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창고 추억여행

1. 고향 집 오디세이 ①재래식 화장실

by 박인권

고향 집 오디세이 ①재래식 화장실


#기와집의 구조

어릴 때, 고향 집은 개량 기와집이었다. 널따란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큰 방과 작은 방이 있었고, 마당 너머로 세(貰)를 놓은 곁방이 하나 딸려 있었다. 부모님과 위로 두 형, 나 다섯 식구가 살았는데 대청마루는 우리 3형제의 놀이터였다. 큰방에 딸린 부엌에 수도가 설치돼 있었고, 마당 한 구석에 또 하나의 큼지막한 수도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연탄 난방과 양은솥

그 시절, 기와집이 그러했듯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대문 바로 옆에 외톨이처럼 떨어져 있었고 난방 방식은 연탄이었다. 사시사철 연탄이 떨어질 날이 없었고, 연탄을 보관하는 창고가 따로 있었다. 큰방에는 연탄아궁이가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난방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석유풍로(風爐)와 함께 취사용이었다. 한겨울이면 큰방 아궁이 한쪽에 늘 커다란 양은솥이 걸려 있었다. 온수 시설이 없어 물을 데우기 위해서였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펄펄 끓는 물 몇 바가지를 떠 미리 받아둔 찬물과 섞어 세수하고 머리를 감곤 했던 기억이 난다. 자기 전에 누군가 데운 물을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사용하고는 물을 채우는 것을 깜빡 잊은 날이면 다음 날 아침 기상 시간이 가장 빠른 아버지의 호통에 가족 모두 움찔했던 적도 더러 있었다.


남산 한옥 마을의 전통 기와집. 고향 집은 개량 기와집이라 전통 기와집 양식과는 조금 달랐다. 장독대도 시멘트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했는데, 바닥에서 높이가 3m쯤 됐다. ⓒfrakorea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아담한 정원

마당 한가운데에는 아담하지만 소담스럽게 꾸며진 정원이 있었는데, 그 안에 심어진 형형색색의 꽃들이 고운 자태와 은은한 향기로 기와집의 정취를 돋웠다. 키 큰 모과나무와 감나무도 마당을 지키고 있었는데, 수확 철이면 모과 술을 담그고 떨 감이 홍시(紅柹)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나눠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온돌방 생활

나이가 제일 어린 나는 주로 부모님이 계시는 큰방에서 지내다가도 수시로 형들이 있는 작은 방에서 자곤 했다. 온돌방에서 이불을 깔고 자던 시절이라 작은 방이라도 세 명이 자기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식구들 각자의 독방 생활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다 같이 허리띠를 졸라매던 그때 남자 형제나 여자 형제 두셋이 같은 방을 쓰는 일은 흔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한방에서 형제가 부대낌으로써 서로 간에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알게 모르게 피붙이의 정을 느끼게 한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큰형은 40대 후반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둘째 형은 사는 지역이 달라 왕래가 뜸하다 보니, 어릴 때가 더욱 그리워진다.


#기와집과 화장실

그 시절, 식구들이 가장 불편해했던 게 하나 있었는데, 화장실 문제였다. 그때는 화장실이라는 이름 대신 변소(便所)라고 불렀다. 한자어에서 알 수 있듯, 배설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이다. 시골에서는 화장실을 뒷간(間)이라고 호칭했는데, 변소보다 부드럽게 순화한 이름이다. 어의(語義)를 살피자면 뒤에 있는 곳이라는 의미인데 살림집과 부엌에서 동떨어진 위치를 강조한 이름이 아닌가, 싶다.


#해우소(解憂所)

한자 말로 된 해우소(解憂所)라는 호칭도 있다. 글자 그대로 근심 걱정을 없애는 곳이라는 아주 멋스럽고 철학적인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요즘도 산자락에 자리한 절을 방문하면 해우소라는 안내판이 걸린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칭하는 화장실(化粧室)은 화장하는 방을 뜻하는데, 용무를 마치고 얼굴과 옷매무새를 고치는 용도를 세련되게 부각한 현대식 명칭이다.


#아침마다 전쟁터로 돌변하는 화장실

우리 가족과 곁방 식구까지 일곱 명이 대문 옆 화장실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했던 터라, 아침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재래식 변기와 소변기가 하나씩 설치된 화장실은 낮이나 밤엔 한산하다가도 아침만 되면 서로 먼저 차지하느라 북적거리기 일쑤였다.


크고 작은 장독들이 놓여 있는 장독대. ⓒKorea.net /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궁하면 궁한 대로 살길이 있다고, 일찌감치 일어나 화장실을 먼저 다녀오거나 아예 생체리듬이 늦게 발동되도록 스스로 조절해 맨 나중에 드나드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늦잠을 자 화장실 대기자가 밀려있는 와중에 생리현상이 급발진이라도 하는 경우엔,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아랫배에서 묵직한 놈이 긴급 구조신호를 보내올 때의 그 곤욕스러움은 당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럴 때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참을 인(忍), 한 글자를 주문처럼 되뇌며 괄약근의 군기(軍紀)가 풀어지지 않도록 온몸을 쥐어짜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끝이 쭈뼛해지는 무한 고통의 그 시간은 왜 그리 긴지, 하염없이 화장실 문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鶴首苦待)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육체적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러 괄약근의 확장 기세를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 시나브로 불쾌한 촉감이 뇌리를 스치며 아뿔싸, 하고 외마디 비명을 속으로 삼키게 된다. 현대식 화장실을 복수로 갖춘 아파트가 국민 주거 공간으로 정착한 지금에야 상상도 못 할 일이 그 시절엔 일상(日常)이었으니,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기와집

재래식 화장실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일화가 여럿 있다.기와집 생활은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건축자재의 품질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는 데다, 열기와 냉기 차단에 적합하게 설계된 아파트와는 다른 기와집 특유의 구조적인 문제에 더해 열악한 냉난방 시설 등이 겹친 결과다. 가정식 에어컨이 희귀할 때라 부채와 선풍기로 한여름을 나야 했는데, 무더위를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끈적끈적한 땀이 찰 정도로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날이면 잠을 뒤척이기 일쑤였다.


겨울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당시 기와집에 딸린 창문은 방풍(防風)과 방한(防寒) 기능이 있는 이중창이 아니라 외겹의 홑창이 일반적이라 한겨울 추위에 속수무책이었다. 난방 방식도 연탄을 때는 온돌식 난방이라 방바닥만 따뜻할 뿐, 외풍(外風)이 심하고 방안은 냉기(冷氣)가 싸늘했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날에는 두꺼운 솜이불로 온몸을 꽁꽁 감싸야 겨우 잠을 이뤘다.


놋쇠로 만든 요강. ⓒ69x69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겨울나기의 필수재, 요강

겨울날 한밤중에 요의(尿意)가 느껴지면 보통 성가신 게 아니다. 마당 구석에 떨어져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가자니, 춥기도 하고 귀찮기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때 요긴한 물건이 있으니, 바로 요강이다. 지금은 추억 속에서나 존재하는 요강은 뚜껑이 달린 단지 모양으로 생긴 소변(小便)을 누는 그릇인데, 놋쇠나 사기(沙器)로 만들어졌다. 기와집 생활에서 요강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겨울철 필수품이나 다름없었다. 방 한구석 윗목에 두는 집도 있지만 우리 집은 대청마루 귀퉁이에 늘 요강이 놓여 있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하는 일도 출렁이는 요강을 조심스레 비우고 깨끗이 세척(洗滌)하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요강은 옛날 기와집이나 시골 초가집에서 겨울을 나는 데에 꼭 필요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아이디어 상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여름에 화장실 가기

겨울은 그나마 요강이라도 있었지, 푹푹 찌는 여름날 화장실을 가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화장실 문을 열면 좁은 공간에 갇힌 열기(熱氣)가 온몸을 사정없이 덮치는 데다 사방으로 떠다니는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파리떼와 모기떼까지 설쳐대는 여름철이면 날마다 어쩔 수 없이 힘겨운 화생방 훈련에 시달려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맨살을 드러내고 쪼그리고 앉아 있을라치면 속수무책으로 모기떼의 일방적인 기습 공격을 받곤 했는데 그나마 속전속결(速戰速決)로 일을 치르는 것만이 피의 희생을 줄이는 방책이었다.


재래식 화장실과 관련해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다. 화장실용 두루마리 화장지가 귀한 시절이라 가정집에서는 대개 신문지를 휴지 대용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요즘 세대의 눈으로 보면 딴 세상에서 벌어진 희한한 일이라 여기고도 남을 것이다.


#위생(衛生) 차

재래식 화장실이 불편한 점은 또 있다. 급수장치가 장착돼 분뇨(糞尿) 처리시설이 자동화된 수세식(水洗式) 화장실과 달리 재래식 화장실은 수동으로 오물을 제거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집 집마다 위생(衛生) 차를 따로 불러 유료로 분뇨를 수거해야 했는데, 우리 집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이용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동네에 위생 차가 출동한 날이면 고약한 냄새가 온 사방에 퍼져 인상을 찌푸리곤 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 시절대로 불편해도 다 그렇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