자 생활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습니다.     

 

  예이츠와 모드 곤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종교문제이고 (모드곤은 가톨릭, 예이츠는 개신교) 또 하나는 둘의 정치적인 성향입니다. 예이츠는 온건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로 일제 강점기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 같은 계열이며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보다는 문예부흥을 통한 정신적인 투쟁을 강조하는 노선이었습니다.  반면 모드 곤은 일제에 맞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안중근 의사 성향의 여자였습니다.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사형당한 맥브라이드를 남편으로 맞이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지향하는 정치적 노선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어떻게 보면 모드 곤은 예이츠나 맥브라이드 중 누구를 택하든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의 소유자였습니다.     

   

모드 곤의 초상 (사라 퍼서 작)

  언젠가 예이츠가 모드 곤에게 당신 없이는 행복할 수가 없다고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아니에요. 당신은 행복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불행으로 인해 당신은 아름다운 시를

     쓰잖아요. 그러니 행복한 거죠. 결혼은 아주 지루한 일이에요. 시인들은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당신과 결혼 안 한 나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Oh yes, you are, because you make beautiful poetry out of what you

     call your unhappiness, and are happy in that. Marriage would be such

     a dull affair. Poets should never marry. The world should thank me

     for not marrying you.”)          


그럼에도 그들의 우정은 평생 지속되었습니다. 1938년. 어느덧 73세가 된 예이츠. 건강상 따뜻한 프랑스 남부에 머무르고 있었던 예이츠는 더블린으로 돌아와 72세의 모드 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합니다. 그녀가 더블린 리버스데일 소재의 한 카페에 나타났을 때 예이츠는 그녀를 반기기 위해 일어날 힘조차 없었습니다. 만남이 끝날 무렵 예이츠는 모드에게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우리는 우리 성의 영웅들과 같이 살았어야 했는데. 우린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요, 모드.” 둘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시인은 이듬해인 1939년 1 월 73세의 나이로 프랑스에서 사망합니다. 그때 예이츠의 시신을 시인의 고향인 아일랜드 슬라이고로 옮긴 사람은 모드 곤과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모드 곤의 아들 션 맥브라이드였습니다. 모드 곤은 그 후 14년을 더 산 후 1953년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청혼 실패 후 쓴 「사람은 세월과 함께 향상한다」 ( “Men improves with the Years”) (1917)를 읽으며 마무리할까 합니다.               


꿈꾸다 지쳐버린 난  

흐르는 물속에 잠긴

비바람에 지친 대리석 트리톤  

그리고 온종일 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마치 어느 책에서 찾아낸

그림 같은 아름다움인 양

즐겁게 눈을 혹은 분별력 있는 귀를 채우면서  

혹은 현명함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왜냐하면 사람은 세월과 함께 향상하니

그러나, 그러나

이것은 나의 꿈인가 아니면 사실인가?

오, 내가 불타는 젊은 시절에

우리가 만났더라면

하지만 꿈꾸다가 늙어버린 난  

흐르는 물속에 잠긴

비바람에 지친 대리석 트리톤       


I AM worn out with dreams;

A weather-worn, marble triton

Among the streams;

And all day long I look

Upon this lady’s beauty

As though I had found in a book

A pictured beauty,

pleased to have filled the eyes

Or the discerning ears,

Delighted to be but wise,

For men improve with the years;

And yet, and yet,

Is this my dream, or the truth?

O would that we had met

When I had my burning youth!

But I grow old among dreams,

A weather-worn, marble triton

Among the streams.          


모드 곤의 흔적을 지닌 이졸데 곤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었던 예이츠.

그러나 그는 26년 간 꿈만 꾸다 꿈 속에서 늙어 버렸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 원하는 바는 다르지만 사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지나갑니다. 꿈만 꾸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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