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이 책이 내게 남긴 이야기
나는 어렸을 때 따라쟁이였다.
아마 6살인가 7살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유치원 버스에서 친구가 하는 말을 따라 하면서 놀았던 적이 있다.
나는 그렇게 웃고 노는 게 즐거워서 다음날도 그렇게 따라 했고
친구는 짜증을 냈다.
그리고 난 사촌언니 따라쟁이 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일을 해서 큰집에서 자랐고, 학교에 간 뒤에도 큰집에 자주 가서 놀았다.
사촌 언니랑 지금은 친자매만큼 내 남동생보다 더 연락을 많이 사이지만,
그땐 정말 지지리도 많이 싸웠다.
그러면서도 난 언니의 모든 것을 따라 했다.
언니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걸 보고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 학원에 가고 싶다고 졸라 다녔고,
중학생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 열람실에도 초등학생인 내가 따라 들어가
언니 친구들과 공부한다고 앉아있었다.
내가 스스로 좋아하는 좋아하는 것을 찾은 적이 없이 그땐 따라 하는 게 좋았고,
그게 그 나이 때는 다 그렇다지만, 나는 좀 지나쳤다.
같은 것을 하면 인정받는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다 점점 커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먼지 모르고,
내가 나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방법 하나 갖지 못한 채 커가다 보니
고등학교 때 문제가 생겼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공부하는 데 지쳤고,
나는 그런 공부를 계속해나가기엔 내 탈출구가 없었다.
내가 숨 쉬고 좋아서 잠시라도 행복해 미칠만한...
그리고 내겐 마음을 나눌 능력도 없었다.
그땐 내가 '먼가 능력이 있지 않아도 누군가 날 사랑해줄 것'이란 믿음이 없어
그걸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러다 보니 과하게 주고, 과하게 표현했다.
마음을 나눌 겨를 없이...
그리고 결국 나는 지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리고 난 꽤 오랫동안 성인이 되도록 마음 한 켠에 엄마 탓을 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해야 기뻐해서,
온전히 사랑해 주지 않아서,
스스로 채찍질하며, 인정받기 위해
그렇게해서 사랑받기 위해 살았기 때문에 지쳤다고...
내 아이는 나처럼 느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속에도 엄마 탓이 항상 있었던 거 같다.
내 아이는 6살이다.
아이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엄마는 나 사랑해?"
나는 그래서 이 말에 가슴이 덜컹한다.
아이가 느닷없이 "나 사랑해요?"라고 물어오면 머라고 답해주시나요?
"아유 당연한 걸 가지고!"라고 답해주면 됩니다.
아이에게 "왜 그런 생각을 해?"라고 묻지 마세요. 아이는 그냥 그런 생각이 든 겁니다.
뭐가 이유이든 간에 불안한 마음에 혹은 헷갈리는 마음에 물은 것이니 확실하게 대답해주면 됩니다.
_'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중에서
이렇게 묻는 아이가 내 아이만도 아닌데, 난 책에서처럼 하지 못했다.
이유를 찾으려 했고,
문득문득 왜 그렇게 묻는지 물어보았으며,
'혹시나 내 사랑이 부족해 인정받기 위해 과하게 행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아주 멀리 간다.
나처럼 클까 봐...
아이가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 그 사랑에 부족함이 없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과 당연히 알 거란 오만함이 동시에 왔다.
불안해서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엄마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그건 너무 속상하다" 라고 말했다.
오만함이 와서 나도 모르게,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 그 아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해주는 대로 내가 그 아이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듯이,
점차 그 아이의 행동도 내가 바꿔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아이가 원하는 것까지 바꿔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상대의 마음도, 나의 마음도 그냥 좀 두세요. 흘러가는 마음을 가만히 보세요.
흘러가게 두어야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상대도,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을 볼 수 있어야 감정이 소화되고 진정도 돼요.
_'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중에서...
아이는 내가 아니다.
그러기에 내가 그 아이에 감정을 함부로 할 수 없다.
그 아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까지 함부로 할 수 없다.
나도 우리 엄마가 마음껏 주었던 사랑을
내 마음으로 들여다 보고 소화했기에,
내 스스로 나를 가두기도 하고
조금은 돌아와
이제야 '모든 게 내 마음에 있었다' 느끼듯
받아들이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그것에 주체는 아이이다.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을 줄 뿐,
내 최선을 다해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말해주려 노력해야 할 뿐,
그 아이의 마음까지, 행동까지 내가 조절해 줄 수는 없다.
오늘 저녁 내가 아이에게 양치하러 가자는 말에,
아이가 떼쓰면서, "지금은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나는 왜 내 마음대로 양치하는 시간을 정하고,
그 아이가 그것을 지금 안 하면 옳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내가 충분히 표현했기에 아이가 당연히 알 거'란 생각의 오류처럼
나는 어느 순간 내 아이에게 내가 말한 행동이 옳다고 생각을 강요하고 있던 건 아닐까...
내 아이도 생각을 말하고, 의견을 말하고, 느낌을 가진 소중한 인격체인데...
나는 오늘 말해보았다.
"책을 읽고 그럼 양치를 해볼까?"
아이가 웃으면서 "그래!" 하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진다.
내 아이가 나와 같은 감정을 겪을까 봐 하는 불안에,
그리고 그 감정이 내 마음이 아닌 우리 엄마에서 왔다는 내 착각에,
나는 어느 순간 아이에게 내가 원하는 감정을 강요하고 있었나 보다.
책에 나온 이야기처럼
아이는 아이나름대로 잘 자라고 있다.
아이의 선택도, 아이의 느낌도, 아이의 생각도
나의 선택만큼, 나의 느낌만큼, 나의 생각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걸 느낀다.
** 이 글을 남길 수 있게 해 주신 오은영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