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질 용기
데일 카네기 <인간 관계론>,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미혼이든 비혼이든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결혼을 ‘깍아내리게 ‘ 된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또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고단함
-혼자 훌쩍 여행 가기도 쉽지 않은 매어있음
이 두 가지가 내 단골 테마이다.
뭐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홀가분한 삶이야말로 적지않은 수의 기혼자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다소 과장되게 이야기한다. 객관적 사실과 아주 먼 것도 아니지만 미혼, 비혼 친구들을 의식한 대화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기혼자로서 그들 앞에서는 굳이 ’ 결혼을 미화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이 너무 앞선 탓이다.
내 말을 듣던 친구가 말했다.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어. 그냥 남들처럼 누군가를 만나 좋아져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친구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겉으로 봐서는 남부러울 게 없는 친구의 꿈은
‘그저 평범해지는 것’이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반대였다.
사람마다 다 다른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짜인 템플릿에 맞춰
때가 되면 졸업하고,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직장에 다니며,
남들 다하는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삶에
나까지 가담할 필요가 있을까?
결혼이 내키지 않아 대학교 때 처음 만난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몇 번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삼십 대 중반에 결혼했다.
돌이켜보면 문학소녀들이라면 한 번씩 앓게 되는
열병 같은 존재, 전혜린의 책 영향도 있었다.
내 소원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었다.
무명으로 남을 용기는 나에게는 없다.
-전혜린, 1962년 9월
유명해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결코 평범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 역시 지극히 평범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 후였다.
#보편적 욕구
대부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건강과 장수
음식
수면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내세의 삶
성적인 만족
자녀들의 행복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
Most people want:
Health and the preservation of life
Food
Sleep
Money and the things money will buy
Life in the hereafter
Sexual gratification
The well-being of our children
A feeling of importance
데일 카네기 Dale Carnagey그 유명한 데일 카네기의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인간 관계론)>(1936)의 한 대목이다.
건강과 장수, 음식, 수면,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내세의 삶, 성적인 만족, 자녀들의 행복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
아주 드물게 ‘무아‘를 실천한 거룩한 생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성인 경지의 인물들을 제외한다면
모두에게 해당될 내용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하나 '나는 아니야'라고 말할 항목이 없다.
우리는 각자 다르면서도 전 인류에 공통되는 집단 무의식영향 아래 있는 보편적 존재이다.
조금은 특별했으면 했던 내 소망, 열망, 꿈도
결국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 욕구에 포섭된다는 것을 깨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경쾌해졌다.
#평범해질 용기
전혜린은 ‘결코 평범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꿈을 결국 이뤄냈다.
무명으로 남을 용기가 없다던
그녀는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서른한 살 세상을 떠났다.
불꽃같은 삶을 갈망한 요절한 천재였으나
보편적 행복을 누린 삶은 아니었다.
그녀를 진정 괴롭혔던 것은
‘무명으로 남을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평범해질 용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때 열렬하게 흠모했던 그 이름,
전혜린을 이제는 완전히 ‘졸업’할 시간이다.
표지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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