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은 먹다 남은 나물 반찬 몇 가지에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두르고 쓱쓱 비벼 한 끼 식사를 때울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 음식이다. 특별한 식재료가 필요하지 않고 비비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편의성이 뛰어나다.
비비는 동작 하나만이 곧 요리 행위의 전부라 하등의 솜씨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광범위한 접근성도 비빔밥만의 장점이다. 밥에다 여러 가지 반찬을 섞어 양념과 함께 비벼 먹기 때문에 굳이 별도의 반찬이 필요 없다는 점도 비빔밥의 매력이다. 비빔밥은 또 찬밥을 비벼 먹어도 맛있다. 전기밥솥이 등장하기 전, 먹다 남은 찬밥으로 으레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김치와 쌀밥의 앙상블
비빔밥이 비벼 먹는 음식의 대명사라면 볶음밥은 볶아 먹는 음식의 전형(典型)이다. 볶음밥 중 가장 보편적이면서 국민적 사랑을 받는 음식이 김치볶음밥이라는 데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치볶음밥은 김치와 밥을 중심으로 양파와 대파 등의 기본적인 채소만 있으면 바로 요리할 수 있는 음식이다.
식용유를 두르고 센 불에서 양파와 대파, 당근을 먼저 볶는다.
우리나라 밥상 문화의 자랑이자 없어서는 안 될 대표적인 발효식품 김치와 한국인의 주식(主食)인 쌀밥이 어우러진 앙상블 음식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다 좋아한다. 집밥으로도 즐겨 먹고 식당에서도 자주 먹는 이유다. 비빔밥과 마찬가지로 식은밥이나 찬밥으로도 볶아 먹을 수 있다.
#볶음밥의 종류
볶음밥은 김치와 채소를 썰어 넣고 밥과 함께 볶는 행위가 요리의 전부라 비빔밥처럼 편의성과 접근성이 뛰어나다. 볶음밥 위에 완숙(完熟)으로 익힌 계란프라이를 올려 먹기도 한다. 김치 대신 여러 가지 채소를 잘게 썰어 밥과 함께 볶은 것이 야채볶음밥, 달걀을 스크램블 형태로 으깨 익혀 밥과 함께 볶은 것이 달걀볶음밥이다. 소고기가 들어간 소고기 볶음밥, 새우를 넣고 볶은 새우볶음밥, 입안에서 톡톡 튀는 느낌이 나는 날치알을 맛볼 수 있는 날치알 볶음밥도 있다.
후식 볶음밥이라 부르는 특이한 볶음밥도 있다. 먹다 남은 요리의 양념에 밥을 볶은 것인데 의외로 종류가 다양하다. 해물찜이나 아귀찜, 철판 요리, 전골류, 얇게 썬 고기와 채소를 뜨거운 육수에 익혀 먹는 샤부샤부 볶음밥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김치볶음밥과 비빔밥은 볶고 비비는 요리 방법만 다를 뿐, 일란성(一卵性) 쌍둥이처럼 닮았다. 편의성과 접근성, 집밥으로나 외식(外食)으로나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광범위한 인기, 한국인의 정서가 서려 있는 역사성 등에서 둘은 한 몸이나 다름없는 음식이다.
햄과 물에 씻은 김치를 썰어 넣고 중불에서 볶는다. 볶기 전에 김치의 물기를 손으로 짜낸다.
#찬밥과 볶음밥
특이하게도 볶음밥에는 더운밥보다 찬밥이 더 잘 어울린다. 비빔밥이 찬밥을 처리하는 방편으로 애용된 것과 달리 볶음밥은 찬밥으로 요리했을 때 더 맛있다. 더운밥은 볶을 때 수분을 머금고 있는 밥알이 서로 엉겨 붙으면서 진밥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 찬밥은 수분이 빠져나간 밥알이 고슬고슬해 볶아도 질척하지 않고 뽀송뽀송한 식감이 살아 있어 밥맛이 제대로 난다.
나는 김치볶음밥을 요리할 때 물에 씻은 김치의 물기를 짜내고 사용한다. 김치에 밴 젓갈의 기운을 덜어내고자 하는 의도도 있고, 김치 양념의 자극적인 향과 맛을 누그러뜨릴 목적도 있다. 둘 다 김치볶음밥의 감미로운 풍미 조성에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밥을 붓고 진간장 두 큰술과 매실액 한 큰술을 넣은 뒤 골고루 섞어 볶아준다. 후추도 살짝 뿌려준다.
김치를 양념 그대로 볶으면 양념이 너무 세 색감이 지나치게 드세고 쌀밥의 감칠맛을 온전하게 느끼는 데에도 방해가 된다. 그뿐 아니라 축축한 김치 양념을 머금은 밥알 때문에 밥이 질게 될 수도 있다. 대신 청양고추 한 개를 썰어 넣어 매콤한 맛을 부드럽게 살려낸다. 물론 자극적인 맛과 강렬한 색감을 선호한다면 굳이 김치를 씻을 필요는 없다.
또 양파와 대파 외에 당근과 햄도 넣는다. 당근은 주황색의 아우라가 시각적 즐거움을 더하고 단맛과 감칠맛을 자아내 볶음밥의 맛을 한층 풍부하게 확장하는 효과를 제공한다. 햄은 김치의 신맛을 완화하고 씹는 맛을 끌어올리면서 특유의 짭짤하고 고소한 육즙을 쏟아내 미각적 행복감을 안겨준다.
#김치볶음밥의 폭넓은 확장성
급식(給食) 제도가 시행되기 한참 전인 1970년대에 김치볶음밥은 흔하게 볼 수 있는 학생들의 도시락이었다. 날마다 도시락을 싸느라 새벽잠을 설쳐야 했던 어머니들로서도 김치볶음밥은 요리하기 간편하고 자식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어 거리낌 없이 선택한 메뉴였다.
밥이 노릇노릇하게 볶아지면 청양고추 한 개를 송송 썰어 넣은 뒤 참기름을 둘러 볶음밥에 스미게 섞어준다.
김치볶음밥은 딸아이가 애착을 보이는 음식이기도 하다. 딸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유달리 김치볶음밥을 좋아했다. 기숙학교에 다닌 딸은 금요일 방과 후 귀가했다가 일요일 저녁 다시 학교에 가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주말마다 김치볶음밥을 즐겨 먹었다. 산더미 같은 학습량과 매일 사투(死鬪)를 벌여야 하는 수험생으로서 맛도 맛이지만 다른 반찬이 필요 없고 빨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가끔 분식집에서 식사할 때 목격하는 풍경 하나도 나이를 불문하고 김치볶음밥을 주문하는 손님이 꽤 많고 젊을수록, 학생일수록 더 그렇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김치볶음밥이 폭넓은 확장성을 지닌 대중적인 음식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주말 우리집에서도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닭간장조림 요리를 하다가 갑자기 먹고 싶어 급하게 만들었다. 내가 요리하는 김치볶음밥을 소개한다.
김치와 밥, 양파, 대파, 당근, 햄을 넣고 간까지 맞춰 볶은 김치볶음밥은 다른 반찬 없이 그냥 먹어도 맛있다.
1.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센 불에서 양파와 대파, 당근을 볶는다. 불에 달궈진 식용유는 향신채(香辛菜)인 양파와 대파의 향과 맛을 빨아들여 확산시키는 성질이 있다. 볶거나 익힐 때 다른 재료에 앞서 향신채를 사용하는 이유다. 당근이나 무처럼 익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식재료도 요리의 앞 순서에 배치한다.
2. 햄과 물에 씻은 김치를 썰어 넣고 중불에서 볶는다. 볶기 전에 김치의 물기를 손으로 짜낸다.
3. 둘이 먹을 만큼의 밥을 붓고 진간장 두 큰술과 매실액 한 큰술을 넣은 뒤 골고루 섞어 볶아준다. 후추도 톡톡 뿌린다.
4. 밥이 노릇노릇하게 볶아지면 청양고추 한 개도 송송 썰어 계속 볶는다.
5. 마지막으로 참기름 두 큰술을 두르고 볶음밥에 스미게 잘 섞어주고 불을 끈다.
입맛에 따라 계란프라이를 볶음밥 위에 올려 먹어도 되고 김 가루를 고명처럼 얹어 먹어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