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창고 추억여행

2. 고향 집 오디세이 ②대청마루

by 박인권

고향 집 오디세이 ②대청마루


#대청마루의 의미

나에게 대청마루는 곧 고향 집을 뜻한다. 그 말을 들으면 어릴 때 부모님, 두 형과 오래 살았던 추억이 현재진행형으로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고향 집 대청마루에 대한 그리움은 헤아릴 수없이 많다. 안방과 작은 방 사이에 니스칠한 나무 바닥이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으로 넓게 깔린 대청마루는 늘 번지르르했다. 니스칠이 햇빛에 반사돼 윤기가 나고 매끄러운 대청마루를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정성을 다해 걸레로 닦고 훔쳤다.


#걸레질의 고단함

생각해 보면 그 시절, 걸레질은 중노동이나 다름없었다. 진공청소기와 물걸레 청소기가 가정집에 등장하기 훨씬 전이라 빗자루로 일일이 바닥을 쓸고 손걸레로 이방 저 방 마루까지 닦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 빗자루질도 고되었지만, 무릎을 꿇고 몸을 앞으로 밀면서 나아가는 걸레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걸레질이 중노동인 이유는 무릎과 허리, 손목, 팔, 어깨, 목으로 이어지는 신체의 중요 부위를 하나도 빠짐없이 강도 높게 압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빗자루질에 비해 걸레질은 시간이 두세 배는 더 걸려 한계노동 고통지수가 가파르게 올라간다. 손으로 물걸레를 움켜쥐고 방바닥을 한번 닦아보라. 방 2~3개와 거실까지 걸레질을 마치고 나면 삭신이 쑤시고 앞이 노래질 것이다. 그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은 가사노동의 육체적 완결판이랄 수 있는 고된 걸레질을 평생 날마다 군말 없이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새삼 그 거룩한 노고(勞苦)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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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공과 탁구 라켓. ⓒI, IanLamberson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청소 당번

초등학교 다닐 때, 어쩌다 휴일에 용돈벌이 삼아 어머니를 대신해 형들과 청소를 한 적이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청소가 힘든 걸 알았던지 3형제는 가위바위보로 순번을 정했다. 청소할 장소와 빗자루질과 걸레질 담당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1등은 청소할 장소 한 군데만 골라 빗자루질만 하면 됐고, 2등은 나머지 공간의 빗자루질을, 꼴찌는 모든 공간의 걸레질을 도맡아야 했다. 가위바위보 결과에 따라 희비가 크게 엇갈리는 사안의 중대성을 참작해 단판 승부가 아닌, 삼세판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순위를 가리곤 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다목적 공간인 대청마루

대청마루는 다목적 공간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우리 형제들의 맞춤형 놀이터였다는 사실이다. 안방보다도 넓은 대청마루에서는 흥미진진한 놀이와 게임이 날마다 펼쳐졌다. 대청마루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았던 내게 제일 먼저 기억에 남는 게임은 미니 탁구 경기였다. 경기가 벌어지는 무대인 탁구대(卓球臺) 설치는 의외로 간단했다. 우리 집에서 제일 큰 행사용 상(床)을 셋이 들어 대청마루에 펼치면 됐다.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대접하거나, 명절 제사 때 사용하던 상이 임시 탁구대로 쓰인 것이다.


#대청마루와 탁구 게임

탁구대를 대신한 상은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두꺼운 원목에다 열에 강하고 투명한 포마이카칠을 해 광택이 나는 고급 제품이었다. 실제 탁구대보다야 작지만, 움직이는 탁구공을 되받아 튀기는 반발력이 뛰어나 게임을 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탁구대 공간이 실제 탁구대보다 좁아 네트 반대편에서 넘어온 공에 대한 반응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어 박진감이 넘쳤다. 공의 비행거리가 짧아 낙하지점까지 걸리는 시간도 그만큼 빨라 순발력이 없으면 상대 공격을 막아내기 힘들었다.


탁구대 양쪽을 가르는 네트는 다듬잇방망이 한 쌍을 옆으로 잇대 만들었다. 탁구 라켓과 탁구공은 동네 문방구에서 샀고, 경기 규칙은 실전과 똑같이 적용했다. 장소가 대청마루고, 탁구대가 포마이카 상이라 양반다리를 하거나 무릎을 꿇은 자세로 게임에 임했다. 내가 탁구 라켓을 처음 잡아본 게 이때였다.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나이 10살 때였다. 임기응변에 능한 순발력과 함께 정식 규격보다 협소한 탁구대 안에 공을 떨어뜨리는 정확성이 필요했기에 탁구 감각을 익히는 데에는 그만이었다. 정식으로 탁구 지도를 받은 적이 없으면서도 이때의 경험이 몸에 배 동네 탁구장에서 친구들과 내기 탁구를 해도 꿇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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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글러브. ⓒen:User:Andman8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복싱 경기

탁구 다음으로 많이 즐긴 놀이는 복싱이었다. 아버지가 사다 주신 글러브를 끼고 대청마루 전체를 링으로 삼아 1분 1회전 3라운드 경기를 한 당시 모습이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놀이로 하는 경기라 행여 다칠세라 얼굴 가격은 금물이고 몸통 공격만 허용됐다. 한 번이라도 복싱 글러브를 껴본 사람은 알겠지만 맨 주먹일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글러브의 무게감이 만만찮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숨을 헐떡거리게 되고 양다리에 힘이 쭉 빠져 주먹을 내밀기가 쉽지 않고 방어 자세인 가드가 자꾸 내려온다. 1분 1회전 3라운드가 어찌나 긴지 게임이 끝나고 나면 형들이나 나나, 기진맥진해 한참을 누워 있곤 했다.


#씨름과 팔씨름

그 시절, 남자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 으레 그랬듯, 씨름과 팔씨름도 우리 형제들의 무료함을 달래는 놀이였다. 팔씨름은 두 살, 다섯 살 위의 형들을 이길 수 없었지만, 씨름은 간혹 내가 이기기도 했는데, 우연의 결과이거나 막내의 기(氣)를 살려주려 일부러 쓰러져 준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3. 홍보용 전단지(맨 위)와 노트(오른쪽), 신문지로 접은 딱지..jpg

홍보용 전단지(맨 위)와 노트(오른쪽), 신문지로 접은 딱지. ⓒPARK IN KWON

요즘에는 어린이 체험교실에서 딱지치기 놀이를 가르치기도 한다.


#딱지치기

딱지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딱지치기는 대청마루에서도 하고 마당에서도 했다. 신문지나 빳빳한 잡지 종이를 정사각형 모양으로 풀리지 않게 안으로 꼬아 접으면 딱지가 완성됐다. 바닥에 놓인 상대 딱지를 내 딱지로 쳐서 뒤집으면 이기는 놀이였다. 문방구에서 장비와 재료를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다른 놀이와 달리 돈이 들지 않아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승부를 가르는 방식은 두 가지였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는 사람이 최초의 공격권을 확보하면서 놀이는 시작된다. 하나는 손에 쥔 내 딱지로 상대 딱지 밑바닥을 들어 올리듯 세게 쳐서 넘기는 거였고, 나머지 하나는 상대 딱지 옆면에 밀착시킨 한쪽 발 안쪽을 지렛대 삼아 손으로 가격해 뒤집는 거였다. 한쪽 발을 대는 방식은 타격을 가했을 때 상대 딱지가 내 발에 부딪히는 반동을 이용할 수 있어 손만 사용하는 방식보다 유리하다. 발기술이 뛰어난 아이들이 선호했다.


상대 딱지를 공격한 내 딱지가 원래 상태를 유지한 상대 딱지 위에 얹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상대방이 이긴 것으로 간주한다. 실제 놀이 도중 간혹 이런 장면이 나온다. 딱지치기는 딱지끼리 부딪칠 때 나는 철퍼덕, 소리가 집중력과 승부 욕구를 불타게 하고, 상대 딱지를 뒤집었을 때 맛보는 통쾌함이 매력인 놀이다.


#독서 공간

대청마루는 우리 형제들에게 놀이터 말고도 여러 가지 유익하고 실용적인 공간이었다. 우선 생각나는 것이 형제가 함께 또는 홀로 책을 읽는 공간으로 그만이었다. 장소가 넓어 드러눕거나 이리저리 뒤척이며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 있었고, 통창을 활짝 열면 마당 정원이 훤히 내다보여 독서가 지루할 때쯤 한 번씩 바깥 풍경에 눈을 돌리곤,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세계 문학전집과 백과사전, 동화책 등이 꽂힌 책장도 대청마루에 놓여 있어 이 책 저책 눈가는 대로 꺼내 읽는 편의성도 우리 형제가 대청마루를 선호한 이유였다.


#음악감상실

대청마루는 또 음악감상실이기도 했다. 집안에 아무도 없을 때, 작은 방에 있는 라디오 겸용 녹음기를 가져와 듣고 싶은 노래가 담긴 재생용 카세트테이프를 꽂고 흘러나오는 가락에 맞춰 흥얼거리기도 하고, 라디오 음악프로에서 DJ가 선별한 인기 가요와 팝송에 심취하기도 했다. 카세트테이프는 1970년대에 대중화되면서 중고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좋아하는 노래를 직접 녹음해 친구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1980년대 C.D. 플레이어가 개발되면서 점차 설 자리를 잃었으며 스마트폰 시대인 요즘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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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테이프. ⓒMalcolm Tyrrell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고등학생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라디오 방송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심야 라디오 음악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였다. 팝송 프로는 1973년 첫 방송을 시작한 ‘두 시의 데이트’를 애청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와 ‘두 시의 데이트’는 각각 방송 역사 53년, 50년을 자랑하는 장수 프로다.


#대나무 돗자리

그뿐 아니라 초여름과 한여름, 초가을 가족 식사는 거의 대청마루에서 해결했으며, 과일을 나눠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등 거실 용도로도 요긴하게 사용됐다. 폭서기(暴暑期)에 더위를 피할 유일한 공간도 대청마루였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만 아니라면 아침과 해거름, 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마루의 기운은 그 위에 깐 대나무 돗자리와 더불어 불볕더위의 맹위를 제법 누그러뜨렸다. 대나무 돗자리는 습기를 제어하고 끈적거림을 없애는 효과가 있어 여름철 대청마루와 방안의 필수품이었다. 해 질 무렵 대청마루에서 청하는 낮잠은 꿀잠이었다.


대청마루가 사계절 내내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추운 겨울에는 가족의 모든 활동 무대가 방 안으로 옮겨졌다. 여느 집과 비슷하게 우리 집의 난방기구도 연탄불과 석유난로라 통창으로 칼바람이 스며들고 매서운 한기(寒氣)가 공간을 파고드는 대청마루는 겨울철의 회피 장소였다.


#가래떡과 철제 금고

겨울철이라고 대청마루가 아주 쓸모없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설 명절 전후로 동네 방앗간에서 뽑아온 가래떡과 떡국용 채 썬 떡을 소쿠리에 담아 말리고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이외에 대청마루의 기억으로는 3~4살짜리 어린아이 키 높이의 철제 금고와 책장, 전축이 떠오른다. 철제 금고는 기와집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던 양옥(洋屋) 시절 당시 주택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현금보관용으로 마련한 것이었다. 사업 실패로 이사를 하고 나서도 아버지는 철제 금고를 버리지 않고 인감도장과 이런저런 서류 따위를 담아 대청마루 한쪽 구석에 놓아두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1978년에는 거금을 들여 장만한 냉장고가 대청마루에서 가장 중요한 귀중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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