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청(中央廳)

by 자강



윤가가 준비해 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온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찰나에 전차가 지나갔다. 저 전차를 타면 서대문도 가고 윤가가 근무하고 있는 중앙청도 갈 수 있으니 우선 전차에 몸을 실었다. 전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안개 낀 어젯밤에 본 풍경들과는 사뭇 달랐다. 짙은 안개가 끼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거리는 밝은 햇살을 받아 활기차고 살아 숨 쉬며 파닥거리는 활어를 닮아 있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심 곳곳의 건물들을 복구하기에 여념이 없는 인부들의 모습도 보이고, 무엇인가 팔려고 좌판을 벌인 이들도 있다. 개중에는 나같이 다리나 팔을 잃고 구걸을 하는 사내들도 보인다. 구걸하고 있는 이들 중 유난히 내 시선을 사로잡은 아이가 있다. 나이는 열두어 살 되어 보이는데 동냥 생활을 오래 했는지 옷은 검게 더럽혀져 있고, 얼굴은 씻지 못한 탓인지 귀를 타고 내려오는 턱이며 양 볼이 거무튀튀한 얼룩으로 가득하다. 나이가 큰 형님의 둘째 아들 인환이와 비슷해 보이는 그 아이는 양복을 입고 포마드로 머리를 한껏 공들인 젊은 남자와 아직 때 이른 버버리 코트와 하이힐을 신은 허리가 잘록한 여자가 함께 걷는 그 뒤를 뒤따라 가고 있다. 입으로 무슨 말인지 연신 중얼거리고, 양손을 모아 앞으로 조아린다. 아마도 잘 차려입은 남녀 한 쌍에게 동냥을 하는 것 같다. 전쟁이 나지 않았다면 저 아이도 유복한 환경에서 굶지 않고 제 할 일만 하면서 컸을 텐데. 전쟁으로 부모 잃고 전쟁고아가 되어 고단한 삶을 사는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전차가 종각역을 지나 단성사 근처 종로에 들어서니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문화생활을 즐길 여력이 있는 이들은 그래도 행복한 이들이지 싶었다. 난 그 단성사가 있는 종로 거리에서 내렸다. 을지로를 가로질러 명동까지 걸어보려 했으나 전차에서 바깥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기다 내릴 곳을 놓쳐버린 탓이다. 그리고 성치 않은 다리를 한 채로 목발을 짚고 다니다 보니 전차 안에서 이동하는 것이 아직은 익숙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나는 다시 왔던 길을 거꾸로 걸어서 간다. 전차를 타고 오면서 바라보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걷다 보니 또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무너진 건물들을 치우고 청소하는 젊은 사내들과 아낙네들도 보이고, 온전히 형체가 남아있는 상점 건물 앞에서 구두를 닦고 있는 십 대 후반의 아이들도 보인다. 행상을 하는지 머리엔 물건을 가득 실은 다라이를 이고, 등에는 코 흘리는 어린아이를 업은 여인도 보았다. 내 몸이 온전하면 저 무거운 짐을 대신 옮겨주건만 내 처지가 더 못하니 괜한 생각을 했다는 자조 섞인 웃음만 흘러나왔다.

자료 출처 : 국가기록원 1959년 중앙청



윤가 녀석이 오늘은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으로 오라고 했으니 한 시간 후쯤엔 그리로 가야 한다. 경복궁 내 그 많은 전각들을 부수고 내가 태어나기 한 해 전에 완공했다는 옛 조선총독부. 그 건물은 광복 후 미군정청으로 사용되었다가 대한민국 장부 수립 후부터 대통령 집무실로 쓰였다. 통한의 세월을 담은 그 건물이 대한민국 심장인 수도 서울에 버젓이 버티고 있는 걸 큰 형님이 보셨다면 뭐라 하셨을까? 치욕의 역사도 우리의 것이니 후세에 교훈이 되도록 남겨 두어야 한다 하셨을까? 아니면 당장에 쓸어버려야 할 일제의 잔재라고 하셨을까? 참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으로 돌아와 보니 이 다리로는 중앙청까지 걸어가는 것은 무리다 싶어 난 다시 전차에 몸을 실었다. 저 멀리 중앙청이 보이고 그 뒤로 옛 이 씨 왕조의 슬픔이 서려있는 경복궁이 보인다. 그 뒤로 보이는 북악산은 고사한 소나무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남은 힘을 다 짜내듯이 버티고 있다. 전차로 이동하니 10분이 안 걸리는 거리들 걸어왔으면 난 길을 잃고 저 청계천 어느 곳 돌로 쌓은 담벼락에 지친 몸을 기대고 있었을 거다.

중앙청 건물 앞 초소에서 내가 왔음을 윤가에게 알렸다. 그러고 10여 분을 기다리니 윤가 녀석이 나왔다. 군복을 벗고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윤 가는 제법 정치 거물처럼 보였다. 나라 지키는 군인이었던 나는 군복을 벗고 양복을 입은 윤가 녀석이 그리 탐탁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