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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공의 미학(美學)

축구 5. 공의 운명

by 박인권

축구 5. 공의 운명


#골의 결정 과정

축구 경기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골이다. 응원하는 팀이 골을 넣으면 엔도르핀이 급상승하고 골을 먹으면 풀이 죽는다. 선수의 발과 머리를 떠난 공이 골로 결정되는 장면은 복잡하면서 흥미롭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면서 고공비행(高空飛行) 끝에 네트를 흔드는 골, 공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발등에 힘을 실어 때리는 발리슛, 공이 공기와 잔디의 저항을 뚫고 낮게 깔리면서 나아가는 땅볼 슛, 찰나에 이뤄지는 역동적인 헤딩슛,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얻어낸 프리킥과 페널티킥 골 등이 그렇다.


페널티킥 상황에서 키커는 공을 차기 직전까지 골키퍼와 고도의 심리전을 펼친다. 골문을 관통하는 페널티킥 골은 키커의 의지에 따라 다양한 양태(樣態)를 드러낸다. 처음부터 공이 도달할 방향을 정해놓고 냅다 후려갈기는 골, 차는 마지막 순간까지 골키퍼와의 수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골, 노련한 속임수 동작으로 공의 방향을 속이는 골, 골키퍼의 예측 움직임을 무색하게 하는 파넨카킥 등이 그러하다.


페널티킥 장면. ⓒWerner100359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파넨카킥은 킥의 방향을 예단한 골키퍼가 골대 한쪽으로 미리 다이빙한 움직임을 역이용해 골문 가운데로 공을 느리게 띄워 차는 페널티킥이다. 유럽 축구 국가 대항전인 UEFA 유로 1976 결승 승부차기에서 체코의 마지막 키커 안토닌 파넨카(1948~)가 서독의 골키퍼 제프 마이어(1944~)를 상대로 선보인 새로운 유형의 페널티킥이다. 골키퍼와의 심리전에 능하고 배짱이 두둑해야 성공시킬 수 있다.


이론적으로 키커의 발을 떠난 공을 골키퍼가 눈으로 확인하고서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축구 선수가 페널티킥으로 찬 공이 골라인을 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0.4초, 골키퍼가 공의 방향을 판단하고 몸을 던지는 데에는 0.6초가 필요하다고 한다. 정상적인 페널티킥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확률과 실제가 다르듯 페널티킥 현장에는 돌발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반드시 골을 넣어야 한다는 키커의 압박감이 실축으로 이어질 수 있고, 슈팅 감각이 좋은 선수라도 페널티킥 상황만 되면 새가슴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골키퍼의 촉이 뛰어나 방향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슈팅의 확장성

킥 동작에서 영점 조준에 실패한 결과가 오히려 골로 연결되는 행운의 골도 있다. 빗맞았는데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골망을 뒤흔드는 슛의 확장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타점이 정확하고 힘이 제대로 실린 교과서적인 슛, 먼 거리에서 골키퍼의 허를 찌르는 기습적인 중거리 슛, 코너킥이 골로 연결되는 코너킥 골, 달려드는 골키퍼의 키를 살짝 넘기는 칩슛, 골키퍼가 페널티 박스 밖까지 나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센터 서클 언저리에서 시도하는 초 장거리슛(이탈리아 세리에 A 나폴리 시절의 마라도나가 성공시킨 바 있다), 중앙선 부근에서 패스를 받자마자 빠른 드리블로 전진하면서 골키퍼까지 제치며 터뜨리는 원맨쇼 슛(86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마라도나가 기록한 역대 월드컵 최고의 골), 손흥민이 2019-2020 프리미어 리그 번리전에서 자기 진영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공을 잡아 70여 미터를 질주한 끝에 성공시킨 원더풀 골, 낮게 깔린 슛이 골키퍼 앞에서 튀어 오르면서 골이 되는 원바운드 골 등이 그렇다.


1986 FIFA 월드컵 결승에서 서독을 꺾고 우승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마라도나(1960~2020)가 골든 볼(최우수선수)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중앙선 근처에서부터 화려한 드리블 개인기를 펼치며 골키퍼까지 제치는 역대 월드컵 최고의 골을 터뜨렸다.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슈팅의 백미, 오버헤드킥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오버헤드킥만 한 것도 없다. 오버헤드킥은 발로 공을 차는 동작 중 최고 난도(難度)의 킥 퍼포먼스라 슈팅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슈팅 테크닉의 정점을 보여주는 화려한 오버헤드킥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 다이내믹한 육체의 율동이 공에 극적으로 구현된 것이라 골인 여부와 상관없이 박수갈채의 대상이다.


골대를 등진 상태에서 몸을 허공에 거꾸로 솟구쳐 시도하는 슈팅 자세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의 표현이고 축구의 미학적 가치가 압축된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축구를 해 본 사람은 오버헤드킥이 왜 어려운 기술인지 다 안다. 백 텀블링하듯 몸을 뒤집어 가슴 높이로 날아오는 공을 한쪽 발의 반동을 지렛대 삼아 다른 쪽 발로 정확하게 맞추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공중볼을 따내기 위한 치열한 경합 장면. ⓒCarlo Bruil Fotografi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첫째, 허공에 뜬 몸의 높이가 공의 높이와 일치해야 한다. 둘째,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교차하는 두 발의 타이밍이 움직이는 공의 속도와 방향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잡아야 한다. 셋째, 차는 발의 발등이 공의 가운데 부위를 정확하게 가격해야 한다. 세 동작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오버헤드킥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어렵사리 오버헤드킥에 성공했더라도 공이 골대를 향하는 유효 슈팅인가는 별개의 문제이며 골인이냐는 더더욱 별개의 차원이다. 오버헤드킥의 기술적 레벨이 최상급인 이유다.


#호날두의 오버헤드킥

목표 지점이 가려진 채 골대를 등지고 슈팅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오버헤드킥의 골 성공 확률은 적을 수밖에 없다. 오버헤드킥 골이 전 세계 팬들에게 인상 깊게 각인된 장면이 있다. 2017-2018 UEFA 챔피언스리그 유벤투스와의 8강 1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1985~)는 후반 19분 자신의 인생 골이라 할 만한 엄청난 오버헤드킥을 성공시켰다.


최고 난도의 오버헤드킥. ⓒTasnim News Agency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오른쪽 페널티 박스 언저리에서 팀 동료 다니엘 카르바할(1992~)이 올려준 크로스를 가공할 점프력을 이용한 오른발 오버헤드킥으로 골문을 가른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골대 오른쪽 구석진 곳에 꽂힌 호날두의 오버헤드킥을 당대 최고의 유벤투스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1978~)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골 장면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미쳤다 미쳤어, 하고 중얼거리는 레알 마드리드 지단 감독(1972~)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전광석화와 같은 판단력에 세 가지 동작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아름다운 골이었다. 천부적 운동 감각과 몸이 저절로 기억할 정도로 끊임없이 매진한 강도 높은 훈련이 가져다준 선물일 것이다.


#골이 무산되는 경우

골인 일보 직전에서 골이 무산되는 경우도 여러 가지 형태로 발생한다. 슈팅한 공이 골대 기둥이나 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오는 장면은 축구 경기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골대 기둥과 크로스바의 두께가 불과 12cm 이내라 골 운이 없다고밖에 할 수 없다.


골키퍼가 발로 슈팅을 막아내는 슈퍼 세이브 모습. ⓒLatvijas Futbola federācija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차는 순간 골임을 직감했으나 골키퍼의 선방에 막힌 슈퍼 세이브는 실점을 막아냈다는 점에서 한 골을 넣은 것이나 다름없다. 슈퍼 세이브는 순전히 골키퍼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제비처럼 몸을 날려 다이빙으로 쳐내거나 1대 1 상황 또는 골대와 아주 가까운 근접 거리에서 시도한 슈팅을 골키퍼가 육탄 방어로 저지해 득점에 실패하는 경우가 슈퍼 세이브의 대표적인 사례다. 잘 찼으나 더 잘 막은 것이라 득점 장면만큼이나 관중들의 환호가 터져 나온다.


키커의 잘못으로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놓치는 일도 빈번하다. 골문 안으로 차 넣기만 하면 골인 상황에서 슈팅이 골대를 빗나가거나 페널티킥을 실축할 때가 그렇다. 침착성과 순간 판단력 부족과 심리적 이유가 작용한 결과다. 귀책 사유가 키커에게 있어 키커에게 질책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너비 7.32m, 높이 2.44m의 직사각형 골대 공간이 마냥 넓은 것만은 아니다.


맨유 시절 프리킥을 준비하는 호날두(7번). ⓒArdfern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수비수의 몸에 맞고 공의 방향이 굴절되어 골인되거나 수비수가 걷어낸다고 걷어낸 공이 자기 골문으로 들어가는 황당한 자책골도 있다. 실점한 팀으로서는 황망한 골이고 득점한 팀으로서는 행운의 골이다. 공은 둥글고 둥근 공의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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