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8. 페널티킥과 할리우드 액션
축구 8. 페널티킥과 할리우드 액션
#핸드볼 파울
상대 팀의 페널티 박스에서 공격수가 공을 몰고 골문으로 돌진하다가 슛 동작을 취하려는 순간, 상대 수비수들은 손을 뒤로 젖힌 채 방어한다. 공이 손이나 팔에 맞는 핸드볼 파울을 피하기 위해서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골키퍼를 제외한 수비수가 핸드볼 파울을 범하면 치명적이다. 공격팀에게 페널티킥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페널티 박스 안은 여차하면 골을 넣을 수 있고 자칫하면 골을 내줄 수 있는 위험지역이라 수비수들이 긴장하는 이유고 정반대의 목적 달성을 노리는 공격수들도 마찬가지다. 파울을 유도하려는 공격수와 파울을 범하지 않으려는 수비수들 간의 치열한 수싸움이 찰나에 벌어지고 골키퍼는 언제 슛이 날아올지 몰라 극도의 압박감에 짓눌린다.
페널티킥 판정은 자기 진영 페널티 박스 안에 있는 선수가 핸들링을 포함해 직접 프리킥에 해당하는 반칙을 했을 때 성립한다. 핸드볼 파울이 적용되지 않는 골키퍼도 핸드볼 파울을 제외한 직접 프리킥의 효력이 있는 반칙을 범하면 역시 페널티킥이 선언된다. 핸드볼 파울이 적용되는 신체 부위는 겨드랑이 밑부분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다. 페널티킥을 차는 위치는 골라인에서 11m 떨어진 페널티 마크 지점이다. 페널티킥 후 골키퍼가 막아내 리바운드된 공은 키커나 공격팀의 다른 선수가 재차 골로 연결할 수 있다. 리바운드 공격이 허용되지 않는 승부차기와 다른 점이다.
여차하면 골을 넣을 수 있고, 자칫하면 골을 내줄 수 있는 페널티 박스 안에서는 몸싸움이 치열하다. ⓒJan S0L0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직접 프리킥에 해당하는 반칙
직접 프리킥에 해당하는 반칙 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조심성이 없거나 무모하거나 과도한 힘을 사용했다는 전제 중 하나가 따라야 하고 이에 대한 판단은 주심의 권한이다. 직접 프리킥이 주어지는 구체적인 반칙 행위는 다음과 같다.
▲공을 소유한 선수를 몸으로 부딪치는 행위(차징), ▲미는 행위, ▲때리거나 때리려고 시도하는 행위, ▲차거나 차려고 시도하는 행위, ▲다리를 걸거나 걸려고 시도하는 행위, ▲상대 선수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태클, ▲상대 선수에게 뛰어서 덤벼드는 행위, ▲상대 선수를 붙잡는 행위, ▲신체 접촉을 통해 상대 선수를 방해하는 행위, ▲상대 선수를 깨물거나 상대 선수에게 침을 뱉는 행위.
반칙 행위 중 상대 선수가 처할 위험 또는 위험의 결과를 무시하고 범한 무모한 파울은 경고 조치를, 과도한 힘을 사용해 상대 선수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파울은 퇴장 조치를 하도록 규정돼 있다.
#할리우드 액션
심판의 눈을 속이기 위한 노림수 플레이도 펼쳐진다. 파울을 유도하기 위한 공격수의 할리우드 액션이 대표적이다. 과장된 행동이나 몸짓으로 주심의 눈을 속여 반칙을 얻어내는 행위로 시뮬레이션 또는 시뮬레이션 액션이라고도 한다. 발재간이 좋아 드리블에 능한 공격수들이 즐겨 사용한다. 마라도나(1960~2020)와 호날두(1985~), 네이마르(1992~) 등이 대표적이다.
진위(眞僞)를 가리는 비디오 판독(VAR, Video Assistant Referee) 제도의 도입으로 공공연한 할리우드 액션은 줄어들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그런 장면이 나오고 있다. 비디오 판독을 거치더라도 할리우드 액션인지 아닌지, 애매할 때도 있다. 최종 결정권은 주심에게 있다. 할리우드 액션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 경고를 받는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 상대 팀 공격수가 골키퍼의 몸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골키퍼가 공격수의 움직임을 방해했다고 판단되면 페널티킥 반칙이 주어진다. ⓒjoshjdss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비디오 판독 제도 도입 전, 최전방 공격수들은 수비수와 몸싸움 도중 의도적으로 할리우드 액션을 시도했다. 실제로는 파울이 아닌데 파울을 당한 것처럼 거짓된 시늉으로 주심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수비수가 밀친 것처럼, 수비수가 발을 걸어 넘어뜨린 것처럼, 공과 상관없이 태클을 당한 것처럼 큰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허위 동작이 그런 행태다. 가식적인 고통의 신호는 시청각적인 호소에 홀린 주심에게 곧잘 먹혔는데 소리가 클수록, 몸짓이 그럴싸할수록 효과가 있었다.
#할리우드 액션을 처음 본 기억
할리우드 액션을 경기장에서 처음 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1975년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다니던 학교의 상급학교인 대구 계성고등학교에 축구부가 있었다. 재창단 2년째인 이해 계성고 축구부는 전국 대회 정상에 올랐다. 지금은 없어진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야간 경기로 벌어진 문교부 장관기 쟁탈 전국 고교축구대회 결승에서 전통의 강호 중동고와 연장전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전교생이 열띤 응원전을 펼친 결승에서 계성고 스트라이커 김태수(1958~)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2학년이면서 팀의 주전 골잡이로 나선 김태수는 주심의 눈을 감쪽같이 속이는 할리우드 액션을 능청스럽게 연기해 페널티킥을 얻어낸 뒤 자신이 직접 골로 성공시켜 공동우승의 일등 공신이 됐다.
키커와 골키퍼가 1대 1로 맞붙는 페널티킥 상황. ⓒMichael Barera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김태수의 연기가 얼마나 천연덕스러웠던지 심각한 부상이라 생각한 감독이 화들짝 놀라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기억이 생생하다. 할리우드 액션은 페널티킥을 따내기 위해 최전방 공격수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 속임수였다. 연세대로 진학한 김태수는 아주대 감독과 프로축구 부산 대우(현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지냈다.
#공연한 망상
골키퍼는 경기장에서 손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다. 너비 40.3m, 길이 16.5m의 직사각형 페널티 박스 내에서 골키퍼는 마음대로 손으로 공을 다룰 수 있다. 페널티 박스를 벗어나면 골키퍼도 손을 사용할 수 없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골키퍼도 필드플레이어들처럼 손을 사용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여러 가지 상황이 필연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우선 공중 볼 형태의 슈팅이 난무할 것이고 골키퍼의 전유물인 다이빙 캐치가 실종될 것이다. 손을 쓸 수 없는 골키퍼로서는 공중으로 날아오는 슈팅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게 뻔하다. 먼 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쏘아대는 중장거리 슈팅 시도도 남발할 것이다. 골문을 향한 볼의 궤적이 골키퍼의 정면에서 조금만 비켜나도 골인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의 도입으로 공공연한 할리우드 액션은 줄어들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그런 장면을 볼 수 있다. ⓒWerner100359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문전을 향한 크로스 상황에서도 손을 쓸 수 없는 골키퍼가 대응할 방법은 난망하다. 낮게 깔리는 땅볼 슛에 대한 방어 능력도 현저하게 떨어질 게 분명하다. 볼의 방향이 골대의 양쪽 기둥 쪽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골키퍼가 막아낼 확률은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골키퍼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알고 있는 축구 경기의 일반적인 득점 양상과는 사뭇 다른 우스꽝스러운 사태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골키퍼의 역량을 평가하는 지표의 영역도 대폭 축소돼 골키퍼의 존재감이 추락할 것이고 슈퍼 세이브에 대한 기대도 접어야 할 것이다. 골키퍼의 무실점 방어 경기인 클린 시트도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수비수들의 부담도 몇 배로 커질 것이다. 상대 공격수들의 슈팅 기회를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벌떼형 밀착 수비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어 체력 소모가 많아지고 파울 수도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경기 양상이 거칠어지고 걸핏하면 주심의 휘슬 소리에 경기가 중단되는 일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열거한 상황이 벌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 공연한 망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