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첫 손님이 된다.
목소리는 긴장되는 마음을 숨기려는 듯 가늘게 떨리고 끝으로 갈수록 소리는 희미해진다.
'맛있게 드세요...'
향기로움이 가득한 카푸치노 위에 짧고 가는 여러 개의 다리를 가진 하얀 외계인 한 마리가 거품 위에 살포시 누워있다. 처음에는 이게 무엇인지 의문이 들다가 잠시 생각해 보니 상황이 추론되면서 웃음이 터진다. 망했구나. 라떼 아트를.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질문을 다 예상 질문으로 만들어놓고 한숨만 푹푹 쉬던 첫 면접을 앞둔 때, 내가 운전해서 도로가 마비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은 두려움을 안고 처음 홀로 운전하러 나가기 위해 시동을 켜던 때, 처음 일하게 된 꽃집에서 꽃다발을 만들어달라며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던 첫 손님을 맞이하던 때.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받아서 역프러포즈를 하시겠다며 꼭 만들어달라는 고객님이 첫 고객님이다. 분홍색 장미 열 송이와 안개를 넣고 연한 분홍색 부직포에 흰색 포장지다. 고객님은 내가 꽃을 엮어 묶는 끈에, 포장지를 자르는 가위에, 포장지를 접는 손에, 리본을 자르는 리본가위에, 한 장면 한 장면을 집중해서 보신다. 나는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호흡이 가쁘고 긴박감이 넘친다. 완성된 상품을 고객님께 전달했을 때 고객님이 예쁘다고 방방 뛰면서 달려 나가는 모습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지금이야 꽃다발을 포장하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 고객님을 향해 “신기하시죠?”라고 질문하며 미소 짓는 여유도 가지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정말 너무 긴장되었다. 단지 고객님들은 꽃의 싱그러움에 마음이 끌리고 꽃다발을 포장하는 풍경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랬던 것뿐이었다. 그게 참 그 순간에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에 보였다고 해도 그 시절에는 하나하나가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실수 없이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모든 순간이 버겁게 느껴졌다.
꽃 상품은 꽃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손을 대고 만들어내는 작품의 형식을 띤 상품이다. 아메리카노는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지만, 라떼 아트는 꽃 상품과 같은 제작의 과정을 거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의 커피에 대한 이해도와 업무의 능숙함과 창의력 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이었구나.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떨릴 수도 있겠다.
하얀 외계인을 내 자리로 데리고 왔다. 원래 평소에 그려주셨던 라떼 아트가 무엇인지 찾아보니 나뭇잎 모양의 ‘로제타’였다. 그 알바생은 로제타를 만들고 싶었으나 외계인이 되었다. 카페 알바생이라서 망한 카푸치노를 버리지도 못하고 내어주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주문한 주문자가 앞에서 커피가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으니 결국 진동벨을 눌렀을 것이리라. 커피를 내어 주면서도 자신이 없으니 목소리가 기어 들어간다. 맛있게 드시라고 한 것 같은데 살짝 과장해서 나는 ‘맛있게’까지 들었다.
꽃일이 익숙해진 나는 요즘도 상품을 만들다가 가끔씩 망한다. 머리로 생각한 그림과 실제 나오는 그림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고객이 바로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무조건 전달해드려야 하니 앞이 깜깜해지는 것은 여전하다. 꽃은 어떻게 해도 예쁘지만 내가 생각한 예쁨이 나오지 않았을 때 나에게는 망한 것이다. 그게 손으로 하는 일은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일일 것이다.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는 뚝심은 과거에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만든 상품을 예쁘다고 해주시고 좋게 봐주셨던 고객들과 긍정적인 경험에서 나온다.
맛있다. 맛있게 잘 마셨다. 하얀 외계인 내가 예쁘게 봐준다. 완벽하지 못한 처음을 너그럽게 바라봐주는 누군가들로 업계에 처음 진입하는 뉴비들이 용기를 얻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