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2. 변화무쌍한 공의 움직임
축구 2. 변화무쌍한 공의 움직임
#둥근 공의 진로
둥근 공의 진로(進路)는 공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결정된다. 공이 어디로 향할지는 오로지 공놀이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공이 진행되는 방향과 구르거나 날아가는 속도, 낙하지점과 정지지점이 변화무쌍한 이유다. 공의 움직임은 공을 소유한 사람의 의지가 기술적으로 공에 구현된 결과다. 공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고 공놀이 꾼이 공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공놀이 꾼이 마음먹은 대로 늘 공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공놀이를 직업으로 삼는 프로 선수라 하더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축구공을 차거나 야구공을 던질 때를 상정해 보자. 공을 차고 공을 던지는 사람이 의도한 공의 방향과 낙하지점이 실제 공의 탄착점(彈着點)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공을 다루는 사람의 기술적 정확도가 부족한 결과일 수도 있고 공이 사람의 몸을 떠나 포물선을 그릴 때 예상치 못한 맞바람의 저항에 가로막히거나 뒤바람에 떠밀려 엉뚱한 곳에 떨어질 수도 있다.
만약 잔디 상태가 고르지 못하거나 경기장 바닥에 빗물이 고여 있다면 그 위를 굴러가던 공이 갑자기 불규칙 바운드로 튀어 오르거나 진행 방향이 뒤틀어지거나 멈춰버릴 수도 있다. 실제 경기에서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마라도나와 메시
경기 경험이 풍부하고 기량이 비범한 선수일수록 위기 대처 능력이 탁월해 기술적 완성도가 높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들이 펼치는 초인적(超人的) 퍼포먼스에 팬들이 환호하는 까닭이다. 최정상급 공놀이 꾼들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공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그야말로 공의 운명을 자의적으로 주무르는 녹색 필드의 연금술사들이다. 프로축구의 마라도나(1960~2020)나 메시(1987~)가 그런 선수들이다. 마라도나와 메시는 단체 종목인 축구에서는 보기 드물게 혼자서 경기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비상한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다.
전성기를 달리던 SSC 나폴리(1984~1991) 시절 마라도나가 경기 전 관중들 앞에서 공을 가지고 몸을 푸는 모습은 유명하다. 마라도나는 발등은 물론 이마와 어깨, 가슴, 등, 허벅지, 발뒤꿈치, 복숭아뼈를 가리지 않고 손과 팔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체 부위를 이용한 리프팅(발등과 어깨, 이마, 허벅지 등으로 볼을 계속 튕기는 것)과 볼 컨트롤 솜씨를 선보여 관중들의 넋을 빼놓곤 했다. 축구공보다 훨씬 작은 테니스공과 골프공, 심지어 생수병으로도 발등 리프팅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수많은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마라도나의 현역 시절 드리블은 축구를 예술적 경지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로 손색이 없다. 마라도나의 드리블은 발로 공을 찬다기보다 손으로 공을 어루만지는 듯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물 흐르듯 리드미컬해 축구의 미학적 가치를 일깨웠다. 축구공의 방향성과 탄력을 완벽하게 지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기량이다. 짧게 툭툭 치고 들어가는 메시의 드리블은 수비수들이 예측할 수 없는 미로(迷路)를 뚫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뻔히 보고도 당하는 비기(祕技)라 할 수 있다. 둘 다 훈련만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이다.
#그레그 매덕스
프로야구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제구(制球)의 마법사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레그 매덕스(1966~)가 대표적이다. 투수의 제구력은 스트라이크 존을 지배하는 능력이다. 투수는 스트라이크 존을 지배할 때 타자를 압도할 수 있다. 제구가 뛰어나면 투구 수가 적어 체력 소모도 적고 사구(四求)와 피안타율도 낮아 투구 효율성이 높다. 실점할 확률이 낮아 팀 승리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볼이 아무리 빨라도 제구에 약점을 보이는 투수는 좋은 투수가 될 수 없다. 포볼을 남발하거나 실투(失投)로 안타(安打)를 허용하기 쉬워서다. 제구가 뛰어난 투수는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하는 경계 지점에 공을 던질 줄 안다.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좌우 가장자리에 걸친다는 표현의 공이다. 타자로서는 투구(投球)를 흘려보내면 스트라이크, 쳐도 평범한 땅볼이나 뜬 공에 그치기 십상이다.
제구가 들쑥날쑥한 투수의 공은 볼과 스트라이크의 구분이 확연히 드러나 타자가 대처하기가 쉽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눈에 띄게 벗어나거나 스트라이크 존 가운데로 공이 몰린다. 포볼이 많아지고 안타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 대량 실점의 빌미가 된다. 제구가 뒷받침되지 않는 빠른 공만으로는 타자를 상대할 수 없다. 훈련으로 단련된 프로 선수들에게 이런 투수는 좋은 먹잇감일 뿐이다. 투구의 기본이 제구인 이유다.
야구 감독들은 볼넷으로 상대 타자를 내보내는 투수를 가장 싫어한다. 투구 수가 많아지고 누상에 주자가 쌓일 뿐 아니라 수비하는 야수들의 심리적 안정감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 타자와 달리 투수 혼자서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는 일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완투승과 완봉승, 노히트 노런, 퍼펙트게임이 그런 증거다. 통계 수치로 집계될 수는 없겠으나 야수들의 호수비가 없이는 불가능한 기록들이라는 점에서 팀 동료들의 헌신과 희생도 필수적이다.
현대 야구는 투수 분업화와 투구 수 관리 시스템이 강화되고 있어 과거보다 비중은 줄어들었으나 완투승과 완봉승은 여전히 선발 투수 기록의 꽃이다. 단 한 개의 안타와 점수도 내주지 않는 노히트 노런과 상대 팀 주자를 한 명도 내보내지 않는 퍼펙트게임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보다 야구 역사가 훨씬 오래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24회,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16회의 퍼펙트게임이 달성됐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퍼펙트게임은 나온 적이 없고 노히트 노런 기록만 14회 작성됐다.
#제구력(制球力)의 가치
매덕스는 전성기이던 미국 프로야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993~2003) 시절, 속구(速球) 평균 구속이 140km 초반대였으나 자신이 원하는 곳에 정확히 공을 꽂아 넣는 마술적 제구력(制球力)과 실투(失投)가 거의 없는 무결점 투구(投球)로 유명했다. 극한의 투구 효율성이 가능했던 것은 9이닝당 통산 볼넷 기록이 1.79개에 불과한 컴퓨터 제구와 맞혀 잡는 지능적인 투구 스타일 때문이었다.
특히 매덕스의 투심 패스트볼은 미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구(魔球)로 평가받는다. 검지와 중지를 야구공의 두 개의 실밥에 걸쳐 잡고 던지는 속구(速球)의 일종인 투심 패스트볼은 오른손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지는 구질이다. 주로 땅볼을 유도할 때 많이 구사한다.
매덕스는 프로 통산 355승(메이저리그 역대 8위), 4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완봉승만 35승, 완투는 109회를 기록했다. 빼어난 제구 능력을 앞세운 투구 효율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4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사이영상은 메이저리그 양대 리그 최고 투수에게 매년 시상하는 상이다. 사이 영(1867~1955)은 메이저리그 역대 개인 통산 최다승(511승) 보유자다. 매년 25승씩 20년 동안 쌓아야 가능한 불가사의한 대기록이다.
#축구 선수의 제1 덕목, 볼 컨트롤
축구는 구기(球技) 종목 중 유일하게 발로 공을 차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다. 축구에서 필드플레이어가 손을 사용하면 반칙이다. 손이 아닌 발로 둥근 공을 다루는 행위는 까다롭고 어렵다. 그런 점에서 축구 기술은 상대적으로 난도(難度)가 높다. 난도가 높다는 것은 예측 불허의 의외성과 다양한 변수를 시사한다.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기일수록 실책이 속출하고 경기 흐름이 자주 끊어진다.
역으로 이런 속성 때문에 현란한 개인기와 다양한 전술, 전략을 앞세운 묘기(妙技)와 예술적 감동을 안기는 골에 관중들이 열광한다. 발의 움직임과 축구공이 만나 빚어내는 퍼포먼스는 아름답다. 축구를 응원하는 팬들이 수준 높은 경기를 선호하고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플레이에 환호하는 이유다. 공격수나 수비수나 공과 부딪힐 때의 발의 감각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능력, 볼 컨트롤이야말로 축구 선수가 갖춰야 할 제1 덕목이다. 축구를 전문적으로 배울 때 발등으로 공을 튕기는 리프팅을 가장 먼저 익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전술과 전략이 갈수록 진화하는 창의성의 종목, 축구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