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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공의 미학(美學)

축구 4. 골키퍼(下) ②

by 박인권

축구 4. 골키퍼(下) ②


#시대를 풍미한 골키퍼

▲1990년대

*올리버 칸(1969~ 독일)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다. 독일이 준우승한 2002 FIFA 월드컵에서 골든 볼(MVP)과 골든 글러브(최우수골키퍼)를 동시 수상해 축구 인생에 정점을 찍었다. 월드컵에서 골키퍼가 골든 볼 타이틀을 차지한 것은 올리버 칸이 처음이다.


동물적인 반사 신경을 앞세운 공중볼 처리와 몸을 사리지 않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1대1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냉정한 대처 능력은 슈퍼 세이브의 교과서로 불린다. 특히 승부차기까지 간 2000-2001 UEFA 챔피언스리그 스페인 발렌시아와의 결승에서 3개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바이에른 뮌헨에 우승컵을 안긴 활약은 역대급이었다. UEFA(유럽축구연맹) 올해의 골키퍼를 4회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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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고별 경기 후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는 올리버 칸. 칸은 2008년 9월 2일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인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벌어진 독일 대표팀과의 은퇴 기념 경기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https://www.flickr.com/people/gowestphoto/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페테르 슈마이켈(1963~ 덴마크)

20대 후반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발탁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전성기를 보낸 맨유의 레전드 골키퍼다. 9년간 맨유의 골문을 지키는 동안 리그 5회 우승, FA컵 3회 우승을 차지했다. 맨유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1998-1999 리그 우승과 FA컵은 물론 UEFA 챔피언스 리그까지 모두 제패하는 트레블을 달성했다. 덴마크가 네덜란드와 독일을 꺾고 UEFA 유로 1992 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슈마이켈의 눈부신 선방 덕분에 가능했다. 유럽 최우수골키퍼에 세 차례(1992, 1993, 1998) 선정됐다.


90년대에 활약한 골키퍼 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둘이 있다. 칠라베르트(1965~ 파라과이)와 호세 레네 이기타(1966~ 콜롬비아). 둘 다 특이한 퍼포먼스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선수들이다. 칠라베르트는 국가대표 A매치 74경기에서 프리킥과 페널티킥으로 8골을 터뜨려 골 넣는 골키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올스타팀에 선정됐고 1996년에는 남미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별명이 괴짜 골키퍼인 이기타는 1995년 9월 6일 축구의 성지(聖地)라 불리는 구(舊)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콜롬비아의 친선 경기에선 제이미 레드냅의 슛을 양발 뒤꿈치를 이용한 일명 스콜피온(scorpion) 킥으로 막아내면서 전 세계 팬들을 놀라게 했다. 스콜피온 킥은 물구나무서듯이 풀쩍 뛰어올라 양발 뒤꿈치를 모아 차는 킥이다. 골키퍼지만 프리킥 득점에도 능한 이기타는 프로 통산 380경기에서 41골을 기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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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슈마이켈. ⓒCarlsberg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2000년대

*이케르 카시야스(1981~ 스페인)

카시야스는 전형적인 엘리트 축구 선수다. 연령대별 스페인 국가대표를 차례대로 지내며 19살에 성인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20대 초중반에 월드 클래스 골키퍼 반열에 오른 뒤 30대 초까지 10년 이상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키가 182cm로 골키퍼로서는 상대적인 열세인 신체적 하드웨어에도 불구하고 퍼포먼스적으로나 기록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취를 이뤘다는 점이 놀랍다.


2000~2016년까지 국가대표로 16년간 활약하며 A매치 167경기에 출전했다. 세르히오 라모스(1986~)의 180경기에 이은 스페인 대표팀 최다 출장 역대 2위 기록이다. 무실점 경기는 더욱 놀랍다. 총 94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내 클린 시트 비율(56.3%)이 50%를 훌쩍 넘는다. 클럽 경기라고 다를 게 없다.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서만 510게임에 뛰는 등 스페인 리그 통산 656경기(2, 3부 리그 30경기 포함)에서 라 리가를 대표하는 골키퍼로 이름을 떨쳤다.


우승 기록도 화려하다. 라 리가 5회,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UEFA 슈퍼컵 2회, FIFA 클럽 월드컵 1회, 코파 델 레이 2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UEFA 유로 2008, 2012 대회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주장이자 부동의 골키퍼로 스페인 대표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월드컵과 유럽 축구 선수권(UEFA 유로), UEFA 챔피언스리그, 라 리가 등 축구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차지했다. IFFHS(세계축구역사통계연맹) 선정 세계 최고의 골키퍼상을 5년 연속(2008~2012)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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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 골든 글러브 수상자인 이케르 카시야스의 경기 장면. ⓒJuan Fernández/Casillas a por todas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카시야스는 하드웨어의 약점을 압도적인 반사 신경과 공의 방향을 읽는 예측 능력, 빠른 발 등 두드러진 운동 감각으로 극복했다. 천부적인 재능에 후천적인 노력과 냉철한 자기관리, 동료들과의 협업 정신으로 일군 성취다.


*잔 루이지 부폰(1978~ 이탈리아)

스페인에 카시야스가 있었다면, 이탈리아에는 부폰이 있었다. 빅리그 우승 경력으로만 따지면 부폰이 단연 앞선다. 부폰은 이탈리아 세리에 A 유벤투스(2001~2018, 2019~2021)에서 20년 가까이 활약하면서 모두 10차례나 우승했다. 세리에 A 최다우승 기록이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우승하며 야신상(최우수골키퍼)을 수상했다.


그러나 부폰은 세계 최고의 클럽 대항전인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만 세 번 경험했을 뿐, 우승 경력이 없다. 유럽 국가 대항전인 UEFA 유로 대회에서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단체 종목이라는 축구의 특성상 우승은 출전 선수 전원의 경기력이 하나로 융합됐을 때 가능해 부폰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카시야스와 비교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0대 중반부터 에이징 커브(Aging Curve)로 인한 쇠퇴기에 접어든 카시야스에 비해 부폰은 마흔 넘어서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메이저 타이틀 경력에서 카시야스에 뒤지는 부폰이 높게 평가되는 이유다. 개인적 퍼포먼스만 놓고 보면 부폰의 경기력은 역대급이다. 공중볼과 땅볼 방어에 모두 능했던 부폰은 상대 공격수와의 1대 1 상황에 특히 강했다. 전성기 시절 부폰은 다이빙과 캐칭, 큰 키(192cm)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한 점프력, 판단력, 담력에다 민첩성까지 두루 갖춘 완전체 골키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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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 월드컵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를 꺾고 우승한 부폰(맨 앞)이 환호하고 있다. ⓒOlaf Nordwich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페테르 체흐(1982~ 체코)

첼시 FC에 입단한 2004-2005 프리미어 리그 데뷔 시즌 35경기에서 24 클린 시트, 1,025분 연속 무실점, 게임당 0.43 실점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체흐의 나이 스무두세 살 때다. 프리미어 리그 4회 우승(2004-2005, 2005-2006, 2009-2010, 2014-2015), UEFA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2011-2012). 첼시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된다. 2006 시즌 머리 부상 이후 은퇴할 때까지 착용한 안면 보호 헬멧이 인상적.


▲2010년대

*마누엘 노이어(1986~ 독일)

제프 마이어, 올리버 칸과 함께 바이에른 뮌헨을 대표하는 독일 축구의 3대 골키퍼. 폭넓은 뒷공간 커버와 빌드업 능력을 갖춘 스위퍼 키퍼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분데스리가 샬케 04 시절이던 2009년 독일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국제무대에 이름이 알려졌다. 2011년, 노이어는 축구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았다. 분데스리가 최고 명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면서 3년 전 은퇴한 올리버 칸의 대를 이을 대형 골키퍼로 발돋움했다.


골문을 비운 채 페널티 박스 내 외곽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방어 능력과 웬만한 필드플레이어 못지않은 발기술에 힘입은 빌드업 가담으로 21세기형 스위퍼 키퍼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그러나 빌드업에 대한 욕심이 지나칠 경우, 화를 자초할 수 있다는 스위퍼 키퍼의 단점을 2018 러시아 월드컵 때 스스로 드러냈다.


러시아 카잔에서 벌어진 한국과의 본선 조별리그 3차전에서 노이어는 0-1로 뒤지던 후반 추가 시간, 중앙선을 넘어 무리하게 공격에 가담했다가 뺏긴 볼을 넘겨받은 손흥민이 폭풍처럼 질주해 텅 빈 독일 골문을 향해 추가 골을 넣는 모습에 망연자실했다. 한국 언론들은 카잔의 기적, 독일 언론들은 카잔의 치욕이라고 서로 정반대의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독일 축구 역사상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망신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전 대회 우승국으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독일은 당시 FIFA 랭킹 1위였다.


노이어는 분데스리가 11년 연속 우승(2012~2023),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및 골든 글러브 수상,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2012-2013, 2019-2020), FIFA 클럽 월드컵 2회 우승(2013, 2020)의 성취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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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노이어. ⓒАнтон Зайцев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데 헤아(1990~ 스페인)

박지성의 팀 동료였던 에드윈 반 데 사르(1970~ 네덜란드)는 자신의 뒤를 이어 맨유의 골문을 지키게 된 데 헤아를 처음 본 순간, 이렇게 말했다. “데 헤아는 큰 키(192cm)에 민첩성과 발밑 능력까지 갖춰 향후 10년간 세계 정상급 골키퍼가 될 조건을 다 갖춘 선수다.”

알렉스 퍼거슨(1941~) 전 맨유 감독과 이탈리아 레전드 골키퍼 출신 잔 루이지 부폰(1978~)은 마누엘 노이어와 함께 데 헤아를 동시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꼽았다.


데 헤아는 19살의 나이로 라 리가에 데뷔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입단 첫 해 UEFA 유로파 리그(2009-2010) 우승을 차지했다. 동시대 라이벌 마누엘 노이어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2011년 데 헤아도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2023 시즌까지 맨유에서만 프로 통산 545경기에 출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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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헤아. ⓒRolandhino1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맨유에서는 리그(2012-2013)와 FA컵(2015-2016), UEFA 유로파 리그(2016-2017)에서 각각 1회씩 우승했다. 실력에 비해 상복(賞福)도 없고 우승복(福)도 없는 편이다.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27년간 재임한 맨유 사령탑에서 퍼거슨이 물러난 뒤 침체에 빠진 팀 사정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발을 이용한 세이브 능력이 뛰어났다. 2024년 8월 이탈리아 세리에 A 피오렌티나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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