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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공의 미학(美學)

축구 9. 운동선수의 몸

by 박인권

축구 9. 운동선수의 몸


#반복 훈련과 몸의 반응

운동선수는 몸이 기억하는 삶을 살아가는 직업인이다. 운동선수의 직업적 성취는 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운동선수에게 육체의 의미가 특별한 이유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말이 있듯이, 직업적 토대를 몸에 두고 있는 운동선수에게 몸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운동선수에게 육체는 그 자체가 곧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업으로 삼는 프로 선수의 직업적 퍼포먼스는 장기간에 걸쳐 혹독하게 학습한 몸의 반응에서 나온다. 경기 도중 나타나는 몸의 반응은 계산된 행동이 아니라 저절로,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본능에 가깝다. 반복 훈련의 효과가 몸에 각인되면 몸은 기억하고 있던 습관을 특정 상황에서 조건반사적으로 쏟아내게 된다. 땀과 노력의 결실이다. 손보다 대응 능력이 훨씬 뒤처지는 발로 축구공을 다뤄야 하는 축구 선수들은 발등과 발끝, 발가락, 발바닥, 발 안쪽과 바깥쪽 면의 감각을 손처럼 담금질해야 해 기술적 연마 과정이 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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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경주에 나서는 단거리 육상 선수들은 키가 크고 다부진 몸매에 근육질 체형이다. ⓒCharlyneros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운동선수에게 몸은 곧 존재의 뿌리이자 직업적 퍼포먼스의 근원이라 어떤 분야보다도 육체적 경쟁력이 중요하다. 전술과 작전을 수행하는 능력과 기술적 완성도, 종목별로 필요로 하는 역량의 근본 동력(動力)은 모두 잘 훈련된 신체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종목마다 특성이 다 다르고 훈련 방법도 달라 근육의 발달 형태도 다를 수밖에 없다.


단거리 육상 선수는 큰 키에 다부지고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매고 마라톤 선수는 단신(短身)에 마르고 가냘픈 체형이다. 유도 선수와 레슬링 선수는 검투사를 방불케 하는 상체 근육이 압도적이고 복싱 선수는 군살이라고는 하나 없는 순도 100%의 복근(腹筋)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조정과 카누 선수는 허리의 힘이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사이클 선수는 허리의 힘에 더해 하체 근육이 튼튼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모두 다 해당 종목의 경기 방식과 훈련 방법에 선수들의 몸이 적응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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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선수는 허리와 하체 힘이 강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Johnkekam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체급 경기의 특징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친구처럼 지내던 동향(同鄕)의 동갑내기 유도인이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당시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재직 중이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우연히 그의 팔을 만지게 된 나는 깜짝 놀랐다. 은퇴한 지 수년이 지난 30대 중반의 몸이었는데도 팔 근육이 돌덩어리처럼 단단했다. 유도 선수들의 상체 체격과 근력(筋力)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손끝에 와닿은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그의 몸에는 입에서 단내가 나고 온몸이 녹초가 되도록 강훈련에 매달렸을 현역 때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꽤 오래전에 현역에서 떠난 그의 몸 상태가 이러할진대 선수로 뛸 때는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체급 경기인 유도 선수들은 대회를 앞두고 한계체중에 맞추느라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 대회를 치르고 나면 후유증으로 며칠 동안 피똥을 싸는 일도 잦다고 한다. 이 친구의 고교 동기로 4년 먼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또 다른 동갑내기 유도인은 현역 시절 식탐(食貪)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매번 거의 10kg씩 몸무게를 빼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다. 극한의 신체 경쟁력을 도모한 운동선수들이 감내해야 할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일 것이다.


유도와 마찬가지로 체급 경기인 복싱 선수들도 체중 감량과 싸우느라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세계 타이틀전을 치르는 선수들은 빠르면 경기 두 달 전부터 체중 감량 작전에 돌입한다. 체중 관리는 경기 당일 컨디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라 트레이너가 예의주시하는 요소다. 매일 훈련이 끝나면 몸무게를 재고 식단(食單)과 훈련량을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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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선수들의 몸은 상체 근육의 탄력성이 압도적이다. ⓒRede do Esport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프로복싱 세계 타이틀 방어를 성공적으로 끝낸 선수들이 싫어하는 행동이 있다. 경기 후 복싱 선수들의 맨손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고 통증이 심하다. 경기 내내 무수히 주먹을 휘두른 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이때 피할 수 없는 일이 승리를 축하한다며 손을 내미는 악수 요청이다.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상대의 선의를 무시할 수 없어 기꺼이 손을 잡지만 그럴 때마다 손마디가 쑤시고 아프다는 것이다. 1980년대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을 지낸 선수에게 들은 얘기다.


#축구 선수의 몸

90분간 쉼 없이 몸싸움을 펼치며 필드를 뛰어다녀야 하는 축구 선수들의 몸은 매력적이다. 축구 선수들이 한 경기에서 이동하는 거리는 평균 10~12km라고 한다. 선발 출전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뛰었다고 가정했을 때 분당 110m~130m를 이동하는 셈이다. 걷다가 뛰다가 전력 질주하고 뛰어오르고 넘어지고 구르고 몸과 몸끼리 부딪치는 동작이 경기 내내 반복된다. 에너지 소모량이 엄청나고 크고 작은 부상이 속출한다.


공을 차면서 달리는 경기라 복근과 허벅지 근육이 발달 돼 있고 발목 힘도 강하다. 직업적 역할의 대부분이 공을 쫓아 경기 내내 순간적으로 달리는 동작을 반복하고 전력 질주하는 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형성된 신체적 특징이다. 군살이 붙을래 야 붙을 수 없는 축구 선수들의 맨몸은 탄탄하다.


훈련 때 익힌 감각을 몸에 뚜렷이 저장하려면 훈련을 실전처럼 생각하고 임하는 각오가 몸에 배야 한다.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한 훈련이 차곡차곡 쌓여 비교우위의 경쟁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종목별로 정점을 찍은 세계적인 선수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남다른 운동 감각이라는 타고난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보다 몇십 배, 몇백 배 더 성실하고 고된 훈련으로 오랜 기간 육체적 강인함과 승부 근성을 부지런히 갈고닦았다는 점이다. 그들을 옆에서 지켜본 동료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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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분 내내 공을 차면서 달리고 넘어지고 부딪히는 동작을 반복하는 축구 선수들의 몸에서는 군살을 찾아볼 수 없다. ⓒmustapha ennaimi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땀과 노력의 의미

일본 프로야구 최다 안타 기록(3,085개) 보유자인 재일교포 장훈(최근 일본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밝혀져 한국계 일본인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과 한 팀에서 뛰었던 전 LG트윈스 감독 백인천은 1990년대 초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1962년 내가 도에이 플라이어스(니혼햄 파이터스의 전신)에 입단해 2군에 있을 때 장훈 선배는 이미 퍼시픽 리그 정상급 타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이듬해 1군으로 승격한 어느 날 새벽 숙소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잠에서 깨 화장실을 갔다 오는데 어디선가 윙, 윙,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나섰다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팬티 바람의 장훈 선배가 혼자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야구를 잘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다. 장훈의 새벽 스윙 훈련은 일본 프로야구를 평정한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표상이다. 일곱 차례나 타격왕(1961, 1967~1970, 1972, 1974)에 오른 장훈은 통산 타율 3할대(0.319) ‧ 500홈런(504개) ‧ 300도루(319개)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타자다.


백인천은 1975년 퍼시픽 리그 타격왕을 차지하는 등 1981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활약했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첫 해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뛰며 4할1푼2리(0.412)라는 꿈의 타율을 기록한 한국프로야구 유일의 4할 타자다.


운동선수들의 몸에는 그들이 날마다 흘렸을 땀과 노력의 흔적이 화석처럼 박혀있다. 몸이 거짓말을 하지 않듯이, 땀과 노력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전성기 시절, 축구 선수 호날두(1985~)는 하루 3천 개씩 윗몸일으키기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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