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는 즐거움에 대하여

나를 발견하는 즐거움에 질서를 심다

by 루이보스J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에서 일기를 쓰며 자아성찰을 멈추지 않았고, 벤자민 프랭클린은 매일 밤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겼다. 그렇다면 수십 년째 써온 내 일기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내 책장에는 유물들이 꽂혀 있다. 연필을 정성스럽게 깎아 꾹꾹 눌러쓴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부터, 어제 날짜의 기록까지.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요즘 내 일기는 그야말로 '의식의 흐름' 그 자체다. 어떤 날은 단어 하나 툭 던져놓기도 하고, 어떤 날은 빽빽한 고백록이 된다. 사소한 일상부터 일급비밀, 가끔은 심오한 고뇌까지. 일기장은 나의 가장 친절한 청중이자, 때로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받아내는 '해방구'였다.


일기란 본디 나를 위해 쓰는 것이라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소중한 기록들에 약간의 '가이드라인'을 그려주면 어떨까?" 두서없이 쏟아내는 즐거움은 유지하되, 훗날 다시 펼쳐봤을 때 나라는 사람의 궤적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였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역사 속 '기록 선배'들의 수첩에서 힌트를 얻어보기로 했다.


1. 벤자민 프랭클린: 나를 만드는 '13가지 설계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 프랭클린은 이십대에 이미 평생 지킬 '13가지 덕목'을 정했다. 절제(Temperance), 침묵(Silence), 질서(Order), 결단(Resolution), 절약(Frugality), 근면(Industry), 진실(Sincerity), 정의(Justice), 중용(Moderation), 청결(Cleanliness), 침착(Tranquilty), 순결(Chastity), 겸손(Humility)이 그것이다. 그는 수첩에 가로세로 줄을 그어 표를 만들고, 매일 밤 스스로를 검열했다.

-기록법: "오늘 나는 불필요한 말을 하지는 않았나(침묵)?" "내 물건들은 제자리에 있었나(질서)?"라고 묻는다. 만약 지키지 못했다면 해당 칸에 작은 점을 찍었다.

-활용 팁: 우리식으로 바꾼다면 '스마트폰 덜 보기', '다정한 말투' 같은 나만의 덕목 3~5가지만 정해 수첩 귀퉁이에 O, X로 표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 라이더 캐롤의 불렛 저널: 기호로 정리하는 일상의 질서

뉴욕의 디자이너 라이더 캐롤이 고안한 '불렛 저널(Bullet Journal)'은 전 세계 아날로그 마니아들의 성전과 같다. 핵심은 '빠른 기록(Rapid Logging)'이다. 문장을 길게 쓰지 않고, 점(Bullet)과 기호를 사용해 할 일과 일기를 한눈에 관리한다.

-핵심 기호:

• 점: 오늘 할 일 (완료하면 X로 덮어쓰기)

- 대시: 단순한 메모나 오늘 느낀 짧은 생각

o 동그라미: 약속이나 이벤트

* 별표: 아주 중요한 일이나 꼭 기억할 영감

- 활용 팁: "오늘 카페 커피 맛있었음" 같은 사소한 메모 옆에 *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기록은 특별한 데이터가 된다.


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뼈 때리는' 조언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사실 전쟁터에서 자기 자신에게 쓴 '잔소리' 모음집이다. 그는 남을 비난하고 싶을 때마다 수첩을 펴고 "너는 왜 흔들리는가?"라며 이성적인 훈계를 스스로에게 건넸다. 감정이 널뛰는 날, 수첩을 펴고 '제3자의 눈으로 나를 관찰하기'를 시작한다면 그건 성찰을 넘어선 든든한 자기 편이 되어주는 과정이 된다.


4. 팀 페리스: 딱 5분, 마음의 '주차 라인' 그리기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페리스는 아침과 저녁 딱 5분씩만 투자하는 '5분 저널'을 권한다. 질문이 정해져 있어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기록법: 아침에는 '감사한 일 3가지'와 '오늘을 기분 좋게 만들 일'을 적고, 저녁에는 '오늘 있었던 멋진 일 3가지'와 '오늘을 어떻게 더 잘 보낼 수 있었을까'를 자문한다.

-활용 팁: 일기가 중구난방이 될 때, 이 질문들을 수첩 하단에 고정으로 적어두면 생각의 방향이 금방 잡힌다.


기록은 나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오랜 시간 일기를 써오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냥 쓰기만 해도 '추억'이 되지만, 약간의 형식을 갖추면 '나만의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아날로그 수첩의 서걱거리는 질감 속에, 자유로움과 질서 그 사이 어디쯤의 기록을 담아보려 한다.


오늘의 키워드: 하루라는 시간동안 건져 올린 단 한 줄의 요약. 새로 배운 지식이나 마음을 흔든 생각, 혹은 나를 깨우친 찰나의 단어들.


Alignment(정렬) 점수: 내가 꿈꾸는 삶의 궤도와 실제 오늘 발자취 사이의 거리. 나는 오늘 내가 원하는 나에게 얼마나 가까이 머물렀는가.


• My BB (Black Box): 비행의 기록을 담는 블랙박스처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실수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내일을 위한 해결책을 기록하는 복기(復棋)의 시간

초등학생 때의 일기가 나의 '뿌리'를 보여준다면, 앞으로 써 내려갈 일기는 내가 어떤 나무로 자라고 싶은지 보여주는 '나이테'가 됐으면 좋겠다.


훗날 일기장을 다시 펼쳤을 때, "참 여전하네"라는 친근함 속에 “그래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구나"라는 안도감이 함께 머물기를 기대하며 일기장을 편다.


표지사진: Unsplash Sxiteen Miles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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