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가 보는 <반야심경>의 심오한 혁명성
#한국의 탈종교화
올해 6월에 발표된 미국 Pew Research Center의 '동아시아 사회의 종교와 영성'이라는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절반이상이 종교가 없다고 응답했다.
*https://www.pewresearch.org/religion/2024/06/17/religion-and-spirituality-in-east-asian-societies
Pew Research Center에서는 한국의 '탈종교화' 현상을 심층 취재하기 위해 지난주 서울을 찾았다.
신앙은 없으나 종교에 대한 '학문적', '철학적' 관심이 지대한 나에게 기회가 닿아 조사팀의 체류 동안 인터뷰 통역을 맡게 되었다. 조부모, 부모 세대에 비해 종교와 멀어지거나 아예 믿지 않게 된 일반인을 몇 명 심층 인터뷰하고, 마지막 인터뷰는 ‘참선센터’를 이끌고 계시다는 금강스님과 진행했다. 카메라 촬영이 있는 대면 인터뷰라 질문자와 인터뷰이가 눈을 응시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질문을 하는 Pew Research Center 에디터는 내 뒤에 앉고, 모든 인터뷰이는 통역사인 나와 눈을 마주하고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다.
금강 스님이 자리에 앉으시고 지긋이 내 눈을 응시했다. 눈가와 입가의 엷은 미소와 함께 그의 맑은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 부처가 살아계시다면 이런 모습일까? 짧은 인사 외에는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의 눈은 '네 마음을 이해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혼란해도 '지금 나는 여기서 고요하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금강 스님이 조용히 뿜어내는 은은한 광채에 압도된 채로 정확히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그간 일하면서 꽤 여러 스님들을 만났다. 대체로 온유하면서도 단단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금강스님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차원의 강력하지만, 자비로운 힘을 가지고 계셨다.)
#반야는 잘 있어?
며칠 뒤,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반야심경般若心經> 해설서를 사서 읽고,
연달아 최진석 교수의 <반야심경> 강의를 6강까지 모두 들었다.
책 읽고 강의 좀 들었다고 <반야심경>의 심오한 의미를 모두 깨달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눈앞에 안개가 걷힌 느낌이다.
사실 <반야심경>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까운 곳에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반야’는 불교 집안에서 자란 친구가 키우는 반려견의 이름일 뿐이었다.
반려견을 제 식구처럼 아꼈던 친구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근황 대신 반야의 사진을 올리곤 했다.
자연스레 그 친구를 만나면 ‘반야’는 잘 있어?라고 반야의 안부를 챙기면서도
반야의 이름을 따온 <반야심경>이 궁금하지는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한승원 작가의 장편소설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있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소설은 영화화되었고 1989년 주연을 맡았던 강수연 배우가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주연상을 받아 큰 화제가 됐었다.
아직 어려서 영화를 볼 수는 없었는데도 삭발한 여주인공의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아있었다.
#이제야 만난 <반야심경>
<반야심경>은 제목까지 모두 합해 불과 270자로 이루어진 경전이다.
반야 경전의 정수인 공(空) 사상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불교 경전이다.
여기서 '공(空)''은 아무것도 없음, 빈 상태, 허무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공'이란 어떤 것을 이루는 고정불변의 실체, 본성이란 없다는 의미다.
우리 몸만 해도 실체가 있는 그 무엇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산소, 수소, 탄소, 칼슘, 질소, 인이라는 6대 원소(99% 차지)와
나머지 50여 가지 각종 원소들의 합일뿐이다.
그리고 이 몸은 다시 원소들의 합인 흙으로 돌아간다.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고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니 집착할 필요가 없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어떤 것은 이러해야 한다'는 집착이 사라지면
마음에 걸림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니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건너감'을 계속해서 깨달음을 얻자고 주문하는 것이 바로 '아제 아제 바라아제'이다.
'탈종교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대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힘보다는 과학을 믿고, 스스로의 신념을 중시한다.
무신론자인 나에게 <반야심경>은 그 어떤 과학보다 혁명적으로 다가왔다.
스스로 믿고 있는 신념이라는 것도 살면서 영향받아왔던 것들의 합으로
이루어진 관념이지, 모든 존재의 참된 본성인 실상(實相)은 아니라는 지혜.
망상을 알아차리고 매 순간 깨달음으로 '건너가자'는 행동강령!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건너가자, 건너가자, 모두 함께 건너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婆羅蜜多心經)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이 오묘한 반야바라밀다를 닦으실 때
몸과 마음의 욕망이 모두 비어있음을 비추어 보시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의 바다를 건너셨느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여, 삼라만상은 빈 것이며 공한 그 모습이 삼라만상이니, 감정이나 생각 욕망 의식 등 마음의 작용도 또한 빈 것이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여, 이 모든 비어있는 모습에는 나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더러웁거나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나거나 줄어듬도 없느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그러므로 비어있는 세계에는 이렇다 할 실체도 없고 감정도 생각도 욕망도 의식도 없고 감각의 주체도 없으며 빛깔이나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촉감의 관념도 없으며 그러한 것들의 모든 상대 또한 없느니라. 그러므로 미혹된 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으며 끝내 늙고 죽음을 벗어나는 것도 없나니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 依般若波羅蜜多 故 心無 無 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究竟涅槃
괴로움도 없고 괴로움의 원인도 없고 괴로움을 없애는 일도 없으며 팔정도의 길도 없느니라.
지혜가 따로이 있을 수 없으며 아무런 얻음과 잃을 것이 없으므로 모든 보살은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닦아가나니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 잘못된 망상을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르느니라.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 多羅三 三菩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최고의 올바른 깨달음을 얻었으니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이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진언이고 가장 밝은 진언이고 가장 뛰어난 진언이며 비 길데 없는 진언이니 능히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참으로 진실하여 허망함이 없느니라.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이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설하노라.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건너가자, 건너가자, 모두 함께 건너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표지 사진: Unsplash의Chris En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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