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일본 오사카 여행 中 일본의 타자지향성에 대해.

계모임으로 떠난 우당탕탕 30대 남성 감성여행기

by 제이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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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공장소'에서


(1) 지하철 역사 풍경

비행기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출근 시간도 아닌데, 전철은 조용했다.

사람들은 혼자였고, 말이 없었으며,

표정은 무표정했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 돌아보면,

어김없이 관광객들이다.

그 속에서 '나'는

무언가 부자연스러움을 감지했다.

마치 질서의 세계를 '나'가 침범한 느낌이랄까.




2. '애니메이트(ANIMATE)' 앞에서


ANIMATE로 가는 길.

길거리에는 오타쿠와 메이드카페 홍보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귀엽게 손을 흔들고, 톤 높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낯설지만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바로 옆 메이드카페에서 한 남성 손님이 쿨하게 나와

메이드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또 오세요~!”라며 손을 흔드는 메이드들.

그들의 표정은 자연스럽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또다시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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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공장소에서 이런 광고라니 (3) 카드 한장에 수백만원




3. 번화가와 '호스트바 광고'를 보며


(4) 도톤부리. 저멀리 호스트 광고가 보인다.

도심 번화가를 걷다 보면,

어지럽게 빼곡한 간판들 사이로

유독 시선을 끄는 광고들이 있다.

호스트바 홍보가 커다랗게 걸려 있고,

잘 꾸민 남성들의 얼굴이 한 빌딩 전체를

장식하기도 한다.

한국이라면 뒷골목이나 은밀한 공간에

있을 법한 이런 광고들이,

거리에서 공공연히 노출되어 있다.

‘나’는 또다시 이질감과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












4. 난바역의 '지하아이돌'을 보며


우연찮게 난바역에서 지하아이돌 공연을 마주했다.

그녀의 표정이 몹시 진지하다.

최선을 다해 웃으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아이돌을 바라보는 팬들도 적극 아이컨택을 시도하며 열렬히 호응한다.

일종의 집단 몰입이다.

이상하게도 '나'도 그녀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조심스레 위아래 흔들어본다.

하지만, '나'의 시선엔 여전히 부자연스럽고,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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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지하아이돌 공연




5. '나'가 느낀 부자연스러움


그건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이다.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는 스스로를 불편하게 여긴다.

왜? 부끄럽기 때문이다.

공공연하게 걸려 있는 호스트 광고들,

코스프레 복장을 한 그들,

메이드 복장을 하고 호객 행위 중인 그녀들,

만화책을 들고 ANIMATE로 향하는 사람들,

소수의 팬 앞에서 열정적으로 무대에 선 지하아이돌과,

그 무대에 몰입하여 호응을 다하는 팬들.

모두 ‘내가 보기엔’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들에게선 그런 자기검열의 흔적이 없다.


왜 그들은 나와 다를까?




6. 일본의 '타자지향적 삶'


'나'를 중심에 두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맞춰가는 삶의 방식.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 중 하나란다.

처음엔 슬프게 들렸다.

자기 중심성보다 타자 중심성이라니.

하지만 역사적 맥락을 알고 나니 일부분 이해가 갔다.

섬나라의 폐쇄성과 조화의 문화

무사계급의 위계질서와 충돌 회피

불교와 유교, 그리고 ‘와(和)’의 철학

전후 재건과 질서 유지

그런 역사들이 타자지향적 삶을 낳았다고 한다.




7. '타자지향성'과 '페르소나'


일본 사회의 타자지향성은

오히려 현실 바깥 공간에서의 해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지금 이건 놀이야'라는 심리적 선을 긋고

다른 인격, 또 다른 나를 꺼내는 것이다.

코스프레 복장을 한 이는 “이건 나의 일부지만 전부는 아냐”라고 생각하며

지하아이돌 공연의 팬도 “이건 일상의 내가 아니야”라고 선긋기를 한다.

타인의 시선을 피하는 방식으로,

오히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낸다.




8.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혼네(本音) – 속마음, 진심

다테마에(建前) –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태도

일본인은 이 두 자아를 구분하며 살아간다.

사회도 그 방식을 ‘하나의 룰’로 인정하고 있다.

억제된 감정은 ‘다른 페르소나’를 통해 발화되고,

그 뒤엔 현실 자아로 돌아가 일상을 살아간다.

어쩌면 그들만의 자기 치유법 혹은 생존법 인지도 모른다.




9. 그렇다면 '한국'과 '중국'은?


일본이 '타자지향적'이라면, 한국은 '관계지향적'이란다.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무게를 둔다.

그래서 한국인은 친구들과 자주 모이고, 술을 마시며 감정을 나눈다.

해외에서 보이는 단체로 걷고 있는 또래집단의 태반은 한국인일 것이다.


중국은 또 다르다. 중국은 '위계지향적'이라고 한다.

관계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내 위치, 체면, 실용성이 훨씬 앞선다.

그러다 보니 표현 방식도 다르고, 실용성과 체면은 곧 자존심이 된다.

즉, 남이 아니라 내 사람(자기 가족·자기 조직)의 눈이 중요하다.

대가족 중심으로 여행다니는 동양인의 다수는 중국인일 것이다.


그래서 일본인은 조심스럽고,

한국인은 끈끈하며,

중국인은 단도직입적이다.

같은 동양권이지만,

결은 확연히 다르다.




10. '관계지향성'과 '한국'


한국인은 관계망 속에서

역할과 유대를 확인(평가)받는 데 익숙하다.

그렇기에 SNS에서 '좋아요' 수, 댓글 반응, 팔로워 수는

단순한 타자의 시선을 넘어

관계망 안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연결된다.

즉, 일본의 타자지향성과는 다르지만,

결국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아를 유지한다는 점은 닮아 있다.

아이러니하다.




11. 결론


오사카의 거리에서 본 장면들.

아무도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하던 이들.

그 모습은,

늘 관계의 눈치를 보는 한국인의 입장에선

어쩌면 조금은 부러운 장면이었다.


그들도 타인을 의식하지만,

그 시선을 자신만의 무대로 바꿔낸다.

만약 이 두 문화가 서로의 결핍을

조금씩 나눠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지도,

관계에 스스로를 가두지도 않는 삶.


난바 지하아이돌 무대를 바라보며 든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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