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정과 애정
할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가 애틋하다.
용돈을 넉넉히 주는 거아도 아니고 살림이 야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곱게 컸을 외동딸이 당신 아들의 변변찮은 월급으로 살아가는 게 미안하고 고맙단다.
시골에서 푸성귀농사로 시장에 쭈그려 앉아 팔아서 손주들 용돈도 주고 객지에 사는 아들네에 귀한 것들 죄다 택배로 보내온 마음을 전한다.
혼자 사시는 그야말로 독거노인이신 할머니는 근처에 딸들이 넷이나 살아 자주 왕래를 하지만 주중엔 동네 할머니들과 지내신다.
그런 분들께 사회 복지사는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계절마다 필요한 약, 반찬, 내복을 챙겨서 독거노인들을 돌보는 일종의 업무를 하고 간다.
할머니는 복지사가 건네준 화려한 꽃무늬 내복이 겨우내 잠옷이다.
그리고 또 겨울이 다가와 그 화려한 하양, 빨강, 핑크 꽃들이 만발하게 그려진 내복이 쌓인다.
할머니는 아껴둔 그 내복을 명절에 내려온 며느리에게 건넨다.
늘 곁에서 살뜰하게 챙겨주는 딸들을 제치고 며느리를 슬쩍 불러 아끼지 말고 입으라며 닿으려 또 보내준다며 잘 입으라고 며느리 가방 속에 누가 볼세라 급히 넣는다.
예쁜 잠옷을 입고 싶은 객지에 사는 며느리는 순식간에 꽃무늬 내복을 입은 시골 아낙이 되었다.
남편에게 이게 뭐냐며 투덜댄다.
남편은 화려하고 좋아 보인다며 피식 웃음을 참는 게 역력하다.
온몸이 화려한 꽃으로 치장된 엄마의 모습에 아이들은 자지러진다.
평소 작은 꽃무늬 옷조차 안 입는 엄마인걸 안다.
늘 브라운ㆍ초록 회색 단색 옷들이 취향인 엄마가 새로운가 보다.
불룩하게 나온 뱃살에 있는 꽃무늬는 더 활짝 피었다며 숨을 헐떡이며 웃어댄다.
놀림감이 된 것 같아 속상하고 돈 없어 보이는 시골뜨기 아줌마모습 같아 싫다며 안 입을 만도 한데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정성에 버리기도 누구 주는 것도 죄짓는 것 같아 꾸역꾸역 입기를 두 해 겨울을 보낸다.
이제 며느리는 촌스런 시어머니의 원망보단 애정을 느끼며 입는 자신을 스스로 느낀다.
아이들이 또 깔깔깔 웃는다.
엄마는 꽃무늬 내복을 입는 날은 슈퍼 파워가 생긴다며 원더우먼 흉내를 낸다.
아래 내복바지를 배꼽 위까지 치켜올려 입고 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준다.
엄마는 시어머니께 자식에 대한 사랑을 배웠다.
백 번 잔소리하고 훈계가 아닌, 절대적인 사랑을 베풀 때 언젠가 자식이 알게 됨을 며느리에게 꽃무늬 내복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