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달리기 예찬

겨울 달리기는 오감을 깨우는 명징한 경험이다.

by 루이보스J


운동을 꾸준하게 해온 지 어느덧 거의 20년이 되었다. 그간 내 몸을 거쳐 간 수많은 운동의 목록을 되짚어본다.


-헬스장의 중량감,

-실내 자전거의 반복적인 궤적,

-협응력을 키워준 수영,

-요가와 필라테스의 정교한 정렬까지.


이 긴 탐색의 시간 끝에 드디어 나의 운동 루틴은 비로소 '집대성'되었다.

달리기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필라테스 ;)

주 2~3회의 필라테스로 속근육을 다스리고,

1~2회의 요가로 유연함을 더하며,

주 4~5회는 길 위를 달린다.


중고등학교 시절, 체육 시간의 달리기를 그토록 질색했던 내가 이토록 달리기에 매료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달리기 젬병이었던 내가 이제는 쉬지않고 한번에 7-8킬로를 가뿐하게 달릴 수 있게 된 걸 보면 달리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최고의 운동임에 틀림없다.


특히 그중에서도 백미는 뜻밖에도 '겨울 달리기'다.


겨울 달리기는 오감을 깨우는 명징한 경험이다.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차가운 공기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지면을 박차고 나갈 때마다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반동은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살아있음'의 신호다. 차가운 외부 공기와 대비되어 서서히 몸 안쪽에서부터 차오르는 뜨거운 연소의 열기. 그 온도 차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몸의 엔진이 가동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래비티>(2013)

이 감각은 한참 전에 보았던 영화 <그래비티>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주변 사람들이(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인터스텔라>의 광활한 우주 서사에 열광할 때, 나는 고립된 우주에서 고독과 공포를 뚫고 마침내 지구로 귀환한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의 뒷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우주선에서 빠져나와 뻘밭을 기어 나와 마침내 두 발로 땅을 딛고 일어섰을 때, 그녀가 쥐었던 흙 한 줌과 떨리는 호흡. 그 장면은 내게 '생존이란 결국 중력을 느끼며 지면에 닿아 있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다.


달리기는 바로 그 중력과의 가장 정직한 조우다. 자동차에 몸을 싣고 있으면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미끄러져 나간다. 기계의 힘에 의탁한 속도는 나를 풍경으로부터 소외시킨다. 하지만 내 다리로 달릴 때, 아무리 속력을 높여도 나는 결코 지면으로부터 이탈할 수 없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은 내 몸무게만큼의 저항을 돌려주며 '너는 안전하게 땅을 딛고 있다'고 대답해 준다.


미끄러지지 않고 매 순간 지면과 접촉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나를 붙들어 매는 하나의 의식이다.

겨울의 양재천

양재천의 겨울 풍경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뚫고 달린다. 잎을 떨군 겨울 나무들은 투명한 빛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 고요한 풍경 속을 건강한 두 다리로 가로지르는 기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산다는 건 결국 어딘가에 닿아 있는 감각 아닐까.


겨울의 차가운 대지를 박차고 오르며

지구에 안착하는 감각을 찾아

설 연휴인 내일도 운동화끈을 단단히 묶고 나서야지 :)


표지사진:Unsplash Sporlab

본문사진: Unsplash Poxana Popovi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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