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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Nov 23. 2022

오늘의 추천 고전 (3) 모르타라 납치사건

19세기 교황청이 유대인 어린이를 납치한 사건을 그린 압도적 역사 논픽션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압도적인 역사 논픽션. 그렇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실제 사건을 묘사한 ‘논픽션 작품’이다. 책 표지엔 우울한 눈빛으로 주눅 든 표정의 한 어린이가 그려져 있다. 19세기 서구 세계를 들끓게 한 유명한 납치사건의 주인공 에르가르도 모르타라다. 납치한 집단은 다름 아닌 로마 교황청이었다. 존경받는 종교집단이 힘없는 어린이를 납치하다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명료하고도 극적인 내러티브가
한 편의 법정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픽션에 비견될 만큼 놀라운 구성!


 논픽션이지만 치밀한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탁월한 묘사로 흡사 소설을 읽듯 흡입력이 대단하다. 19세기 격동의 유럽 한가운데 떨어져 사건을 방관하는 기분이 든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들, 당대 지식인과 언론인, 작가들의 기록과 법정 수기를 치밀하게 조사하여 실은 탓에 이 사건에 연관된 인물들이 겪었던 다양한 심적 파노라마를 이해할 수 있다. ​19세기 가톨릭 교회가 세례를 이유로 6살 난 유대인 어린이 에르가르도 모르타라를 납치한 사건!


에르가르도 모르타라의 납치


 로마 교황청과 종교 재판관, 피해자인 유대인 가족은 물론 당대의 지식인과 언론인, 예수회, 프랑스 황제와 이탈리아 국왕, 유럽 대륙 너머 미국 정치계까지 파장을 끼쳤던 사건이다. 물론 교회가 종교적 이유로 유대인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빼앗아간 사건은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19세기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유, 평등, 박애의 사상이 유럽 전역을 물들이고 시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 사상이 격동하던 시대였다. 유대인 어린이 납치는 인간의 자연법을 위배하고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는 야만적인 구시대의 악습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프랑스 황제와 유럽의 군주들은 교황의 세속 지배권의 존속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세상에! 19세기에 종교재판이라니!


 ​놀랍게도 이 납치사건은 이탈리아 통일 운동(리소르지멘토: il Risorgimento)와 교황령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진 않았더라도 이 거대한 역사적 물결 가운데 깊이 관여해 있기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임에도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이야기가 상기시키는 씁쓸한 결말과 과거를 묻고 싶은 거대 권력집단의 입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당시 유럽인의 공분을 샀던 이 사건을 주제로 다양한 연극과 소설이 쏟아져 나왔다.​​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볼로냐의 애국 군대가 일으킨 봉기의 혼란 속에 주인공은 마침내 랍비인 아버지와 재회한다. 체포된 교황 특사는 끌려가기 직전 랍비에게 이죽거린다.

“당신은 승리의 열매를 만끽하지 못할 걸. 내가 당신 가족을 불화에 빠뜨렸으니까. 아비는 유대인이고 아들은 기독교인인 걸 봐!”

“당신이 잊은 게 있는데.”

랍비가 대꾸한다.

“자유의 샛별이 떠올랐고, 그 빛에 편견과 무지의 안개가 걷혔습니다. 기독교인과 유대인, 개신교도와 가톨릭교, 모두 한 가족을 이룰 것입니다. 국가라는 제단 앞에서. 이탈리아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19세기 연극 : 유대인 가족 중


 이런 훈훈한 감동 어린 결말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영화와 현실은 다른 법이다. 현실은 냉혹했다. 한 프랑스 작가는 어린 에르가르도의 운명을 이렇게 예고했다. 6살 때 납치당한 에르가르도는 이때 아홉 살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 ​ 아이는 - 펜이 머뭇거릴 정도로 쓰기 끔찍한데 - 예수회 수도사가 될 것이다! 정통의, 진정한 기독교에 반하는 원칙을 섬기는 수도회 말이다. 이 순진한 아이가 예수회의 도구, 그들의 전도사이자 유대인의 박해자, 제 아비의 박해자가 아니면 대체 뭐가 되겠는가.  그렇게 되는 순간 어쩌면 우리는, 아이의 부모가 심장이 찢기는 심정으로 ‘그 애가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하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어머니 마리안나와 함께 한 에르가르도 모르타라 신부

 

 ​​​ 실제로 교황 피우스 9세는 아이를 예수회에 맡겨 키울 계획을 했다. 에르가르도가 예수회의 일원으로 자라길 원한 것이다. 하지만 안토넬리 국무원장이 그건 좀 아니다 싶어 반대했던 탓인지 에르가르도는 유명한 수도원 기숙학교에 맡겨져 신학을 공부하며 자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실은 교황이 어린 에르가르도를 많이 예뻐해 주고 소년이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소년이 부모 형제와 강제로 헤어졌을 때 겨우 6살이었다. 로마 교리 문답집에서 머무를 때 부모가 에르가르도를 면회 왔지만 8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돌봐야 하는 처지였다. 에르가르도를 되찾기 위해 법정 투쟁을 벌이다 파산까지 하게 되자 부모는 아이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에르가르도의 어린 시절 추억은 부모님 대신 교황과 교회가 차지했다.


​ 훗날 에르가르도 모르타라 신부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피우스 9세는) 늘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아버지처럼 나를 예뻐해 주셨고, 현명하고 유용한 가르침을 내리셨으며, 따뜻하게 축복을 내리시고,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눈물을 흘렸는지 아느냐는 말씀을 자꾸만 하셨다.
 더 어렸을 때는 여느 자상한 아버지처럼 나를 그 커다란 붉은 망토 자락에 숨기고는 장난치듯 ‘어디 숨었니?’ 하면서 망토를 젖혀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곤 하셨다.


 1858년 교황이 다스리던 이탈리아의 볼로냐, 이곳에 살던 모르타라라는 유대인 상인의 집에 교황청 헌병대 소속 경찰들이 들이닥쳐, 겁에 질려 울부짖는 8명 어린이들 가운데 6살짜리 에르가르도 모르타라를 끌고 간 이후 모르타라 부부는 자식을 되찾기 위해 끝없는 법정투쟁에 나서야 했다. 모르타라 집안에서 일했던 안나라는 카톨릭 교도 하녀가 에르가르도가 아기였을 때 병이 나서 심하게 아프자 몰래 물 몇 방울을 뿌려 세례를 주었는데 아기가 세례를 못 받고 죽으면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례를 받고 가톨릭 교도가 된 에르가르도. 말이 많던 하녀는 이 비밀을 이웃에게 떠들었고 종교재판관의 귀에 이 사실이 알려졌던 것이다. 일자무식에 찢어지게 가난했던 안나 모리시는 종교 재판관의 추궁과 지참금에 대한 탐욕 때문에 아기에게 세례를 준 사실을 고백했다.



 종교재판관은 이 사실을 로마 검사성성에 보고했고 교황의 승인 하에 에르가르도를 연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교회법에 따라 기독교도 어린이는 유대인 가정에서 자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경찰에 잡혀간 이후 모르타라는 사방에 뛰어다니며 고군분투했지만 끝내 아들을 되찾지 못했다. 로마에선 교회법이 자연법을 앞서고, 주일 예배를 빠지면 경찰이 집으로 찾아오던 무서운 시대였다. 오늘날 우리는 종교의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지만 19세기만 해도 얘기가 달라졌다.​이 사건은 당대 유럽 사회에 공분을 일으켜 수많은 지식인들이 교회와 교황을 비난했다. 프랑스 황제조차 이 야만스러운 처사를 비난하고 교황령으로부터 철군을 고심했다. 교황의 세속 지배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군대의 힘으로부터 나왔는데, 교회가 외세의 힘을 빌려 이탈리아를 짓밟고 있던 셈이다.


 ​리소르지멘토 운동으로 사보이 왕가가 사분오열 되어있던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교황의 세속 지배권을 무너뜨렸을 때, 이 사건도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에르가르도라는 유대인 소년에 대한 기록이지만 한 편의 대하 역사서나 다름없는 흐름을 보여준다.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그 시대 세속 권력과 종교권력의 기나긴 투쟁을 사실적으로 그린 논픽션 걸작이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이유로 영원히 저주받은 민족으로 취급받은 채 온갖 박대를 받아온 유대인의 끔찍한 고통. 불결하고 열악한 게토 안에 갇힌 채 유대인의 표시를 달고 부당한 대우 앞에 입을 다문 채 살아야 했던 유대인.. 광신적 종교의 횡포와 폭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보았다. 교황이 장악했던 한 시대가 저물고 혁명과 자유와 계몽의 신세계가 열리는 이탈리아의  역사를 소설을 보듯 재미와 감동을 더불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주인공 피오 에르가르도 모르타라 신부는 13살 때 교회에 평생 헌신하기로 마음먹었고 신부의 길을 택한다. 그의 부모가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아버지가 감옥에 갇힌 채 죽어가는 와중에 해맑게 신학 공부를 하는 에르가르도의 모습이 씁쓸하게 겹쳐졌다. 훗날 어머니 마리안나가 아들을 찾아와 가족이 재회했지만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에르가르도는 “어머니,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라며 설득했다. 에르가르도 신부는 그가 좋아하는 신학과 수학 공부에 평생 열중하며 1940년 3월 11일에 여든여덟 살의 나이로 벨기에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죽고 얼마 후 나치가 장악한 독일군이 벨기에로 쳐들어와 유대인의 피로 오염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참으로 씁쓸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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