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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꼭또 Mar 18. 2024

「젊은 날의 추억」 : 끝나지 않은 예이츠의 연가

  1903년 2 월. 모드 곤은 13 년간 끈질기게 구혼하는 예이츠를 외면하고 3년 전 만난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맥브라이드 대위를 선택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같은 시기 허리케인이 아일랜드 서부지역을 강타합니다. 쑥대밭이 된 아일랜드 마을의 처참한 모습은 첫사랑을 잃어버린 시인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그해 가을. 시인은 아픔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강연 여행을 떠납니다. 1903년부터 1904년까지 4 개월 동안 머물면서 60 차례의 강연을 하게 됩니다. 그는 스미스, 앰허스트, 예일, 하버드, 펜실베이니아 등 미국 유수의 대학교 및 카네기 홀에서 강연을 했고 백악관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납니다. 그는 강연 여행으로 3,200 달러(지금 돈으로 약 108,800 달러)의 수익을 올려 생애 처음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깁니다. 어느덧 39세가  된 예이츠. 이제 그는 성공한 시인이자 극작가입니다. 그는 45 세에 새로 창립된 영국 예술원 (English Letters of Academy)의 회원이 되며 영국정부로부터는 연간 150 파운드(2024년 가치로 22,142 파운드)의 정부연금 수혜자로 선정됩니다. 이제 그는 명실상부한 영미권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입니다

  

   예이츠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맥브라이드를 선택한 모드 곤의 삶은 결혼 즉시 재앙으로 바뀝니다. 모드가 예이츠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남편은 음주 문제가 심각했으며 자신의 어린 의붓딸에게까지 성적인 위해를 가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합니다. 한 편 맥브라이드 역시 아내에게 불만이 많았습니다. 아내는 틈만 나면 집을 비우고 혼자서 더블린으로 여행을 갔고 남편에게 과거의 청혼자인 예이츠에 대해 언급하는 일도 잦았다고 합니다. 보헤미안 기질의 아내와 권위적이며 질투심 많은 남편은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결혼 일 년이 채 안 돼서 모드 곤은 남편과 이혼 이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모드와 맥브라이드 사이에 낳은 아들의 양육권 문제까지 걸려 있어 둘의 이혼은 험난한 법적 다툼을 예고합니다. 결혼 2년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모드 곤의 사정을 알게 된 예이츠는 편지를 보내 그녀를 위로하려 최선을 다했지만 그의 마음은 찢어졌습니다. 그렇지만 모드 곤과 맥브라이드와의 이혼 소식은 예이츠가 멀어진 자신의 뮤즈와 다시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모드 곤이 결혼한 후 그녀와 친구관계를 유지했던 예이츠. 그녀에 대한 불같은 마음이 재가 되어가는 그 순간 전해진 옛 연인의 이혼 소식에 다 꺼진 불씨가 다시 꿈틀 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발표한 「제2의 트로이는 없다」 (“No Second Troy”) (1910)는  그 불씨를 살려보려는 시인의 노력을 반영합니다.


내가 왜 그녀를 비난해야 하는가?  

그녀가 내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혹은 최근에

무지한 자들에게 폭력을 사주했다고

혹은 작은 길을 큰길 위에 던졌다고

그들이 욕망을 채울 용기나 있었던가?

무엇이 그녀를 평화롭게 만들 수 있었던가?

고결함으로 불처럼 단순해지는 마음의 그녀를

팽팽하게 당겨진 활처럼 아름답고

고귀하고 고독하고 그리고 가장 준엄한 그녀를

지금 같은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그녀가 왜, 무엇을 할 수 있었던가?

그녀가 불태울 또 다른 트로이가 있었던가?       


Why should I blame her that she filled my days

With misery, or that she would of late

Have taught to ignorant men most violent ways,

Or hurled the little streets upon the great,

Had they but courage equal to desire?

What could have made her peaceful with a mind

That nobleness made simple as a fire,

With beauty like a tightened bow, a kind

That is not natural in an age like this,

Being high and solitary and most stern?

Why, what could she have done, being what she is?

Was there another Troy for her to burn?          


모드 곤과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예이츠. 이를 위해서는 그녀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시인은 평가 대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시어는 이러한 시인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과거 감성을 자극하는 언어는 간결하고 정제된 일상적인 회화체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감정 중심의 낭만주의 시대는 지나갔고 새로운 문예사조 모더니즘의 출현을 예고하는 시입니다. 시는 질문을 통해 옛 연인에 대한 시인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냅니다. 그녀가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그녀를 비난할 수 있는가? 무식한 사람들을 선동했다고 (작은 길에 서있던 사람들을 큰 거리로 인도했다고) 그녀를 비난할 수 있는가? 호머의 영웅시대에나 어울리는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모드 곤. 그러나 시대를 잘못 만난 그녀가 헬렌처럼 태워버릴 트로이가 존재하겠는가?  “내가 그녀를  왜 비난해야 하는가”는 사실 그동안 그녀를 비난했다는 말이며 그렇지만 이제는 그 비난을 멈출 때라는 말입니다. 그녀는 마음의 평화를 (파괴적인) 불로 얻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여자이지만 그녀는 헬렌이 아니었고 아일랜드도 트로이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그녀가 태울 트로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시제는 과거입니다. 즉 미래의 일은 모른다는 거죠.) 이 시는 모드 곤이 자신에게 또는 아일랜드 정치에 끼친 행동을 시인의 입장에서 합리화(rationalization)시켜주며 그녀에 대한 시인의 불편했던 감정을 정리하는 내용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혼을 택한 그녀에 대한 증오를 정리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과거 일로 그녀를 비난하면서 다시 시작할 순 없지 않나요?

  


   그리고 2 년 후인 1912년.  예이츠는 「젊은 날의 추억」 (“A Memory Of Youth”)을 발표합니다. 이미 꺼진 사랑의 불씨를 살리고자 하는 시인의 실낱같은 희망이 담긴 시입니다.           


그 순간들은 마치 놀고 있는 순간처럼 지나갔다.  

나는 사랑이 가져다준 지혜도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타고난 재질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난 말할 수 있었다

비록 그 재주로 인해 그녀의 칭찬을 받긴 했지만

무자비한 북풍에 밀려온 구름이

갑자기 사랑의 달을 가려버렸다       


내가 말하는 모든 말을 믿으며

난 그녀의 육체와 마음을 찬양했지

우쭐해서 그녀의 눈이 반짝거리고

그리고 기뻐서 그녀의 두 뺨이 붉게 물들고  

그리고 허영심으로 그녀의 발이 가벼워질 때까지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칭찬에도 우리의 눈에 들어 온건  

우리 머리 위의 어둠뿐       


우리는 돌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한마디도 안 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지  

최고의 사랑도 반드시 소멸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야만스럽게 시들어 버리지

사랑이 말도 안 될 정도로 가장 작은 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의 눈부신 달을 가린 구름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THE moments passed as at a play;

I had the wisdom love brings forth;

I had my share of mother-wit,

And yet for all that I could say,

And though I had her praise for it,

A cloud blown from the cut-throat North

Suddenly hid Love's moon away.     


Believing every word I said,

I praised her body and her mind

Till pride had made her eyes grow bright,

And pleasure made her cheeks grow red,

And vanity her footfall light,

Yet we, for all that praise, could find

Nothing but darkness overhead.     


We sat as silent as a stone,

We knew, though she'd not said a word,

That even the best of love must die,

And had been savagely undone

Were it not that Love upon the cry

Of a most ridiculous little bird

Tore from the clouds his marvellous moon.          


모드 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정리한 지 2 년이 지났습니다.  영국으로부터 조국의 자치권 확립과 아일랜드 문예 부흥을 위해 시와 희곡을 쓰며 연극도 제작하고 미국과 유럽을 돌며 강연도 하는 등 정신없이 활동을 했지만 마음 한구석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있었습니다.  예이츠 나이 벌써 47세.  모드 곤을 위해서라면 밤새 세레나데를 부르며 밤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바칠 기세의 젊은이는 이제 흰머리가 생기는 초로의 시인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모드 곤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의 희망과  “또다시 거절당한다면”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 다시 한번 들려주고 싶은 사랑의 목소리가 모기보다 작은 새의 울음소리가 된 이유입니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혹시 그 희미한 소리에 연인은 사랑의 달을 가린 구름을 날려버릴지도 모릅니다. 시인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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