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손사레쳤지만, 유럽 장모님은 (최소) 다섯명과 연애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시고 엄마가 홀로 되셨을 때, 엄마는 겨우 오십 대 후반이셨다. 집안끼리의 중매로 만나 평생 무뚝뚝한 남편 한 사람만 알고 사셨던 엄마에게 슬쩍 속마음을 건넨 적이 있다.
“엄마를 많이 아껴주는 다정한 분 만나서 연애도 하고 그러시면 좋겠어.”
내 말에 엄마는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민망해하며 손사래를 치셨다.
유럽 친구에게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니 자기 장모님은 처음 뵌 이후로 남자친구가 최소 다섯 번은 바뀌었다며 한국 사회는 참 ‘특이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 무심하고도 당연한 어조를 들으며 우리 사회가 노년의 욕망을 얼마나 쉽게 폄하하고 있는지 새삼 실감한 적이 있다.
우리 곁의 노인들에게 사랑은커녕 '끌림'이라는 감정조차 자연스럽게 받여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하물며 노인이 젊은 세대에게 품는 욕망은 '주책'이나 '흉한 일'로 치부되기 일쑤다. 노인이 적극적으로 젊은이를 욕망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그 본연의 감정 자체를 '추하고 역겨운 것'으로 몰아세워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우연히도 설 연휴 기간에 박구용 철학과 교수의 <늙어가는 존재의 미학>이라는 예전 강연 영상을 접하게 됐다. 강연은 예술과 문학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가 '늙음'이라는 필연적 과정을 어떻게 폄하하고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유폐시키는지 철학적으로 날카롭게 짚어냈다. 강연을 듣는 내내 머릿속에는 노년의 욕망을 다룬 영화들이 잔상처럼 스쳐 지나갔다.
영화 속 노년의 욕망, <은교>와 <라벤더의 연인들>
영화 <은교>에서 칠십 대 시인 이적요(박해일)는 싱그러운 여고생 은교(김고은)를 보며 메마른 생애에 일렁이는 갈망을 느낀다. 그는 그녀를 통해 찬란한 젊음의 감각을 복원하려 하지만, 세상의 눈에 그것은 노추(老醜) 혹은 탐욕으로 비칠 뿐이었다. 개봉 당시 많은 관객이 이를 '추하다'거나 '역하다'고 혹평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라벤더의 연인들 Ladies in Lavender>은 조금 더 서정적이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평생 정숙하게 살아온 노자매 앞에 난파당한 젊은 청년 안드레아가 나타난다. 동생 어슐러(주디 덴치)는 그를 향해 설레는 연정을 품지만, 그 마음은 고백조차 감히 꺼낼 수 없는 부끄러운 일로 치부된다. 거울 속 주름진 얼굴을 보며 감정을 억누르는 그녀의 모습은, 노인의 욕망이 스스로에게조차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지를 보여준다.
'염치'라는 이름의 사회적 억압
왜 우리는 젊은이들의 사랑은 '찬란한 청춘'이라 칭송하면서, 노인의 사랑, 특히 젊은 세대를 향한 마음은 '추악함'으로 낙인찍는 걸까? 물론 권력이나 자본을 이용한 위계적 관계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하지만 그런 외적 조건을 제외한 순수한 '끌림'조차 노인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요구와 다름없다.
노인의 욕망을 '염치없음'으로 규정하는 감각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마도 노년을 '생식과 생산이 끝난, 소멸을 준비하는 단계'로만 정의하는 기능주의적 시각 때문일 것이다. 사회는 노인에게 지혜롭고 점잖은 '어른'의 배역만을 강요하며, 그 이면에서 생동하는 인간적 욕구를 '주제넘은 것'으로 치부한다.
지연된 억압,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미래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노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개의 종이 아니라, 어제의 청년이었으며 오늘의 우리가 반드시 도착할 '확정된 미래'라는 사실을 말이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결국 미래의 나를 향한 ‘지연된 억압’일 뿐이다.
갈망하는 마음은 생명의 강력한 증거다. 그 뜨거운 박동이 단지 육체의 쇠락을 이유로 '추함'이라는 딱지를 붙여야 할 대상은 아닐 것이다. 늙어가는 존재는 유폐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뜨겁게 살아 숨 쉬는 현재 진행형의 인간이어야 한다.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은 노년에 몸이 불편해진 후 진행한 인터뷰에서, 죽기 전에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뜨거운 연애’ 를 꼽았던 것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노인의 ‘주책’으로 치부했을지도 모르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뜨거운 박동과 생동하는 생명력을 놓지 않겠다는 거장다운 선언이지 않았을까?
늙어가는 존재는 유폐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뜨겁게 살아 숨 쉬는 현재 진행형의 인간이어야 한다.
아직 젊다고 착각하고 있는 우리 모두 역시,
하루하루 늙어가는 존재들이기에
표지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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