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6. 승부차기의 저주
축구 6. 승부차기의 저주
#고도의 심리전
승부차기는 잔인하다. 토너먼트 경기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을 때 실시하는 최후의 방법이 승부차기다. 골라인에서 11m 떨어진 지점에서 페널티킥 방식으로 차는 승부차기의 성공 여부는 공의 방향과 속도, 정확성 세 가지 요소에 달려 있다. 키커와 골키퍼의 1대 1 대결 상황. 긴장감이 경기장 전체를 뒤덮는다.
차는 선수나 막는 골키퍼나 극도의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린다. 사력을 다한 승부의 최종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골을 넣으면 이기고 못 넣으면 진다. 골을 막으면 이기고 못 막으면 진다. 심리적 중압감은 키커가 훨씬 더 심하다.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골라인을 넘어서는 공의 속도(0.4초)가 골키퍼의 반응 속도(0.6초) 보다 빨라 승부차기가 실패할 가능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승부차기의 역설이 발생한다.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키커로서는 승부차기를 성공시켜 봤자 본전이라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무한대로 치솟는다. 반면 골키퍼로서는 못 막아도 그만이고 한 번이라고 막으면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될 수 있다는 기대 심리가 불안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긴장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키커가 실축하는 일은 그래서 일어난다.
키커가 찬 공이 골키퍼가 몸을 날린 반대 방향으로 들어가고 있다. 골키퍼의 예측이 빗나간 경우다. ⓒSebas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실축은 키커의 발을 떠난 공이 골대 옆으로 비켜나가거나 크로스바 위로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공의 방향성이 너무 정직해 골키퍼가 쉽게 잡을 수 있는 경우도 해당한다. 이론적 분석과 달리 승부차기가 고도의 심리전이고 키커에게 불리한 이유다. 승부차기에서 이런 장면은 흔하게 볼 수 있다.
키커에게 불리한 요소는 또 있다. 키커가 찬 공이 골대나 크로스바를 맞고 득점에 실패할 때다. 실축과는 상관없는 운이 나쁜 경우지만 목적 달성을 이루지 못한 결과는 마찬가지다. 팀이 지기라도 한다면 죄책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키커에게 승부차기는 까다로운 퍼즐 게임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골키퍼의 선택지
키커보다 심리전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골키퍼에게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다. 어차피 공의 방향을 확인하고서는 승산이 없을 바에야 한 방향에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다. 키커의 시선과 자세, 성향 따위를 간파해 차기 직전에 공보다 먼저 골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는 모험을 감행한다. 예측이 맞으면 골키퍼가 이길 확률이 높고 어긋나도 손해 볼 것이 없다.
승부차기가 진행될 동안에 키커를 제외한 양 팀의 나머지 키커들은 중앙선에서 대기해야 한다. ⓒThreecharli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승부차기에서 대다수의 골키퍼는 이런 동작을 취한다. 다만 예측이 맞았더라도 공이 골대 상단 모서리, 즉 야신존에 꽂히면 골키퍼로서도 어쩔 수 없겠지만. 노련한 키커는 골키퍼에게 일부러 차는 방향을 슬쩍 흘리는 척하다가 실제로는 반대 방향을 노리기도 한다.
파넨카킥은 승부차기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키커의 고육지책에서 나온 새로운 유형의 페널티킥이다. 파넨카킥의 창시자는 안토닌 파넨카(1948~). 체코 국가대표 출신의 파넨카가 UEFA 유로 1976 결승전 당시 서독과의 승부차기에서 처음 시도해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한 역발상 페널티킥이다. 키커가 차기 전에 공의 방향을 예단한 골키퍼가 골대 한쪽으로 미리 뜬다는 점을 역이용해 가운데로 느리게 띄워 승부차기를 성공시킨 것이다.
파넨카킥의 허점도 있다. 골키퍼가 공의 방향을 예단하지 않고 끝까지 키커의 움직임을 주시한 뒤 반응한다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전에 강하고 두둑한 배짱이 필요한 이유다. 파넨카는 UEFA 유로 1976 대회 2년 전부터 파넨카킥을 연습했다고 한다.
파넨카킥의 창시자인 안토닌 파넨카. ⓒDavid Sedlecký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키커보다는 덜하더라도 골키퍼의 부담감 역시 만만치 않다. 같은 팀 골키퍼가 페널티킥을 막지 못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후속 동료 키커의 중압감은 가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최상의 승부차기 향방은 같은 팀의 키커가 페널티킥을 다 성공시키고 동료 골키퍼가 하나라도 선방하는 것이다. 월드컵과 같은 비중이 큰 대회에서 정규 시간에 기회를 잡은 페널티킥이나 승부차기에 실패한 키커의 트라우마는 오래간다.
#월드컵 승부차기의 희생양, 로베르토 바조
승부차기의 현장이 월드컵 결승 무대라면 그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를 것이다.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는 지구촌 축구 대잔치 월드컵에서 우승 팀이 승부차기로 갈린 적은 모두 세 차례. 사상 첫 월드컵 결승 승부차기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 대회 때 이뤄졌다. 이탈리아의 월드 스타 로베르토 바조(1967~)는 안타깝게도 월드컵 승부차기의 최대 희생양이 됐다.
월드컵 한 해 전인 1993년 꿈의 트로피인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를 동시에 석권한 바조는 지는 해 마라도나(1960~2020)를 대신할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고군분투(孤軍奮鬪)한 바조는 16강전부터 준결승까지 토너먼트 3게임에서 모두 다섯 골을 터뜨렸다. 팀 득점(6골)의 8할 이상을 홀로 책임진 바조가 없었다면 이탈리아의 결승행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1994년 7월 17일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로즈볼에서 월드컵 트로피를 놓고 격돌한 브라질과의 결승전 승부차기가 평생 자신을 괴롭힐 상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 대회 결승전 승부차기의 희생양이 된 로베르토 바조.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연장전까지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 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선축(先蹴)인 이탈리아가 2-3으로 뒤진 상황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선 바조로선 무조건 골을 넣고 동료 골키퍼 잔루카 팔리우카(1966~)의 선방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페널티 박스 끝에서부터 달려간 바조가 찬 공은 허망하게 크로스바 위로 허공을 갈랐고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이탈리아는 바조를 포함해 3명의 키커가 승부차기에서 허탕을 쳤으나 우승의 꿈이 날아가 버린 원성은 모두 바조에게 쏠렸다. 바조의 실축과 동시에 양 팀의 희비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통산 네 번째 우승을 바라던 이탈리아 팬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에 시달린 바조는 훗날 월드컵 이후 4년 동안 매일 밤 악몽을 꿨다고 고백했다. 승부차기의 잔인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과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대회도 승부차기에서 우승 팀이 결정됐다.
첼시와 바이에른 뮌헨이 맞붙은 UEFA 챔피언스 리그 2012 결승전. 연장전까지 1-1로 우열을 가리지 못해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승부차기 3-3인 상황에서 후축(後蹴)인 첼시의 다섯 번째 키커 디디에 드로그바(1978~)와 뮌헨의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1986~)의 맞대결 장면. 드로그바는 노이어가 움직인 반대 방향으로 승부차기를 성공시켜 첼시 우승의 주역이 됐다. ⓒrayand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월드컵 본선에 승부차기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74 서독 월드컵 때다. 결승과 3, 4위 결정전 두 게임이 적용 대상이었으나 정규 시간 안에 모두 승부가 끝나 실제 승부차기는 진행되지 않았다.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전 대회와 마찬가지로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린 경기는 없었다. 월드컵 승부차기 기록은 1982 이탈리아 월드컵 서독과 프랑스의 준결승 때 처음 나왔다. 연장까지 3-3으로 무승부를 이룬 승부차기에서 서독이 5-4로 이기고 결승에 올랐다. 서독은 결승에서 이탈리아에 1-3으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1982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승부차기는 모두 35차례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