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문으로 이른 퇴근을 한 윤 가는 불편한 나를 위해 군용 지프를 타고 이동하자고 했다. 예전 같으면 사적인 일로 군용차를 쓰는 것을 꺼려했을 나는 하는 수없이 짚 차에 몸을 실었다.
윤가 녀석이 운전을 직접 하고 간 곳은 명동 극장 근처 술집이었다. 일제 때 모던 보이나 갔을 제법 근사한 양주 집에서 윤가와 나는 꽤 많은 술을 마시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이야기 나눴다.
전쟁 중에 치른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이 박사는 휴전을 반대한 이유로 미국 아이젠 하워 정부와 갈등을 빚었고, 이 박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휴전은 성사되었다. 윤가 말로는 이 박사는 휴전 후에도 전쟁이 재발하면 미국의 자동 개입을 위한 조약 체결에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 개다가 외국어 대학교 설립 추진 같은 교육 정책에도 상당히 힘을 쏟고 있다는 귀띔을 했지만 정치에는 관심이 없던 나는 흥미가 없었다. 윤 가는 정치 얘기에 심드렁한 내게 하나의 제안을 해 왔다. 그 제안은 불구가 된 몸으로 할 일이 없을 테니 자신이 마련해 주는 자리에서 일을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고, 그 의향을 내게 물었던 것이다.
"최 가 니가 나보다 더 충직한 군인이었고, 똑똑한 건 알겄어. 그래도 시상이 변했응게 변한 시상에 맞춰 살아야 하지 않겄냐? 니 그 몸으로 헐 수 있는 있남? 그러니 내가 널 위해서 윗 선에 말 잘 해서 사무직이라도 할 수 있는 자리 맹그렀는디. 해볼려?"
"......."
"왜? 뭣이 중요헌디? 그리 고민만 하고 있지 말고 가부 결정해서 이삼일 내로 답을 주면 될 것이여."
"그건 그렇고 니 고향은 언제 내려가 볼겨? 아직 식구들 못 봤지? 나는 다음 주에 우리 대통령이 특별 휴가로 내주신 일주일간 고향 갔다 올라 참이여. 그때 내 차로 함께 다녀오자. 조카 놈이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서 내 외질녀가 속을 끓이고 있어서 가서 해결해 주고 와야 헌다."
"외질녀면 일제 때 돌아가신 니 누님 딸 아닌감?"
"맞어. 어릴 때부터 여장부 소리 듣던 조칸디 지 엄마 죽고 새엄마 생긴 뒤로 맘고생이 심하구먼. 매형이 전쟁 통에 큰 난리 겪고 자리에 누워버린 뒤로 집안일이며 바깥일까지 다 해결하는 억척이가 돼버렸어. 내가 항상 미안한 뿐이지 얼릉 시집도 보내야 하는데... 니도 알제? 내 큰 조카?"
그러고 보니 아주 어릴 적 윤가 녀석과 함께 누이를 보러 갔다 만난 적이 있다. 왜놈 말을 잘했던, 자기 이름을 '김준데쓰'라고 소개하던 그 꼬마 아이. 그 아이가 벌써 시집갈 나이가 되었구나. 하긴 내가 장가갈 나이를 훌쩍 넘긴 이십 대 후반 노총각이니 그 아이도 스무 살이 다 되었을 터이다. 나는 갑자기 그 똘똘한 눈망울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 알겠다. 날짜 정해지면 함께 가자."
윤가의 정치 얘기는 더 길어졌고, 나는 연거푸 술잔만 기울였던 명동에서의 밤이 흘러갔다.
다음날 아침이 되고 내가 눈을 떴을 때 머리는 또 깨질 듯이 아팠고, 윤가 놈도 출근을 안 한 채 대자로 뻗어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 윤가 놈을 난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꼼짝도 안 한다. 우선 하숙집 식모아이가 머리맡에 준비해 놓은 자리끼를 벌컥벌컥 마셨다. 양주를 그리 물 마시듯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를 해도 이미 늦었다. 날은 깊은 가을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기까지 하다. 윤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마당으로 나왔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볼 셈이다.
다소 이른 시간임에도 아침나절부터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폐허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그 아이들을 위해 아기 새에게 열심히 먹이를 잡아다 먹이는 어미 새처럼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재동 골목길에서 바쁜 날갯짓을 한다. 소매가 반질반질해진 검은 재킷을 입은 어린 소년이 엄마의 손을 잡고 바쁘게 골목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니 고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큰 형님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태환이 인환이 그리고 이름도 아직 모르는 막내까지 제법 컸을 그 아이들을 생각하니 하루빨리 고향에 가고 싶어졌다.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보지 못했던 삼 남매가 내 자식처럼 걱정이 되고 생각나는 것은 불현듯 떠오른 큰 형님 탓이리라. 큰 형님이 그 큰 뜻을 펼치지 못하고 이 세상과 이별했을 때 그 어린 생명들을 부탁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난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신세가 되었다. 큰 형님 생각을 하다 걷다 보니 저 멀리 창덕궁의 돌담길이 보이고 전각들의 기와지붕이 보였다. 어느 몰락한 왕조의 집이었을 그 전각의 지붕에 사뿐히 내려앉은 새가 애처로이 나를 바라본다. 아마 저 새도 나의 처지를 알고나 있기라도 하듯이....
윤가가 약속한 그날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가는 아침, 윤 가를 수행하는 운전병이 윤가가 늘 타고 다니는 지프를 집까지 타고 가져왔다. 일주일 간의 휴가이므로 운전병 없이 윤가가 직접 운전을 하기로 했다. 윤가의 누이 집은 내 고향 집에서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하므로 나를 먼저 내려 주고 간다고 하였으나, 내가 극구 사양하여 누이 집부터 함께 들르기로 했다. 나 역시 윤가의 질녀가 어찌 컸을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재동의 한옥집을 빠져나와 육조거리와 종각을 지나 을지로와 명동을 지나온 지프는 임시로 만든 한강의 배다리를 건넜다. 전쟁통에 폭파된 한강교를 한참 재건 중이다. 내년이면 완공한다는데 끊어진 다리를 보고 있자니 서울을 뺏기고 도하작전을 수행하던 시절이 또 생각났다. 가을 하늘은 높고도 새파랬고 뒤로 보이는 남산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풍경을 다시 못 볼 것 같은 아쉬움이 갑자기 밀려와 남산 꼭대기 봉우리와 한강 물을 번갈아 돌아보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